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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 천재가 되었다-134화 (134/200)

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134화

천하 그룹이 공식적으로 핵융합 개발에 투자를 그만둔다는 것을 발표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20여 개의 기업들이 전부 천하 그룹의 뒤를 따랐다.

스티븐 호킹은 인류의 멸망을 막는 첫 단추가 될 것이라고 하는 핵융합 에너지 개발을, 야당은 사기라며 비난했고, 언론은 그들의 맞장구를 쳐 주었다.

“여론이 좋지가 않습니다. 핵융합은 사기라고 열심히 떠들어 대더군요.”

“예. 지금 뉴스에도 나오네요.”

뉴스에서는 앞으로 수조 원이 더 투입될 에너지 산업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며 정부를 강력하게 비판하는 중이었다.

“참 세상이 무섭지 않습니까? 인공 태양 기술이 개발만 된다면 우리 인류는 앞으로 에너지 자원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져요. 그런데 저걸 사기라고 입을 한곳에 모아 비판하다니.”

“원래 정치와 언론이라는 게 다 그렇지 않습니까? 정치꾼들은 무조건 반대파 진영을 물어뜯어야 표가 떨어지고, 언론은 이슈가 될 만한 걸 물어뜯어야 광고가 떨어지니까요.”

언론은 마음먹으면 잠재울 수가 있는데, 문제는 야당이었다.

야당이 저렇게 달려들면 언론 데스크를 계속 막을 수 없게 되고, 청와대는 계속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회장님. 이젠 정말 결정을 내리셔야 할 것 같습니다. 만약 이대로 정부가 꼬리를 내린다면······.”

권 대표의 말대로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여기서 투자를 멈춰야 한다.

하지만 나는 정상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지 않던가.

나는 우리나라 핵융합 기술이 세계에서 가장 앞서가게 된다는 정보를 알고 있다.

어쩌면 미래가 바뀐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이제까지 한 번도 그런 적은 없었다.

즉, 미래 커뮤니티 센터에서 주는 정보는 변하지 않는다.

내가 그것을 알고 바꾸지 않는 한 말이다.

“제 마음은 여전히 같습니다. 칼을 뽑았으면 뭐라도 썰어야죠.”

권 대표도 내 마음을 돌리는 걸 포기한 듯 보였다.

“후-. 잘 알겠습니다. 회장님의 뜻이 정 그러하시다면 오늘이라도 양호진 차관을 만나시겠습니까?”

발등에 불이 떨어진 청와대는 투자를 철회하는 대기업들에 전화를 돌리고 있는 것 같았다. 당연히 우리 쪽에도 연락이 온 상태.

천하 그룹 다음으로 가장 지분 비율이 높은 J&H까지 투자를 철회한다고 하면 이 프로젝트는 정말 끝이 난다.

“한번 만나 보죠. 저번에도 말씀드렸듯, 이건 어쩌면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어요.”

“바로 약속 잡겠습니다.”

이번 선택은 내 인생 최고의, 혹은 최악의 선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 * *

“아이고. 회장님. 크게 다치신 곳이 없어 천만다행입니다.”

양호진 차관은 내가 콜을 하자마자 헐레벌떡 달려와 허리를 숙였다.

“예. 천만다행이죠. 그때 만약 폭발이 더 크게 일어났다면 전 아직도 병원 신세를 지고 있었을 겁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하늘이 도왔습니다.”

양호진 차관은 스리슬쩍 눈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능청스럽게 소파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들어보니까, 천하 그룹을 시작으로 각 기업들이 손을 떼고 있다던데요?”

“아··· 예. 하지만 다들 다시 돌아오지 않겠습니까? 핵융합 기술은 정말 혁신적이니까요.”

“과연 그럴까요? 저는 이대로 마음이 떠나서 더는 그 분야에 투자하지 않을 것 같던데.”

처음에는 속내를 숨기고 괜찮은 척을 하던 양호진 차관이 앓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회장님. 제발 살려 주십시오.”

“예?”

“회장님께서도 이 사업에서 손을 떼시려는 것 아닙니까?”

“그 폭발 현장에 차관님도 계셨다면 아마 같은 생각을 하셨을 겁니다. 그 트라우마가 얼마나 오래 가겠어요? 아마 평생 고칠 수 없을 거예요. 그런데도 제가 핵융합 기술에 투자하길 원하십니까?”

“그, 그거야······.”

양호진 차관의 목소리가 꺼져 들어갔다.

이렇게 몰아치기만 해서는 안 된다.

조금의 여지를 준다면 내게 더욱 매달리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런 사건 사고가 있음에도 저는 핵융합 기술을 여전히 높게 평가합니다. 차세대 에너지원이잖아요. 후쿠시마처럼 우리나라도 원전 사고가 날 수 있는 걸 방지할 수도 있고요.”

“그 말씀은 투자를 철회하지 않으시겠다는······.”

“아직 갈팡질팡합니다. 지금 제가 투자를 한다고 해서 과연 이득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모든 기업들이 다 빠져나가고 있는데, 저만 이 자리를 지키는 게 과연 옳은 일인지도 모르겠고요.”

양호진 차관은 단순한 연구원이 아니었다.

이 양반도 결국 나랏일을 하면서 정치를 하는 자다.

그만큼 눈치가 빠르다.

“회장님. 조건을 말씀해 주시면 제가 최대한 맞춰 나갈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제가 조건을 걸면 청와대가 괜히 태클을 걸지 않을까요?”

“이미 EU를 포함한 7개국이 서명까지 한 에너지원 개발 산업입니다. 지금 여기서 우리가 손 떼겠다고 선언하는 순간 대한민국의 신뢰가 바닥을 치게 되는 거죠. 외교적 문제로도 적잖이 심각하고요. 그래서 청와대가 프로젝트 중단 선언을 못 하고 있는 겁니다.”

그랬던 건가.

청와대가 왜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나 했더니, 국제적 조약을 맺은 프로젝트라 함부로 중단시킬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큰 사고가 났는데도 중단을 못 시킨다고요?”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게 외람되긴 하지만, 국제적으로 봤을 때 그렇게 큰 사고는 아니지 않습니까. 폭발로 인해 다친 사람들이 있긴 해도,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처럼 방사능에 피폭된 건 아니니까요.”

총수들이 다치긴 했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땐 그리 큰 사고는 아니라는 건가?

하긴. 후쿠시마에 비교하면 굉장히 작은 소요였긴 하다.

“야당이 지금 저렇게 물어뜯고 있긴 하지만, 저들도 알고 있습니다. 친환경 에너지 개발이 얼마나 좋은 일이고 우리에게 꼭 필요한 기술인지 말입니다. 거기다 국제 협약을 맺은 이상 물리기도 어렵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죠. 그래서 저렇게 공격을 하는 겁니다. 어차피 철회 못 할 걸 아니까 국민들이 계속 정부 욕을 할 수 있게 판을 짜 놓은 거죠.”

“청와대가 머리 많이 아프겠네요.”

“예. 그래서 이렇게 간곡히 부탁을 드리는 겁니다. 만약 여기서 J&H까지 빠져 버린다면 그땐 진짜 청와대가 이 프로젝트를 중단시킬지 몰라요.”

만약 이 프로젝트가 중단된다면 이 연구에 달려들었던 모든 연구원들도 책임지고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

“생각해 보십시오. 현재까지 들어간 돈이 벌써 1조 원이 넘습니다. 그 아까운 장비들을 전부 다 버려야 하는데, 그걸 그냥 지켜만 봐야 한단 말입니까? 저 같은 놈은 잘려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가 중단되는 꼴은 절대 볼 수 없어요.”

양호진 차관은 제 자리가 날아갈 것 같아 걱정을 하는 게 아니었다.

그는 진심으로 이 프로젝트의 성공을 기원하고 있다.

“저 하나뿐만이 아닙니다. 이 연구에 달려들어 밤샘 작업을 하고 있는 연구원들도 다 같은 마음이에요.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마르지 않는 에너지 자원을 선물해 주기 위해, 자기 자식들에게 새로운 미래를 물려 주기 위해 다들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양 차관의 말을 듣고 나니 그제서야 왜 우리나라 기술력이 세계 최고가 되는지 알 것 같았다. 이들은 개개인의 부귀영화를 위해서가 아니라 후손들이 끔찍한 미래를 경험하지 않기 위해 길을 닦아 놓는 것이다.

인공 태양 개발은 인류의 멸망을 막는 첫걸음이라고 했던가.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나는 이들과 다르게 희생정신으로 투자를 하지 않는다.

난 결국 비즈니스맨이기 때문에 철저한 이익 계산이 반드시 필요하다.

“차관님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 얼마나 우리나라의 미래를 걱정하시는지도요. 꽤나 감동스럽군요. 그런 말을 듣고도 외면을 한다면 제가 나쁜 놈이 되겠죠?”

“아닙니다, 회장님. 여기서 그만두신다고 해도 비난할 사람은 없습니다.”

“하하. 방금 전까지는 절대 중단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잖아요. 그리고 전 차관님이 하신 말씀대로 이 기술력은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 말씀은 계속 투자를 하시겠다는 겁니까?”

“예.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어떤 것이든 제가 최대한 맞춰 드리겠습니다.”

“뻔합니다. 지분 조정이 필요하지 않겠어요? 천하 그룹도 나갔고, 다른 대기업들도 전부 손을 떼고 있어요. 그들이 버리고 간 지분을 저한테 주십시오.”

지분 얘기가 나오자 양 차관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시죠? 혹시 불가하다는 겁니까?”

“아, 아닙니다. 그것보다 만약 그 지분을 전부 갖게 되신다면 투자 금액이 상당히 커질 것 같아서요. 수조 원은 기본이고 수십조 원의 비용이 드실지도 모릅니다. 회사의 명운을 거셔야 할지도 모르는데······.”

“괜찮습니다. 부족한 투자금이야 혈세 투입을 하면 될 일 아닙니까? 국가가 가장 잘하는 일이죠. 공적 자금 투입. 물론, 저도 투자자이자 많은 지분을 갖게 되는 대주주로써 그 의무를 다할 겁니다. 최대한 낼 수 있는 자금만큼 부담할 예정이고요.”

“그렇다면 정확히 어느 정도의 지분을 원하시는지······.”

“계산을 해 봤어요. 그리고 최적의 숫자가 나오더군요. 50%.”

이번에도 양 차관은 미묘한 얼굴빛을 보였다.

“정확히 절반이군요.”

“예. 딱 반반씩 부담하자는 거죠. 안 되겠습니까?”

“제가 청와대를 설득해 보겠습니다. 아마 그쪽도 벼랑 끝이라 회장님 제안을 받아들일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론입니다. 국민들 절반 이상이 인공 태양은 사기극이라고 믿고 있어요.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실험을 재개한다? 반대가 엄청나겠죠.”

“그건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회, 회장님이 말입니까? 방법이 있으신 건가요?”

“방법이야 만들면 되는 거잖습니까? 차관님이 하실 일은 청와대를 설득하는 겁니다. 정확히 반반으로 나누자고 하세요. 어차피 J&H가 돈 때문에 쪼들리는 일은 없을 겁니다.”

양 차관의 얼굴이 한없이 밝아졌다.

“과연 회장님이십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마음이 너무 무거웠는데, 그 짐을 다 내려놓은 듯한 기분입니다.”

그는 가벼운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청와대는 양 차관이 알아서 구워삶을 것이다. 만약 그걸 해내 주지 못한다면 그건 저 사람의 능력 문제일 터.

양 차관이 나가고 나서 권 대표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게 물었다.

“회장님. 지금 여론이 굉장히 안 좋은데, 그걸 대체 어떻게 뒤집으신다는 겁니까?”

“제 얼굴을 좀 팔려고요.”

“예?”

“대표님은 언론사에 전화부터 다 돌려 주세요. 이틀 뒤에 제가 중대한 기자 회견을 한다고 말입니다.”

“설마 회장님이 직접 나서서 여론을······.”

“아직 제 얼굴이 잘 팔리잖아요. 브랜드 가치도 높고. 거기다 사고 현장에서 부상까지 당하지 않았습니까?”

권 대표는 내 말이 무슨 뜻인지 금방 알아차렸다.

“잘하면 큰 효과를 볼 수도 있겠군요.”

“예. 반대로 역효과를 볼 수도 있겠죠. 그동안 쌓아온 이미지가 와르르 무너질 수도 있고. 그래도 도박은 한번 해 봐야 하지 않겠어요? 회사의 명운이 달린 일인데.”

기자 회견을 통해 과연 도박이 먹혔는지 먹히지 않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내 도박은 거기서 끝이 아니다.

거금을 들여 투자한 에너지 사업이 중간에 막혀 버린다면 투자금은 전부 날아가게 될 테니까.

나는 J&H 회사와 내 인생을 건 도박을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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