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137화
“한국이요?”
“예. 요한 바오로 2세께서 1980년대에 2번이나 한국을 방문한 이후부터는 단 한 번도 교황님들께서 한국을 찾아 주지 않으셨습니다.”
“아아. 맞습니다. 좀처럼 기회가 오질 않았죠. 사실 2009년도쯤에 교황청에서 한국 방문을 고려한 적이 있어요. 하지만 아시다시피 남한과 북한의 무력 충돌로 이루어지지 못했죠.”
2009년도라면 연평도 포격 사건을 말하는 것이다.
“그 이후에도 고려를 했으나, 남북의 상황이 계속 악화되기만 해서 교황청이 영구 보류를 시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은 그 어떤 나라보다 안전하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비록 북한과의 외교 상태가 악화되긴 했어도 갑자기 전쟁을 일으킬 만큼 그들은 어리석지 않습니다. 거기다 만일 교황께서 한국을 방문하신 날에 무력 도발을 한다면 그건 주님을 믿는 전 세계의 사람들을 향해 선전포고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어 북한도 무리수는 두지 못할 겁니다.”
“저도 동감합니다. 그리고 전 죽음이 두렵지 않아요. 지금 당장 죽는다고 해도 미련은 없습니다. 오히려 주님의 얼굴을 뵐 수 있다는 것이 절 기쁘게 하지요. 형제님의 제안은 진지하게 고려해 보겠습니다. 제가 가고 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갈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교황청에도 법과 절차가 있기 때문이죠.”
“잘 알고 있습니다. 그저 교황님께서 긍정적으로 검토만 해 주신다면 감사할 따름입니다.”
교황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와 동행한 사람들과 하나씩 인사를 가볍게 나누었다.
“당분간 이 손은 씻으면 안 되겠다.”
현식이는 감격에 젖은 목소리로 제 손을 살펴보았다.
“너한테 깊은 신앙심이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응? 뭔 신앙심? 나 무교야.”
“그런데 교황님과 악수하는 건 왜 그렇게 좋아해?”
“야. 그거 다 편견이야. 꼭 천주교인이여야만 교황님을 좋아해야 하는 거냐? 인격적으로 상대를 존중할 수도 있는 거지. 무려 교황이잖냐. 바티칸의 황제! 돈이 얼마나 많겠어! 그 황금 같은 손으로 날 만졌으니, 이제 모든 재물복이 나한테 들어올 거다.”
“······그래.”
현식이와는 다르게 별 감흥이 없어 보이던 오희진은 다른 것에 관심을 보였다.
“그런데 정말 교황님이 한국에 찾아오려 할까?”
“응?”
“교황이 다른 나라에 방문하는 건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이야. 80년도에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건, 한국 천주교가 200년을 맞이해서 그런 거지.”
“네 말은 명분이 없다는 거네?”
“그치. 교황청 사람들도 별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한국 방문을 고려하지 않을걸? 그런데 교황을 한국으로 모신다고 해서 자기가 이익을 볼 게 있나?”
“나야 있지. 내가 지금 핵융합 기술에 돈을 투자했잖아. 그런데 여전히 그걸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아. 야당은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고 있고. 내가 기자 회견을 열어서 간신히 열을 식히긴 했다만, 조금 더 확실한 못질이 필요해.”
“아-. 교황이 자기가 투자한 핵융합 기술에 조금 관심을 보였었지?”
“그래. 그걸 듣고 나니까 번뜩 생각이 들더라고. 만약 교황이 한국을 방문해서 친환경 에너지에 대한 연설을 해 준다면 핵융합 기술 지지도가 확 올라가겠지? 잡음이 많이 나오지도 않을 거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교황이 하는 말이니까.”
교황을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용하는 것 같아 마음이 걸리긴 하지만, 어차피 교황이 특정 나라를 제 마음 가는 대로 방문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교황청과 그 나라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방문을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희진도 명분이 있어야 교황이 한국을 방문할 수 있을 거라 말한 것이고.
“뭐, 그건 나중에 더 생각해 보자.”
한국 방문 건은 당장 급한 것이 아니니 나는 잠시 생각을 미뤄 두었다.
여기는 바티칸.
단순히 교황과 교황청 내부를 살펴볼 기회가 생겼다는 것에 흥분하진 않았다.
내가 더 관심이 가는 건 교황이 누구를 초청했느냐다. 그리고 그들과 내가 만나 어떤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며 비즈니스를 시작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여러분의 앞길에는 항상 주님의 인도하심이 있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매사에 그분의 도움을 구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의 적을 억지로 품으라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그들을 증오하진 마십시오. 그저 억울한 일이 있으면 주님께 맡기면 됩니다.”
교황의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느껴지는 목소리.
연회장에 모인 모두가 교황의 입술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그만큼 청중을 휘어잡는 무언가가 교황에게 있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핍박을 받거든 그 자리에서 발에 묻은 먼지를 털어 내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적용됩니다. 누군가가 그대를 핍박한다면 증오를 품고 칼을 뽑기보다는, 발에 묻은 먼지를 털어 내십시오. 주님께서 당신을 대신해서 움직이실 겁니다. 어떤 고민과 염려, 그리고 공포가 있으면 그것 역시 묻은 먼지를 털어 내십시오. 그 역시 주님께서 해결해 주실 겁니다.”
장황하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짧지도 않은, 종교가 없는 이도 탄복하며 들을 수 있는 연설이었다. 난 조금 감동하고 있었는데, 옆에 있는 현식이가 초를 쳤다.
“저 교황님 가성비가 좋으시네.”
“······.”
교황의 연설이 끝난 뒤, 그다음부터는 우리들의 시간이었다.
교황은 내일을 기약하며 먼저 물러났고, 연회장에 모인 기업인들끼리의 시간을 제공해 주었다.
어차피 이번 연회는 2박 3일 동안 진행된다.
오늘은 가볍게 인사를 했다면, 내일부터는 본격적인 교황의 관심사로 넘어가 각 기업인들이 열띤 토론을 이어가게 될 것이다.
그전에 서로를 알아 가라는 교황청의 배려가 틀림없다.
관심이 있던 기업인들에게 한발 먼저 접근할 수 있는 기회였다.
“우리한테는 딱히 관심이 없어 보이는데?”
현식이 말대로 누구 하나 우리에게 다가오는 이가 없었다.
뭐, 딱히 자존심이 상하지도 않는다.
“J&H가 한국에서는 입지가 커도 전 세계를 기준으로 봤을 땐 미미한 수준이니깐.”
하지만 그런 것도 잠시.
“혹시 이진석 회장님 되십니까?”
아주 젠틀해 보이는 신사 하나가 다가와 물었다.
“예. 제가 이진석입니다만 그쪽은···.”
“하하. 반갑습니다. 저는 골드 트리먼 투자 회사의 사장을 맡고 있는 로널드 웨인이라고 합니다.”
골드 트리먼이라면 현재 미국에서 크게 주목을 받고 있는 투자 회사다.
이 골드 트리먼 회사는 80년도에 만들어진 곳인데, 급성장을 하기 시작한 건 2000년도 중후반 일이다. 그것도 로널드 웨인이 선장 역할을 하면서 많은 게 달라졌다.
그 시작이 조금 웃긴데, 로널드 웨인은 비트코인이 범죄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보고 언젠가 이것이 세상에 나와 큰 영향력을 끼칠 것 같다는 생각에 과감히 그곳에다 투자를 했고 수백 배의 이익을 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투자 성공으로 비트코인은 미국에서 굉장히 유명해졌고, 실질적으로 비트코인이 전 세계에 주목을 받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그 외에도 그는 다양한 분야에서 과감한 투자를 진행했고, 골드 트리먼은 미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거물급 투자 회사가 되었다.
지금도 그는 위험한 투자를 즐기며 그 스릴 넘치는 행동력으로 자신의 능력을 아낌없이 드러내는 중이었다.
“이쪽은 제 약혼자이고, 여기는 J&H의 부회장입니다.”
“오. 그렇군요. 약혼자분은 서양인인 제가 봐도 매우 미인이십니다. 그리고 부회장님께서는······ 카리스마가 넘치시는군요.”
그 말에 현식이가 내게 속삭이듯 물었다.
“저 새끼 지금 내 얘기 할 때 뜸 들였지?”
그런 것 같지만 굳이 대꾸를 해 주진 않았다.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회장님이 한국에서 이뤄 내는 성과들을 주기적으로 보고받고 있습니다.”
“제 성과를요?”
“예. 마치 저와 같은 스타일의 투자자라고나 해야 할까요? 저는 우리같이 스릴을 즐기며 위험천만한 곳에 도전하는 자들을 맹수라고 부릅니다. 야생의 본능과 그 뛰어난 직감으로 투자를 하는 것이죠.”
“그런가요?”
“그렇지 않나요? 지금까지 이 회장님의 투자 내역을 보면 전문가 입장으로 매우 위험하고 생각 없는 투자라며 비판하기 딱 좋아요. 하지만 결과는 어떻습니까? 오히려 그들을 멍청하고 한심한 인간들로 만들어 버렸죠.”
로널드 웨인이 어떤 사람인지 대충 알 것 같았다.
나도 당연히 그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무척이나 위험천만한 투자를 좋아한다는 것 역시.
그래서 주변에서 내 투자 스타일이 그와 비슷하다는 얘기를 듣기까지 했다.
즉, 그는 스릴을 즐기며 투자를 성공했을 때 자신을 비난했던 자들의 콧대를 꺾는 쾌감을 만끽한다는 것이다.
그는 그러한 투자에 중독되어 보였다.
“하고 싶은 말씀이 뭡니까?”
너무 서론이 길었다고 생각했는지 그는 자신의 속내를 드러냈다.
“J&H에 중공업이 있죠? 그 이름이 뭐였더라······ 그래요. 한라중공업을 인수했다고 들었어요.”
“예. 맞습니다.”
“그 중공업이 조선 사업도 한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런데요?”
“우리 골드 트리먼도 R&B라는 조선 해양에 투자를 했죠.”
“정확히 어떤 회사입니까? 조선이라고 해서 다 똑같은 조선이 아니잖습니까.”
“날카로운 질문입니다. 그냥저냥 한 조선소는 당연히 아니죠. 군수와 관련된 곳입니다. 한마디로 군용 함선을 만들어내는 곳이죠.”
들어 본 적은 없는 이름이지만, 미국에서 군용 함선을 만들어 내는 곳이라면 만만한 회사가 아니라는 뜻이다.
천조국이라고 하지 않던가.
미국은 국방에 돈을 아낌없이 쏟아 내는 곳이다. 그리고 국민들 역시 세계 경찰이라는 미국을 자랑스러워하기 때문에 국방에 쓰는 돈을 크게 반대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회사가 얼마 전부터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어요. 회사가 휘청거리기 시작한 거죠.”
“이유가 뭡니까?”
“미국은 다른 나라들보다 방산 기업들이 참으로 많죠. 군용 함선을 만드는 곳도 당연히 넘쳐 납니다. R&B는 경쟁력을 잃은 것이고요.”
그 말은 골드 트리먼이 손해를 봤다는 얘기가 된다.
“손해가 큽니까?”
“뭐, 그동안 이익을 본 게 있어서 손해는 아닙니다. 그리고 솔직히 좀 아까워요. R&B는 충분히 더 잘할 수 있는 회사고, 기술력도 상당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이곳에 돈을 투자할 수가 없어요. 지금 회사 전체가 다른 쪽에 시선을 돌리고 있거든요.”
“골드 트리먼이 시선을 두는 쪽이 어디입니까?”
“후후. 미안하지만 그것까진 말해 줄 수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알게 될 거예요.”
골드 트리먼 정도의 큰손이 돈을 움직인다면 당연히 우리 쪽에서 먼저 포착이 될 거다.
그전까지는 기밀 유지를 하고 싶은 모양이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꺼내는 건 역시······?”
“예. 혹시 J&H가 그 회사를 가져가 보는 게 어떨까 싶어서 말입니다.”
“망해 가는 회사를 말이죠?”
“한국도 방위 산업에 돈을 꽤 들이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R&B가 가진 기술력을 그쪽이 빨아들인다면 이건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닐 겁니다.”
“미국 정부가 탐탁지 않게 여길 텐데요?”
“고작 함선 기술 때문에? 미국은 생각 이상으로 숨겨 둔 기술력이 많아요. 괜히 외계인 납치해서 고문하고 있는 거라는 말이 나온 게 아니죠. 이건 좋은 기회가 될 겁니다. J&H에서 기존에 있던 조선소를 훨씬 더 키울 수 있을 테니까요.”
“일단은 알아보겠습니다. 섣불리 결정할 문제는 아니군요.”
“하하. 당연합니다. 그리고 이런 일 얘기보다는 단둘이 만나 술잔이라도 기울이며 친분을 쌓고 싶군요. 저는 이 회장님 같은 사람을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동질감이랄까요? 아무튼, 시간 되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이 회장님이 부른다면 시간을 꼭 내겠습니다.”
로널드는 가볍게 인사를 하고 나서 우리를 지나쳤다.
현식이는 어이가 없다는 듯 콧방귀를 꼈다.
“결국 자기가 갖고 있는 애물단지 팔겠다는 거 아니야?”
“모르지.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건, 돈 만지는 놈들치고 자기 손해 보는 일은 절대 안 한다는 거야. 그래도 그 회사의 가치가 내 기준 이상으로 높다면 생각해 볼 가치는 있지. 한번 회사에 전화해서 알아보라고만 해야겠어.”
나는 권오준 대표에게 문자를 보내 놓고 바티칸에서 성스러운(?) 밤을 보냈다.
그리고 다시 바티칸에서 준비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을 때였다.
“어머. 자기야.”
그때 오희진이 다급하게 날 부르며 인터넷 기사를 보여 주었다.
[우산호 침몰! 수학여행 떠나던 고등학생 수백 명 실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