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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 천재가 되었다-148화 (148/200)

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148화

3일 전 김도형 과장은 감히 꿈도 못 꿀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제, 제가 꿈을 꾸고 있는 겁니까? 정말 이진석 회장님이 맞으세요?”

“꿈이 아닙니다, 김도형 과장님.”

“평소 제가 우상처럼 생각한 회장님을 직접 만나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대체 저 같은 놈을 왜 회장님께서······.”

금융업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이진석은 존경과 경외를 뛰어넘는 우상 같은 존재였다.

당연히 김도형도 이진석을 감히 바라볼 수도 없는 사람처럼 여겼다.

밑바닥부터 시작해 최연소 신화 금융의 사장에 올랐다가 지금은 금융계의 공룡이 된 J&H를 세운 인물이 아니던가.

“만나서 반갑습니다, 김도형 과장님. 신화 금융에서도 꽤 능력 있는 분이라고 정평이 나 있더군요.”

“과찬이십니다. 그냥 운이 좋아서 몇 번 크게 수익을 냈을 뿐이죠.”

“저는 사람의 실력보다 바로 그 ‘운’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능력이 아무리 좋아도 운이 따라 주지 않으면 될 것도 안 되거든요. 전 김도형 과장님의 그 운을 사고 싶습니다.”

이진석은 계약서 하나를 김도형 과장 앞으로 내놓았다.

“김도형 과장님. 일단 이 계약서부터 읽어 보시죠.”

김도형 과장은 두 손이 바들바들 떨려 옴을 느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진석이 내미는 계약서다.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파격적인 조건이 있을 게 분명했다.

“이건······.”

자신의 예상대로 계약서에는 파격적인 금액이 쓰여 있었다.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꾹 참느라 힘이 들 정도였다.

“J&H에서 5년 동안 근무하는 조건으로 200억을 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연봉이 40억이 되는 거죠? 아무런 성과가 없어도 40억씩 무조건 지급을 해 드리며, 성과가 있을 시에는 500% 인센티브를 붙여 드리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매해 40억씩 받는다. 거기다 500% 인센티브?

돈방석에 눌러앉는 조건이지 않은가?

당연히 그에 따른 냉혹한 조건이 있을 터.

“하지만 제가 지시한 일을 성공시켜야 합니다.”

“지시하실 일이 보통 일은 아니겠죠?”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우리 회사에서 작성한 보고서를 넘겨 드리죠. 그걸 신재영 사장에게 가져다주십시오.”

“보고서요?”

이진석이 넘겨주는 보고서를 받은 김도형 과장은 찬찬히 그 내용을 살펴보았다.

보고서 내용은 이러했다.

공매수와 옵션으로 펌프질을 하여 단기간에 이익을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가끔 외국 금융 기업들이 쓰는 방법인데, 문제는 누가 과연 옵션을 대량으로 사들이냐다.

“옵션을 대량 생산한다고 해도 그걸 사들이는 사람이 없으면 있으나 마나 한 작전이지 않습니까?”

“우리가 살 겁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돈만 잃으실 텐데요? 미국 증시가 호황을 맞이해서 우리나라도 덩달아 오르고 있잖습니까.”

“그런 건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과장님께서는 신화 금융이 그 보고서에 따라 움직이도록 유도해 주시면 됩니다.”

“신재영 사장이 과연 이걸 하려 할까요? 명분도 없지 않습니까.”

“보고서를 잘 읽어 보세요. 명분은 신화 금융에서 만들 겁니다.”

김도형 과장은 아직 읽지 않은 뒤 내용을 확인해 보았다.

“주가가 폭락할 거라는 찌라시를 유포하라는 겁니까?”

“예. 미국 신용등급이 곧 떨어져 주가가 폭락할 것이라는 찌라시를 뿌리게 만드세요. 우리 쪽에서도 작업에 들어갈 겁니다. 그럼 사람들이 미쳐 날뛰며 옵션을 사들이려 하겠죠? 최대한 뽑아낼 수 있을 때까지 뽑아내면 됩니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누가 봐도 이건 신화 금융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만들어 주는 일 아닌가?

“미국 신용등급이 설마 떨어지겠습니까?”

“글쎄요. 저도 그건 잘 모르죠. 아무튼, 시키는 대로만 해 주신다면 계약서는 바로 효력을 발휘할 겁니다.”

“그런데 신재영 사장이 과연 제 보고서를 보려고 할지······. 제대로 일도 안 하는 사람이라서 말입니다.”

김도형 과장이 자꾸 약한 소리를 하자 이진석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보세요. 김도형 과장님.”

그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짐을 느낀 김도형은 바짝 긴장했다.

“아, 예. 회장님.”

“200억이 꽁으로 들어와요? 여기까지 판을 깔아 줬으면 당신도 뭔가를 해야지. 그냥 누워서 사과가 떨어지기를 기다리기만 할 건가? 그렇게 만만해?”

“아뇨. 그,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에 서명을 하는 순간 당신은 우리랑 한배를 탄 거야. 신화 금융에 무슨 충성심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러니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신재영 그놈이 보고서대로 움직이게 만들어. 그럼 200억은 당신 거야. 평생 먹고살 수 있다고.”

이진석에게는 껌값이나 다름없겠지만, 김도형 과장에게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그 돈만 있으면 앞으로 일은 때려치우고 원하는 걸 뭐든지 할 수가 있을 것이다.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좋아요. 믿겠습니다. 다른 건 생각하지 말고 돈만 생각하세요.”

“예, 회장님.”

그렇게 한식당에서 나온 김도형 과장은 아직도 심장이 벌렁거렸다.

이게 대체 꿈인지 생시인지도 모를 만큼 말이다.

그는 곧장 회사로 돌아가 신재영 사장 비서실에서 일하는 여직원 하나를 불러 보고서를 맡겼다.

“사장님 보고서 모아 놓는 곳에 이걸 끼워 놔.”

“이걸요?”

“그래. 쉽지?”

“맨입으로 이걸 맡기시려고요?”

“아니지. 뭐 원하는 가방이라도 있나? 아니면 현찰로 줄까?”

“음-. 너무 갑작스러워서요. 좀 더 생각해 볼게요. 근데 정말 보고서만 가져다 놓으면 되는 거죠?”

“그래. 쉽잖아. 이 쉬운 일 하나로 내 마누라한테 사주지도 않은 몇백짜리 백을 사 주겠다니깐?”

“괜히 뒤탈 있는 건 아닌지······.”

“절대 아니야. 문제 생기면 내가 다 책임진다.”

그 여비서는 오케이를 하며 보고서를 챙겼다.

그렇지 않아도 갖고 싶은 신상 백이 있었는데, 이런 행운이 찾아왔다.

그런 그녀의 눈치를 슬쩍 보면서 김 과장이 물었다.

“요즘 사장실 분위기 어때?”

“아시잖아요. J&H 회장이랑 그런 일 있고 나서 갑자기 사장님이 매일 일찍 출근을 하고 있어요.”

“정말?”

“들리는 말에는 회장님이 우리 사장님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셔서 사장 자리를 갈아 치운다고 하던데요? 그것 때문에 사장님은 전전긍긍하고 있고요.”

자신은 듣지 못했던 정보다.

역시, 비서실에서 일하는 직원이라 들어오는 정보가 다른 건가?

“그래? 사장님은 재벌 일가잖아. 그런데 이렇게 사장 교체를 한다고?”

“자세한 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사장님이 쫓겨날까 봐 요즘 좀 열심히 일하는 척을 한다는 느낌 정도랄까?”

“좋은 정보 고마워. 보고서 올려놓고 말해. 내가 값은 확실히 치를 테니까.”

“예. 과장님.”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 * *

하루 종일 일은 손에 잡히지 않고 핸드폰 앞에 앉아만 있던 김도형 과장은 사장실로부터 호출이 왔을 때 유레카를 외쳤다. 그리고 사장 앞에 달려갔을 땐 밤새 생각해 두었던 멘트를 날렸다.

“신화 금융이 이용할 수 있는 언론사는 전부 이용해서 정보를 뿌려 보시죠. 그리고 저도 정보 퍼다 나르는 사람들을 몇몇 알고 있습니다. 그쪽을 통해서 한번 실행해 보겠습니다.”

신재영 사장은 침음을 흘리며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거 확실해? 괜히 내가 쪽박 차는 거 아니야?”

“사장님. 지금 미국 증시는 폭등하는 중입니다. 당연히 우리나라 증시도 심상찮은 상승세를 보이고 있고요. 앞으로 몇 달간은 떨어질 일이 없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찌라시를 뿌려 개미들을 유혹하고 낙엽을 열심히 쓸어 담는 겁니다. 거기다 공매수를 통해 시세 차익을 더 크게 불린다면 단기간에 엄청난 수익을 거둬 들일 수 있죠. 지금이 적기입니다.”

아무리 재벌집 일가라고 해도 신재영 사장 역시 나름의 엘리트 교육을 받아 왔다. 당연히 후계자 수업을 위해 금융업 공부도 열심히 해 왔다. 그렇기에 이 보고서에 적힌 내용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지금 옵션을 마구 팔아 재낀다고 해도 주가가 폭락하지 않는 한 모든 건 회사 수익으로 넘어온다. 그리고 미국 증시가 폭등하고 있는 때에 한국 주가가 폭락하진 않을 것이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고 핵실험을 한다고 난리를 쳐도 예전처럼 주가가 출렁이진 않을 터. 이미 내성이 생길 대로 생긴 대한민국이지 않던가.

“좋아. 이건 김도형 과장 당신이 진두지휘해.”

“예? 제, 제가 말입니까?”

“그래. 김도형 과장이 회사에서 주목받는 인물이라는 건 잘 알고 있어. 그러니까 한번 실력 발휘해 봐.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물론입니다, 사장님.”

“인센티브도 넉넉히 챙겨 줄게. 이번 일만 잘하면 1억 이상은 받아갈 수 있을 거야.”

고작 1억.

예전 같았으면 눈이 획 돌아갔겠지만, 200억이란 통 큰 제안을 이진석에게 받은 이후로는 그저 한없이 적은 금액으로 보였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신화 금융을 위해서가 아닌 200억을 위하여.

* * *

“회장님. 김도형 과장한테서 연락이 왔습니다.”

“뭐라고 하던가요?”

“신재영 사장이 자신한테 지휘권을 맡겼답니다. 그래서 계획대로 옵션부터 공매수까지 죄다 풀어 버릴 거라고 합니다.”

나는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예상 밖으로 일이 잘 풀린 게 아닌가.

김도형 과장의 능력이 뛰어난 것인지, 아니면 신재영이 구제 불능인 건지는 모르겠다.

확실한 건 그가 테러범 손에 폭탄을 맡겼다는 것이다.

“대표님이 김 과장이랑 손발 맞춰서 옵션들 전부 쓸어 담아 주세요. 대신 너무 우리만 쓸어 담으면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으니, 개미들도 충분히 가져갈 수 있게 남겨 주시고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김 과장이 판을 벌여 줬으니 우리도 지원 사격 해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언론사들 전부 움직여서 조만간 미국의 신용등급이 하락된다는 정보를 뿌리세요. 아마 다들 개소리라고 믿지 않겠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리저리 낙엽을 주우러 다닐 겁니다.”

“예, 회장님. 그런데 김도형 과장, 생각보다 능력 있는 친구네요. 이번 일이 마무리되면 유용하게 쓸 수 있겠습니다.”

권 대표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김 과장은 거기서 끝이에요.”

“예?”

“한 번 회사를 배신한 사람입니다. 두 번이라고 어려울까요? 분명 나중에 저를 함정에 빠뜨리려고 하는 사람이 있을 텐데, 김 과장 같은 사람이 곁에 있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 그렇군요. 제가 잠시 경솔했습니다.”

“아니에요. 그래도 5년 동안은 우리 회사에 있어야 하니 그냥 적당한 자리를 주고 버티게 하다가 계약 기간 끝내면 바로 내보내면 됩니다.”

한번 배신의 맛을 알게 된 놈은 두 번도 쉽게 하기 마련이다.

김도형 과장의 능력이 얼마나 뛰어나든 솔직히 상관없다. 한번 배신자는 영원한 배신자라고 하지 않던가.

그리고 200억이나 챙긴 그가 무슨 미련이 남아 있어 직장에 머무르려 할까.

성과가 없어도 40억씩 5년 동안 챙겨 준다고 했으니 제대로 출근이나 할지 모르겠다.

하루 종일 놀러 다니느라 시간이 부족할지도.

그렇게 따지면 나도 참 사서 고생을 하는 것 같았다.

지금이라도 모든 걸 그만둬도 내게는 대대손손 먹고 살 수 있는 재산이 있다.

사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냥 다 그만두고 놀러나 다니자는 유혹이 들긴 하지만 꾹 참았다. 내게는 그보다 더 하고 싶은 일이 있으니까.

난 이 대한민국에서 제일가는 기업인이 되고 싶다.

아니. 전 세계적으로 위대한 기업가가 되는 것이 내 최종 목표였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먼저 신화 금융을 내 발아래 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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