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융계 천재가 되었다-153화 (153/200)

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153화

만기일이 지났지만, 신화 금융은 여전히 우리에게 돈을 지불하지 않았다.

그래도 예의상 3일 정도는 기다려 줬는데, 아예 전화선도 빼놓은 건지 우리 회사에서 거는 전화는 일절 받지 않았다.

나는 신 회장에게 경고했던 것처럼 금감원에 먼저 고발을 했다.

“저희도 사실 난감합니다. 이런 일이 있을 줄 누가 생각이나 해 봤겠습니까?”

금감원 황원호 국장은 앓는 소리를 내며 말을 이었다.

“신화 금융 뒤에는 신화 그룹이 있지 않습니까? 그쪽에서 어지간히 손을 썼던 것 같습니다. J&H가 고발 조치할 거를 미리 알고 말이죠.”

“그렇군요. 국장님이 고생이 많으시겠습니다. 하지만 신화 금융이 저렇게 버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지 않나요?”

“그건 그렇지만······.”

“압박이 심한 모양이군요.”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국장님이야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 격이니까요. 그래도 이렇게 물러나는 건 국장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예?”

“저도 힘을 실어 드리죠. 신화 그룹만큼은 아니라고 해도 J&H 역시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도 모든 라인을 동원해서 국장님이 압박받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황원호 국장은 잠시 멈칫거리다 내게 물었다.

“회장님. 그런 말씀을 하신다는 건 저한테 원하는 게 있다는 뜻이겠죠?”

“신화 금융 영업 정지부터 때려 주십시오. 그리고 대대적인 감사도 실시해 주시고요.”

“그랬다가는 제 목이 날아갈 텐데요?”

“제가 신호를 드리면 그때 움직이세요. 지금 당장은 어렵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국장님이 하기 싫어도 해야 할 때가 올 겁니다.”

황원호 국장에 대해 알아보니, 이 사람도 여러 군데에서 먼지가 많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저 옷을 벗길 만큼의 잘못은 없었기에 나름 청렴한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리고 정의에 대한 사명감이 조금 있어서 그런지 불의를 보고 무작정 넘기진 않는다.

이런 사람은 위의 눈치를 봐도 힘을 조금 실어 주면 불도저처럼 밀고 나갈 것이다.

“상황은 제가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국장님이 부담 없이 칼을 휘두를 수 있게 말이죠.”

“금감원 국장 따위가 칼을 휘둘러 봤자 얼마나 휘두르겠습니까?”

“제가 쥐여 드리는 칼은 다를 겁니다. 믿으세요.”

“음······.”

황원호 국장은 나와 만나는 동안 단 한 잔도 마시지 않던 술을 입에 털어 넣었다.

“회장님. 솔직하게 묻겠습니다. 어디까지 가시려는 겁니까? 신화 금융이 정말 부도나는 걸 보고 싶어서 이러시는 건가요?”

“예.”

“그럼 번지수 잘못 찾아오신 겁니다. 신화 금융이 문 닫으면 그때의 혼란은 어떻게 감당하시려고요? 그렇지 않아도 신화 금융이 부도난다는 소식에 사람들이 미쳐 날뛰고 있지 않습니까?”

“괜찮습니다. 부도를 내는 순간, 그 회사를 제가 가져올 거니까요. 정부도 바보는 아닙니다. 혈세를 투입해서라도 신화 금융을 다른 곳에 넘기려 들 겁니다.”

“오히려 그 혈세가 엉뚱한 곳으로 가면요?”

혈세가 엉뚱한 곳으로 가?

“신화 그룹 회장님은 만만한 분이 아니십니다. 저도 얼핏 들은 건데, 이미 정계 쪽 사람들과 만나서 쇼부를 쳤다는군요.”

“설마 혈세로 부도를 막겠다는 겁니까?”

“예.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신화 금융이 저대로 무너져 버리면 그 후폭풍이 장난 아닐 테니까요. 그런데 여기서 혈세를 투입하면?”

“신화 금융은 다시 건재해지겠군요.”

“이미 저쪽에서는 각본을 다 써 놓은 듯 보입니다.”

이건 나도 몰랐던 정보다. 그렇다는 건 내부에서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었다는 건데, 시간을 더 끌면 나만 불리해질 것이다.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사실 저도 찝찝했거든요. 이대로 아까운 세금을 들여 회사 부도를 막는다는 게 솔직히 가당키나 한 말입니까? 거기다 신화 그룹은 충분히 그 돈을 지불할 능력이 있지 않습니까. 공적 자금이라는 명분으로 세금을 낭비하는 꼴은 보고 싶지가 않더군요.”

“옳은 말씀이십니다. 그러니 제가 칼을 쥐여 드릴 때 마음껏 휘둘러 보세요. 국장님 같은 분이 정의를 실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긴 합니다만 요즘 나이가 들어서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빙긋 웃으며 비서실장을 불러 물었다.

“우리 국장님이 요즘 몸이 좋지 않으시다는데, 몸보신 할 거 좀 넣어 드려요.”

“그렇지 않아도 국장님 차 트렁크에 건강식품들을 몇 박스 넣어 두었습니다.”

“아. 그래요? 잘했어요.”

이 방에 있는 사람들 중 그 건강식품이 무엇을 뜻하는지 다 알 것이다.

국장은 괜히 헛기침을 터트리며 엄살을 떨었다.

“괜히 잘못 먹었다가 탈 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럴 리가요. 몸에 아주 좋은 것들만 넣어 놓았습니다. 죽었던 힘이 벌떡 살아날 겁니다. 별거 아니니, 거절하지 마세요.”

“하하.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저도 어쩔 수 없군요. 덕분에 오랜만에 몸보신 좀 하겠습니다.”

황원호 국장은 매우 흡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 사람에게 묻은 먼지가 또 하나 추가됐다.

* * *

“경제 수석과도 얘기 다 끝냈다. 언론 플레이 조금 해 주고 혈세 투입해서 해결을 볼 거야.”

신용일 부회장은 제 아버지의 놀라운 행동력에 그저 감탄만 나왔다.

“청와대와 협상을 하신 겁니까?”

“내가 이제까지 청와대한테 해 준 게 얼만데? 이 정도도 못 도와주면 손절 쳐야지.”

“대단하십니다. 정계 쪽은 아예 생각도 못 했던 건데······.”

“그야 너한테 붙어 있는 끈이 아니니까.”

그 말에 자존심이 조금 상하긴 했지만, 아무렴 어떤가?

이번 일만 잘 해결된다면 신화 금융은 절대 넘어지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그쪽한테 저당 잡힌 거다. 뭘 해 달라고 하면 그냥 무조건 해 줘야 돼. 정부한테 목줄 잡힌 기업의 운명이 얼마나 비루한지 모르지? 저 짱깨 새끼들 봐라. 모든 기업이 공산당 정부 손에 붙잡혀 있잖아. 아무리 돈을 잘 벌어도 정부가 칼 한 번 뽑으면 그날로 사라져 버려.”

“우리나라는 다르지 않습니까?”

“다르지. 문제는 우리가 저놈들한테 약점이 잡혔다는 거야. 그게 앞으로 우리의 발목을 붙잡을 게다. 계속 껄끄러운 거지.”

“죄송합니다.”

“쯧. 아무튼, 당분간 신화 금융은 네가 책임지고 안정시켜. 다른 일은 신경도 쓰지 말고. 이참에 신화 금융 사장으로 들어갈래?”

신용일은 화들짝 놀라 몸을 들썩였다.

“그 말씀은 부회장 자리를 내려놓으라는······.”

“왜? 네 아들이 싼 똥 다 치워 줬더니 마지막 뒤처리조차 다 늙은 애비가 하라는 게냐?!”

신 회장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신용일은 얼른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회장님.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그래. 잘 알아들었으리라 믿는다.”

“예.”

신 부회장은 하고 싶은 말을 꾹 참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그때 신 회장의 비서실장이 헐레벌떡 안으로 들어왔다.

“회장님. 급한 전화가 왔습니다.”

“음? 누구 전화인데?”

“경제 수석님이십니다.”

“갑자기 그 양반이?”

혹시 몰라 신용일 부회장은 슬그머니 다시 자리에 앉았고, 신 회장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전화를 받았다.

“아이고. 정 수석. 저번에 만나 놓고 또 이 목소리가 듣고 싶었던 겐가?”

하지만 돌아오는 목소리는 결코 유쾌하지 않았다.

“회장님. 이런 말씀은 없지 않으셨습니까?”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아직 뉴스 안 보셨나 보군요. 지금 언론들이 일제히 신화 금융과 정부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신화 금융에 정부가 혈세를 투입한다는 내용을 누군가가 퍼뜨린 모양입니다.”

“뭐야? 그건 그쪽이랑 우리만 나눈 얘기 아니었나?”

“예. 그런데 어디에서 정보가 새어 나간 건지, 지금 온통 그 얘기뿐입니다. 거기다가 요즘 개인 방송하는 스트리머들 있지 않습니까? 그 정신 나간 것들이 단체로 짜기라도 한 건지, 방송에서 정부가 쓸데없는 곳에 세금을 쓰려 한다고 정보를 퍼뜨렸다고 합니다.”

점점 TV를 보는 세대가 줄어들고 대신 인터넷 방송을 챙겨 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추세다. 그로 인해 유명 스트리머들의 발언권이 강해지기 시작했고, 여론을 좌우할 만큼 힘을 얻었다.

언론으로도 모자라 개인 스트리머들까지 단체로 나서서 정부를 비판하니, 그것을 보는 시청자들은 당연히 신화 금융과 정부의 행동을 못마땅하게 볼 것이다.

“그런 놈들 말을 일일이 다 들어서 뭐 해? 그냥 무시하시게나.”

“마냥 무시하기만은 힘듭니다. 야당이 벌써 건수 잡고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어요. 거기다 금감원까지 움직이려고 합니다.”

“금감원?”

“예. 금감원 국장이 신화 금융 감사를 준비한다는 얘기가 떠돌고 있습니다. 여론이 계속 이렇게 가면 저희가 그들을 막을 명분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가?”

“계속 상황이 이러면 공적 자금 투입은 아무래도 어려워질 듯합니다.”

“이보게, 정 수석! 지금 그게 무슨 개떡 같은 소리야!”

“죄송합니다, 회장님. 신화 그룹이 나서서 여론을 잠재워 주셔야 저희도 움직일 수 있을 듯합니다.”

받을 돈은 다 받아 처먹은 놈이 이제 와서 이런 얘기를 하는 게 괘씸하기 그지없었으나, 신 회장은 일단 숨을 골랐다.

오죽하면 이놈도 이렇게 직접 전화까지 걸어서 사정을 빌겠는가.

“일단 알겠네. 끊지.”

전화를 끊고 나서 신 회장은 비서를 시켜 TV를 켜게 했다.

경제 수석 말대로 TV에는 온통 신화 금융 얘기로 시끄러웠는데, 정부가 신화 금융에 혈세를 투입할 예정이라는 것 역시 헤드라인을 탔다.

신 회장은 뒷목을 잡으며 소리쳤다.

“당장 저것들 막아! 언론사에 다 라인 돌려서 기사 막으라고! 그리고 정정 보도 요청해!”

“정정 보도는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어떡하긴 뭘 어떡해! 일단 아니라고 잡아떼!”

그러자 눈치 없이 부회장이 나섰다.

“회장님. 정말 아니라고 하실 겁니까? 그랬다가 나중에 어떻게 하시려고요?”

“넌 생각이 없는 게냐? 지금은 아니라고 잡아뗀 다음, 잠잠해질 때쯤 몰래 받으면 되지. 저 개돼지 새끼들은 뭐 하나 던져 주면 금방 다 잊어버릴 거다. 장사 한두 번 해 보냐?”

신 회장은 일단 이 위기를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언론의 스피커만 잠재우면 된다고 본 것이다.

그의 말대로 언론이 잠깐 떠들어 대다 조용하면 국민들 역시 금방 잊어버리지 않던가? 그리고 더 자극적인 기사들을 내놓으면 그들은 그것에 정신이 팔려 버린다.

“당장 움직여. 만약 저 뉴스들이 내 눈에 또 보이면 다 박살 내 버릴 줄 알아. 알겠어?!”

“예, 회장님.”

비서실장은 또 언제 호통이 내려질지 몰라 빠르게 밖을 나갔다.

“쯧. 쓸모없는 놈들 같으니. 이런 것도 내가 다 해 줘야 하는 거냐? 다들 겁은 많아가지고 말이야.”

“회장님. 그런데 정말로 금감원이 감사라도 하는 날에는 일이 복잡해질 겁니다.”

“지금 금감원 국장이 누구지?”

“황원호 국장입니다.”

“그놈 그거 돈 좀 먹는 놈인가?”

“돈 싫어하는 놈은 없겠죠.”

“그럼 네가 직접 만나 봐라. 아가리에 처넣을 수 있을 만큼 넣어 줘. 허튼짓하지 못하게.”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들마저 회장실을 떠나자 신 회장은 자꾸만 불안감이 엄습했다.

타이밍이 매우 절묘하지 않은가.

누가 정보를 퍼뜨렸는지는 모르겠으나, 동시다발적으로 사격을 한다?

그렇다는 건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상황을 만들었다는 것이 된다. 그리고 그 배후가 누군지는 굳이 길게 생각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이진석 그 친구, 진심으로 내 회사를 홀라당 가져가 보려는 거 같은데?”

인상을 찌푸리기보다는 오히려 미소가 번졌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위기감이지 않던가.

피가 끓는 전투를 다시 한번 치를 수 있다는 것에 신 회장은 20년은 젊어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