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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 천재가 되었다-151화 (151/200)

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151화

“김도형 과장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생각 외로 일을 깔끔하게 해내셨더군요.”

“아닙니다, 회장님. 솔직히 많이 놀랐습니다. 미국 신용등급이 정말로 떨어지다니. 회장님께서는 이미 알고 계셨던 거군요.”

김도형 과장은 성공적으로 일을 마무리했다.

그것도 내 예상보다 훨씬 더 일을 잘해 주었기 때문에 마음 같아서는 우리 회사의 인재로 활용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한 번 배신자는 영원한 배신자일 수밖에 없다.

그와 협력하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었다.

“당장 회사로 출근하는 건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아요. 신화 그룹에서 과장님을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을 하더군요.”

“저, 정말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과장님이 신화 그룹 손에 잡혀갈 일은 없을 겁니다. 그래서 말인데, 당분간 해외 쪽으로 나가 보시는 게 어떠세요?”

“해외라면 어딜······.”

“어디든지요. 그동안 고생하셨으니, 휴양한다 생각하고 잠깐 나갔다 오세요. 연봉 40억은 내일 바로 입금해 드릴 겁니다.”

그러자 그는 벌떡 일어나 허리를 굽혔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뭐, 실적에 대한 부담도 없고 굳이 출근을 꼭 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제 과장님은 인생을 열심히 즐기기만 하면 됩니다. 사업을 한다고 갑자기 다 날려 먹진 마시고요.”

회사에 나와서 일할 필요 없이 내가 주는 돈으로 펑펑 놀기나 하라는 얘기였다.

그는 내 말을 아주 잘 알아들었다.

“하하. 저도 제가 어떤 그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사업은 꿈도 꾸지 않고요.”

“예. 앞으로도 좋은 일만 있기를 바랍니다. 당분간은 저희 회사에서 제공하는 경호를 받도록 하세요. 그럼 안전할 겁니다.”

“배려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김도형 과장이 경호원들을 따라 나가고 나자 권오준 대표는 짧게 혀를 찼다.

“저 양반 인생 쫙 폈네요.”

“혹시 부러우세요?”

“아뇨. 제가 이 회사를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거기다 전 회장님과 일하는 영광을 만끽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보다 더 축복스럽고 재밌는 일이 어디 있겠어요?”

“하하. 가끔 보면 대표님이 왜 신화 금융의 사장이 됐는지 알 것 같다니까요? 사람 마음을 흔들어 놓으시는 게 아주······.”

“후후. 그래서 저도 진지하게 고민 중입니다. 상사의 마음을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에 대해 강의를 해 볼까 하고요.”

권오준 대표가 김도형 과장이 부럽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잠깐 고민했는데,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저도 회장님 덕에 돈을 꽤 많이 벌었습니다. 부러운 마음은 쌀 한 톨만큼도 없군요.”

“그럼 다행이네요. 전 권 대표님 절대 못 놔주거든요.”

“흐흐. 염려 마십시오. 벽에 똥칠 할 때까지 회장님 곁에 꼭 붙어 있을 겁니다.”

그렇게 우리 두 사람이 잠시 농담을 주고 받을 때였다.

내 개인 핸드폰이 부르르 울리더니 신용일의 이름이 화면에 나타났다.

“신 부회장이네요.”

“생각보다 늦게 전화했네요?”

“그러게요. 생각을 오래 한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아들 일에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있다가 뒤늦게 안 것일 수도 있고요.”

나는 조용히 전화를 받았다.

-하하. 이 회장. 요즘 바쁜가?

다짜고짜 욕부터 날릴 줄 알았는데, 신 부회장의 목소리는 굉장히 차분했다.

“뭐, 미국 신용등급 하락 때문에 난리도 아니잖습니까. 정신 없습니다.”

-음. 그래? 밥은 잘 먹고 다니는 거야? 아무래도 내가 몸보신을 시켜 줘야겠네. 오늘 만나서 저녁 어때?

“그럴까요?”

-그래. 약속 장소는 내가 따로 문자 보낼게. 거기서 만나.

“예, 부회장님. 거기서 뵙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권 대표에게 말했다.

“생각보다 침착하네요?”

“신용일 부회장 성격이 원래 그렇습니다. 무조건 흥분부터 하지 않아요. 감정을 앞세우기 보다는 최대한 이성적으로 생각하려 하죠. 어떨 때보면 너무 냉정하다고 해야 할까요? 아마 그런 성격은 신 회장을 닮았을 겁니다.”

“음.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아무튼, 만나고 와야겠습니다. 한번 무슨 얘기를 하나 들어나 보죠. 어차피 오늘은 기 싸움만 하지 않겠어요? 정확한 결과는 3일 뒤에 나오니까.”

“그렇겠죠. 저쪽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는 것도 큰 도움이 될 테니, 만나 보시는 건 나쁘지 않을 겁니다.”

권 대표의 말대로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만약 3일 동안 별다른 변화가 없다면 신화 금융은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대로 금융사를 파산시킬지, 아니면 그룹 차원에서 자금을 수혈해 어떻게든 살려 낼지 말이다.

나는 잠깐 회장실에서 서류를 보다가 약속 장소로 나갔다.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던 신 부회장은 안절부절못한 모습을 애써 숨기려 했다.

“아. 왔어? 음식은 내가 코스 요리로 미리 주문해 놨는데 괜찮지?”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면 방해되실 텐데요?”

“에이.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얘기할 게 있으면 먹고 나서 해야지.”

신 부회장은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코스 요리를 즐기며 신변잡기를 했다.

“그래서 결혼은 언제 하게?”

“글쎄요. 아직 생각 중입니다.”

“KV 그룹······ 아니지. 지금은 전 KV 그룹이구나. 아무튼 그쪽 집안이랑 연결됐다면서?”

“그 얘기는 또 어떻게 아셨습니까?”

“하하. 네가 나한테 사람 붙여 놓은 것처럼 나도 너한테 사람 안 붙여 놨을까? 새삼스레.”

“그렇군요. 근데 생각보다 신화 그룹 쪽 사람들 실력이 별로던데요?”

그 말에 신용일은 들고 있던 수저를 내려놓았다.

잠깐 언짢은 표정을 짓긴 했으나, 이내 미소를 지었다.

“그래? 금시초문이야. 우리 애들 실력이 얼마나 좋은데.”

“그럼 제가 잘못 알고 있었나 보네요. 들리는 말에는 신화 그룹이 며칠째 열심히 누굴 수소문하면서 전혀 찾질 못하고 있다고 하던데.”

신용일 눈가에 경련이 일어났다.

버럭 소리를 지르고 싶어 하는 얼굴이었지만, 그는 곧 침착을 되찾았다.

“이렇게 훅 들어오네. 아주 대담해. 권투 선수였으면 훌륭한 인파이터가 됐겠어.”

“저도 권투 좀 배워 봐서 아는데, 전 인파이터 기질이 없어요. 오히려 아웃복싱이 좋더군요. 빙빙 상대방 주위를 돌면서 괴롭히다 기회가 왔을 때 카운터 펀치를 날리는 희열이 있어서요.”

“그래? 그런 놈들이 꼭 깝치다가 잘못 한 대 맞고 KO 당하지.”

“그래서 최대한 조심하는 중이긴 합니다.”

신용일은 잔에 담긴 술을 한 번에 털어 넣은 뒤 내게 물었다.

“김도형 그 새끼, 지금 어디 있어?”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알려 드리면 찾으시게요? 찾아서 어떻게 하시려고요? 죽이시려고?”

“세상이 어느 때인데 그런 끔찍한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저도 그쪽 세상이 어떤지 대충은 알고 있습니다. 오히려 옛날보다 요즘이 더 사람 없애기 쉽다고 하더군요. 자살로 위장하는 것도 쉬워지고 그냥 실종 처리해 버리는 것도 말이죠. 가끔 뉴스에 나오잖아요. 검찰 조사 받던 정치인이나 기업인이 갑자기 자살을 해 버렸다고.”

“음모론에 푹 빠지셨네.”

“아님 말고요. 그런데 김도형 과장을 찾는다고 해서 달라질 게 있겠습니까? 이제 기한은 3일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 3일 안에도 변수를 만들 수 있는 게 우리 신화 그룹이야.”

신화 금융이 부도나는 걸 막겠다는 건가?

“당연히 그렇겠죠. 저도 신화 그룹의 힘이 대단하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솔직히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하실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신용일 부회장은 목이 탔는지 술을 한 잔 더 따르고 나서 내게 물었다.

“이거 하나만 물어보자. 내 아들 뒤통수를 깐 게 저번 일 때문이야? 재영이 그놈이 도발해서? 아니면 우리 회장님이 현광 자동차 주식 못 내놓는다고 하니까 이러는 건가?”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전 아웃복싱을 좋아한다고. 주변을 빙빙 돌다가 기회가 왔을 때 펀치를 날렸을 뿐입니다. 누구처럼 비즈니스에 감정을 넣는 사람은 아닙니다.”

“내가 보기에는 굉장히 감정적인 거 같은데?”

“그럴 리가요.”

감정적이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꼭 감정적 이유 때만은 아니다. 그저 적당한 기회가 내게 찾아왔을 뿐.

“아무튼, 부회장님의 말씀은 오늘 잘 알아들었습니다. 신화 금융을 어떻게든 살려 보시겠다는 거죠?”

“신화 그룹이 건재한데, 금융이 그렇게 무너져 버리면 전경련에 무슨 낯짝으로 나가라고?”

“뭐, 저야 아쉬울 게 있겠습니까?”

나는 젓가락을 내려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돈 주시는 거 잘 받겠습니다. 저희 회사 직원들이 예측하기로는 적어도 2조 5천억 이상은 받을 수 있다고 하더군요. 이런 말 하면 안 되지만, 주가가 좀 더 떨어져서 주머니가 꽉 채워졌으면 좋겠네요.”

“염장질은 거기까지 하지?”

“아니면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보세요. 회사 하나 엎는다고 신화 그룹 명성이 어디 가겠습니까?”

“엎으면? 네가 슬쩍 주워 먹게?”

“불가능할 건 없죠.”

“건방진 소리 하지 마.”

“이런. 제가 또 부회장님의 심기를 건드렸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괜히 끝까지 앉아 있다가는 소화도 안 될 것 같아서요.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나는 식당 밖을 나오면서 살짝 걱정이 됐다.

정말 신화 그룹이 5조 원 가까이 되는 폭탄을 품으려고 할까?

차라리 신화 금융을 부도 처리 내서 경매에 내놓는다면 모를까, 그 많은 돈을 감당하려면 당분간 신화 그룹은 다른 사업을 진행할 꿈도 못 꿀 것이다.

웬만하면 확 부도 처리 해 줬으면 좋겠는데.

괜히 날을 세우고 기 싸움을 했나?

* * *

쨍-!

이진석이 나가고 나서 신용일 부회장은 잔을 벽에다 던져 버렸다.

“건방진 새끼.”

화가 머리 끝까지 솟구쳐 올랐지만, 그렇다고 멍청하게 물건을 던지며 화풀이를 하는 건 에너지 낭비였다.

“야. 담배 하나 갖고 와.”

결국 그는 끊었던 담배를 입에 물었다.

“씨발. 이걸 받아 말아?”

오늘 이진석과 기싸움만 한 것이 아니었다.

이진석은 분명히 이렇게 말했다.

신화 금융을 부도시키라고 말이다. 그럼 자기가 주워 가겠다고.

굉장히 건방진 소리라고 생각했으나, 현실을 고려하면 나쁘지 않은 일이기도 했다.

만약 이대로 만기일이 다가온다면 신화 금융은 4~5조 원이나 되는 돈을 내야 한다. 당연히 신화 금융 차원에서 해결이 되지 않는 금액이다.

그렇다고 그룹 차원에서 해결을 보자니, 금액이 너무 세다.

신화 그룹 연 매출이 150조 원을 돌파해도 그중에서 남는 순이익이 얼마나 되겠는가.

150조 원 중에서 순이익을 20% 남겨 먹어도 그 돈은 곧바로 다른 사업에 쓰여 사실상 공중분해 되어 버린다.

그리고 사업 투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생으로 5조 원을 날려 먹는 건 아무리 거대 대기업이라고 해도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신화 그룹에도 남아 있는 자금이 많지 않을 텐데.”

5조 원 정도의 규모면 뒤로 빼돌린 돈을 쓴다고 해도 감당이 안 된다.

음식이 다 식을 때까지 생각에 잠겨 있던 신용일은 전화벨 소리에 번뜩 정신을 차렸다.

비서가 가져다주는 핸드폰을 보니, 지금 절대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의 이름이 떠 있었다.

“예, 회장님.”

-부회장. 회사로 들어와. 얘기 좀 하자.

이 밤중에 집이 아니라 회사로 오라는 건 공적인 것이다.

절대 아버지라고 불러서도 안 된다.

“바로 가겠습니다, 회장님.”

신용일은 얼른 정신을 차리고 식당을 나섰다.

신화 금융에 대한 처분은 결국 신 회장에게 달렸다.

그가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자신의 운명도 달라진다는 것을 알기에 신 부회장은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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