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130화
갑작스럽게 우리 회사를 방문하게 된 김진혁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니까 저를 J&H 팀으로 스카우트하시겠다는······.”
“예. 혹시 다른 회사에서 오퍼 온 적이 있었나요?”
“KBT에서 왔었어요.”
역시나.
KBT가 먼저 김진혁에게 접촉을 했었다. 하지만 그 뒤로 말이 없는 것을 보면 계약서에 사인까지 한 건 아닌 모양이다.
“그쪽에서 얼마를 제시하던가요?”
“일단 테스트부터 받고 그 후에 결정을 하자고······.”
“그렇군요. 하지만 저희는 그럴 필요 없습니다. 연봉 1억 5천을 제시해 드리죠. 이 정도면 괜찮을까요?”
1억 5천이란 말에 김진혁의 눈동자가 커졌다.
“부족하십니까?”
“아, 아니요. 다른 프로 선수들도 1억 이상 받는 사람이 없다고 알고 있어서요.”
“혹시 제가 사기 치는 것 같아서 불안하세요?”
“J&H면 대한민국 최고 금융사 아닌가요? 제가 금융업 쪽은 잘 모르지만, J&H의 이름은 종종 들어서 알고 있어요. 거기다 이진석 회장님을 모르면 간첩이죠.”
“하하. 말이라도 그렇게 해 줘서 고마워요. 전 김진혁 씨가 최고의 선수가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러니 저희와 계약을 해서 J&H에 들어와 보심이 어떻습니까?”
김진혁은 바로 계약서에 사인을 하진 않았다.
“저희 부모님한테 먼저 물어볼게요. 제가 계약서 같은 걸 잘 볼 줄 몰라서요.”
보통 사람이라면 연봉을 보고 바로 사인부터 할 텐데, 김진혁은 그러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했다.
“좋은 생각입니다. 아직 학생이죠? 성인이 아니면 이런 계약서는 김진혁 씨가 혼자 사인 못 해요. 부모님에게 반드시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꼼꼼히 읽어 보고 연락 줘요.”
나는 내 명함을 이진혁에게 건네주었다.
“대한민국에서 제 명함 갖고 있는 사람 몇 안 돼요. 그만큼 저한테 언제나 편하게 연락할 수 있다는 뜻이죠.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감사합니다, 회장님.”
김진혁은 그것을 받아 들고 계약서와 함께 회장실 밖을 나갔다.
권 대표가 아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애가 귀엽네요. 정말 저 아이가 세계 최고의 플레이어가 될 거라고 보십니까?”
“글쎄요. 제가 게임에 대해서 뭘 아나요? 그냥 직감이라고만 해 두죠.”
“흐흐. 회장님 직감이면 안 봐도 알겠군요.”
스타 플레이어.
한 분야, 특히 스포츠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천재적인 플레이어들에 투자하는 건 대기업 홍보에 아주 좋은 방법이다.
그래서 유명 대기업들은 미리 전문가들을 뽑아 놓아 잠재력이 큰 선수들을 선별해 투자를 결정한다.
“앞으로 J&H가 세계 전역으로 뻗어 나가려면 홍보에도 신경을 써야 합니다. 방금 전 나간 김진혁 선수처럼 잠재력이 있어 보이는 선수들을 미리 선별해 투자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회장님 말씀에 동감합니다. 제가 한번 전문가들을 알아보겠습니다. 그쪽 일에만 전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거든요. 그런데 회장님. 야구팀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KBO에서 확답을 달라는 공문이 와서요.”
야구팀이라.
수백억은 기본으로 잡아먹고 들어간다는데, 이걸 진행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인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나도 감성이라는 게 있는 놈이긴 한가 보다.
“J&H의 이름이 적힌 우승 트로피가 회장실에 놓인다면 볼 만하겠네요.”
“저도 잠깐 그런 상상을 했습니다만······. 과연 돈을 얼마나 잡아먹을지 모르겠네요.”
“어차피 우리야 돈이 썩어 나지 않던가요? 솔직히 천억쯤이야 과잣값처럼 던져 줄 수 있으니까요.”
“하하. 과잣값치고는 너무 큰데요? 그럼 회장님 뜻대로 KBO에 확답을 보내겠습니다. 그쪽에서 심사한 뒤에 결과를 알려 주겠죠.”
J&H는 국내뿐만이 아니라 세계 전역에서 영향력을 끼치는 기업이 될 것이다.
우리의 움직임 한 번으로 세계 증시가 들썩이는, 그런 슈퍼 대기업을 만들고 싶다.
그렇게 하기 위해 단순히 돈만 버는 것이 아니라 홍보를 통해 고객을 우리 쪽으로 유치하는 것이다.
이런 홍보가 별로일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의외로 이런 것에 큰 홍보 효과를 누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대기업이 전문가들을 뽑아서 스카우트를 하는 것이고.
지금까지는 내 이름을 걸고 국내에서 홍보를 해 왔지만, 해외로 뻗어 나가기 위해서는 스타 플레이어를 발굴해 홍보를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 J&H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업이 되어 있을 거라 나는 믿는다.
* * *
바로 다음 날 김진혁은 부모님과 함께 회사를 찾아왔다.
점잖게 생긴 김진혁의 부모님은 놀랍게도 두 분 다 변호사였다.
“계약서는 잘 읽어 보았습니다. 애가 갑자기 J&H에서 계약 제의가 들어왔다기에 처음에는 의심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계약서를 읽어 보니 우리 애한테 유리하게 써 주셨더군요.”
“최대한 배려를 해 드린 겁니다. 더군다나 아직 학생이지 않습니까? 현재 학업에 큰 피해가 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호호. 정말 프로게이머를 한다면 공부는 포기해야죠. 이상하게 우리 진혁이가 머리는 똑똑해도 공부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프로게이머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이 많은데, 두 분은 찬성을 하시는 겁니까?”
“저희는 애한테 강요하지 않아요. 우리 부부가 변호사라고 해서 애까지 법조인을 시키란 법은 없죠. 거기다가 이렇게 좋은 연봉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면 그것보다 더 큰 축복이 있을까요?”
깨어 있는 부모라고 해야 할까.
아직 프로게이머에 대한 부모님들의 인식은 좋지가 않다.
애가 게임을 하면 학업을 망치고 머리까지 나빠진다는 인식이 전체적으로 깔려 있기 때문. 솔직히 나도 게임이 학업에 도움을 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치열한 세상이지 않은가?
초등학교 때부터 차근차근 준비를 해서 엘리트 코스를 밟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은 대다수 부모들의 목표다.
그런 지옥 같은 교육을 버텨야 하는 건 애들의 몫이고 말이다. 하지만 김진혁의 부모님들처럼 아이를 한쪽으로만 가게 하지 않고 다양한 길을 보여 주는 것도 좋은 선택이라 생각한다.
꼭 대기업에 들어간다고 해서 인생에 성공하는 건 아니니까.
“감사합니다. 앞으로 김진혁 선수를 저희가 잘 케어해서 세계 최고의 선수로 거듭날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아니에요. 부족한 저희 아이를 좋게 봐 주신 것만 해도 감사할 따름이죠.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계약을 진행했고, 김진혁의 미래는 바뀌었다.
본래 그는 KBT로 들어가 우승컵을 들어야 하지만, J&H로 들어와 우승컵을 들게 될 것이다.
* * *
“아. 오늘 공연 정말 너무 재밌었어요. 특히 남배우랑 여배우 모두 제가 좋아하는 뮤지컬 배우들이거든요. 근데 티켓 구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자주 못 봤는데, 어떻게 그 좋은 명당자리를 구했어요?”
오희진의 물음에 나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 뮤지컬 투자자가 접니다. 투자자가 티켓 달라고 하면 무조건 줘야죠.”
“아······. 그런 방법이.”
“저도 뮤지컬을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항상 티켓 구하는 게 힘들어요. 그래서 그냥 좋아하는 뮤지컬에 투자금을 뿌렸죠. 그러니까 티켓을 주던데요?”
오희진의 약속대로 우리는 일주일에 최소한 한 번씩은 만나 데이트를 했다.
저번에는 몰랐는데, 우리 둘의 취미가 상당히 잘 맞는다.
일단 나는 아무 데나 나돌아다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공연이나 뮤지컬을 보러 다니는 걸 좋아한다. 특히 놀이공원을 가는 걸 즐기는데, 신기하게도 오희진 역시 뮤지컬을 보는 것과 놀이공원을 가는 걸 매우 좋아한다.
덕분에 데이트 코스를 짜는 게 별로 힘들지 않았다.
만나서 무슨 얘기를 나눠야 하나 고민을 했는데, 좋아하는 분야가 같다 보니 대화가 항상 끊임없이 흘러간다.
“그런데 주연 배우 말고, 오늘 조연들이 좀 마음에 안 들었어요. 특히 2막에서 삑사리 났을 때랑 대사 실수했을 때도 그렇고요.”
우리나라 뮤지컬은 팬덤이 적고 시장 자체가 크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한번 마음에 든 뮤지컬이 있으면 보통 3번 이상은 다시 보러 가는 편이라 그런지 수익성은 나쁘지가 않다.
그래서 뮤지컬 팬들은 배우들의 대사와 디테일한 동작까지 다 외우고 있을 정도로 무섭다.
“요즘 뮤지컬들은 별로 마음에 안 들어요. 아이돌 가수들을 다 끌어와서 실력 있는 배우들을 내치고 있잖아요. 얼굴만 잘생기고 노래와 연기력은 완전 꽝인 놈들을 대체 왜 데리고 오는 거야?”
“어쩔 수 없죠. 아이돌을 데려오는 게 더 수익성이 좋거든요. 저도 이번에 투자하면서 알게 됐는데, 인기 좀 있는 아이돌 가수를 데려오면 수익이 평균 2배 가까이 뛴다고 하네요.”
“그래도 안 돼요! 진석 씨는 절대 그런 곳에 투자하지 마요.”
“저도 희진 씨와 똑같은 마음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배우들이 밀려나는 것만큼 화나는 게 또 없더라고요.”
오희진은 학교에서 유명한 인싸였을 것 같다.
말하는 것도 재치가 있고 항상 흥미로운 주제로 대화를 이끌어 낸다.
“제가 저번 달에 미국 가서 디즈니랜드 순회를 했거든요? 근데 아직 유니버셜 스튜디오를 안 갔어요. 혹시 휴가 내서 저랑 같이 갈 생각 없어요?”
“음. 사귄 지 별로 안 됐는데 벌써부터 해외여행을?”
“요즘 세대에 그런 게 있나요. 내 친구는 사귄 지 이틀 만에 바로 해외여행 가던데. 혹시 저랑 같은 방 쓰는 게 부담되나요? 그럼 각방을 잡을까요?”
“희진 씨와 같은 방 쓰는 게 부담스러운 남자가 있다면 그건 병원에 가 봐야 하는 게 아닐까요?”
그러자 오희진이 야릇한 눈동자를 내게 보냈다.
만날 때마다 가끔씩 저런 눈빛을 보이는데 그때마다 나도 모르게 심장이 빠르게 뛴다.
그렇게 대화를 이어 가며 어느덧 그녀가 살고 있는 청담동 오피스텔에 도착했다.
그러자 그녀가 안전벨트를 풀며 말했다.
“아버지는 별로 무사하지 못해요.”
“예?”
“궁금해하는 것 같아서요. 물어보기는 좀 뭐하니까.”
“제 가려운 곳을 잘 긁어 주시네요.”
“그리고 제 철없는 오빠들도 요즘 쉬지 않고 싸우고 있고요. 어떻게 현수 오빠를 회사에 남겨 둘 생각을 다 했어요?”
“실력 있는 사람이니까요. 희진 씨도 회사 일 하고 싶으면 말해요. 적당한 자리 하나 물색할 테니까.”
그녀는 어림도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제가 왜요? 전 회장님의 사모님으로 떵떵거리며 살 건데요?”
“그래야 제가 회사에서 희진 씨를 매일 볼 수 있잖아요.”
그 말에 오희진은 잠시 멈칫거리다 이내 내 손을 부드럽게 붙잡았다.
“혹시 오늘 밤에 뭐 할 생각이에요?”
“음. 글쎄요. 딱히 계획은 없지만, 분명 일을 하지 않을까요?”
“재미없어라.”
“희진 씨는 다른 계획이라도 있나 봐요?”
“저야 들어가서 샤워부터 하고 맥주 한잔하면서 영화나 보려고 했죠. 이상하게 뮤지컬 보고 오면 진이 빠져서 그런지 배고프더라고요. 치맥 괜찮을 거 같지 않아요?”
“좋겠네요.”
“같이 먹을래요?”
또 저 눈빛이다.
벌써 시간은 오후 11시로 달려가고 있었고, 마침 나도 배가 고팠다. 하지만 저 손에 이끌려 들어가게 되면 왠지 치킨은 먹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아마 영화도 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나는 그녀의 손에 따라 차에서 내렸다.
“우리 정말 치맥 먹으면서 영화만 보는 겁니다?”
“물론이죠.”
능청스러운 대화가 왠지 편안한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