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128화
“그럼 절 계속 이 자리에 앉혀 놓겠다는······.”
“싫으십니까? 저는 사장님이 계속 있었으면 하는데요? 다른 임원분들의 의견도 궁금하군요. 제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여기 오현수 사장님은 역대 유통 쪽 사장님들 중에서 가장 높은 실적을 자랑하던데요? 방금 전 나간 오현중 전 부사장과는 차원이 다르지 않습니까?”
내 말에 임원들은 얼른 맞장구를 쳐 댔다.
“맞습니다. 역대 사장들 중 단연 으뜸이죠.”
“안 그래도 경쟁사들이 많아 힘들었던 유통이었는데, 오현수 사장 덕분에 요즘은 숨통이 트였다는 말이 많습니다.”
임원들이 내 눈치를 보고 있어서 맞장구를 치는 게 아니다.
오현수 사장의 실력을 정말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다가 현재 대형 마트 시장은 끔찍한 수준으로 경쟁이 과열되어 있지 않은가?
이들 중 누구도 그곳에 빨려 들어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싶지 않을 것이다.
한마디로 이건 오현수 사장의 실력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일을 그에게 미루고 있는 거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오현수 사장님? 동생을 따라 회사를 나가시렵니까, 아니면 좀 더 있어 보시렵니까?”
오현수는 무어라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한 듯 입을 다물었다.
“침묵은 긍정을 뜻한다고 하죠. 조금 더 계시는 걸로 알고 있겠습니다. 그럼, 짧게 인사이동부터 할까요? KV 금융 이택연 사장님.”
“아, 예. 회장님.”
“오늘부터 이택연 사장님은 금융사 사장이 아닙니다. 유통 쪽을 맡아 주십시오.”
“예?”
“그리고 오현수 사장님은 유통에서 손을 떼고 오늘부로 KV 금융 사장을 맡으실 겁니다.”
갑작스러운 인사이동에 임원들은 적잖이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회장님. 외람된 말씀이지만, 오현수 사장은 유통 쪽에서 매우 훌륭한 성과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금융으로 옮기라는 건······.”
“이택연 사장님.”
“예. 회장님.”
“유통으로 가면 힘드니까 금융에 눌러앉아서 꿀이나 빨겠다는 겁니까?”
“예? 저, 절대 아닙니다.”
“제가 J&H 금융을 어떻게 키웠는지 아세요? KV 금융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실적 압박도 굉장히 세고요. 하지만 KV는 객관적으로 봐도 다른 금융사들보다 너무 느슨한 경향이 있어요. 그러나 이제부터는 다를 겁니다. 편안한 직장 생활은 포기해야 한다는 거죠. 아마 다 때려치우고 퇴사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실지도 모릅니다. 이래도 계속 남아 있으시겠습니까?”
이택연 사장은 내 따가운 눈총에 얼른 대답했다.
“아닙니다. 회장님 말씀대로 유통에서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만약 끝까지 금융에 남아 있겠다고 했으면 지옥을 보여 주려 했는데, 회사 생활을 헛으로 한 건 아닌지 눈치가 있다.
“오현수 사장님이 미국에서 대학을 다닐 때 금융 쪽 전공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 KV 그룹에 처음 입사했을 때 금융사에서 일을 시작했고요. 유통에서 했던 것처럼 금융에서도 실력 발휘를 한번 해 보세요.”
“···잘 알겠습니다.”
오현수 사장은 떨떠름한 표정이었지만, 금융사로 가는 게 딱히 싫은 얼굴은 아니다.
그 힘들다는 유통을 잘 이끌어 왔으니, 금융사도 어렵지 않게 이끌어 갈 수 있을 터.
물론, 두 분야가 다르긴 하다만 사업이란 건 결국 재능이다.
바로 사업적 감각.
이것이 충분하냐, 아니면 부족하냐에 따라 성과가 달라진다.
지금까지 보여 준 오현수의 사업적 감각은 충분히 뛰어나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한번 그를 금융사에 앉혀 보려는 것이다. 만약 맞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언제든 다시 유통으로 보내면 되지 않겠는가.
“유통은 지금의 성적을 계속 유지해야 합니다. 만약 마음에 들지 않는 성과가 나올 경우 가차 없이 사장 자리를 교체해 버릴 수도 있으니, 이점 명심하십시오. 금융도 마찬가지예요. 일단 1년의 유예 기간을 드리겠습니다만, 성과를 우선시한다는 걸 잊지 마세요.”
이택연 사장은 절망 섞인 얼굴빛을 띠었고 오현수는 그냥 덤덤했다.
“그리고 다른 안건으로 넘어가서······. KV 그룹이 최근에 야구팀을 만들려 했었네요?”
“아, 예. 중간 정도 진척이 되긴 했습니다. 그런데 회사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미뤄 왔던 거죠.”
“음···. 야구팀이라.”
야구팀은 양날의 검이다.
홍보 효과를 노리는 것이기도 하고 연고지를 활용해 특정 지역에서의 발전을 노리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잘못 돈을 들였다가는 괜히 돈만 먹는 하마가 될 수 있다. 그로 인해 여러 야구팀이 해체되지 않았던가?
현광도 야구팀에 뛰어들었다가 돈만 잃고 팀을 해체시킨 전적이 있을 정도로 야구 시장은 그리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현재 프로 야구팀이 9개로 유지되고 있는데, 10개의 구단 체제로 가기 위해 KBO에서 각 대기업에 문의를 넣고 있는 중이라 합니다. 저희 KV에도 문의가 와서 신중하게 검토를 했던 것이고요. 오대현 전 회장님이 워낙 야구 팬인 것도 한몫했고요.”
하지만 오대현은 결국 중간에서 멈췄다.
생각보다 야구에 들어가는 돈이 많다는 걸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KV 그룹은 지금 야구팀을 운영할 여력이 있습니까?”
“냉정하게 판단을 하자면 사치라고 생각됩니다.”
“그렇군요. 하지만 야구팀을 만드는 건 나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야구는 인기가 많지 않습니까? K-리그 축구는 요즘 대다수가 안 보지만, 야구는 많이들 보니까요.”
“회장님께서는 그럼 야구팀을 추진하시려는······.”
“KV 이름을 달고 야구팀을 만들 생각은 없습니다. J&H라면 모를까. 이건 권 대표님이 한번 알아봐 주세요.”
“알겠습니다. 아마 KBO에서도 J&H를 염두에 두고 있긴 할 겁니다.”
프로 야구팀은 아마 더 생각을 해야 할 부분이다.
우리에게 이득이 될지 실이 될지 철저히 계산을 해 보고 뛰어드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만약 J&H 이름을 건 프로 야구팀을 만든다면 야구 공부를 좀 해야겠다.
* * *
임원 회의가 끝난 직후, 오현수와 나는 단둘이 차를 마시게 되었다.
솔직히 오현수 표정만 보면 차가 아니라 술을 따라 줘야 할 것 같다.
“제 결정이 많이 의외였습니까?”
“왕이 떨어져 나갔는데, 그 밑에 있는 왕자들이 멀쩡하다면 그게 이상한 거 아니겠습니까?”
“하하. 왕이라는 표현은 좀 그렇군요. 저도 사실 왕이 아니에요. 진짜 왕들은 바로 주주들이죠. 저도 주주들의 눈치를 봐야 하고요. 언제 그들의 손에 아작 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 아니겠어요?”
내 말이 진심일 리 없다는 건 오현수도 잘 알고 있다.
그는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대답했다.
“그래도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절 회사에 놔두는 게 불안하진 않으십니까? 사장 정도 직책이면 회장님 모르게 다른 짓을 꾸밀 수도 있을 텐데요? 회장님 명예에 금이 가게 만들 수도 있어요.”
“그럴 분이었다면 진작 내쳤겠죠. 하지만 오현수 사장님의 실적을 보니 일에 대한 진정성이 있으시더군요. 회사를 많이 아끼는 것 같기도 하고요. 물론, 더 이상 물려받을 회사가 아니라는 점이 안타깝겠지만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그리고 잊지 마세요. 전 지금이라도 당장 오현수 사장님을 감옥으로 보낼 수 있는 카드들을 들고 있다는 걸.”
그 말에 오현수가 순간 얼어붙었다.
“오대현 전 회장님께서 대승적인 결단을 내리지 않았다면 지금쯤 두 분은 사이좋게 감옥으로 끌려갔을 겁니다.”
“협박을 하시는 겁니까?”
“예. 그러니까 처신 잘 하세요. 괜한 헛물켜다가 콩밥 먹지 마시고요. 저도 찝찝한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제 경영 철학은 어디까지나 실력주의. 사장님의 신분이 어떤지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전 모두를 평등하게 보니까요. 그러니 실력으로 스스로를 증명하십시오. 만약 충분히 자격만 된다면 이 회장 자리를 드리죠.”
나는 내가 앉은 자리의 손잡이를 톡톡 치며 말을 이었다.
“거짓말인 거 같습니까? 아닙니다. 현재 KV 그룹의 지분을 들고 있는 우호 세력들에서 천천히 주식을 회수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경영권에 철벽을 쌓게 된 후에는 더 이상 제가 회장 자리를 지킬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소유만 할 뿐, 경영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거죠.”
“진심이셨군요······. 회장 자리를 준다는 건.”
“그게 꼭 오현수 사장님일 필요는 없습니다. 다른 임원들도 충분히 이 자리를 차지할 수 있어요. 실력만 된다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어깨를 살짝 두들겼다.
“한번 해 보세요. KV 그룹의 회장이 되는 것이 평생 꿈 아니었습니까? 조금 다른 상황이긴 해도 결국 목적지는 같으니까요.”
난 멍하니 회장 자리를 바라보고 있는 이현수를 놔두고 회장실을 나섰다.
이제 그는 오대현의 아들로서가 아닌, KV 그룹의 임원으로서 최선을 다해 본인의 일을 하게 될 것이다.
* * *
“KBO에서 정식으로 보낸 공문입니다. J&H를 포함해 지금 5개의 기업에서 저울질을 하고 있답니다.”
10번째 한국 프로 야구팀을 만드는 일이다. 당연히 그쪽에서도 신중을 다하고 있을 터. 5개의 후보가 정해졌고, 그중 하나가 바로 우리 J&H다.
“다 쟁쟁한 곳들이네요.”
“예. 현재 제일 유력한 곳이 KL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가는 통신사이지 않습니까? 지금 의견을 조율 중이라고는 하는데, 다른 3곳은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여서 그런지 KBO도 KL로 굳혀 나갔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중간에 우리가 낀 거네요?”
“예. 예전에 저희 쪽에 공문을 보낸 적이 있었는데, 한창 한라 그룹을 인수하고 메카 프로젝트에 집중하던 시기라 무시를 했었습니다.”
나는 턱을 긁적이며 서류를 살펴보았다.
프로 야구팀이라.
뭔가 볼 만할 것 같으면서도 괜히 손해를 보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대표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야구팀, 괜찮을까요?”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야구팀은 그냥 윗사람들의 유흥이라고 말입니다.”
“한마디로 회장의 취미 생활이다?”
“잘나가는 팀은 나름 수익을 내긴 합니다. 하지만 보통은 다 적자죠. 홍보 효과를 노린다고는 해도······ 글쎄요.”
권오준 대표는 야구팀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많은 팀들이 있었고, 그중 살아남은 건 몇 개 없습니다. 대다수 적자만 보고 손절을 했죠. 만약 팀을 만드신다면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논의를 빼놓지 않고 해야 합니다. 그래도 기분은 좋을 것 같네요. 술집에서 맥주 마시면서 J&H 야구팀이 우승하는 걸 지켜보면 말입니다.”
나도 같은 상상을 하고 있었는데, 권오준 대표도 똑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다.
“일단 조율을 해 봅시다. KL이 어떤 조건으로 KBO와 계약을 맺으려 하는지 알아보고 그 후에 행동에 나서도 될 것 같네요.”
“잘 알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도 문의가 왔었습니다.”
“어떤······.”
“혹시 레전드 오브 챔피언이라는 게임을 아십니까?”
레전드 오브 챔피언이라면 해외 게임으로 우리나라에 출시하자마자 단숨에 1위로 등극한 것으로 알고 있다. 몇 번 플레이 해 본 기억도 있다.
“예. 그런데 거기서 왜요?”
“우리나라에도 작년에 프로팀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이번 연도에 대대적인 개편을 하여 팀을 더 꾸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각 기업에 투자 문의를 넣고 있다더군요.”
“한마디로 스타크래프트처럼 E-스포츠 판을 키우겠다는 거군요.”
“예. 이미 해외에서는 월드 챔피언십까지 치렀다고 합니다. 상승세가 꽤 무섭다는군요.”
별로 구미가 당기지 않는 일이다.
예전에 그 인기 많던 스타크래프트도 지금은 별 인기가 없지 않던가.
이것도 그중 하나라고 생각해 마음에 두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고 나서 침대에 누워 미래 커뮤니티 센터를 통해 정보를 살피고 있을 때였다.
[오직 회원님을 위한 특별 정보가 있습니다.]
오랜만에 나타난 특별 정보 서비스.
저렴한 포인트에 고급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서비스다.
나는 얼른 링크를 타고 들어가 정보를 확인해 보았다.
[한국, 또다시 세계 제패! 레전드 오브 챔피언의 영원한 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