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131화
“자기는 아침이 돼도 변함없이 잘생겼네.”
“넌 안 그런 줄 아나 봐? 아침에도 얼굴이 붓지 않고 잡티 하나 없이 예쁘다는 걸 사람들이 알아야 하는데.”
“뭐, 내가 그냥 예쁜 것도 있고 정기적으로 돈 들여 가며 관리받는 것도 한몫하지. 이 피부 유지하려고 돈을 얼마나 쓰는 줄 알아?”
내 팔을 베개 삼아 누워 있는 오희진은 자신의 볼을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며 투덜거렸다.
내가 보기에는 관리를 받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내일부터는 회사 나가겠네?”
“그래야지.”
금요일부터 오늘까지 총 3일을 오희진 집에 머물렀다.
처음에는 잠깐 들어갔다 나오려던 게 벌써 3일이란 시간이 흐르고 만 것이다.
회사 일도 해야 하는데, 순간 여자에 미쳐 모든 걸 내팽개치다니.
스스로를 자책하는 마음이 들긴 했지만, 오희진의 얼굴을 보면 그런 생각이 싹 사라진다.
오히려 내일 회사에 나가야 한다는 것이 괴로울 뿐이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조금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일 가기 싫구나?”
“내 마음을 아주 잘 아네. 며칠은 여기 더 있고 싶은데 그럴 순 없지.”
“자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주말에도 항상 회사를 나가던 사람이 갑자기 안 나와서 다들 어리둥절했을걸?”
“몰라. 오늘이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놀아야겠어.”
우리는 침대에서 일어나 샤워를 마친 뒤 옷을 갈아입었다.
마침 바깥 날씨도 데이트하기 딱 좋았다.
그렇게 지하 주차장에 내려가 차에 탔을 때였다.
“······.”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어 대면서 익숙한 이름이 화면에 나타났다.
내가 멈칫거리는 걸 놓치지 않은 오희진이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누군데 그래?”
“한라 그룹의 이한별 씨.”
“아. 너랑 사귄다고 얘기 돌았던 그 여자?”
“알고 있었네?”
“재벌계는 워낙 좁아서 소문이 빨리 돌잖아. 그런데 둘이 진짜 사귀는 거였어? 설마 양다리?”
“무슨 소리야. 난 그런 짓 안 해. 우리 둘이 진지하게 사귄 적도 없고.”
그동안 줄곧 연락이 없다 갑자기 이한별이 내게 전화를 건 이유가 뭘까?
길게 생각할 것도 없었다.
이미 우리 둘은 끝난 인연이 아니던가. 거기다 나는 이미 결혼까지 계약한 여자가 있었다.
난 오희진이 보는 앞에서 전화를 거부하고 번호까지 지우는 퍼포먼스를 보여 주었다.
하지만 오희진은 반응이 좀 색달랐다.
“응? 그럴 필요는 없었는데.”
“정말?”
“그냥 한번 받아 보지 그랬어. 이한별인가 뭔가 하는 여자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솔직히 궁금했단 말이야. 재밌었을 거 같았는데.”
역시, 다른 여자들이랑은 다른 구석이 많다고 해야 하나.
우리는 차를 몰아 재벌들끼리만 알고 있는 한식당으로 향했다.
‘정음’이라 불리는 이 한식당은 특이하게 VIP 회원만 이용할 수가 있는데, 1년 연회비를 내야 한다. 또한 내가 원한다고 해서 이 식당의 회원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 한식당에서 일정 재력이 되는 사람들에게 회원권을 보내 주는데, 신용카드 회사가 그 유명한 블랙카드를 지급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보면 된다.
“여기 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참 재벌들은 특별한 걸 좋아해.”
“돈지랄 하는 것도 좋아하지. 유일하게 사람들과 계급을 나눌 수 있는 것이 바로 돈이잖아. 나 자신을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거 같고.”
“너도 그래?”
“그런 기분을 느끼려고 여기 오는 건 아니야. 그냥 이 한식당이 제일 맛있어. 너도 먹어 봐서 알 거 아니야. 대한민국 어디에도 여기만 한 곳이 없다는 거. 내가 미슐랭 스타 받은 곳도 여러 군데 다녀 봤는데, 여기가 항상 최고였어.”
내가 극찬을 아끼지 않을 정도로 이곳은 우리나라 최고의 한식당이다. 그만큼 음식값이 비싸지만, 전혀 아깝지가 않았다.
“여기 천하 그룹 1대 회장이 만든 곳이라고 하던데. 맞아?”
“응. 장유현 회장이 예전에 만들어 놓은 곳일걸? 최고의 요리사들을 한곳에 모아 접대를 하려 한 거지. 그러다 그게 지금까지 온 거고.”
이곳에 오면 재벌계 사람들을 자주 만날 수가 있다.
돈을 많이 벌었다고 알려진 우리나라 톱급 연예인들은 이곳에 절대 들어올 수 없다.
재벌계에 비빌 만큼의 재력이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하고, 이곳 사람들은 연예인을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딴따라나 하면서 몸이나 파는 것들이라는 80년대 인식이 강하게 박혀 있는 건데, 지금도 연예계에서 성 상납이 계속 이뤄지고 문제가 되는 것을 보면 이들의 인식은 영원히 바뀌지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성 상납을 주도하는 것이 바로 재벌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리를 하나 잡아 앉았다.
아마 몇몇 지나가는 사람들이 우리 둘을 보고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을 것이다.
KV 그룹을 빼앗은 내가 KV 그룹 전 회장의 딸을 만나고 있으니 말이다.
“괜찮겠어? 네 아버지 귀에도 들어갈 텐데.”
하지만 오희진은 상관없다는 듯 머리를 뒤로 넘겼다.
“괜찮아. 어차피 영원히 숨길 일도 아니잖아. 우리가 결혼하려면 집안사람들에게 알리기도 해야 하고. 아참. 그런데 자기 어머니랑은 언제쯤 만나면 좋을까?”
“벌써 우리 어머니를 만나려고? 너무 빠른데.”
“뭐, 어때? 앞으로 며느리 될 사람인데. 지금부터 눈도장 확실히 찍어 놔야지.”
자신 있다는 듯 두 주먹을 불끈 쥐는 모습을 보니, 우리 어머니를 무시할 것 같진 않다.
한 가지 걱정인 건, 어머니가 과연 오희진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다.
이한별과는 이미 몇 번 만난 적이 있으셔서 괜히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건 아닐지······.
“무슨 생각 해?”
“응? 아니야. 얼른 먹자.”
그건 나중에 기회 되면 내가 먼저 어머니에게 물어봐야 할 것 같다.
마침 허기가 진 터라 우리는 잠깐 말없이 밥만 먹었다.
허겁지겁 먹다 보니 어느새 주문한 음식 절반이 사라졌고, 오희진은 벌써 배부르다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러고는 툭 던지듯 내게 말했다.
“근데 원자력 본부장이 여긴 왜 왔을까?”
“응? 누구?”
“우리나라 원자력 본부장. 거기다 과학기술정보통신 차관들 3명도 왔던데? 아까 지나가면서 봤잖아.”
나는 멍하니 오희진을 바라보았다.
“원자력 본부장이랑 차관들 얼굴을 내가 어떻게 알아?”
“우리 자기, 생각보다 모르는 게 많네?”
“정부 쪽 사람들이랑은 내가 별로 안 친해서.”
“내일 회사 가면 한번 알아봐. 저 사람들이 여기 왔다는 건 대기업 사람들이랑 따로 만난다는 거니까. 분명 건수가 있다는 거지.”
맛있는 곳에서 식사나 하려 했더니, 오히려 내일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목표가 생겨 버렸다. 그런 내 마음을 눈치챈 것인지, 오희진이 한쪽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우리가 보통 커플이야? 주변에 돈 되는 게 보이면 바로 물어야 하지 않겠어?”
“맞는 말이네. 여기서 그런 건덕지가 나올 줄은 몰랐지만.”
문득 궁금해졌다.
원자력 본부장과 과학기술정보통신 차관들이 3명이나 이곳에 방문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리고 그들은 누굴 만나 무슨 얘기를 나눴을까?
* * *
“3일 동안 즐거운 시간 보내셨습니까, 회장님.”
회사에 출근한 나를 보고 권오준 대표는 중후하면서 음흉한 웃음소리를 냈다.
“놀리지 마세요.”
“놀리는 거 아닙니다. 오히려 기분이 너무 좋은데요? 회장님이 이렇게 회사 일을 잠시 잊어버리고 푹 쉬신 게 얼마 만입니까? 제발 휴가 좀 가시라고 보내 드렸던 미국에서도 일만 하고 오셨잖아요.”
“흐흐. 이제 조금 휴식을 취할 때가 되긴 했죠. 그런데 아직은 아닙니다. 혹시 요즘 원자력 쪽에서 무슨 사업을 벌이고 있는지 알아와 주시겠어요?”
“원자력이요?”
나는 어제 오희진과 식당에서 보았던 걸 권오준 대표에게 말해 주었다.
그러자 그는 침음을 흘리며 턱을 긁적였다.
“원자력 본부장과 차관급이 전부 움직였다는 건 심상치 않긴 합니다.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내가 지시한 걸 알아보기 위해 권 대표는 잠시 자리를 비웠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회장실로 돌아와 말했다.
“회장님 말씀이 맞았습니다. 요즘 원자력 쪽에서 대기업 측 사람들과 접촉을 자주 하고 있답니다.”
“무슨 일로요?”
“혹시 회장님. 핵융합이라고 알고 계십니까?”
핵융합?
핵폭탄은 알아도 핵융합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다.
“제가 문과입니다, 대표님.”
“하하. 사실 저도 잘 모릅니다. 그런데 쉽게 말하자면 인공 태양이라고 하더군요.”
“인공 태양? 혹시 그 영화에서 나온······.”
“예. 그 거미 인간 영화에서 나온 인공 태양 말입니다. 2007년부터 시작된 프로젝트인데, 유럽을 포함해서 총 7개국이 진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후발 주자로 들어갔고요.”
“그럼 설마 그 사람들이 대기업과 접촉했던 게······?”
“천하 중공업부터 시작해 여러 기업들을 끌어들여 투자를 받겠다는 거죠. 이미 시설은 완비가 되어 있긴 한데, 추가적으로 계속 건물을 짓고 실험에 필요한 기계들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여러 기업의 협력이 절대적이라고 합니다.”
인공 태양이라.
매우 흥미로운 주제였다.
“저도 몰랐는데, 인공 태양이 생각 이상으로 괜찮은 친환경 에너지더군요. 보통 원자력 발전소를 돌리면 폐기물이 쌓이지 않습니까? 근데 이건 폐기물을 재활용할 수가 있고 원자력 발전소보다 사고가 날 확률이 매우 적으며 에너지 효율도 수십 배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것만 있으면 인류는 더 이상 석유에 얽매여 있지 않아도 되겠네요?”
“예. 인공 태양이 있으니, 새로운 에너지를 찾아 나설 필요가 없어지죠. 그리고 여기에 투자한 회사들은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들이는 것이고요. 하지만 문제는······.”
“실현 가능성이겠네요.”
“예. 현재 기술력으로는 인공 태양을 만들 수가 없답니다. 1억 도가 넘는 플라즈마를 형성해서 그걸 120초 이상 붙잡아 놔야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데, 지금은 5,000만도의 플라즈마를 5초간 붙잡아 놓는 게 전부예요.”
얘기만 들었을 땐 참 멀고도 먼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런 대단한 기술력이 하루아침에 발명될 일은 없지 않은가. 그리고 세상은 참 많은 것이 바뀌었다.
하루가 안 돼서 새로운 기술이 계속 쏟아져 나오는 축복받은 시대에 우린 살고 있다.
인공 태양 역시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되어 보급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우리 쪽에서도 접촉을 해 볼까요?”
“아마 저쪽에서 접촉을 하지 않겠어요? 일단 기다려 보죠. 솔직히 욕심이 나는 기술력이긴 한데,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가 많지 않으니까요.”
“잘 알겠습니다. 그리고 인공 태양에 대한 정보를 모아서 보고 올리도록 하죠.”
“예. 그렇게 해 주세요.”
인공 태양.
영화에서는 그 태양 때문에 인류가 멸망할 뻔했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일 뿐.
권오준 대표가 빠른 시간 내에 올려 준 보고서를 쭉 읽어 보니, 이건 그야말로 인류의 대혁명이나 다름없는 기술이었다.
이 기술력은 세계 2차 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때부터 연구가 조금씩 시작되었고 냉전 시대 때 불이 붙었다. 그러다 다시 주춤거리고 있을 때, 후쿠시마 원자력 사고가 터지면서 또 한 번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세계 정상들이 한자리에 모여 인공 태양 공동 개발에 서약했다.
이제 어떤 나라가 먼저 인공 태양 개발에 성공하느냐에 따라 그 가치는 어마어마할 것이며, 만약 성공을 확신한다면 투자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을 것이다.
나는 보고서를 잡은 손에 힘이 가득 들어갔다.
인류가 만들어 내는 새로운 태양을 이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