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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 천재가 되었다-144화 (144/200)

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144화

우산호에 의해 들끓던 민심이 교황 방문이라는 뜻깊은 이벤트에 조금 잠잠해졌다.

J&H를 필두로 청와대는 교황청과 교류하여 정확한 일정을 잡아 냈고, J&H는 그에 따른 시설 준비와 각종 행사 마련에 여념이 없었다.

예정대로 8월에 교황이 방문하는 것으로 최종 확정이 나고 국민들은 그날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동안 나는 권 대표와 함께 골드 트리먼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했다.

“아직까지 별도의 움직임은 없습니다. 주가가 폭락한다는 걸 알고 있는 이상, 분명히 옵션을 사들일 텐데 말이죠.”

“그 말은 아직 때가 안 됐다는 거겠죠?”

“아니면 옵션이 목표가 아니라 다른 것을 사들이기 위해 준비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다른 거요?”

“예. 주가 폭락으로 특정 기업 지분을 대량 확보하면 경영권을 빼앗을 수 있지 않습니까?”

일리가 있는 얘기였다.

특정 기업을 사들이기 위해 총알을 모아 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가 폭락을 미리 알고 있는 이상, 옵션질 유혹이 강하게 들 텐데 그 욕심 많은 로널드 웨인이 과연 그걸 뿌리칠 수 있을까?

“제 생각에는 로널드 웨인이 이 기회를 그냥 흘려보낼 것 같지 않아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면 그쪽에서 보이는 액션이 있을 겁니다.”

“예. 움직임이 보이면 바로 알려 주세요.”

골드 트리먼이 어떤 움직임을 보이느냐에 따라 우리도 그에 따른 행동에 나설 것이다.

“그리고 미국 풋옵션도 얼마나 매물로 나와 있는지 계속 체크해 주시고요.”

“예, 회장님. 뭔가 변경 사항이 있으면 바로 알려 드리겠습니다.”

“좋네요. 그럼 전 약속 장소로 나가 봐야겠습니다.”

내가 겉옷을 입고 준비하자 권 대표는 잠깐 깜빡했다는 듯 말했다.

“오늘 현광 건설 회장님과 약속이 있으셨죠?”

“예. 무슨 일인지 갑자기 만나자고 하네요?”

“실질적으로 현광과 우리는 파트너가 아닙니까? 메카 프로젝트도 그렇고, 이번 용산 지구 프로젝트도 현광과 우리 J&H가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니까요.”

정영준 회장과 이런저런 거래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우린 떼려야 뗄 수 없는 파트너가 되었다.

나는 정영준 회장이 자주 약속 장소로 잡는 한식당으로 이동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그곳에는 정영준 회장이 고고한 자세로 천천히 차를 들고 있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까?”

“아니야. 나도 방금 왔어.”

그간 안 본 사이에 정영준 회장은 한층 더 늙어 보였다.

나이를 먹을 대로 먹은 양반이 아니던가.

노화 속도가 빨라졌다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일단 밥부터 먹고 나서 얘기할까? 괜히 소화 안 될 테니.”

“예. 그러시죠.”

정 회장이 주문을 하자 종업원들은 상 위에 산해진미를 열심히 깔아 두었다.

나와 정 회장은 별말 없이 꾸역꾸역 음식을 먹기만 했다.

그렇게 밥만 축내던 정 회장은 마지막 한 술을 뜨고 나서 입을 닦았다.

“술도 없이 밥만 퍼먹었네. 한잔할 텐가?”

“아닙니다. 제가 최근에 건강검진을 했는데, 간 수치가 좀 높다고 해서 요즘 술은 입에도 안 대고 있습니다.”

“흐흐. 나도 수십 년 전에 의사들이 제발 술 좀 그만 처먹으라고 닦달을 했지. 그러다 간 이식 수술 받게 된다고 말이야. 그런데 술이 끊는다고 끊어지나? 그냥 마시고 살았어. 그리고 지금 내 간은 아주 멀쩡해. 오히려 나한테 경고하던 의사 새끼들만 다 뒤져 나갔지.”

“뭐 회장님만의 건강 비결이 있으십니까?”

“그냥 내 몸을 믿고 살면 돼. 그깟 알코올에 꺾일 내가 아니라는 걸 믿으면 몸이 알아서 버텨 준다니까?”

시답잖은 소리였지만 나는 진지하게 듣는 척을 해 주었다.

그렇게 나름의 건강 비결을 10분 동안 설파하던 정 회장은 쓸데없는 말을 많이 했다는 걸 깨달은 모양인지 내게 사과했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요즘 이상하게 말이 많아지네. 별 중요한 얘기도 아니었는데. 미안하이.”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절 부르신 이유가 건강 때문은 아니겠죠?”

“당연히 아니지.”

차로 입가심을 한 정 회장이 드디어 본론으로 들어갔다.

“현광 자동차 주식 말이야. 이번에 자네가 KV 그룹을 강탈······ 아니. 인수하면서 KV 금융도 함께 넘어가지 않았나.”

“예. 그랬죠.”

“거기에 현광 자동차 주식 2%가 묻혀 있는 거 알지?”

“알고 있습니다.”

“그걸 나한테 팔게.”

이 영감, 아직도 현광 자동차를 포기하지 못했군.

그동안 잠잠한 것 같아 이젠 정말 포기한 줄 알았는데 말이다.

“안 그래도 현광 자동차 주식 때문에 한번 만나 뵐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계속 소식이 없으시기에 포기하신 줄로만 알았어요.”

“포기라니. 어림도 없는 소리!”

“그 정도면 집착이 심하신 겁니다. 이제 그만 은퇴하시고 노후를 즐기실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쯧쯧. 나 같은 사람에게 노후가 어디 있나? 평생 전방에서 싸우다가 죽어야 하는 게 바로 내 삶이야. 그건 자네도 똑같고.”

“전 정년 퇴임 할 겁니다.”

“하하하-! 지나가던 개새끼가 비웃겠구먼.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네가? 욕심이 하늘을 찌르는 작자가 잘도 쉬겠네.”

좀 뜨끔하긴 했지만, 난 60세에 퇴직해서 노후를 편안히 즐기는 것이 꿈이긴 했다.

“별 말 같지도 않은 소리는 그만하고, KV 그룹이 갖고 있는 지분이나 넘겨.”

“뭐, 그렇게 하겠습니다. 값은 시장 가격으로 넘겨 드릴게요.”

그 말에 정 회장은 멈칫거리며 경계 어린 눈빛을 띠었다.

“왜 이래? 저번에는 아주 날강도 같은 값으로 지분을 넘긴 놈이?”

“저도 양심이란 게 있으니까요. 너무 등골을 쑥쑥 빼 먹으면 회장님이 현광 자동차를 놓칠 수도 있지 않습니까.”

“허어-. 그 말을 나더러 믿으라고? 무슨 꿍꿍이야. 얼른 말해. 괜히 나중에 가서 뒤통수 치지 말고.”

눈치 빠른 영감님.

날 너무 많이 봐 와서 그런가, 이런 거에는 그냥 넘어가질 않는다.

“그냥 궁금한 게 있어서요.”

“궁금한 거?”

“예. 대체 어떻게 현광 자동차를 제압하시려는 건지 궁금해서요. 그 계획이 뭔지 알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흠-. 그걸 알고 싶은 이유라도 있나? 도와주려고?

“저야 회장님과 친하니까요. 다른 사람이 현광 자동차를 갖고 있기보다는 차라리 회장님이 갖고 계시는 게 더 편합니다. 그래야 빨대라도 꽂을 수 있지 않겠어요?”

“흐흐. 쓸데없이 솔직하기는.”

정영준 회장은 뒤로 빼지 않고 자신의 계획을 내게 알려 주었다.

“내가 확보한 지분이 조금 돼. 근데 현광 자동차의 경영권을 뒤흔들 만큼의 지분율은 아니야.”

“다른 방법으로 구할 순 있고요?”

“있지. 지금 현광 자동차 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지분이 30%거든? 나머지 70%는 어디에 있느냐. 코 큰 놈들이랑 기관이 들고 있어. 거기서 우호 지분을 나한테 돌릴 수 있다면 일이 수월해지겠지?”

“정확히 얼마만큼 들고 계시는데요?”

“20%.”

생각보다 지분을 많이 들고 있다.

벌써 20%까지 따라왔다니.

현광 건설에서 벌어들이는 돈을 죄다 지분 확보에 꼬라박고 있는 게 틀림없다.

“여기서 11%만 더 얻으면 현광 자동차 회장보다 더 높은 지분을 들고 있는 게 되지만, 그렇게 해도 경영권을 빼앗을 수가 없어.”

“우호 지분 세력이 너무 강하다는 뜻이군요.”

“그래. 일단 지분 확보를 최대한 하고 나서 청와대를 압박하는 수밖에 없겠지. 요즘 자네도 청와대랑 많이 친하다는 얘기가 있던데?”

“용산 프로젝트도 그렇고, 이번에 교황 방문도 있고 하니 예전처럼 날을 세우는 관계는 아닙니다.”

“저번에 나랑 약속 하나 했었지? 내가 손 벌리면 도와달라고 말이야.”

“돈을 빌려 드리겠다는 말씀은 드렸죠.”

“그럼 혹시 신화 금융에서 들고 있는 현광 자동차 지분을 가져와 줄 수 있겠나?”

신화 금융이라.

거기도 현광 자동차 지분을 갖고 있었구나.

“신화 금융이 지분을 얼마나 들고 있습니까?”

“7%. 나머지 4%는 내가 어떻게든 구해 보도록 하지.”

“신화 금융이 순순히 저한테 그 지분을 넘기려 할까요?”

“몇 배로 쳐 준다고 해. 그럼 그놈들도 알아서 주지 않을까? 현광 자동차가 요즘 많이 흔들리고 있는 건 사실이잖아. 새로 나온 신차도 평가가 좋지 않고.”

정영준 회장 말대로 현광 자동차는 최근 들어 많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만약 지분 확보를 다 하시면 그땐 어떻게 하시려고요? 기관이 끝까지 우리 편을 들어 주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입니다.”

“나도 알지. 하지만 그룹 경영이 최악으로 치닫는다면 그놈들도 생각을 달리하게 될걸?”

“나름 방법이 있으신 모양입니다.”

“저번에도 내가 귀띔을 줬지? 현광 자동차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노조야. 그놈들은 황제 소리를 들으며 일을 하고 있어. 공장 생산량이 다른 나라에 비해 턱없이 낮고 말이지. 당연히 질도 떨어져. 그 노조가 잘나가던 회사를 갉아 먹고 있다는 뜻이야.”

“노조를 이용해 경영 악화를 시킨다, 이겁니까?”

“이미 노조 쪽 애들 몇을 내가 포섭해 놨어. 신호가 떨어지면 그놈들이 전부 들고일어나서 현광 자동차를 압박하게 될 걸세. 뭐 뻔하지. 임금 올려 달라. 근무 환경 개선해 달라 등등. 그대로 생산 라인 올스톱시키고 뻗대면 놈들이 어쩌겠어?”

하지만 저건 양날의 검이었다.

현광 자동차를 손에 넣는다고 해서 똑같은 일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으니까.

“그 노조 애들이 두고두고 회장님 발목을 붙잡을 겁니다.”

“괜찮아. 회사 인수하고 나서 그 버르장머리 없는 놈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다 생각해 놨어. 회사 경영이 아주 어렵다는 핑계로 노조 수뇌부부터 잘라 버리고 반항하는 놈이 있으면 짓밟아 버리면 돼.”

“노조를 파괴하신다고요? 저항이 거셀 텐데요?”

“저항을 해 봤자지. 회사가 다시 합쳐지면 시스템이 전부 다 바뀌게 되어 있어. 당분간은 침체기란 얘기지. 그걸 핑계로 인원 감축을 하면 정부도 아무 소리 못 해.”

현광 그룹이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다는 명분으로 노조 인원들을 잘라 새로운 구성에 들어간다는 건가?

나름 머리를 쓴 것 같았다. 그러나 문제는 역시 지분 확보와 우호 지분 컨트롤이다.

“신화 금융, 구워삶아 줄 수 있겠나?”

“신화 그룹이랑 요즘 사이가 안 좋긴 한데······.”

청와대에서 열린 연회에서도 한바탕 신경전을 벌이지 않았던가.

“지금 죽는 소리를 하는 겐가?”

“회장님이 비용만 다 대 주신다면야 해볼 만할 것 같기도 합니다.”

“이 늙은이가 돈 아껴서 뭐 하려고? 이럴 때 쓰기 위해 그동안 주머니를 빵빵하게 들고 다녔지. 그러니까 지분 확보하고 나서 나한테 와. 그럼 값을 후하게 쳐줄 테니까.”

총알이 부족할 일은 없을 거란 뜻이었다.

정 부족하다면 내게서 돈을 왕창 빌려 가서라도 거사를 치를 게 뻔했다.

“좋아.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네와 손을 잡는다면 천군만마를 얻은 것과 진배없지. 자네가 이번에도 일 처리를 기가 막히게 해 줄 거라 믿어 보지.”

“믿진 마세요. 그러다 제가 회장님 뒤통수를 치면 어떡하려고요?”

“흐흐. 그땐 누굴 탓하겠나. 내가 내 무덤을 판 것이니 남 탓을 할 순 없지.”

정영준 회장은 내 잔에 술을 채워 주면서 말했다.

“한 잔 정도는 괜찮겠지?”

“미리 마시는 승리주라고 여기겠습니다.”

나는 그가 건넨 술잔을 받아 쭉 들이켰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어쩌면 골드 트리먼이 내게 준 기회를 이곳에다 써먹을 수 있을지 모른다고 말이다.

문제는 현광 그룹을 합치는 데에서 끝낼지, 아니면 거기서 더 밀고 들어갈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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