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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 천재가 되었다-133화 (133/200)

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133화

주마등이라는 것이 뭔지 두 번째로 경험하는 것 같다.

예전에 달려오는 버스에 치일 뻔했을 때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었다.

내 삶의 장면들이 순식간에 지나간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주마등을 봤다고 무조건 죽는 것은 아니다.

“회장님!!”

내가 눈을 떴을 땐 경호원들이 내 몸을 일으켜 주고 있었다.

원래 그들은 이 안으로 들어올 수 없지만, 비상 상황일 땐 장소를 가리지 않는 것이 그들의 임무다.

“뭐가 어떻게 된······.”

“폭발이 있었습니다. 저도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군요. 일단은 여기서 나가셔야 합니다.”

실험이 실패한 건가?

잠깐만. 그렇다는 건 오늘 이곳에 참석한 사람들 모두 피폭된 건 아닐까?

제2의 체르노빌, 후쿠시마 사태가 일어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들었다.

“괜찮아요. 저 혼자 걸을 수 있습니다. 크게 다친 곳도 없고.”

“하지만······.”

“괜찮습니다. 그보다 상황 파악부터 합시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좀 알아 와 주세요. 그리고 권 대표님은요?”

“대표님도 무사하십니다.”

폭발로 인해 유리창이 깨지면서 파편에 조금 맞긴 했지만,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내 앞에 있었던 사람들 중 크게 다친 이가 있다는 것이다.

“회장님. 다행히 무사하셨군요.”

“대표님도 정신을 잃으셨습니까?”

“어후. 기억도 안 납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몸이 날아가는 건 느꼈는데, 그 이후부터는······.”

“저런. 저보다 더 심한데요? 일단 병원부터 같이 가죠.”

연구실 본부에는 벌써 소방차 몇 대가 달려온 상태고, 구급차들도 함께 와서 부상자들을 옮기고 있었다.

나와 권 대표는 겉으로 봤을 땐 조금 긁힌 상처 빼고는 없어 보이지만, 이런 건 겉만 봐선 모르는 일이다.

우리 둘 다 충격을 입고 기절을 하지 않았던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큰 타격을 입었을 가능성이 높다.

나는 경호 실장에게 상황 파악을 맡기고 권 대표와 함께 구급차에 올라 병원으로 향했다.

세브란스 병원 의사들은 갑작스럽게 쏟아져 나오는 VIP들 때문에 심히 당황한 듯 보였고, 우리는 그들의 친절하고 꼼꼼한 진단을 받았다.

“다행히 크게 이상이 있으신 곳은 없습니다.”

“피폭이 된 곳도 없고요?”

“저도 사고 경위를 대충 듣긴 했습니다. 그래서 방사능 피폭을 걱정했었는데, 병원에 오신 분들 중 방사능 이상 수치를 보이신 분이 아직 없습니다. 회장님도 마찬가지고요.”

“다행이네요. 큰 이상은 없다는 거죠? 보통 건강검진 한번 하면 결과 나오는 게 좀 걸리지 않나요?”

“하하. VIP분들은 다르죠. 저희가 당일 바로 체크를 하기 때문에 금방 결과를 아실 수 있습니다.”

예상대로 큰 이상은 없었다.

“저랑 같이 온 분은 어떻습니까?”

“아. 권오준 대표님을 말씀하시는 거죠? 그분도 괜찮습니다. 나이가 좀 있으셔서 걱정을 했는데, 크게 이상 있는 곳은 없었습니다. 가벼운 찰과상이 전부입니다.”

“그렇군요. 고생하셨습니다.”

“예, 회장님. 혹시라도 불편한 점이 있으시면 언제든 불러 주십시오.”

담당의사의 정중한 인사를 받고 나서 나는 다시 자리에 누웠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경호실장이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왔다.

“회장님. 괜찮으십니까?”

“예. 크게 다친 곳은 없답니다. 그래서, 알아보셨나요?”

“네. 다행히 큰 사고로 번지진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핵융합 기술과 자기장 가둠 기술로 인해 방사능이 퍼질 위험이 거의 없답니다. 곳곳에 안전 장치가 있어서 바로 작동이 차단되기 때문이랍니다.”

“근데 폭발은 왜 일어난 겁니까?”

“지금 연구원들도 그걸 조사하고 있는데, 무리하게 온도를 올리다가 플라스마가 생성되면서 폭발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아직 파악이 안 됐다고 하고요.”

초기 단계에는 여러 오류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한민국 최고의 브레인들을 한곳에 모아 만든 기계가 오류를 일으키고 거기다 폭발까지 일으켰다?

후쿠시마처럼 방사능 유출이 없다고 해도 이건 정말 치명적인 사고였다.

“크게 다친 사람들이 있습니까?”

“예. 기계를 돌리던 직원 5명이 수술 중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시연회에 참석했던 총수들 중에서도 3명 정도가 중한 부상을 입었다는군요.”

사태가 심각하다.

만약 여기서 사망자가 나오게 되면 인공 태양 개발은 물 건너갔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정부에서는 어떻게 한다고 합니까?”

“사고 소식을 듣고 청와대에서 모든 실험을 중단시켰다고 합니다. 그리고 야당에서도 정부가 무리한 실험을 진행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뭔 일이 터지면 야당은 여당을 물어뜯기 바쁘게 된다. 그리고 이 사실은 곧 언론을 타고 퍼져 나갈 것이며, 자기 입으로 전문가라 떠드는 놈들이 뉴스에 나와 인공 태양은 매우 위험천만하고 쓸모없는 에너지라며 비판할 게 뻔했다.

“야당 쪽에서 제대로 건수를 물고 덤벼들 작정이라 합니다. 어쩌면 이대로 연구가 영구 중단될 수도 있다고······.”

“잘 알겠습니다. 고생하셨어요.”

분명 미래 커뮤니티 센터에서 본 정보에 의하면 우리나라가 2020년에 최고의 기록을 세우며 선두 주자로 나선다.

그런데 여기서 연구가 영구 중단된다?

야당이 이빨을 드러내고 저렇게 물어뜯는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혹시 내가 모르는 사이에 미래가 바뀌기라도 한 걸까?

* * *

“아이고. 진석아!”

“진석 씨!”

사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어머니와 오희진.

어떻게 된 건지 두 사람은 동시에 병실로 들어왔다.

어머니는 날 한 번 보고 옆에 있는 오희진을 슬쩍 쳐다보았다.

“그런데 이 예쁜 처자는 누구실까?”

그제서야 오희진도 정신을 차리고는 인사부터 올렸다.

“안녕하세요, 어머님. 오희진이라고 합니다. 진석 씨와 진지하게 만나는 사이예요.”

이한별 때문에 조금 걱정을 했는데, 어머니는 아주 반가운 듯 오희진의 두 손을 붙잡았다.

“반가워요. 우리 진석이가 이렇게 예쁜 아가씨를 만나고 있는 줄 몰랐네?”

다행히 오희진은 합격점을 받았다.

“두 사람 너무한 거 아니에요? 나 걱정돼서 온 거 아니었어?”

“호호. 딱 봐도 괜찮아 보이는데, 무슨 엄살을 피우고 그러니? 우리 희진 양 여기 와서 앉아요.”

“예, 어머니.”

벌써 두 사람은 죽이 잘 맞아 보였다.

언제 두 사람을 만나게 해 줘야 하나 고민했는데, 이렇게 기회가 생길 줄 누가 알았겠는가.

“크게 다친 곳은 없다는 거 확실한 거지?”

“응. 크게 다친 곳은 없고, 내일 당장 퇴원해도 괜찮대요.”

어머니와 함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는 가운데, 권오준 대표가 문을 두드렸다.

그는 어머니가 문병을 온 줄 몰랐던 모양인지 얼른 고개를 숙였다.

“이런. 제가 타이밍을 잘못 맞췄네요. 이따 다시 오겠습니다.”

“아니에요. 들어오셔요, 대표님. 우리 아들 멀쩡한 거 봤으니까 괜찮아요. 난 우리 희진이랑 같이 나가서 밥이라도 한 끼 하고 올게.”

어머니는 오희진의 손을 붙잡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나와 권오준 대표 둘 다 어안이 벙벙할 정도였다.

“어지간히 마음에 드셨나 봅니다.”

“예. 희진 씨가 사람들에게 호감을 이끌어 내는 능력이 있긴 하죠.”

“후후. 그런 능력은 보통 출중한 외모에서 온다고 알고 있는데요?”

“그것도 그렇고요.”

환자복을 입고 있긴 했지만, 권 대표도 사지 멀쩡해 보였다.

“아픈 곳은 없으시고요?”

“예. 회장님도 괜찮으십니까?”

“전 아직 젊잖아요. 그런데 얘기는 들으셨어요? 청와대가 연구를 영구 중단 시킬 수도 있다는 말이 돌던데.”

“그렇지 않아도 여러 군데 전화를 돌리고 오는 길입니다. 일단 최악의 상황은 천하 그룹이 방금 전 투자 철회를 했다는 겁니다. 아예 이쪽 연구에서 손을 떼겠답니다.”

핵심 투자자인 천하 그룹이 빠진다고?

이건 굉장히 의외였다.

“천하 그룹이 빠진다고 선언하니까 다른 기업들도 하나둘 꼬랑지를 내리고 있습니다.”

“아무리 사고가 났다고 해도 천하 그룹이 빠지다니요?”

“지금 수술 받고 있는 사람들 중 하나가 장선욱 부회장이라고 합니다.”

아. 역시, 그랬던 건가.

천하 그룹의 황태자 장선욱 부회장이 큰 부상을 당했다면 장연욱 회장 성격상 이 일을 결코 그냥 지나칠 리가 없을 것이다.

만약 여기서 장선욱이 사망을 하거나, 돌이킬 수 없는 부상을 입는다면 장연욱 회장은 이번 사고와 관련된 책임자들을 전부 다 갈아 마셔 버릴 게 뻔했다.

“설마 청와대도 천하 그룹 눈치를 보고 있는 건가요?”

“그런 셈이죠. 가장 큰 손이지 않습니까. 거기다가 황태자인 장선욱 부회장이 큰 부상을 입었다고 하니, 청와대도 솔직히 할 말이 없는 거죠. 다른 건 다 떠나서 자식이 크게 다쳤다는데 부모는 물불 안 가리겠죠.”

이건 두고 봐야 할 문제인 듯하다.

설마하니 장선욱이 큰 부상을 입어 수술방에 들어가는 걸 누가 상상이나 해 봤겠는가.

“만약 이대로 투자자들이 전부 떠나 버리면······.”

“우리에게 남은 선택 사항은 딱 두 개죠. 다른 투자자들과 마찬가지로 손절을 치느냐, 아니면 이대로 남아서 바닥에 떨어진 지분을 주워 담느냐.”

“하지만 이 상태로 연구가 중단되면 어마어마한 손해를 입게 되는 겁니다. 당장 중단되면 그나마 다행이죠. 이런 사고가 또 터지고 훨씬 더 심각한 규모로 번진다면 그땐 정말 연구가 중단되고 우린 투자금만 날린 셈이 될 겁니다.”

권 대표의 말이 맞다.

오늘 사고가 내일 또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다.

“지금 뉴스에서도 난리입니다. 정부가 정식으로 발표를 한 것도 아니라서 정확히 누가 다쳤는지도 모르는 상황이죠. 시연회 때 총수들이 참석한 건 확실한데, 누가 크게 부상을 입었는지 알려 주지를 않으니까 다들 패닉 상태예요. 그래서 가짜 뉴스들이 판을 치고 있고요. 어떤 신문 기사는 모 기업 총수 하나가 사망했다는 기사를 내보내기까지 했습니다.”

“저에 대한 내용도 실렸겠네요?”

“예. 회장님도 시연회에 참석을 했다가 봉변을 당했다는 기사가 흘러나왔고, 중환자실에 계신다는 기사도 제가 방금 확인했습니다. 하여튼 지금 다 미쳐 돌아가고 있어요.”

기업을 대표하는 총수가 사고를 당하면 그 기업의 주가는 신기하게도 내려가게 된다. 그런데 나처럼 J&H와 금융업을 대표하는 사람이 크게 다쳤다는 기사가 퍼지면 어떻게 될까?

내일 장이 열리자마자 J&H와 관련된 종목들이 모두 폭락할 게 불을 보듯 뻔했다.

그런 상황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가짜 뉴스 올린 사람들 전부 글 내리게 해 주시고, 저는 가벼운 찰과상만 입고 내일 당장 퇴원한다는 기사 올려 주세요.”

“예. 저도 그렇게 하는 게 좋다고 봅니다. 회장님이 건재하다는 걸 알아야 내일 주식 시장에서 혼란이 없겠죠.”

“그리고 우리가 갖고 있는 라인을 총동원해서 이번 사고로 인공 태양 연구가 중단되는 일이 없게 압력을 넣어 보세요.”

그 말에 권오준 대표가 살짝 멈칫거렸다.

“회장님께서는 포기할 생각이 없으시군요.”

“예. 이 기술은 반드시 개발되어야 합니다. 다른 나라들도 다 하고 있는 걸 우리나라만 안 하다가 손가락 빨 순 없잖아요. 무조건 해야 돼요. 아직 포기할 생각 없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이건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어요.”

“지분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예. 포기한 기업들이 버리고 간 지분을 우리가 거두는 거죠. 멀리 본다면 이건 좋은 기회가 맞습니다.”

그러자 권 대표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장님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여기서 손절을 치자고 조언드리고 싶지만, 전 회장님의 결정을 믿으니까요.”

겉으로는 괜찮은 척했지만, 사실 좀 걱정이 됐다.

내가 받은 정보가 바뀌는 거라면 어떻게 되는 걸까.

그리고 2020년에는 세계 신기록을 세웠어도 그 후에 또 이와 같은 사고가 벌어진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기대감보다 불안함이 더 커지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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