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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 천재가 되었다-155화 (155/200)

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155화

신화 금융의 잘못된 행위가 SNS를 통해 빠르게 퍼져 나갔다.

겉으로는 사과하는 척을 하지만 뒤로는 다른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국민들에게 공분을 샀고, 이에 따라 야당은 정부가 신화 금융과 비리를 저지르고 있다며 총공격에 나섰다.

“항상 회장님에게는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소재가 떨어질 때쯤이면 이렇게 귀신같이 먹잇감을 주시니, 이거야 원 송구스러워서 말이죠.”

야당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강원우 원내 대표는 들뜬 목소리로 내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아닙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죠. 지금 나라가 많이 어지럽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모두 자제하고 또 자제를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있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역시, 나라를 생각하는 기업인은 회장님밖에 없을 겁니다. 저도 그런 상황을 볼 때마다 얼마나 분노가 일던지요. 국민들의 눈에는 피눈물이 나올 겁니다.”

“대표님께서 힘을 써 주십시오. 지금이야말로 야당이 목소리를 높일 때가 아닙니까?”

“예. 그렇지 않아도 우산호 이후로 국민들도 현 정권에 대해 불신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회장님께서 뒤에서 든든하게 버텨 주신다면 저희는 앞만 보고 달려갈 겁니다.”

연료 떨어지지 않게 뒤에서 잘 채워 넣으라는 소리였다.

처음 기업을 운영했을 땐 정경유착을 굉장히 혐오했는데, 지금은 아주 당연한 순리라고 여겼다. 그 어느 나라든지 대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일수록 정치하는 자들과 섞이지 않으면 앞날이 캄캄해진다.

그래서 줄타기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특정 정당에만 돈을 몰아주다 쪽박을 차는 기업인들이 심심찮게 나오기 때문.

“대표님이 목소리를 높여 주신다면 전 뒤에서 적극적인 서포트를 아끼지 않겠습니다. 혹시 곤란한 일이 있으시다면 언제든 제게 연락 주십시오. 힘닿는 데까지 도와 드리겠습니다.”

돈은 얼마든지 있으니 마음껏 저지르라는 얘기였다.

그는 금방 내 뜻을 알아듣고는 흡족한 웃음소리를 냈다.

“이 대한민국에 회장님 같은 분만 계셔야 하는데···. 아무쪼록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원내대표와 통화를 끝내고 나는 권 대표에게 말했다.

“야당 캠프에 박스 좀 돌려야겠습니다.”

“박스 돌린 지 얼마 안 된 걸로 알고 있는데요?”

“방금 온 전화가 수금하려고 건 겁니다. 꽤 넉넉하게 준 거 같은데, 벌써 다 떨어졌다네요.”

“허이구. 그 양반들은 대체 얼마나 돈을 쌓아 두려는 건지 원. 국회의원 월급이 좀 많습니까? 거기다 연금도 따박따박 나오는 사람들이 참 욕심도 많지.”

“원래 세상에서 제일 욕심 많은 사람들이 정치하는 거라잖아요. 그리고 지금은 이들의 목소리가 필요합니다. 원하는 만큼 퍼 주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돈 먹고 제대로 일을 해 주지 않는 정치인들이 널려 있지만, 아직까지 야당은 내가 원하는 대로 잘 따라 주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보수 정당이 대한민국 정치권을 꽉 붙잡고 있다 우산호 사건을 기점으로 반전의 기회가 나타나고 있는 중이다. 그들은 결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을 터.

내가 돈을 주지 않아도 알아서 그들은 마이크에 소리를 질러 대며 여당을 압박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투자를 하는 이유는 난 조금 더 먼 미래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대로 간다면 차기 정권은 보수가 아닌, 분명 진보 쪽에서 나올 거라 예상하고 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동안 뿌렸던 씨를 다 추수할 생각이다.

* * *

“허-.”

금감원은 신화 금융에 영업 정지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검찰과 협력해 압수 수색을 진행하겠다고 발표했고, 감사를 실시해 신화 금융을 낱낱이 파헤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생방송으로 해당 회견을 보고 있던 신 회장은 허탈한 기함을 터트렸다.

“저 새끼 네가 잘 구워삶았다고 하지 않았냐?”

신용일 부회장은 식은땀을 흘리며 TV 속에서 떠들고 있는 황원호 국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번에 만났을 땐 완전 겁에 질려 있었던 놈이 지금은 아주 당당하게 카메라 앞에 나와 있지 않은가.

“제가 잘 타일러서 말했었습니다. 황 국장도 잘 알아들은 것 같았고요.”

“잘 알아들은 놈이 칼춤을 추려고 저렇게 고사를 지내? 넌 대체 일 처리를 어떻게 한 거야!”

“죄, 죄송합니다.”

신 회장의 호통에 신용일은 고개를 숙였다.

황원호 국장을 향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지금 그걸 여기서 드러낼 순 없는 노릇이다.

“아이고 두야.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정말 이렇게 영업 정지 당하고 싹 다 옷 벗고 싶어?!”

“회장님. 최대한 정치권 쪽에 민원을 넣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 이대로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순 없습니다. 영업 정지에 압수 수색까지 당하면 우리가 모르는 것까지 탈탈 털릴 수도 있어요.”

신 회장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지었다.

“그러니까 나더러 청와대든 어디든 다 전화 걸어서 직접 해결해라 이건가?”

“그게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니야? 지금 딱 그 얘기구먼.”

임원들도 괜히 이런 소리를 하는 게 아니다.

금감원이 검찰과 협력하여 칼을 빼 들었다는 건 임원들 선에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즉, 정치권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신 회장이 직접 필드로 나서야 한다.

“다들 나가 봐. 이 쓸모없는 인간들.”

“죄송합니다, 회장님.”

모두 정중히 인사를 올리고 혹시나 신 회장 마음이 바뀔세라 황급히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그런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신 회장은 끌끌 혀를 찼다. 그러고는 아직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아들 녀석을 노려보았다.

“넌 이 자리가 무척 싫은 모양이다?”

“예?”

“국장 새끼 하나 삶아 오라는 것도 못 하는 놈한테 내가 뭘 믿고 맡길 수 있겠냐? 차라리 네 동생이 그 자리에 앉았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회, 회장님.”

“내가 틀린 말이라도 했냐? 네 아들놈이 그렇게 개판만 치지 않았어도 이런 수모를 겪었겠냐고! 차라리 너 말고 둘째가 내 뒤를 이었어야 했다. 그랬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도 않았겠지.”

“······.”

할 말이 없어 신용일은 입을 꾹 닫고 있었다. 괜히 여기서 말대꾸를 했다가는 정말 쫓겨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진석이 신화 금융에 있을 때 네 편을 든 건 이날을 위해서였을지도 모르겠구나.”

“예?”

“그놈이 처음부터 계획적이었다는 것일 수도 있다는 얘기야.”

“그건 너무 나가셨습니다. 아무리 이진석이라고 해도 이런 상황을 어떻게 예측했겠습니까?”

“뛰어난 전략가일수록 너 같은 범인과 보는 시야가 다르다. 항상 몇 수, 혹은 수십 수 앞을 미리 보고 결정을 내리지. 네가 둘째보다 날려 먹기 쉽다는 걸 알고 미리 판을 짠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자꾸만 드는구나.”

만약 신 회장의 공상이 사실이라면 이진석은 절대 상대해서는 안 될 끔찍한 적수일 것이다.

“아무튼, 지금 와서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냐? 이미 물은 엎질러졌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네가 정말 죄송하다면 저 국장 새끼 족쳐 와. 어떻게든 금감원이 움직이는 걸 막아 보라는 거다. 나도 최대한 여기저기에 압력을 넣어 보마.”

신 회장이 직접 전화를 돌리면 상황은 당연히 달라질 것이다. 신용일은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생겼다.

“예. 바로 달려가서 멱살부터 잡고 오겠습니다.”

“쯧-. 멱살 잡는다고 해결될 놈이 아니야. 저런 놈은 그냥 아가리에 돈을 쑤셔 넣어야 돼. 최대한 잘 구슬려. 일이 다 끝나면 그때 조져 놔도 늦지 않으니까.”

“명심하겠습니다.”

신용일은 일단 한고비를 넘겼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TV에서 신나게 떠들어 대고 있는 저 황 국장의 입을 막지 못하면 그 고비는 다시 찾아오게 될 것이다.

* * *

황원호 국장은 자기가 사는 집 앞까지 찾아온 신용일 부회장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거기다 저렇게 많은 경호원들까지 데려온 것을 보자 혹시 집에 있는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겉으로는 최대한 침착한 척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는 애써 헛기침을 뱉으며 신용일 부회장을 만났다.

“부회장님. 누추한 곳까지는 어쩐 일이십니까?”

“하하. 국장님. 오늘 기자 회견은 아주 잘 봤습니다. 생각 외로 카메라빨을 좀 받으시던데요?”

황원호 국장은 전혀 반갑지 않은 손님이었기 때문에 차가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제가 카메라 잘 받는다는 소리를 하시려 온 건 아닐 테고.”

“가볍게 차라도 한잔하시죠?”

“전 별로 생각이 없는데요?”

“그럼 재고를 하셔야 할 겁니다. 오늘이 국장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 될지도 모르거든요.”

내키지 않았지만 황 국장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싫다고 버티면 신 부회장 뒤에서 눈을 부라리고 있는 경호원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대충 아무 동네 카페에 자리를 잡은 신 부회장은 주인에게 천만 원짜리 수표를 주며 하루 장사를 접게 만들었다. 그리고 단둘만의 자리에 앉아 커피를 홀짝였다.

“국장님. 저번에 내가 했던 말 기억해요?”

저번 그 치욕스러운 만남 말인가?

당연히 기억한다.

“기억을 못 한다면 바보겠죠?”

“하하. 우리 국장님 아무래도 저번 일 때문에 많이 속상하셨던 거 같네. 분풀이하려고 기자 회견까지 나오시고. 그때 일은 내가 사과하겠습니다. 그날 내가 너무 예민해서 말이 헛나갔어요.”

“뭐, 그러실 수도 있죠.”

“그럼 이제 일 얘기로 넘어가 볼까요?”

찻잔을 내려놓은 신용일이 말했다.

“얼마입니까?”

“예?”

“J&H에서 당신에게 주겠다고 한 몸값. 그거 얼마냐고요.”

“지, 지금 무슨 말씀을···!”

“그거의 2배. 아니 3배를 주지.”

3배라는 말에 황 국장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부족해? 좋아. 그럼 5배. 이 정도면 만족하나?”

잠깐 뜸을 들였다가 금액이 5배까지 치솟았다.

황 국장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 정도면 아마 평생 먹고살 거야. 자식들도 좋은 대학 가고 유학도 갈 수 있겠지. 재벌 흉내는 못 내도 웬만한 졸부들보단 훨씬 나을 거고. 어때요?”

“가, 갑자기 그런 말씀을 하시면······.”

“그 말은 우리 쪽으로 넘어올 생각이 있다는 거네?”

“······.”

“좋아요. 고민이 되겠지. 박쥐마냥 이리저리 붙는 거 같아 보이니까. 하지만 당신 국장 자리 내려오면 그다음에는 뭘 하려고? 차라리 대기업 고문 자리에 떡하니 앉아 수백억이 넘는 돈을 주물럭거리는 게 훨씬 좋지 않겠어?”

황원호 국장은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음을 느꼈다.

J&H가 계약서로 제시한 금액보다 5배가 많은 돈. 그것도 100억이 넘는 돈을 5년 동안 얻을 수 있다.

“이번 제안이 마지막입니다. 이번에도 거절하면 그땐 어쩔 수 없지. 진흙탕 싸움으로 가서 너 죽고 나 죽는 거야. 지금 나도 회사에서 입지가 꽤 곤란해졌거든. 그래서 눈에 뵈는 게 없어.”

황 국장이 아무런 대답 없이 넋을 놓고 있자 신용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딱 1시간 주지. 마음이 서면 바로 나한테 전화부터 해요. 여기 커피가 더럽게 맛없어서 오래 앉아 있기도 싫어.”

신용일은 그렇게 경호원들과 같이 밖을 나갔다.

황원호 국장은 벌벌 떨리는 손으로 잔을 잡고 그 안에 들어 있는 커피로 입을 축였다.

항상 아침마다 맛있게 마시던 커피가 오늘은 왠지 맛없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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