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146화
“이런 싸가지 없는 새끼!”
신재영은 애꿎은 핸드폰을 사장실 문에다 던져 버렸다.
“좆만 한 새끼가 위아래도 모르고 까불어? 건방진 놈.”
다른 물건들을 죄다 던져 버려도 도저히 화가 풀리지 않았다.
감히 신화 그룹의 후계자 앞에서 저따위 망발을 하다니.
“확 그냥 애들 시켜서 담글 수도 없고. 어후-.”
화를 식히던 신재영은 뭔가 떠올랐는지 비서에게 말했다.
“야. 차 대기시켜. 본사로 간다. 회장님 계시지?”
“예. 임원 회의가 끝나고 아직 회장실에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오케이. 바로 간다.”
신재영 사장은 이 일을 제 할아버지인 회장에게 전부 다 일러바칠 생각을 하자 벌써부터 신이 났다.
아직 자신한테 회사의 권력이 들어오지 않아 할 수 있는 게 없지만, 신화 그룹의 회장이라면 다르지 않던가.
천하 그룹만큼은 아니더라도 신화 그룹의 회장이 가진 입김은 결코 무시할 수가 없다.
J&H와 신화 그룹이 정면으로 붙는다?
어림도 없는 소리다.
“회장님. 늦게까지 회사에 계셨군요.”
회장실에 도착한 신재영은 정중하게 인사부터 올렸다.
회사 밖에서는 할아버지이지만, 회사 안에서는 회장님이다.
“어. 그래. 신 사장. 갑자기 여기까진 어쩐 일인고?”
“예. 잠시 상의드릴 일이 있어서요. 그런데 아버지도 계셨네요?”
“오늘 임원 회의 있는 날이잖아. 근데 무슨 일이야?”
입이 간질거렸던 신재영은 얼른 소파에 앉았다.
“아까 J&H 그룹 회장을 만났습니다.”
J&H 그룹 회장이라면 한 사람밖에 없다.
신태일 회장이 눈을 반짝였다.
“이진석이를?”
“예.”
신용일 부회장 역시 관심을 보였다.
“갑자기 무슨 일로?”
판을 잘 깔았다고 생각한 신재영은 이진석에 대한 험담을 늘어놨다.
“아니. 사람이 좀 바른 줄 알았더니, 전혀 그렇지 않더군요. 돈 좀 벌었다고 얼마나 콧대가 높아졌는지, 사람을 무시해도 어떻게 그리 무시를 하는지 원.”
“이진석이 그랬다고?”
“예. J&H가 아무리 급성장을 했어도 그렇지. 제가 회장이 아니라 사장이라는 이유만으로 업신여기고, 하여튼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이상하네. 이진석이 그럴 놈은 아닌데?”
“아닙니다, 할아버지. 그놈도 돈맛을 보더니 교만해진 거죠. 저번에 아버지한테 건방진 소리를 했지 않았습니까? 성공을 맛보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덤비는 겁니다.”
신 회장은 침음을 흘리며 제 손자를 물끄러미 살펴보았다.
“그런데 이 회장이 갑자기 네 회사까지는 왜 간 거냐?”
“아. 갑자기 거기서 현광 자동차 주식을 사겠다고 하더라고요.”
“현광 자동차 주식을?”
“예. 현광 자동차가 현광 그룹의 지주 회사이지 않습니까? 그쪽 지분을 달라고 하는 게 아무래도 이상해서 말이죠.”
“그래서 네가 부른 거야? 회사까지?”
“예. 제가 직접 만나서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아 회사까지 불렀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신용일 부회장이 끼어들었다.
“잠깐만. 보통 그런 건 실무자들끼리 만나서 얘기를 하지 않나?”
“실무진은 빼고 이진석 혼자 오라고 했죠.”
“네가?”
“예. 무슨 속셈인지 알아야 하니까요. 그런데 이 새끼가 다짜고짜 막말을 하면서 판을 엎는 게 아주 수상했습니다.”
신 회장은 피식 웃음을 터트리더니 제 손자를 불렀다.
“재영아.”
“예, 회장님.”
“돌려 까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말해.”
“예?”
“둘이 뭔 일이 있었는지 하나도 빠짐없이 소상히 내게 말하라고.”
“이제까지 말씀드린 게 전부입니다.”
“어이쿠. 그러셔? 좋아. 잠깐 기다려 봐라.”
신태일 회장은 비서실에 전화를 걸었다.
“어. 나다. 재영이 비서실장 들어오라고 해.”
갑자기 비서실장을?
이윽고 신재영의 비서실장이 안으로 들어와 허리를 굽혔다.
“부르셨습니까, 회장님.”
“그래. 자네 오늘 재영이랑 같이 쭉 있었지? 이진석이 왔을 때도 말이야.”
“예, 회장님. 신재영 사장과 이진석 회장이 대화를 나눌 땐 사장실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그 정도는 괜찮아. 대충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는 조금 들렸을 거 아니야? 아는 것만 다 말해 보게.”
비서실장은 회장의 명령대로 자신이 알고 있는 상황을 전부 다 설명했다.
얘기를 듣고 있던 신태일 회장과 신용일 부회장의 안색이 점점 굳어져 갔고, 신재영 역시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그러니까 우리 재영이가 이진석이를 물 먹인 거네? 약속 시간 먼저 잡은 놈이 손님을 일부러 기다리게 만들고 말이야.”
“예. 임원 회의는 처음부터 없었고, 신재영 사장은 계속 사장실에 있다가 30분이 넘었을 때 이진석 회장과 만났습니다.”
신재영은 비서실장에게 눈을 부라렸다.
하지만 비서실장은 덤덤했고, 신 회장도 어이가 없다는 듯 제 손자에게 말했다.
“네 비서실장은 내가 붙인 사람이야. 네가 그렇게 쳐다본다고 눈 하나 깜짝할 것 같냐?”
“······.”
“그래. 우리 비서실장 얘기만 들어 보면 먼저 성질을 건든 건 재영이 너구나?”
“회, 회장님. 그건 그냥 기 싸움이었습니다. 협상의 기술이라고 할까요?”
“오-. 우리 손주가 그런 것도 알아? 대단하네. 그렇게 협상에 대해서 잘 아는 놈이 왜 이진석과 고성이 오갔을까?”
“그거야 이진석이 먼저······.”
“정신 차려, 이놈아!!”
마침내 신 회장은 상을 내려치며 언성을 높였다.
비서실장은 조용히 밖으로 물러났고, 신 부회장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무리 나이가 들었어도 신 회장의 일갈은 여전히 무서웠기에 신재영은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지금부터 토씨 하나 빠뜨리지 말고 전부 나한테 다 말해. 알겠어?”
“예. 그, 그럴게요.”
신재영은 그제서야 이진석과 있었던 일을 소상히 보고했다.
신 회장은 짧게 혀를 찼으며, 신 부회장은 한심한 아들을 쳐다보기만 했다.
그런 그들의 반응이 신재영을 더 억울하게 만들었다.
“제가 큰 잘못을 한 건가요?”
“이 자식아! 지금 그따위 말이 나와?!”
신용일 부회장이 버럭 화를 내자 신재영은 괜히 더 치기가 들었다.
“제가 딱히 잘못한 것도 없지 않습니까? 그 건방진 새끼는 감히 아버지 앞에서 신화 그룹을 깔봤습니다! 그런 놈을 그냥 놔둡니까? 돈 좀 벌었다고 건방지게 구는 놈인데, 확실하게 밟아 버려야죠!”
신태일 회장은 제 아들과 손주 녀석을 번갈아 쳐다보다 고개를 저었다.
“용일아.”
“예, 회장님.”
“네 아들이 너랑 판박이다. 대가리가 똑같이 돌이야.”
“회, 회장님.”
“저거 지금 금융사 사장이라고 앉아 있는 게 역겨울 수준이구나. 내일부터 저놈은 신화 금융 사장이 아니다. 어디 외국 지부에 보내 버려.”
그런 신 회장의 말에 신재영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할아버지! 너무하십니다!”
“시끄러! 어딜 감히 회장님 앞에서 언성을 높여?”
신 회장을 대신해 신용일이 버릇없는 아들 녀석을 훈계하려 했다. 하지만 신태일 회장은 손을 들어 제 아들을 뒤로 물렸다.
“괜찮아. 저 돌대가리가 아직도 말귀를 못 알아먹는 거 같으니, 내가 말해 줘야지.”
신 회장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손자를 불렀다.
“재영아.”
“예. 하, 할아버지.”
“누가 할아버지야? 지금은 회장이야, 인석아.”
“아, 예. 회장님.”
할아버지가 저런 목소리를 낸다는 건 정말 화가 많이 났다는 걸 알기에 신재영은 괜히 움츠러들었다.
“넌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지?”
“예?”
“이진석 말이 하나 틀린 게 없어. 넌 내가 물게 해 준 수저 덕분에 그 자리에 오른 거야. 언감생심 너 같은 놈이 감히 신화 금융 사장직을? 신입사원 딱지도 못 떼어 보고 쫓겨났을걸?”
“······.”
“그런데 이진석 그놈은 말이다. 최연소로 신화 금융 사장이 됐어. 그게 운이 좋아서일까? 물론 사람이 운이 좋긴 해야지. 근데 실력이 받쳐 줘야 그 운도 따라 주는 거야. 거기서 멈추지 않고 이진석은 J&H라는 그룹을 만들어 냈다. 신화 금융 사장직은 처음부터 성이 차지 않았던 거지. 그리고 하나씩 그놈 손에 다른 회사들이 빨려 들어가고 있어.”
“회장님. 저는······.”
“입 닥치고 내 말 잘 들어!”
신 회장의 일갈에 신재영은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이진석은 우리나라에서 둘도 없는 인재야. 금융계 천재라고 부른다며? 어떤 사람은 신이라고 아예 경배를 하기까지 해. 세상 사람들 중에 너한테 그런 놈이 있냐?”
“······없습니다.”
“이진석이 J&H 금융에서 어마어마한 성과를 올린 건 잘 알지? 근데 네가 신화 금융 들어가고 나서 이익을 얼마나 봤어?”
“그건······.”
“그냥 평균이었지? 아니야. 오히려 작년보다 더 떨어졌더라.”
신재영은 괜히 심통이 났다. 그거야 자기 잘못이 아니라 한국 경제의 추락과 신화 금융에서 일하는 펀드 매니저들의 실력이 못났기 때문이 아닌가?
“넌 지금도 남 탓만 하고 있지? 네가 아니라 다른 놈이 못해서, 환경이 그래서 그런 거라고. 그런데 이진석을 봐라. 다 무너진 조선과 건설을 살려 냈어. 금융에서는 다 적자인데, 그놈 혼자만 이익을 봤고. 이게 그놈 밑에 있는 놈들이 잘해서일까?”
“······.”
“이진석이 괴물이니, 그 밑에 있는 놈들도 실력은 있겠지. 그런데 너는? 넌 이진석의 십 분지 일의 실력이라도 있냐? 아니면 네 밑에 있는 놈들 중 쓸 만한 물건이라도 있어?”
자존심이 매우 상하는 말이었지만, 신재영은 주먹만 꾹 쥔 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쯧쯧. 그런 놈이 뭐가 잘났다고 이진석을 물 먹이고 우리 신화 그룹의 적으로 돌린 거냐?”
“하지만 회장님. 그놈이 건방진 건 맞지 않습니까?”
“그래. 건방지지. 그래서 뭐? 그놈은 건방진 게 아니야. 자기가 가진 힘을 아는 거지. 그 정도의 실력자면 신화 그룹이 아니라 천하 그룹 앞에서도 콧대를 세워도 돼. 그리고 엄밀히 말하자면 네가 먼저 건드리니까 그놈이 화를 낸 거지. 네가 그렇게 건들지만 않았으면 그놈도 순한 양처럼 가만히 있었을 게다.”
“그 말씀은 이진석이 뭔가를 할 거라는 건가요?”
“그놈은 맹수야. 보통 그런 놈들은 한번 물리면 최소 다섯 배로 갚아야 적성이 풀려. 이 할애비가 딱 그렇거든.”
껄껄 웃는 신 회장을 보면 대체 누가 누구의 손자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이제 슬슬 똥줄이 타지? 그놈이 무슨 카드를 들고 나와서 우리 신화 금융을 조지려고 할지.”
“서, 설마요.”
“설마설마했다가 한라가 넘어가고 KV까지 넘어갔다. 넌 큰 실수 한 거야. 내가 항상 말했지? 돈에 감정을 넣지 말라고. 사업은 절대 감정적으로 해서는 안 돼. 정말 네가 복수를 할 생각이었다면 이진석이 왜 현광 주식을 가져가려 하는지, 몇 배를 후려쳐서 팔아야 할지, 그걸 고민했어야 돼. 그런 사고방식으로는 너한테 이 자리를 맡길 수 없겠구나.”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에 신재영은 정신을 번뜩 차렸다.
“할아버지! 아니. 회장님! 저 정말 잘하겠습니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그럼 이진석이 왜 현광 주식을 사려고 하는지부터 파악해 와. 그게 첫걸음이다.”
“예!”
이재영은 얼이 빠진 얼굴로 벌떡 일어나 회사를 나섰다.
원래 손자 녀석들은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고 하는데, 저놈은 뭘 해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용일아.”
이제 그 화살이 자신에게 왔다는 걸 감지한 신용일은 바짝 긴장했다.
“예, 회장님.”
“네 첫째는 회사 물려받으면 안 되겠다. 벌써부터 싹수가 노래. 저런 놈은 크게 사고 친다. 차기 회장은 네가 되겠지만, 그다음 회장이 반드시 장남일 필요는 없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래. 괜히 네 아들 때문에 너도 발목 잡히지 말고.”
마지막 말이 괜히 사람을 신경 쓰이게 만든다.
그리고 이미 신 부회장은 발목이 잡힌 기분이 들었다.
“아이고. 자식 농사를 잘못 지어서 이 나이 처먹고도 뒷감당을 해야 하니 원.”
신 회장은 죽는소리를 했지만, 왠지 얼굴은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