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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 천재가 되었다-142화 (142/200)

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142화

“무서운 얘기네요. 세상에는 아직 제가 모르는 게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알아 봤자 별로 좋을 게 없는 것들입니다. 그런 건 저희들만 알고 있어도 충분합니다.”

“예. 하지만 말씀하신 대로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서 처리조를 뽑자는 게 아닙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정보통을 원하는 거예요.”

그 말에 김강현 실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보를 얻는 데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습니다. 물론, 그 과정 역시 회장님께서는 모르는 일이어야 합니다. 결코 합법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상대방에게서 정보를 빼내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이 양반이 미국 특수부대 출신이라는 걸 잠깐 까먹었다.

분명 거기서 누군가를 고문해 정보를 얻어내는 걸 훈련했을 것이다.

또 남의 전자기기를 털어 원하는 정보를 빼내는 것 역시 어렵지 않은 일일 터.

“실장님에게 전권을 맡기겠습니다. 팀을 한번 꾸려 주세요. 돈은 원하는 만큼 집행해 드리죠.”

돈 걱정은 하지 말라는 것만큼 좋은 것이 또 없다.

그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지금부터 빨리 움직여야 할 것 같으니까요.”

“예. 최대한 서둘러 주세요. 그리고 최고의 인원들만 뽑아 주시고요.”

“명심하겠습니다, 회장님.”

김강현 실장은 그렇게 대답하고 밖을 나갔다.

그를 신뢰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일을 한번 맡겨 보면 그의 능력을 알 수 있지 않겠는가?

* * *

“아가씨. 오셨어요?”

재벌들이 평창동에 으리으리한 대저택을 짓고 산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예전에는 성북동이 재벌들의 텃밭이었다면 지금은 평창동이 그렇다.

집에 들어온 오희진은 정원을 가꾸고 있는 아저씨와 일하는 이모들의 인사를 받자마자 한숨부터 나왔다.

KV 그룹을 이진석에게 빼앗긴 양반이 아직도 이 대저택에서 나가질 않는다.

물론, 이런 집에 살아도 평생 먹고살 돈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재벌 회장쯤 되면 더 이상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명예를 먹고 산다 하지 않던가. 이 저택은 KV 그룹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몰락한 왕의 상징이나 다름이 없다.

“나 왔어요.”

오대현 회장은 아예 집에는 들어오지 않는 딸자식을 못마땅하게 바라보았다.

“미안해요, 아빠. 자주 올게요.”

오희진은 위층에 있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런데 그녀를 붙잡아 소리치는 사람이 있었다.

“너! 그게 사실이야? 너 정말 이진석 그 새끼랑 사귀는 거냐고!”

누군가 했더니,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금융사에서 쫓겨난 오현중이었다.

어디서 그런 얘기를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잔뜩 흥분한 걸 보니 잘하면 한 대 칠 기세였다. 하지만 예전부터 오희진은 오빠들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뻔뻔하게 대답도 할 수 있었다.

“맞아.”

“뭐, 뭐야?!”

“그, 그게 사실이냐! 너 정말로 이 회장이랑 만나는 사이야?”

한 놈은 분노에 찬 승냥이, 다른 한 놈은 기회를 엿보는 하이에나였다.

그래. 이게 싫어서 이곳에 오기 싫었던 거다.

저 구질구질한 남자들의 눈동자가 보기 싫어서.

“그래. 만나고 있어. 이게 그렇게 흥분할 일이야?”

“야! 지금 그걸 말이라고! 그 새끼가 우리 그룹을 강탈해 간 걸 잊었어?!”

“그런데? 그게 어때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 만나겠다는데 왜 훈수질이야. 저번에 그 걸레 같이 생긴 년이 오빠 찼다며? 그래서 지금 이러는 거야?”

“이런 미친년!”

오현중은 여동생의 뺨을 때리기 위해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자 오희진은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어디 치기만 해 봐. 그땐 오빠도 죽고 나도 여기서 죽는 거야.”

“······.”

순간 오현중은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왜 여동생과 친해지지 못했는지도 떠올랐다.

참 똑똑하고 완벽한 여동생인데, 다가가기가 어렵고 가끔은 무섭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무섭게 치켜뜬 저 눈을 보라.

정말 여기서 사고를 낼 작정인 듯했다.

결국 오현중은 손을 내렸다.

“헤어져. 그 새끼랑.”

“남이 사. 오빠나 잘해. 남 연애하는 거에 끼어들지 말고.”

“이게 끝까지!”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내가 왜 여길 안 오려고 하는 줄 알아? 그냥 다 한심해 보여서야. 회사 뺏긴 게 자랑도 아닌데 이 저택에 계속 사는 것도 그렇고. 다들 쪽팔리지도 않아?”

“너 지금 그게 무슨 소리야!”

“한심하다는 거야. 막말로 오빠가 능력이 좋았으면 회사를 빼앗겼겠어? 아빠를 대신해서 회사를 이끌어 갈 수 있다는 카리스마만 보여 줬어도 그 사람들이 순순히 J&H 손을 들어줬겠냐고.”

오대현과 오현중은 크게 충격을 먹었는지 대꾸조차 하지 못했다.

오랜만에 집에 들어온 오희진이 저런 소리를 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역시 괜히 왔네. 내가 이럴 줄 알고 안 오려 한 건데, 미안해요. 아빠.”

그녀는 올라가던 계단에서 내려와 대문 밖으로 나섰다.

후련한 얼굴로 나오는 그녀의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그러고는 휴대폰을 꺼내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자기야. 아까 취소한 데이트 다시 하면 안 될까?]

* * *

“아버지. 저 미친년을 그냥 계속 두고만 보실 거예요?!”

오희진을 쫓아갈까 싶었지만 차마 그럴 용기까지는 없었던 오현중은 괜히 오대현에게 소리를 빽빽 질러 댔다.

그런 아들이 한심하고 안타깝게만 느껴지는 오대현이었다.

“솔직히 틀린 말 한 건 아니지 않냐? 내가 봐도 우리 꼴이 한심하기 그지없는데.”

“아버지!”

“다물어라. 그나마 희진이가 제일 똑똑하구나. 설마하니 적의 품에 들어가 치마폭으로 감쌀 줄이야.”

“예? 치마폭이요?”

“생각해 봐라. 희진이가 내 딸이라는 걸 이진석이 모르겠냐? 그런데도 우리 희진이와 사귀고 있어. 그렇다는 건 완전히 희진이에게 빠졌다는 거지. 정신을 못 차릴 만큼.”

“그런데요?”

“그러다 둘이 결혼을 하게 되면? 이진석의 회사는 더 이상 자신만의 것이 아니야. 결혼을 하는 순간 재산도 둘로 나뉘게 되어 있으니까. 그리고 희진이에게서 나온 자식들이 회사를 물려받겠지.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이냐? 빼앗긴 회사를 희진이가 다시 찾아 오는 거다.”

오대현은 오희진이 의도적으로 이진석에게 접근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원수의 품 안에 들어갈 리 없지 않은가.

“아버지는 저년을 아직도 모르세요? 우리를 위해서 이진석한테 간 게 아니에요. 철저히 자기의 이익을 위해 간 거라고요! 거기다가 아버지도 이진석을 잘 아시잖아요. 그놈이 여자한테 껌뻑 죽는 놈입니까? 분명 둘 사이에 우리가 모르는 게 있을 겁니다.”

오현중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오대현은 생각하기 싫었다.

아니. 다른 뭔가가 있을 거라는 걸 믿고 싶지 않았다.

“시끄럽다! 집에서 내 돈을 축내며 펑펑 놀기만 하는 놈이 희진이를 비난할 자격이 있는 줄 알아?! 내가 적당한 회사 하나에 꽂아 줄 테니까 가서 일이나 배워. 그리고 조만간 선도 보자. 언제까지 결혼도 안 하고 있을 참이냐?”

“제가 선을 보고 싶어도 누구 하나 봐 주는 사람이 없잖아요. 더 이상 KV 그룹의 일원이 아니니깐. 아버지는 어디 좋은 집안에 절 넣고 싶겠지만, 이제 아무도 우릴 받아 주지 않는다고요.”

오대현도 알고 있다.

예전에는 오매불망 오 회장이 전화 주기만을 기다리던 사람들이 넘쳐났다.

그래서 오대현은 골프를 치고 싶으면 아무에게나 전화를 걸어 접대를 받았고, 술이 먹고 싶으면 또 아무에게나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화를 걸어도 제대로 받아 주는 사람이 없다.

새벽에도 전화 한 통이면 퍼뜩 달려오던 놈들이 지금은 별의별 핑계를 다 대면서 오대현을 만나 주지 않거나, 아예 전화를 받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오대현은 칩거 생활에 들어갔다.

속에서 천불이 나고 삶의 의미를 잃은 듯했지만, 오늘 오희진을 만나면서 다시금 기대감에 사로잡혔다.

어쩌면 빼앗긴 것을 되돌려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말이다.

* * *

김강현 경호실장은 내가 지시한 대로 별도의 처리조를 신설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고작 사흘 만에 팀을 이뤄 냈다.

생각 이상으로 팀이 빠르게 만들어진 터라 당연히 나는 그들의 능력을 의심했고, 그 의심을 해소하기 위해 한 가지 일을 맡겼다. 그건 내가 권오준 대표에게 맡긴 일과 똑같은 것이었다.

“계속해서 파고들었지만, 워낙 관련이 되어 있는 사람이 많아 연관점을 찾기가 여간 쉽지 않습니다.”

로널드 웨인을 뒷조사했던 권오준 대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로널드 웨인의 친인척들 중 금융업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지금까지 그가 왜 스릴 넘치는 투자를 했는지 알 것 같더군요. 그만큼 그의 뒤에서 정보를 제공해 주는 사람들이 많았던 겁니다.”

“그래서 그가 어디에다 돈을 베팅하려는 건지 알아내지 못했다는 겁니까?”

“예. 벌써 수조 원이 넘는 돈을 끌어모았다고 하는데, 그 돈을 전부 어디다 쓰려는 건지는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계속 뒷조사를 하고 있긴 하지만, 아마 밝혀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닐지······.”

수조 원 정도의 돈을 끌어모았다는 건 단순히 투자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 많은 돈을 한 기업에다 몰빵하는 건 어려운 일. 그러나 특정 기업을 사들이려는 것이라면?

충분히 일리가 있는 추측이다.

“회장님.”

그때 경호실장이 안으로 들어와 우리 둘에게 정중히 인사를 올렸다.

그 역시 권 대표와 마찬가지로 로널드 웨인을 뒷조사했다.

권 대표와는 조금 다른 방법으로 말이다.

“저희 직원들이 로널드 웨인을 조사하면서 그 주변 직원들의 메일과 휴대폰을 해킹했습니다.”

“로널드 웨인의 휴대폰은요?”

“죄송합니다. 그쪽까지는 뚫어낼 수는 없었습니다. 로널드 웨인 측 경호팀이 철저하게 보안을 신경 쓰는 것 같더군요.”

해킹을 해서 정보를 빼 왔다는 말에 조금 기대를 했지만, 역시 로널드의 핸드폰까지 뚫어 내는 건 힘들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성과는 있었습니다. 로널드 웨인의 최측근인 골드 트리먼 임원들 3명의 메일과 휴대폰을 해킹했는데, 그들이 나누는 얘기들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나는 김강현 실장이 건넨 서류를 확인해 보았다.

그곳에는 임원들끼리 나눈 대화가 있었는데, 가장 눈에 띄는 건 이 내용이었다.

-확실한 거지?

-스탠다드 쪽에서 사장한테 확답을 줬어. 국가 부채 한도가 협상 타결이 되면 그쪽에서 재정 적자를 이유로 신용 등급을 하락시켜 버릴 거라고.

-로널드 사장이 생각보다 발이 넓어. 푸어스사 쪽에도 아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이건 비밀인데, 로널드 사장이 푸어스사 임원 하나랑 눈이 맞았대. 의도적인 건지, 아니면 어쩌다 그렇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일이 잘 풀리면 떼돈 버는 거야.

서류를 통해 대화를 확인한 나는 두 손이 떨려 왔다.

이거였구나.

내 예측이 맞았다.

곧 미국 증시는 폭락한다. 그건 바로 국가 신용 등급이 하락하기 때문이다.

스탠다드 앤 푸어스사가 어떤 회사인가?

세계 3대 신용평가사들 중 하나이며 미국 정부가 아무리 개지랄을 떨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등급을 내려 버리는 놈들이다.

국가와 기업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을 만큼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끼치는 건 덤이다.

이들이 미국의 국가 신용 등급을 낮출 거라는 발표를 하게 되면 미국 증시는 엄청난 혼란에 빠질 것이 뻔하고, 로널드는 거기서 이익을 발생시키려는 게 분명하다.

옵션을 통해 이익을 볼 수도 있고, 특정 회사의 가치가 낮아진 것을 노려 공격적 M&A를 실행할 가능성도 있다.

이건 엄연히 불법인 내부 정보다. 하지만 그것을 누가 문제 삼지 않으면 불법이 아니라 새로운 기회가 된다.

로널드가 알고 있는 것을 이제 나도 알고 있으니, 여기서 어떤 이득을 봐야 할지 나도 고민해 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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