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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 천재가 되었다-145화 (145/200)

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145화

“신화 금융이 7%. 천하 금융이 5%. JK 금융이 3%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금융사들이 들고 있는 걸 다 회수하면 15% 정도 나온다는 거네요?”

“예. 그 외에도 외국 금융사와 흩어져 있는 지분을 전부 다 모으면 20%는 충분히 넘길 겁니다.”

현광 자동차 주식을 확보하기 위해 간단한 시장 조사부터 해 봤다.

저 지분을 전부 다 인수한다고 해도 국가 기관이 현광 건설의 손을 들어주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이긴 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데까진 해 봐야 하지 않겠는가.

“긁어모을 수 있을 때 한번 모아 보죠. 시장에 나와 있는 현광 자동차 주식부터 매입해 주세요. 어차피 요즘 회사 경영에 문제가 많아서 주가가 많이 떨어졌다고 하던데.”

“예, 회장님. 최대한 긁어모아 보겠습니다.”

우리 쪽에서 최대한 긁어모은다고 해도 다른 금융사가 들고 있는 지분을 확보하지 못하면 크게 쓸모가 없을 것이다.

정영준 회장이 내게 요청한 건 신화 금융 지분뿐이었지만, 나는 다른 금융사들이 들고 있는 지분들도 확보하길 원했다.

“신화 금융과 먼저 쇼부를 치긴 쳐야 하는데, 청와대 만찬에서 신경전을 한 게 있어서 제 말을 들어 줄지도 참······.”

“어차피 사업하는 사람들 아닙니까? 어제까지 서로 없으면 죽을 것 같이 굴다가도 상황이 바뀌면 먼저 등에 칼을 꽂는 사람들이니까요. 반대로 어제의 원수가 오늘의 친구가 되는 게 이쪽 세상이죠.”

“그렇긴 하다만, 쪼잔한 구석이 있진 않겠죠?”

“세상 하나 부러울 것 없는 집안에서 태어난 양반들이긴 하지만, 그룹과 관련된 일이라면 무조건 자존심만 내세우진 않을 겁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권 대표 말대로 자존심을 내세우진 않을 것이다.

아니. 그룹과 깊이 관련된 일이 아니니 오히려 더욱 자존심을 내세우려 할지도?

“일단 신화 금융 쪽에 실무진을 보내서 협상을 해 보세요. 그쪽이 쥐고 있는 현광 자동차 주식을 얼마에 내놓을지 말입니다.”

“바로 전달하겠습니다.”

아침에 권 대표에게 지시를 내려 놓고 나는 다른 일을 하다가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보고를 받을 수가 있었다.

“회장님.”

권 대표는 매우 곤란한 얼굴을 하며 내게 말했다.

“신화 금융 쪽에서 답이 왔습니다.”

“예. 그런데요?”

“실무진 말고 회장님이 직접 신화 금융에 와서 협상을 하자고······.”

순간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권 대표가 얼른 손사래를 쳐 댔다.

“제가 신화 금융 쪽에 항의를 하겠습니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상도덕이 없는 놈들과 마주하실 필요 없습니다.”

“아니요. 그냥 놔두세요. 그쪽에서 그런 답을 보내 왔다는 건 신화 금융만의 결정이 아닐 겁니다. 저와 신경전을 벌인 신용일 부회장이 일부러 태클을 건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금융사 직원들 따위가 이런 결정을 내렸을 리 없다.

이건 분명 신용일 부회장의 유치한 복수극이리라.

“생각 외로 쪼잔한 사람이었네요, 신용일 부회장.”

“그러게요. 아무리 그래도 이런 식으로 절 놀려 먹을 줄은 몰랐는데요? 이럴 줄 알았으면 신 부회장이 자기 동생한테 짓밟히는 걸 구경이나 할 걸 그랬습니다.”

나는 짧게 한숨을 쉬며 옷을 입고 준비에 나섰다.

아쉬운 게 있는 놈이 가야 하지 않겠는가?

“정말 가시려고요?”

“오라는데 가야죠. 뭔 생각으로 이런 일을 벌였는지도 궁금하고요. 우리한테 필요한 게 저쪽 손에 있지 않습니까? 뭐, 자존심을 굽히면서까지 가져올 생각은 없지만요.”

정영준 회장과 나눈 약속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머리를 조아리면서까지 현광 자동차 지분을 가져올 생각은 없다.

그저 신용일 부회장이 얼마나 저질적인 인간인지 한번 보고 싶은 마음에 신화 금융으로 향했다.

“어서 오십시오, 회장님.”

신화 금융에 들어서자 기다렸다는 듯 직원 하나가 날 인도했다.

여길 오랜만에 다시 오니 감회가 새롭긴 하다.

딱히 달라진 것도 없어 보이기도 하고 말이다.

“저 사람 이진석 아니야?”

“헐. 맞네. 여기까지는 무슨 일로 온 거지?”

보통 VIP가 오면 정문 로비를 통해서가 아니라 전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서 들어가게 되는데, 이상하게도 이 직원은 날 정문 로비에서부터 인도해 직원들이 쓰는 승강기를 사용하게 했다.

날 따라온 비서들은 황당하다는 듯 직원을 노려봤지만, 난 딱히 그 직원을 탓할 생각은 없었다. 결국 저 사람도 윗선의 명령대로 하고 있을 뿐이니까.

“잠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지금 사장님께서 회의에 들어가셔서 조금 걸릴 것 같습니다.”

그 직원이 날 대기실에 앉혀 놓자 참다못한 비서실장이 이빨을 드러냈다.

“이보세요. 회장님께서 직접 여기까지 오셨는데 사장이 회의에 들어가? 당장 중간에 회의를 끊고 와도 모자랄 판에 이게 도대체 무슨 경우입니까? 비즈니스에 시간 약속만큼 중요한 게 또 없다는 걸 모르세요?!”

“죄송합니다. 전 아무런 권한이 없어서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비서실장의 호통에 여직원은 고개를 숙이며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괜찮습니다. 이분한테 뭐라 그러지 마세요.”

“하지만 회장님. 처음 로비에 들어왔을 때부터 느꼈습니다. 이건 명백히 회장님을 조롱하는 겁니다.”

“저도 알아요. 그런데 궁금하지 않습니까? 신용일 부회장이 어디까지 밑바닥인지 한번 보고 싶네요. 또 어떤 수모를 나한테 줘서 대체 무슨 이득을 보려 하는 건지 꼭 봐야겠습니다.”

나는 팔짱을 낀 채 조용히 기다렸다.

그렇게 30분쯤 흘렀을까.

비서실장이 뭐라 한마디를 더 하려고 할 때 문이 열렸다.

“아이고. 이거 미안합니다. 생각보다 회의가 길어져서요. 높으신 분을 기다리게 만들었습니다, 하하.”

익살스러운 얼굴로 나타난 건 신화 금융 사장, 신재영이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내 옆에 있는 비서실장이 잔뜩 흥분한 채 말했다.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신화 금융에서 먼저 약속을 잡았으면서 이렇게 회장님을 기다리게 만드시다니요?”

그러자 신재영 사장은 인상을 싹 굳히며 물었다.

“이진석 회장님은 내가 TV에서 자주 봐서 알고는 있는데, 그쪽은 누구지?”

“김학태 실장입니다.”

“오. 비서실장? 아무리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고 하지만 언제부터 감히 실장 따위가 사장 앞에서 주둥이를 놀리나?”

“예? 지금 그걸 말씀이라고······!”

나는 상황이 더 험악하게 돌아가기 전에 손을 들었다.

“실장님. 괜찮으니까 나가 계세요. 신 사장님과 단둘이 긴히 얘기를 나눠야 할 것 같으니까.”

“예, 회장님.”

비서실장이 나가자 신 사장은 짧게 혀를 찼다.

“쯧쯧. 비서실장을 새로 들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저렇게 개념도 없는 놈을 어디다 쓴답니까?”

“글쎄요. 비서실장이 딱히 틀린 말을 한 것 같진 않은데요?”

“하하. 우리 회장님도 속이 상하셨구나. 자자. 이럴 게 아니라 얼른 들어오십시오. 제가 좋은 차라도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자리에 앉아 잠시 기다리니, 여비서가 들어와 차를 대접했다.

“이게 차가 저희 회장님이 자주 즐겨 드시는 차입니다. 값도 더럽게 비싸요. 근데 난 마셔 보니 무슨 맛인지 잘 모르겠더라고.”

“그렇군요.”

“그래도 손님 대접할 땐 이보다 좋은 게 없는 것 같아 제가 귀한 손님 오실 땐 항상 대접을 해 드리고 있어요.”

신재영 사장은 신용일 부회장의 첫째 아들이다.

나이는 서른 중반 정도.

나보다 연장자이면서 신용일 부회장 다음으로 회사를 물려받을 차기 후계자였다.

그는 몇 분 더 쓸데없는 얘기를 하다 본론으로 들어갔다.

“J&H에서 현광 자동차 주식을 매입하려 한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조금 황당해서 말이죠. 갑자기 그게 왜 필요한 겁니까?”

“그걸 말씀드릴 의무는 없을 텐데요?”

“하하. 예전에 우리 신화 금융에서 사장직도 맡으신 분이 너무 그러시면 정 없다는 소리 듣습니다.”

“비스니스 세계에서 옛정을 따지면 안 되죠. 제가 사장님한테서 알고 싶은 건 딱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 지분, 넘기실 겁니까?”

신재영은 심드렁한 얼굴로 소파에 등을 기댔다.

“그거야 회장님 행동하기 나름이죠.”

“예?”

“제가 지나가면서 들었습니다. 제 아버지가 청와대 만찬에 갔을 때 이 회장님과 좀 민감한 얘기를 나누셨다고.”

역시, 신용일 부회장과 관련이 아예 없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요?”

“거기서 건방진 소리들을 하셨더군요. 아무리 J&H가 요즘 잘나간다고 해도 신화 그룹에 비빌 생각을 한다는 건 너무 오만한 거 아닙니까?”

난 잠시 말없이 신재영을 바라만 보았다.

그런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그가 말했다.

“뭐라도 말씀을 해 보시죠. 너무 빤히 쳐다만 보니까 부담스럽네요.”

“제가 무슨 말을 하길 바라시는 거죠?”

“뭐, 저희 아버지를 만나 뵙고 심심한 사과의 말이라도 전하신다면 생각을 좀 달리해 보겠다는 거죠. 하하.”

어처구니가 없는 놈이다.

만약 이놈이 신용일 부회장에게 지시를 받고 이런 짓을 꾸민 거라면 그쪽 집안사람들 수준이 어떤지 알 것 같았다.

“더는 할 얘기가 없을 것 같군요.”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수준 낮은 놈과 얘기를 나누면 내 수준만 떨어뜨리는 꼴이 된다.

“아니. 이대로 가시려고요? 현광 자동차 지분은······.”

“됐습니다. 어차피 팔 생각도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다시는 이런 식으로 장난질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이제 금융사 사장이나 되시는 분이 이게 뭡니까? 유치하게.”

“뭐, 뭐요?! 유치?”

“이번에는 그냥 조용히 넘어가겠지만,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긴다면 그땐 모든 재벌들이 신재영 사장 당신이 얼마나 유치하고 어린 사람인지 알게 될 겁니다. 그럼, 누구도 당신과 만나려 하지 않겠죠? 그러니까 처신 좀 잘 하세요. 생각 없이 일만 벌이지 말고. 아니면 혹시 이번 일은 당신 아버지, 신 부회장님 머리에서 나온 겁니까?”

“이 사람이 지금 말 다 했어?!”

신재영 사장은 그제야 본색을 드러냈다.

“J&H가 좀 잘나가니까 네가 우리랑 같은 족속인 줄 알아? 그래 봐야 넌 머슴 출신이야. 한번 머슴은 영원한 머슴 새끼라고. 그런데 어딜 감히 대감 행세를 하고 있어? 지금까지 오냐오냐 봐주니까 아주 하늘 높은 줄을 모르네? 이 나라에서 사라져 봐야 정신을 차릴 건가?”

그렇다면 나도 예의를 차려 줄 필요가 없다.

먼저 성질을 건드린 건 저쪽이니까.

“할 수 있으면 해 봐.”

“뭐?”

“그러는 넌 뭐라도 되는 줄 아냐? 자기 힘으로는 뭐 하나 이룬 것 없이 물고 태어난 수저가 좋아서 그 자리까지 올라간 거잖아. 그런데 딱 까 놓고 말해서, 네가 그렇게 개지랄을 떤다고 뭐가 달라져? 신화 그룹이 네 거야? 그거 네 거 아니야 인마.”

“이, 인마?”

“그래. 나이를 처먹었으면 철이 좀 들어야지. 아직도 네가 망나니짓 하던 20대인 줄 알아? 그 자리는 모든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지라고 앉은 자리야. 이런 뻘짓 하라고 앉아 있는 게 아니라.”

내가 이렇게까지 나올 줄은 몰랐는지 신재영은 말문이 막혀 버렸다.

“그리고 신화 그룹이 언젠가 네 손에 들어올 거라는 확신은 하지 마. 신화 그룹은 신씨 가문의 소유가 아니야. 주주님들의 것이지. 한라 그룹부터 KV 그룹까지 전부 어떻게 내 손으로 굴러들어왔을까? 그건 회사가 개인의 소유가 아니기 때문이야.”

“이, 이런 싸가지 없는······!”

“이제 알았으면 그만 입 닥치고 네 할 일이나 해. 요즘 보니까 신화 금융 실적이 아주 엉망이던데. 너희 고객들 우리한테 전부 다 뺏길 거 아니면 일 똑바로 해.”

나는 반쯤 넋이 나가 있는 신재영을 놔두고 회장실을 나와 버렸다.

안에서의 소란을 들은 비서실장은 꾹꾹 웃음을 참는 중이었다.

“여기 있으면 재수 없으니까, 얼른 돌아갑시다.”

“예, 회장님!”

그 어느 때보다 목소리가 더 크고 밝아진 비서실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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