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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 천재가 되었다-136화 (136/200)

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136화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 바티칸.

놀랍게도 투표를 통한 입헌군주제를 실시하고 있다.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는 일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지 않던가?

우리나라에서도 투표가 끝날 때까지 새벽 내내 생방송을 하기도 한다.

그만큼 교황이란 인물이 가진 영향력은 결코 무시할 수가 없다.

“그런 대단하신 분을 네가 만난단 말이지?”

“그런 대단하신 분이니까 내 가치를 알아본 게 아닐까?”

“흐흐. 요즘 너 개소리가 늘었다?”

“옆에 친구를 잘못 둔 덕분이지.”

현식이와 시답잖은 농담을 나누다 녀석이 지나가듯 말했다.

“나도 가면 안 되겠지?”

몸을 배배 꼬며 마치 못할 말을 한 사람처럼 눈치를 본다.

평소에는 남의 눈치 따위 절대 보지 않던 놈이 말이다.

“너 자꾸 잊어버리는 거 같다?”

“뭘?”

“네 위치 말이야. 너 J&H 금융 그룹 부회장이잖아.”

“그런데?”

“멍청아. 바티칸을 나 혼자 가니? 수행원들도 있어야 하고, 부회장 정도의 직책이면 당연히 동행 가능하지.”

“아······ 응? 그 말은 나도 갈 수 있다는 거야?”

“가서 짐이나 싸.”

현식이는 환호성을 지르며 후다닥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런데 저놈 종교가 천주교였나?

이런 거에는 전혀 관심 없을 줄 알았는데.

하기야. 상대가 교황이지 않은가?

천주교가 아니더라도 교황이라는 거물을 만난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콩닥거릴 것이다.

“여보세요?”

나도 대충 짐을 싸려는 중에 전화가 왔다.

전화를 건 상대는 다름 아닌 오희진이었다.

-짐 싸고 있어?

“응. 그냥 간단하게 챙기려고. 필요하면 거기서 구하면 되니까. 당신은?”

-나도 뭐 대충.

뭔가 할 말이 있는 거 같은데, 선뜻 말을 꺼내지 않는다.

오희진 성격을 잘 알기에 난 그녀가 얘기를 꺼낼 때까지 다른 말로 화제를 돌렸다.

“아참. 이번에 현식이도 같이 가기로 했어.”

-그 같이 산다는 친구?

“응. J&H 그룹 부회장이잖아. 그놈도 교황 얼굴이 보고 싶긴 한가 봐.”

-그렇구나······.

평소 오희진답지 않은 반응이었다. 그렇게 별 시답잖은 말로 시간을 보내다 그녀가 말했다.

-자기는 근데 그 친구랑 꼭 같이 살아야 되는 거야?”

“어?”

-자기가 무려 J&H 그룹의 회장인데, 아직도 친구랑 자취방 생활하듯 같이 산다는 게 말이 되나 싶어서.”

듣고 보니 그럴듯한 말이긴 했다.

그냥 처음 나와 같이 회사를 시작한 현식이라 서로 의지하듯 같이 살아왔다. 그런데 이제 그럴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건 생각해 보지를 않았네.”

-둔한 거야, 아니면 알면서도 모른 척한 거야? 혹시 그 현식이라는 사람한테 약점 잡힌 건 아니지?

“그런 거 아니야.”

-그럼 혹시 취향이······.

“너무 나갔다.”

-호호. 그치?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도 잘 알겠네?

오희진이 무슨 의도로 이런 얘기를 꺼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래. 마침 나도 새로운 환경이 필요하다 생각했어. 요즘 좋은 집 나온 게 있나? 정 원하면 새로 집을 지어도 되고.”

-무슨 집까지 지어. 일단 내가 살고 있는 집으로 와. 거기서 천천히 알아보면 될 거 같아. 그리고 이건 사실 어머니 조언에 따르는 거야. 어머니가 언제까지 자기를 남자들만 사는 집안에 처박아 둘 거냐면서 한 소리 하셨어.”

어머니는 핑계에 불과하다.

그리고 결혼할 사이라면 지금부터 같이 한집에 살면서 서로의 성격을 파악하는 게 좋지 않겠는가?

원래 연애할 때는 모르던 성격이 동거하면서 술술 나온다는 얘기가 있다.

그래서 결혼 전에 동거부터 해 보라는 격언이 있는 것이다.

문제는 현식이가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을까인데······.

“당연히 나가야지 등신아.”

“으응?”

“난 네가 희진 씨랑 잘 만난다기에 바로 나갈 줄 알았거든? 근데 연애라고는 제대로 해 보지도 않은 놈이라서 그런지 아무 생각이 없어 보이는 거야. 그래서 한마디 할까 했는데, 둘이 뭔가 속사정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그냥 놔뒀던 거야. 아무래도 희진 씨 배경이 KV 그룹이잖아. 둘 사이가 탄로 나면 그쪽 집안에서 가만있겠어?”

“그건 그런데······.”

“아무튼, 빨리 나가. 그래야 나도 눈치 안 보고 놀지.”

“언제는 눈치 봤냐?”

현식이는 오히려 내가 빨리 안 나갔다며 면박까지 주었다.

섭섭함을 쿨하게 숨기려 하는 것인지, 아니면 진심인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래도 짐을 하나 덜어 낸 느낌이랄까.

“그런데 우리 선물 같은 거 준비해야 되지 않아? 교황을 뵈러 가는 일인데, 빈손으로 가면 안 되잖아.”

“안 그래도 나도 준비하려고 했는데, 현 교황께서 그런 건 필요 없다고 하셨단다. 이번 교황이 역대 교황들 중 가장 훌륭하다는 평가가 많잖아. 그래서 그런지 외부에서 들어오는 돈은 일절 안 받는다고 하더라.”

“하긴. 바티칸 재산이 어마무시하다고 하던데. 우리가 다이아몬드를 보따리째 가져가도 덤덤할걸?”

바티칸이 공식적으로 재산을 공개한 적은 없지만, 이들이 수많은 세월 동안 쌓아온 재물이 어마어마하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매일 바티칸으로 들어가는 후원금도 보통이 아니라는 것 역시 모든 이들이 알고 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신부님들은 세계에서 가장 적은 월급을 받고 일하신단 말이지.”

“원래 그런 직업이잖아. 고행 같은 거니까. 오랜만에 술이나 한잔할까? 이제 같이 집에서 술도 못 할 텐데.”

“좋지.”

우리 둘은 집에 있는 술을 다 꺼내서 잔을 돌렸다.

신화 금융 때부터 있었던 일을 나누며 오랜만에 추억에 젖어 들었다.

* * *

로마 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바티칸에서 나온 경호원들의 경호를 받으며 교황청으로 이동했다.

사진으로만 봤던 로마의 모습.

거의 대다수가 관광객들밖에 없어 거리가 많이 복잡했지만, 교황의 명령으로 경호를 받고 있는 몸이라 그런지 도로가 깨끗하게 비어 있었다.

“교황청은 원래 아무나 못 들어간다고 하더라. 관광 목적을 위해 아주 약간만 개방해 놓고 나머지는 철저히 닫혀 있다고 들었어.”

“그래? 바티칸 오기 전에 공부를 좀 했나 보네.”

“근데 난 교황청에 못 들어가겠지?”

“뭐, 수행원이라는 말로 적당히 포장하면 돼. 최대 5명까지는 동행이 가능하다고 했거든. 그래서 권 대표도 데려오려고 했는데, 국내에 할 일이 많다 보니 그냥 남겠다고 했어.”

같이 들어갈 수 있다는 말에 오희진의 얼굴이 더없이 밝아졌다.

“그런데 국내에 무슨 일이 있어?”

“딱히 큰 거는 없어. 대신, KV 그룹 안정화를 해야 하다 보니깐. KV 그룹이 동네 구멍가게가 아니잖아. 소화시키는 데에 힘이 좀 드네.”

나는 오희진의 표정을 조심스레 살폈다.

KV 그룹 얘기가 나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미안. 괜히 얘기를 꺼냈나?”

“아니야. KV 그룹은 자기 거잖아. 그리고 자기 거는 곧 내 것이기도 하고. 혹시 우리 집 때문에 그러는 거라면 신경 꺼.”

“근데 여기까지 와서 이런 질문을 하는 게 웃기긴 하지만, 당신 집안에서 아직 우리 둘이 만나는 거 몰라?”

“응. 아직 몰라. 근데 곧 알게 되겠지.”

“그렇군. 후폭풍은 감당할 수 있겠어? 내가 같이 있어 줄게.”

“괜찮아. 우리 집 남자들 하나같이 유치해서 욕 좀 하겠지만, 그게 무슨 대수인가? 내 인생 내가 알아서 개척하겠다는데. 그러니까 그건 신경 쓰지 마. 그리고 결혼식 때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양가 부모님이 만날 수 있게 할 거야.”

오희진이 하겠다면 하는 것이다.

그녀의 행동력은 어느 대기업 회장 못지않게 불도저 같으니까.

“어서 오십시오. 바티칸에 오신 것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추기경 하나가 우리에게 다가와 인사말을 건넸다.

우리가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말할 줄 알았는데, 우리를 배려해서인지 영어를 써 주었다.

“초대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안으로 드십시오. 교황님께서 직접 초청한 분들을 하나씩 반겨 주고 계십니다.”

드디어 교황을 볼 수 있다는 말에 나는 얼른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과연 그 추기경의 말대로 교황은 직접 한 사람씩 만나 악수를 나누는 중이었다. 그리고 어느새 우리의 차례가 됐다.

“어서 오십시오, 형제님.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숱한 세월로 이미 주름 질대로 진 손이었지만, 진정으로 따뜻함이 느껴졌다.

이대로 인사를 하고 지나치나 했더니, 교황은 내 얼굴을 살펴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한국에서 오신 분이군요. 어디 보자···. 그래. J&H 그룹의 회장이시죠?”

“교황님께서 저를 다 알아봐 주시고, 영광입니다.”

“당연하죠. 이번에 초청한 사람들은 전부 제가 다 선별한 겁니다. 당연히 상대가 누구인지 기억하고 있는 것 역시 예의가 아니겠어요? 최근에 형제님께서 친환경 에너지 산업을 위해 핵융합 기술에 큰돈을 썼다고 들었습니다.”

“예. 개발만 된다면야 후손들에게 좋은 것을 물려줄 수 있을 테니까요. 우리가 지금까지 쌓아 온 개발과 환경 파괴로 후손들이 살 수 없는 땅을 만들 순 없지 않습니까.”

“그런 형제님의 진심 어린 마음, 주님께서도 헤아리고 계실 겁니다.”

순간 뜨끔했다.

후손들이란 말로 잘 포장을 하긴 했지만, 사실은 돈을 보고 투자한 분야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은 처음에 선정 대상이 아니었어요. 6.25 전쟁을 겪고도 기적같이 발전에 성공한 곳이긴 하지만, 돈 많은 자들의 부정부패가 굉장히 심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거든요. 더욱이 대기업에서 만든 재단들은 남을 돕기보다 하나같이 자기 주머니를 채우는 것을 알고는 실망했죠.”

틀린 말은 아니라서 뭐라 반박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J&H는 신선하더군요. 그 정도 규모의 그룹을 이끌려면 당연히 먼지가 묻을 수밖에 없죠. 그런데 J&H는 어디 흠잡을 곳 없을 정도로 깨끗하더군요. 한국 정부와의 마찰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부정한 일을 폭로해 불이익을 봤다죠? 그럼에도 회사가 문제 될 만한 곳이 없어 결국 무혐의로 풀려났고요. 그래서 궁금했습니다. 대체 이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은 누구기에 이토록 깨끗하고도 거대한 기업을 이끌어 낼 수 있었을까?”

“과찬이십니다. 그리고 교황님께서 한국에 그토록 관심을 가지실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교황이라고 해서 대단한 직책이 아닙니다. 우린 결국 어부의 후예라는 걸 항상 기억하고 있어야 하죠.”

교황의 시초를 따지자면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 중 리더였다는 베드로다.

베드로의 원래 직업은 어부로, 예수님은 그를 거두실 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교황은 항상 자신이 어부의 후예라는 걸 잊지 말라는 말을 매번 되새긴다고 들었다.

“그리고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분의 이름이 온 세상에 퍼지면 그때 재림을 하시겠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자연스레 한국 쪽으로 시선이 옮겨 가더군요.”

우리나라는 300m마다 하나씩 교회가 세워져 있다.

당연히 대한민국 국민들 중 예수님 이름을 들어 보지 않은 자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교황이 말하는 건 무슨 뜻일까?

“북한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하하. 예. 북한이야말로 아직까지 주님의 말씀이 닿지 않은 곳입니다. 당연히 관심이 갈 수밖에요. 그리고 한국에도 주님을 믿는 어린 양들이 참으로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때 문득 나는 좋은 생각이 하나 들었다.

“교황님 말씀대로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 대한민국에 아주 많습니다. 그리고 교황님을 한번 뵙는 것을 소원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입니다. 혹시 북한과 대한민국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제가 교황님을 한국으로 모셔도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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