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154화
“요즘 고생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국장님. 그래서 그런지 얼굴 뵙기가 힘드네요.”
이틀 동안 황원호 국장은 일부러 신화 그룹의 전화를 피해 왔다. 그런데 금감원까지, 그것도 신화 그룹의 부회장이 찾아오니 더는 거절할 수가 없어 자리를 마련했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신화 금융 때문에 정신이 없습니다. 솔직히 대체 왜 그러셨던 건지 의문이더군요. 한도 범위를 한참 초과한 옵션 상품을 그렇게 팔아 버리시면 저희도 많이 곤란합니다.”
“미안합니다. 제가 자식 교육을 잘못한 탓이죠. 그런데 이상한 소문이 돌더군요. 금감원에서 신화 금융을 직접 조사하겠다는 얘기가 있더라고요?”
황원호 국장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들으셨네요. 맞습니다. 제가 직접 지휘도 하고 있죠. 아마 내일부터 조사팀이 들어갈 겁니다. 잘 협조해 주셨으면 합니다.”
“허어-. 국장님. 우리 신화 금융이 대한민국 금융업의 기둥이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매정하게 이러시면 섭섭합니다.”
“섭섭한 건 피해를 본 투자자들이죠. 도박에서 지셨으면 돈을 지불하는 게 당연한 일 아닙니까? 이렇게 판돈 들고 도망치시면 저희는 잡아낼 수밖에 없어요.”
황원호 국장이 물러설 모습을 보이지 않자 신용일 부회장은 마음이 조금씩 급해졌다.
“그러지 마시고 좀만 봐주십시오. 우리도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지금 대처가 잘 안 되는 겁니다.”
“5조 원 가까이 되는 돈이긴 하나, 신화 그룹 정도면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거기에 혈세를 투입하는 건 모양새가 너무 좋지 않아요. 그리고 저도 공무원입니다. 일하는 거 귀찮아요. 하지만 여론이 저러면 할 수밖에 없습니다. 공무원은 결국 국민들의 지팡이 아닙니까?”
“알죠. 아주 잘 알죠. 그래도 당장 감사부터 실시하면 더 큰 혼란이 올 겁니다.”
“혼란을 잠재울 방법은 부회장님이 더 잘 아실 텐데요? 그냥 돈 주시면 됩니다. 그럼 다 해결되는 거예요. 정 방법이 없으시다면 회사를 엎어 버리시죠.”
“회사를 엎어요?”
“정식으로 부도를 내고 정부의 도움을 받으라는 겁니다.”
대화를 나누면서 대충 느끼고는 있었지만, 역시 이놈은 벌써 J&H에 홀라당 넘어가 버린 것이 분명했다.
그런 생각이 들자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한 신 부회장이었다.
“황 국장님.”
“예.”
“혹시 J&H랑 손이라도 잡으신 겁니까?”
“······예?”
“J&H가 준 각본대로 움직이시는 거 같은데, 자신 있으세요?”
“갑자기 그게 무슨······!”
“잘 생각하세요. 지금 당장은 J&H가 준 떡이 맛있겠지만, 뒤에 가면 그걸로 배탈 납니다. 안 날 거 같죠? 우리 신화 그룹이 작정하고 당신 인생 털면 어떻게 될 거 같아? 정말 자신 있어?”
보통은 잘 흥분하지 않는 신용일이었으나, 이진석에게 금감원 국장이 넘어갔다는 걸 생각하니 짜증이 난 것이었다. 요즘 이진석의 ‘이’ 자만 봐도 경기를 일으키는 신용일이지 않던가.
“내가 빈말한다고 생각하지 마. 당신이 지금 이렇게 행동하는 건 청와대의 뜻을 역행하는 거야. 넌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지? 그래 봐야 그 자리 오래 못 지켜. 지금처럼 겁도 없이 대들 때는 더욱더!”
“부회장님. 지금 말씀이 너무 심하신 거 같은데요?”
“입 닫아! 그 자리 지키고 싶으면 신화 그룹이 하라는 대로만 해. 안 그럼 당신 말로가 어떻게 될지 참 볼 만할 거야.”
황 국장은 두 손이 부르르 떨려 왔지만 뭐라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겁을 먹은 것이다.
잠깐 잊고 있었다.
자신이 지금 누구에게 칼을 들이대고 있는지 말이다.
신용일도 황원호 국장의 반응을 빠르게 살피더니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다시 점잖게 돌아가 말을 높여 주었다.
“국장님. 저는 앞으로도 국장님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얼굴 붉히며 싸우면 서로 기분만 상하지 않겠습니까?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우리 신화 그룹은 도와준 은혜를 절대 잊지 않으니까요.”
그 말을 남기고 신용일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가 떠나고 나서 황원호는 한참이나 자리를 지켜야만 했다. 이윽고 그는 핸드폰을 들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 * *
“그러셨군요. 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제가 쥐여 드린 칼은 보통이 아니라고. 그쪽에서 그런 반응을 보였다는 건 그만큼 급하다는 뜻입니다. 흔들리지 마세요. 그리고 오늘 제가 국장님께 계약서를 하나 보내 드릴 겁니다. 한번 보시고 심사숙고해 보세요.”
나는 전화를 끊고 앞에 앉아 있던 권 대표에게 말했다.
“대표님. 계약서 하나 작성해 주십시오.”
눈치 빠른 권 대표가 내게 물었다.
“황 국장을 위한 계약서입니까?”
“예. 지금 전화 와서 아주 징징대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국장이나 되는 사람이 왜 그렇게 겁이 많은지 원-.”
“하하. 공무원은 원래 겁 많은 사람이 높이 올라가는 겁니다. 겁이 많으면 사람이 엄청 신중해지거든요. 그래서 어떤 줄을 잡아야 하는지도 오래 고민하게 되고요.”
“그러다 때를 놓치면요?”
“뭐, 관운이 없는 거죠. 하지만 한번 잘 풀리면 쭉쭉 올라가는 게 공무원 세상 아닙니까? 그런데 계약서는 어떤 식으로 작성할까요?”
“금감원에서 국장 정도를 할 정도면 고문으로 들여놔도 아주 쓸모가 많을 겁니다. 돈은 많이 퍼 주세요.”
연 100억을 달라고 해도 줄 생각이다.
금감원에서 국장을 했던 사람이지 않은가. 아무리 일을 그만둬도 그 입김은 결코 무시하지 못한다. 특히 공무원 세계가 그렇다.
인맥으로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는 곳이 아니던가.
그냥 무작정 찾아가서 돈을 먹이는 것보다, 잘 아는 사람이 찾아가 건네주는 것이 상대방을 더 안심하게 만든다.
“신화 그룹에서 언론 데스크를 막고 있답니다. 전부 다 헛소문이라는 기사도 따로 냈고요. 그건 어떻게 처리하실 겁니까?”
“우리가 잘하는 거 있지 않습니까? 세상이 바뀌었어요. 더 이상 사람들은 뉴스만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뉴튜브 같은 영상을 제일 많이 보죠. 그리고 우리는 뉴튜브를 장악할 스트리머들을 보유하고 있고요. 그뿐입니까? 각종 유명 커뮤니티 운영자들도 섭외해 놓았잖아요.”
TV에 나오는 뉴스보다 커뮤니티 글과 스트리머가 올린 동영상이 더 큰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시대가 도래했다.
미래 커뮤니티 센터를 통해 나는 시대가 많이 바뀌게 된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래서 기획사를 사들여 스트리머들을 집중적으로 섭외한 것이었다. 또한 각종 유명 커뮤니티 사이트의 운영자들도 기획사에 끌어들여 전문적인 관리를 받게 했다.
이제 그들이 내 이야기를 퍼다 나를 것이며, 지루한 언론 뉴스보다는 자극적인 것을 좋아하는 국민들은 그것을 보고 더욱 목소리를 높이게 될 것이다.
“커뮤니티에 글부터 쫙 올리세요. 신화 금융이 앞에서는 거짓말을 하고 뒤로는 몰래 돈을 받아 챙기려 한다고요. 그리고 신화 금융은 결코 돈을 지불할 능력이 없다는 것 또한 잊지 말고 넣으세요. 스트리머들도 힘 좀 내 달라고 하시고요.”
“예. 제가 바로 전화부터 돌려 보겠습니다.”
권 대표가 나가고 나서 나는 포털 사이트 반응을 쭉 살펴보았다.
벌써부터 댓글 부대가 깔려 서로를 헐뜯고 있었는데, 당연히 돈을 가장 많이 쓴 우리 쪽이 우세했다.
다들 신화 금융은 사기 기업이라고 몰아가는 중이었고, 언론사들은 행동이 반반이었다.
J&H에 붙은 쪽은 기사들을 계속 내보냈고, 그렇지 않은 곳은 올라가 있던 기사들까지 전부 내리는 등 다른 행동을 보였다.
또한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신화 금융을 공격하기 위해 거짓 소문을 퍼뜨리고 있다며 선동 기사를 써내긴 했지만, 놀랍게도 누구 하나 관심을 주지 않았다.
이번 사태가 터지고 나서 제일 먼저 언론부터 막으려 들었던 신 회장은 지금쯤 똥줄이 탈 것이다.
* * *
“내가 데스크 막으라고 했지? 떠드는 새끼들 다 주둥이 찢어 버리라고 말이야.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왜 아직도 내가 보는 포털 사이트에 우리 신화 금융 얘기밖에 없어?”
신 회장은 임원들을 모아 놓고 서류를 던져 대며 잔소리를 퍼부었다.
“돈이란 돈은 다 뿌리라고 했잖아? 자네들은 그 돈이 아까워서 안 뿌렸던 거야? 5조 원이 생으로 날아가게 생겼는데?”
“회장님. 저희도 모든 언론사에 압박을 넣었습니다. 그런데 그중 몇은 J&H에 완전히 달라붙어 버렸어요.”
“거기다가 가장 큰 문제는 언론사가 아닙니다.”
“언론사가 문제가 아니라고?”
“예. 요즘 젊은이들이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보고 커뮤니티 사이트에 들어가 정보를 나누지 않습니까. 그곳에서 나오는 얘기들이 뉴스보다 더 정확하다고 믿는 세대입니다. 아예 뉴스를 보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아요. 그런데 유명 커뮤니티 사이트마다 신화 금융이 사기를 치고 있다는 글이 계속 올라오고 있답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커뮤니티? 그게 다 뭔데?”
신 회장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들이었다.
결국 임원 하나가 각 사이트를 하나씩 보여 주며 설명을 해 주었다.
“보이십니까? 여기 나온 글을 보면 신화 금융이 몰래 공적 자금을 받으려고 거짓말을 하는 중이라면서 글을 올려놓았습니다. 인기글로 바로 올라가서 조회수도 상당하고요. 거기다 유명 스트리머들이 신화 금융에 사기를 당했다며 거기 묻혀 있는 돈을 돌려 달라는 자극적인 영상을 찍어 올리고 있어서 조회수가 폭발하는 중입니다.”
신 회장은 안경을 끼고 임원들이 보여 주는 화면을 천천히 확인해 보았다.
입게 담기 힘든 온갖 욕들이 글에 쓰여 있었고, 그들은 신화 금융이 희대의 사기 집단이라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또한 뉴튜브에 올라간 영상들에도 신화 금융에다 돈을 넣었다가 찾지도 못하고 있다는 얘기로 가득했다.
그리고 이들이 몰래 공적 자금을 받으려고 언론 데스크를 막아 놓고 있다는 신화 금융 직원들의 폭로가 이어지면서 더욱 시청자들을 자극했다.
“뭐야? 이거 정말 우리 쪽 직원들이야?”
“아닙니다. 그냥 저쪽에서 무명 배우 몇 명을 뽑아서 쇼하고 있는 거죠.”
“그럼 저걸 가만히 놔둬? 명예 훼손으로 고발하면 될 거 아니야?”
“안 그래도 법무팀이 준비 중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놈들이 영상을 삭제해 버리면 신화 금융에서 삭제해 버렸다고 또 다른 영상을 올릴 게 뻔해서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지 논의 중입니다.”
“허어-. 이놈의 세상이 망조가 들었나. 도대체 대가리에 뭐가 들었기에 이딴 놈들이 지껄이는 소리를 듣고 있는 거야?”
신 회장은 너무나도 빠르게 바뀐 세상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회장님. 마냥 무시할 순 없는 일입니다. SNS와 스트리밍 시스템이 크게 발달하면서 요즘 사람들은 아예 뉴스를 보지도 않아요.”
“뉴스를 봐야 세상 돌아가는 걸 알지!”
“예. 하지만 젊은 세대들은 뉴스가 전부 가짜라고 생각해서 SNS에 나오는 글만 믿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믿음이 곧 여론이 되는 것이고요.”
“하고 싶은 말이 뭐야?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언론 플레이에서 완전히 패했다는 건가?”
“그게······.”
임원들은 할 말이 없었다.
예전에는 신화 그룹이 돈을 뿌리면 그들이 원하는 대로 여론이 흘러갔다. 하지만 지금은 더 이상 과거의 영광대로 되지 않는다. 세상은 바뀌었고, 바뀐 세상에 신화 그룹은 아직 적응하지 못했다.
신 회장은 어떻게든 상황을 반전시켜 보고자 했다.
“일단 우리도 사람 풀어. 이대로 처맞고만 있을 순 없잖아? 여론을 잠재울 수 있게 뭐든 동원하란 말이야. 당장!”
“예, 회장님.”
임원들이 바삐 나가는 것을 보고 신 회장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떻게 된 게 회사에 믿음직한 놈 하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