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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 천재가 되었다-152화 (152/200)

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152화

“쯧쯧. 나도 자식 농사 잘못 지었지만, 너도 만만치 않다. 그 나물에 그 밥인 게지.”

“······죄송합니다.”

신 회장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제 한심한 아들을 바라보았다.

“네 아들은 영영 그룹 일에서 손 떼게 만들어. 그놈이 한 번 더 일 맡았다가는 회사가 다 거덜 나게 생겼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룹 일에는 얼씬도 하지 못 하게 만들 예정입니다.”

“너도 배운 게 있겠지? 장남이라고 해서 무조건 회사를 맡아야 하는 게 아니야. 그런 구시대적 발상을 하고 있는 거라면 생각 고쳐먹어라.”

무조건 장남에게 회사를 물려줄 필요는 없다는 신 회장의 말에 신용일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저 변덕 심한 영감이 자신을 갈아 치우고 그 자리에 쫓겨난 동생을 앉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두 번 다시 이런 일은 없을 겁니다. 믿어 주십시오.”

“두 번이나 이런 일이 일어나면 신화 그룹 전체가 쓰러지는 거지. 처음부터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어.”

이번 일을 빌미로 부회장직을 박탈할까 신용일은 그게 두려웠다.

“그래서 방법은 있고?”

“3일 동안 어떻게든 주가를 올리긴 해야 하는데, 뾰족한 수가 아직 없습니다.”

“쯧-. 미국 신용등급이 폭락했는데 네가 무슨 수로 주가를 올리겠냐? 내가 물어본 건 신화 금융이 5조 원 가까이 되는 돈을 지불할 수 있느냐야.”

“아마 신화 금융의 힘만으로는 부족할 겁니다.”

“그룹이 나서야 한다는 거네?”

“예. 제가 확인한 바로는 그렇습니다.”

신 회장이라고 확인을 안 해 봤을까?

그 역시 신화 금융이 5조 원이나 되는 금액을 감당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내가 이 얘기를 꺼낸 건, 신화 그룹이 나서서 도와줄 형편이 못 돼서 그런 거다. 정확히 얼마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금액이 5조 원이나 불어나게 되면 선택을 해야 할 거야.”

“신화 금융을 이대로 부도 처리 내신다는······.”

“안 그러면? 생으로 5조 원을 날려 먹을 셈이냐? 그리고 지금 당장 자금을 조달할 여력이 되지 않아. 이번에 돈 들어간 곳이 많아서 말이다. 이미 다 들어간 돈이라 다시 회수할 수도 없어.”

이럴 때를 대비해 여유 자금을 남겨 놓긴 하지만, 5조 원이나 되는 금액을 여유 자금으로 둘 순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신화 금융이 들고 있는 지분을 다 처분하면 얼마나 나오냐?”

“고객들이 빠른 속도로 돈을 빼 가고 있어 회사 자체적으로 투자하는 금액만 모으면 2조 원 정도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돈을 전부 빼 버리면 사실상 신화 금융은 있으나 마나 한 실정이라서······.”

“흠-.”

신 회장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다 눈살을 찌푸렸다.

“근데 재영이는 왜 갑자기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한 게야?”

“그건-.”

아버지가 사장 자리를 바꾸려 해서 그런 거라고 말하려다 생각을 바꿨다.

“이 모든 게 이진석이 깔아 둔 판이었다고 합니다.”

이진석이란 이름에 신 회장이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 이진석?”

“예. 김도형 과장을 매수해 재영이를 속여서 옵션 상품을 마구 생산하게 했다더군요.”

“그러니까 이게 전부 이진석이 만든 판이라는 거야?”

“예. 제가 직접 만나서 확인까지 했습니다.”

방금 전까지 세상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던 신 회장이 지금은 재미난 것을 발견한 듯한 표정을 보였다.

“그놈이 뭐라고 하디?”

“돈을 지불할 능력이 없으면 회사를 부도내 버리라고 하더군요. 그럼 자기가 알아서 주워 가겠다고.”

“하하! 건방진 놈. 기어코 우리 신화 그룹 계열사 하나를 떼어 가시겠다?”

“농담으로 하는 것 같진 않았습니다. 제 생각이지만, 이진석은 우리가 신화 금융을 얼른 부도내 주기를 바라는 것 같더군요.”

“흐음-.”

신 회장은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다 힐끗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놈이 우리 회사를 날름 삼키겠다는데, 그걸 가만히 두고만 볼 순 없지.”

“무슨 방법이라도 있으십니까?”

“그놈이랑 협상은 내가 해 보마. 그동안 너는 이 난관을 어떻게 돌파해 나갈지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봐. 아직 3일 남았으니까.”

“예······.”

몇 시간 동안 꼼짝없이 붙잡혀 잔소리만 들을 줄 알았는데, 생각 외로 싱겁게 끝났다.

하지만 회장실 밖을 나서면서 신 부회장은 히죽거리기만 하는 제 아버지를 보며 불안한 마음이 떠나가질 않았다.

* * *

대망의 만기일.

반전은 없었다.

추락할 대로 추락한 코스피 지수 덕분에 나는 정말 많은 돈을 벌게 되었고, 금융 시장은 혼돈으로 가득 찼다.

[신화 금융이 지불해야 할 금액 4조 5천억!]

[신화 금융, 이대로 신화 속에 묻히는가?]

[신화의 추락. 신화 금융만으로는 지불할 능력 없어.]

신화 금융이 우리 J&H에게 지불해야 할 금액은 2조 7,500억 원. 나머지는 옵션 상품을 사들인 개미들에게 지급해야만 했다.

“신화 금융만으로는 지급할 능력이 없어 보입니다. 현재 보유 중인 주식을 다 팔아도 지급 못 합니다. 더 큰 일인 건, 신화 금융 고객들이 죄다 빠져나갔다는 거예요. 옵션 아니더라도 신화 금융은 거의 끝난 거나 다름이 없습니다.”

고객들이 너도나도 달려와 돈을 인출해 가고 있어 신화 금융은 아예 창구를 막아 버리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어떻게든 버텨 보겠다는 거 같은데, 그런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

시간을 번다고 해서 지급해야 할 돈이 줄어드는 건 아니니까.

“지금 우리 고객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있습니다. 저희가 신화 금융에서 파는 옵션 상품을 마구 뿌리지 않았습니까? 다들 회장님 이름을 거론하면서 감사하다는 글을 몇 개나 올리는 건지 모르겠군요.”

나도 문득 궁금증에 여러 커뮤니티를 들어가 보았다.

[이진석 회장님. 사랑합니다.]

[킹진석이 진짜 내 인생을 살렸다.]

[오늘 포르쉐 알아보러 갑니다.]

주가가 폭락해서 다들 곡소리를 내고 있었지만, 우리가 뿌린 옵션 상품을 사들인 개미들만큼은 오늘 하루가 가장 행복한 날이었다.

하지만 이들도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었다.

[근데 신화 금융이 망하면 니들 돈 못 받는 거 아님?]

[맞네. 신화 금융 부도설 나오고 있다던데.]

[신화 금융 문 닫으면 풋맨들 돈 못 받는다. 소송 걸어도 과연 받을 수 있을까? 대기업이 그런 건 절대 안 줌.]

그들도 돌아가는 상황이 어떤지 알고 있기에 덜컥 겁을 먹은 듯 보였다.

만약 이대로 신화 금융이 부도 처리를 내고 아무도 이 회사를 가져가지 않은 채 방치해 버리면 저들은 생돈만 날린 것이 된다.

“슬슬 독촉 전화 넣으세요. 하루빨리 지급하지 않으면 소송 걸어 버린다고요. 그리고 금감원에 신고해서 영업 정지시킬 수도 있다는 협박도 잊지 마세요.”

“바로 압박 넣고 오겠습니다. 벌써부터 신이 나네요. 신화 금융 사람들과 통화해 보는 것도 조금 오랜만이라 기대가 됩니다. 흐흐.”

권 대표가 신화 금융에 갑질을 하려고 회장실을 나가려던 때였다.

“권 대표님.”

“예?”

“갑질은 아무래도 제가 해야 할 거 같습니다.”

나는 지금 전화가 오고 있는 핸드폰을 보여 주었다.

그곳에는 신 회장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아-. 신 회장님이군요.”

“부회장이 연락할 줄 알았는데, 바로 신 회장이 다이렉트로 연락을 넣네요. 어지간히 급한 모양입니다.”

“아쉽지만 오늘은 양보해 드리죠.”

나는 최대한 길게 전화를 받지 않다 거의 끝 무렵에 통화 버튼을 눌렀다.

“예, 회장님. 전화 받았습니다.”

-흠-. 많이 바쁘신가? 재깍 받을 줄 알았더니.

“죄송합니다. 워낙 일이 많아서요.”

-쯧. 거짓말하기는. 사실 내 전화만 기다리고 있었던 걸 내가 모를 줄 알고?

눈치 빠른 영감 같으니.

“무슨 일로 전화를 다 해 주셨습니까?”

-무슨 일이겠나. 애지중지 키운 내 회사를 누가 생으로 삼키려 드니까 전화한 거지.

“삼키다니요. 꼭 제가 신화 금융을 탐내는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아주 침을 질질 흘리고 다니는 걸 내가 모를 줄 알고? 그런데 자네한테 쉽게 넘겨줄 생각 없어.

끝까지 버텨 보겠다는 건가?

혹시 그룹 차원에서 수혈을 하기로 결정을 내린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나로서는 좀 곤란한 일이다.

내가 원하는 건 신화 금융이지, 돈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걸 겉으로 드러내서는 절대 안 된다.

“역시 신화 그룹이 돈 많다는 얘기가 사실이었군요. 안 그래도 신화 금융이 이대로 부도 처리 나면 어떡하나 걱정했습니다. 그 돈 꼭 받아서 여기저기 쓰고 싶거든요.”

-애써 속내를 숨기는 게 귀엽구먼.

“하루 빨리 지불해 주세요. 지금 저희 직원들이 옆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만약 빠른 시일 내에 지불해 주지 않으시면 금감원에 신고 들어갈 겁니다. 그땐 자연스럽게 영업 정지고요.”

-마음대로 하시게. 영업 정지되면 나야 좋지. 안 그래도 고객 놈들이 돈 빼려고 얼마나 개지랄을 떠는지 아나? 그거 다 무시할 수 있어.

신 회장, 참 능구렁이 같은 사람이다.

“그래서 지불을 안 해 주신다는 겁니까?”

-끝까지 버틸 수 있으면 버텨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랬다가는 사태가 어디까지 번질지 모르는데요? 금감원이 안 통하면 전 검찰에라도 고발해서 신화 금융을 탈탈 털어 볼 거거든요. 아마 묻은 먼지가 많이 나올 겁니다.”

-그래 봐야 시간 낭비라는 건 자네도 알 텐데?

“다른 사람이 하면 그렇겠죠. 하지만 제가 하면 좀 다르지 않을까요?”

그는 잠깐 아무런 말이 없다 이내 짧게 한숨을 쉰 뒤 말했다.

-기 싸움은 여기까지 하지. 자네가 신화 금융을 원한다는 건 알고 있어. 처음부터 내 회사를 뺏어 가려고 시작한 일 아닌가?

“돈을 지불하시면 신화 금융은 계속 회장님 곁에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차라리 협상을 하시는 게 어떨까요?”

-협상이라면 어떤 조건을?

“신화 금융을 부도 처리 내세요. 그럼 정부에서 매각을 하라고 명령을 내릴 겁니다. 그때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아예 공짜로 신화 금융을 가져갈 속셈인가?

“공짜라니요. 제게 지불해 주셔야 할 금액이 사라지는 거죠.”

-고작 그걸로 신화 금융을? 어림도 없는 소리.

나도 이 정도로 내놓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개미들에게 지불해야 할 돈도 제가 알아서 해결하겠습니다.”

-또?

“신화 금융이 갖고 있는 부채가 있다면 제가 다 짊어지도록 하죠.”

-또?

욕심도 많은 양반이다.

내 인내심은 여기까지였다.

“‘또’가 아니라 이번에는 ‘대신’입니다. 신화 금융이 들고 있는 주식들은 전부 놓고 가세요.”

-뭐?

“그래야 계산이 맞죠. 빚더미를 제가 대신 짊어 드리는 겁니다. 주식까지 전부 쓸어 가시면 제가 신화 금융을 품어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욕심이 지나치군.

“욕심이 지나치신 건 회장님이죠. 혹시 오늘이라도 그 지분을 모두 처분할 생각이시라면 그만두세요. 바로 금감원에 신고 넣어서 압류 들어갈 겁니다.”

-정말 해 보자는 건가?

“회장님이 어떤 선택을 내리시든 전 상관없습니다. 그저 선택할 수 있는 사항을 드린 거죠. 회장님과 척을 지면서 싸우려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나와 싸우고 싶은 게 아니었다면 재영이를 속여서 일을 벌이지 말았어야지.

저렇게 말하면 내가 또 할 말이 없긴 하다.

-자네의 뜻은 잘 알겠네. 정말 작정하고 신화 그룹 계열사를 쏙쏙 빼먹으려는 거 같은데, 쉽진 않을 거야. 금감원이든 검찰이든 어디 마음대로 고발해 보시게. 신화 그룹이 얼마나 악독한 놈들인지 내가 보여 주지.

신 회장은 당당하게 자신감을 드러냈다.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다 막아 낼 수 있다는 저 오만함.

처음으로 저 영감의 콧대를 부러뜨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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