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156화
“뭔가 이상하네요.”
“예. 이상해도 한참 이상합니다.”
영업 정지를 시키고 조사까지 진행하겠다던 황원호 국장이 갑자기 감감무소식이다.
지금 여론이 한창 들끓고 있을 때 속전속결로 일을 처리해야 하는데, 이렇게 시간을 끌면 좋지가 않다.
사흘째 금감원은 침묵했고, 신화 금융은 정상 영업을 하고 있었다.
들리는 말에는 신화 금융에서 영업 중단은 없을 것이니 안심해도 된다며 고객들을 설득 중이라고 한다.
단순히 고객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전략 같진 않았다.
금감원이 정말로 조사를 하지 않는다는 걸 신화 그룹은 알고 있는 것이다.
난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제가 잠깐 멍청했었나 봅니다.”
“예?”
“저번에 그랬었죠? 김도형 과장 같은 배신자는 절대 써서는 안 된다고. 한번 돈맛을 알아 버린 사람은 더 높은 금액을 제시하는 쪽에다 고개를 숙이는 법입니다.”
“갑자기 왜 그런 말씀을······ 아! 설마?”
“예. 제가 볼 땐 황원호 국장이 다른 길로 빠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신화 금융이 저렇게 영업을 하고 있을 리 없죠.”
권 대표는 허탈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게 정말 사실이라면 우리가 된통 당한 셈이네요. 이 양반 진짜 안 되겠는데요?”
“많이 괘씸하죠? 배신을 하게 만들 때는 몰랐는데, 막상 배신을 당해 보니 기분이 썩 좋지는 않네요.”
“공직자가 기자 회견에 나와 압수 수색까지 하겠다고 선언한 마당에 이렇게 없던 일로 하려 한다? 이건 절대 있어선 안 될 일입니다.”
처음에는 황당해하던 권 대표가 차츰 화를 내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양반 절대 가만 놔두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지금이라도 뒤를 파서 구린 게 있나 없나 살펴보는 게······.”
“이거 한번 보세요.”
나는 대답 대신 서류 하나를 권 대표에게 건네주었다.
그는 그것을 받아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언제 이런 걸 조사하셨던 겁니까?”
“제가 원래 사람을 잘 못 믿어서요. 황원호 국장에게 접근하기 전부터 저희 경호팀을 시켜 알아낸 정보들입니다. 정상적인 루트로 알아낸 정보가 아니라서 함부로 공개하기는 그렇지만, 그중에 꽤 쓸 만한 것도 있어요.”
“그렇네요. 황 국장 이 양반, 생긴 것과는 다르게 여자를 좋아하는군요.”
“성추행을 당한 여직원들도 몇 있고, 이미 와이프 몰래 만나는 여자도 있습니다. 거기에 모자라 유흥업소는 제집 드나들듯이 하고 있고요. 근데 아주 기밀 유지를 철저히 하는지 처음 조사했을 땐 나오지 않았던 것들이었어요.”
“정말 철저히 남들 몰래 여자들을 만나고 다녔다는 겁니까?”
“예. 경호팀이 깊숙하게 파고들기 시작하니까 그런 정보들이 나온 겁니다.”
순간 권오준 대표는 오싹해졌는지 내게 조용히 물었다.
“회장님. 혹시 저에 대한 뒷조사도······.”
“흐흐. 혹시 숨겨 놓은 애인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크흠.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제가 원래 일편단심 우리 마누라만 좋아하는 놈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권 대표님은 조사 안 했으니까. 제 무덤 파는 짓은 하지 않아요.”
“절 조사하는 게 왜 회장님 무덤을 파는 일이에요?”
“그야 권 대표님은 제게 가장 필요한 사람이니까요. 그런 사람의 신뢰를 잃는 짓을 하고 싶진 않습니다.”
그 말을 듣고 권 대표는 짠한 표정을 지었다.
진하게 감동을 먹은 거 같은데, 나는 이상한 분위기를 만들고 싶지 않아 얼른 화제를 돌렸다.
“자. 이 정도 서류면 황원호 국장 병신 만드는 거 일도 아니겠죠?”
“예. 충분합니다. 이런 건 또 제 전문이지 않습니까? 저한테 맡겨만 주십시오.”
“황 국장을 만날 필요는 없겠죠?”
“아마 이거 터지고 나서 황 국장이 살려 달라고 회장님 앞에 달려와 무릎을 꿇을 순 있을 것 같네요. 아참. 대신, 이 서류가 제대로 효과를 보려면 야당의 도움이 꼭 필요합니다. 그건 회장님께서 잘 전달해 주십시오.”
“예. 안 그래도 야당 안에서도 시끌시끌하다고 들었어요. 아마 조만간 저한테 연락이 오지 않을······ 아니. 이 사람들 양반 되기는 글렀네. 말하자마자 전화가 오네.”
나는 원내대표에게서 온 전화를 받았다.
“대표님. 그렇지 않아도 전화 한번 드리려 했습니다.”
-아이고 회장님. 아침부터 귀찮게 해 드려서 미안합니다. 저번에 당원들 힘내라고 선물도 보내주신 건 잘 받았습니다.
돈은 잘 챙겼지만, 그렇다고 아쉬운 게 없는 건 아닐 것이다.
-회장님. 지금 금감원 움직임이 매우 수상하다는 건 알고 계시죠?
많이 급했는지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나도 이 인간이랑 오래 통화하고 싶진 않아서 얼른 대답했다.
“예. 당장 오늘이라도 다 밀어 버릴 것처럼 굴더니, 지금은 순한 아이가 되었어요.”
-제가 오늘 알아보니까 금감원 쪽에서 올 스톱 되었다는군요. 그쪽 사람들도 많이 당황해하고 있던데, 혹시 알고 있는 게 있으십니까?
“짐작이 가는 게 하나 있긴 합니다. 그래서 대표님의 도움이 필요하고요.”
-이 나라를 위해 헌신을 다 하시는 분인데, 당연히 제가 도와 드려야죠. 말씀만 하십시오.
그럼 오랜만에 밥값 좀 시켜 볼까?
“황원호 국장이라고 아시죠?”
-예. 금감원 국장 아닙니까? 기자 회견 때도 아주 당차게 말하더니, 갑자기 이게 뭡니까?
“그게 다 사정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신화 그룹에서 황원호 국장에게 돈을 잔뜩 넣어 준 거 같아요.”
-허-. 그런 몹쓸 사람을 봤나! 지금 돈 때문에 이 중요한 일을 내팽개쳤단 말입니까?
“예. 저희는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문제는 심증만 있고 물증이 없어요. 그래서 저희가 물증을 찾으려고 사람을 풀려고 합니다.”
-으음. 전 어떤 걸 해 드리면 되겠습니까?
“목소리를 내 주십시오. 황원호 국장이 신화 그룹과 결탁하여 옳은 일을 하지 않고 있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저희한테 자료 몇 개가 있는데, 황원호 국장의 도덕성 문제를 파고들 수 있을 겁니다.”
도덕성 문제가 나오자 원내대표는 금방 내 말을 캐치했다.
-여자 문제입니까?
“맞습니다.”
-크-. 그것만큼 간단하고 묵직한 한 방이 또 없긴 하죠. 자료를 보내 주신다면 저희가 검토한 뒤에 바로 터트리겠습니다.
“예. 그동안 저는 이 양반이 어느 루트로 신화 그룹의 돈을 챙기고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그것만 잘 해결되면 대표님이 원하시는 대로 일을 이끌어 가실 수 있을 겁니다.”
-항상 신세만 지는군요. 저도 이번만큼은 제대로 결과를 내 보겠습니다. 또 연락드리죠.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경호실장을 불러 황원호 국장이 어느 루트를 통해 신화 그룹에 돈을 받고 있는지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보통 그런 돈은 다양한 루트로 뻗어 나가거든요. 아예 무식하게 현금으로 전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현금으로 그 많은 돈을 다 전달하진 못할 겁니다. 은행도 바보는 아니니까요. 최대한 알아봐 주세요.”
“예, 회장님.”
황원호 국장의 비밀 계좌까지 털어 낸다면 신화 그룹을 동시에 엮어 버릴 수가 있다.
경호실장이 알아내지 못해도 상관없다.
야당이 저 자료를 갖고 터트리면 황원호 국장은 내 앞으로 달려와 살려 달라 빌게 될 테니까.
* * *
“부회장님. 제발 도와 주십시오.”
이진석의 예상과는 달리 황원호 국장이 달려간 곳은 부회장 신용일이었다.
신용일은 이 한심한 인간에게 벌써 수십억을 건네주었다는 것이 화가 날 뿐이었다.
“이보세요. 황 국장. 그쪽이 아랫도리를 잘못 휘두른 걸 가지고 왜 나한테 살려 달라는 거야?”
“부회장님. 저도 듣는 귀가 있고 보는 눈이 있습니다. 이 자료가 야당에서 퍼졌다고 합니다. 야당이 이런 정보를 갖고 있다는 건 분명 J&H가 배후에 있다는 겁니다.”
“J&H가 당신 뒷조사하는 걸 설마 모르고 있었던 거야? 우리 신화 그룹도 당신 뒷조사 벌써 끝마쳤어. 여자 문제가 복잡하긴 하던데. 아무리 숨기고 다녀도 정말 맘먹고 파헤치면 여자 냄새는 절대 못 지워.”
“부회장님. 제발 살려 주십시오. 도덕적 문제로 절 파면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법적 조치까지 취한다는 얘기도 있고요. 그렇게 되면 저 다 잃어야 합니다. 와이프랑 이혼하면 위약금도 어마어마하게 물어야 돼요. 거기다 이 나이에 감옥에서 썩을 순 없지 않습니까?”
“어휴-. 애써 아가리에 돈을 쑤셔 넣었더니, 뭐 해 보지도 않고 나가떨어지려고 하네.”
이 상황이 참 한심하고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이런 놈을 뭘 믿고 돈을 투자했을까.
“이거 하나만 명심해요, 황 국장. 우리 신화 그룹이 당신한테 헛돈 썼다는 말 나오게 하면 내가 지옥 끝까지 쫓아가서 당신 죽여 버릴 거야. 그러니까 감옥을 가든 바닥을 구르든 이 일은 무조건 마무리하고 나가. 당신 후임으로 오는 새끼가 절대 허튼짓 못 하게 잘 단속시키라고.”
“부회장님. 끌려가는 마당에 그런 걸 어떻게 한답니까?”
“그럼 받은 돈 다시 뱉어 내든가! 그런 각오도 없이 내가 건넨 손 잡은 건가? 내 말 명심해. 우리 돈 떼어먹고 도망치면 그 대가가 뭔지 똑똑히 알게 해 줄 거야. 알겠어?!”
결국 황원호 국장은 찍소리도 못 하고 밖으로 나와야만 했다.
당장 수십억이 넘는 돈이 들어왔을 때는 세상 모든 걸 가진 기분이었는데, 지금은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그러다 그는 번뜩 정신을 차리고는 J&H 본사로 달려갔다.
* * *
“생각보다 늦으셨네요?”
내 비아냥거림에 황원호 국장은 묵묵히 서 있다 내 앞으로 달려와 무릎부터 꿇었다.
“죄송합니다.”
“국장님. 갑자기 이러시면 제가 뭐가 됩니까?”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회장님. 한 번만 살려 주십시오.”
야당이 스피커를 틀어 놓고 황원호 국장에게 맹공격을 퍼부었다. 그에 따라 언론도 나서서 그를 집중 조명하니, 도저히 버텨 낼 재간이 없었을 것이다.
“신화 그룹에서 황 국장님을 살려 주지 않는답니까?”
“감옥을 가든가, 바닥에서 구르든가 알아서 하라더군요.”
“쯧-. 그러게 왜 그러셨어요. 제가 주는 돈이나 알아서 잘 주워 먹었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거잖아요. 내 편에 섰으면 여자 문제가 터지지도 않았을 겁니다. 사전에 차단을 해 줬을 테니까요.”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잠시 돈에 미쳤었습니다. 두 번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겁니다.”
나는 무릎을 꿇고 눈물까지 흘리고 있는 황 국장을 내려다보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저게 진심 어린 눈물인지, 아니면 악어의 눈물인지······.”
“진심입니다! 뭐든지, 정말로 뭐든지 하겠습니다!”
나는 물끄러미 황 국장을 바라보다 비서실에 전화를 걸었다.
“경호실장 올라오라고 해요.”
이윽고 경호실장은 회장실로 올라와 무릎을 꿇고 있는 황 국장은 쳐다보지도 않고 내게 인사부터 올렸다.
“부르셨습니까.”
“예. 여기 이분이 누군지는 아시죠? 이분한테서 비밀 계좌 받으세요.”
그러자 황 국장이 화들짝 놀라 되물었다.
“비, 비밀 계좌라니요?”
“당신이 신화 그룹에서 돈 받은 계좌. 그거 말하는 겁니다. 그것들을 전부 여기 있는 우리 실장님에게 넘기면 됩니다.”
“회, 회장님!”
놀라 소리치는 황원호 국장을 보고 있자니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왜? 아까워? 처음 발 들였을 때부터 각오는 했어야지. 내 뒤통수 때리고 무사할 줄 알았어?”
“그, 그게 아니라······.”
“그냥 순순히 달라는 거 내놔. 안 그러면 당신 평생 감옥에서 썩게 만들어 줄 거야. 몇 년 푹 썩다가 감옥 나와서 땡전 한 푼 남아 있을 줄 알아? 내가 어떻게든 당신이 꿍쳐 둔 돈 찾아내서 다 뺏어 버릴 거니까 꿈도 꾸지 마.”
완전히 겁에 질린 황원호 국장은 바들바들 몸을 떨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난 쭈그려 앉아 말했다.
“황원호 국장님. 이게 바로 접니다. 전 은혜를 2배로 갚지만, 원수는 10배로 갚아야 직성이 풀려요. 그러니까 우리 쉽게쉽게 갑시다.”
내가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자 그는 조용히 고개를 푹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