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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 천재가 되었다-127화 (127/200)

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127화

-나야.

“그래. 알아. 무슨 일이야? 갑자기 전화를 다 하고.”

왜 전화했는지 대충 예상은 갔지만, 난 짐짓 모른 척하고 백수진의 연락을 받았다.

그녀는 잠시 말이 없다 이내 무겁게 입을 뗐다.

-혹시 예전 일로 나한테 화가 많이 난 거니?

“그걸 물어보려고 전화한 거야?”

-뉴스 봤어. 네가 결국 KV 그룹 경영권을 빼앗아 갔다면서. 예전 일을 복수하려고 내 앞길 막은 거 아니야?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을 터트렸다.

“착각도 유분수지. 고작 너 하나 때문에 그룹 경영권을 빼앗는다고? 수조 원이 넘는 돈을 들여서?”

-······.

“뭔가 단단히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난 이미 너에 대한 모든 기억을 지웠어. 그냥 너는 내 대학 동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야. 이런 쓸데없는 일로 다시 전화하는 일 없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 이제 결혼할 사람 생겼어. 내가 전 여자친구와 통화한다는 걸 알면 날 가만 안 놔둘걸? 이만 끊는다.”

-자, 잠깐만!

나는 할 말을 마치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러자 축하를 위해 모인 현식이가 슬쩍 물어보았다.

“혹시 수진이?”

“응. 갑자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기에 그냥 끊어 버렸어.”

“그려. 잘했다.”

오늘은 나와 권오준 대표, 그리고 현식이.

이렇게 셋이 모여 조촐하게 축하 파티를 열었다.

KV 그룹을 손에 넣게 된 것을 자축하고자 함이다.

하지만 TV에 나오는 뉴스 때문에 기분 좋게 축하할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KV 그룹 임원 5명 구속영장 청구]

[KV 그룹 전 회장 오대현, 무혐의로 풀려나나?]

오대현 회장과 계약을 맺은 나는 약속대로 수사망이 그에게까지 닿지 않게 해 주었다. 그의 아들 역시 이번 사건에서 안전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을 대신해 잡혀 들어가는 임원들은 그렇지가 않다.

과연 이들이 몇 년을 살고 나올지는 예측이 안 되는 상황.

KV 그룹을 강탈하고자 저들을 감옥에 보내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졌다.

“썩 흥이 나지 않네요. 저 사람들도 결국 누군가의 아버지이고 가장일 텐데 말입니다. 제가 애먼 사람들을 감옥에 처넣는 건 아닌지······.”

그러자 술을 한 잔 벌컥 들이켠 현식이가 인상을 찌푸리며 나를 다그쳤다.

“아까는 수진이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며 전화도 끊어 버린 놈이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응?”

“저놈들이 무슨 애먼 사람들이야. 죄가 있으니까 검찰이 잡아가는 거지. 안 그래? 아무리 검찰이라도 죄 없는 사람 못 잡아가. 너는 오히려 옳은 일을 한 거라고.”

“얘기가 또 그렇게 되나?”

“그렇지. 저놈들이 뒤에서 얼마나 해 처먹은 게 많으면 최소 몇 년은 감옥에서 썩을 거란 말이 나오겠냐? 저놈들이야 회장 때문에 잡혀 들어간다고 억울해하겠지만, 딱 까놓고 말하면 저놈들도 악질이야. 자기들이 해 먹은 건 요만큼도 생각 안 한다니깐?”

현식이 말을 듣고 보니 내가 참 멍청한 생각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존심 상해. 너한테 그런 말 들으니까.”

“네가 아직 한참 멀었다는 거지. 흐흐. 이 형님이 옆에서 차근차근 잘 가르쳐 주마.”

현식이의 농담에 다시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우리는 일 이야기는 전부 집어 치우고 그동안 하지 않았던 얘기들을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한 병당 50만 원이 넘는 양주 3병을 비웠을 때즈음, 권오준 대표가 말문을 열었다.

“당장 이틀 뒤부터 취임을 하시고 칼을 빼 드셔야 합니다.”

역시 술을 먹어도 신나게 사적인 얘기만 하는 건 아무래도 불가능하다.

결국 끝에는 일 이야기로 돌아간다. 그리고 우리는 사적인 것보다 비즈니스 얘기를 하는 걸 더 좋아한다. 정말 못 말리는 일 중독자들 아닌가?

아. 물론, 현식이는 빼고.

저놈은 일 얘기가 나왔다 하면 하품을 길게 늘어뜨린다.

“칼이라면 구조조정을 얘기하시는 거겠죠?”

“예. 일단 칼을 뽑아서 자를 건 잘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KV 그룹은 한라 그룹만큼은 아니더라도 여러모로 문제가 많은 곳입니다. 썩은 곳은 싹 도려내고 새 살을 그 안에 채워 넣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회사가 계속 기울 수밖에 없어요.”

“그 말은 단순 구조조정이 아니라 계열사를 없애야 한다는 거네요?”

“예. 불필요한 계열사는 제거하고 가능성 있어 보이는 계열사들은 투자를 해 줘야겠죠.”

권 대표의 말이 맞다.

KV 그룹이 내게 넘어온 이유는 오대현 회장의 방심과 오희진의 배신도 있지만, 회사 내부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도 한몫을 했다.

만약 흔들리는 KV 그룹을 붙잡지 못한다면 주주들은 내 경영 능력을 의심할 테고, 회사는 다시 누군가에게 넘어갈지 모른다.

그것을 방지하고자 기관들이 들고 있는 지분을 가져오려 하지만, 결국 내 발등을 내가 찍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언제까지 시간을 드리면 될까요?”

“내일 하루 동안 직원들을 총 동원해서 어떤 계열사가 문제를 일으키는지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취임식을 하신 다음에 바로 터트릴 수 있게요.”

“권 대표님에게 맡기겠습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각자 할 일이 생겼으니, 더 이상 파티로 시간을 낭비할 순 없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요? 아무래도 산 넘어 산인 듯싶은데.”

“예. 내일 새벽 일찍 일어나서 할 일을 해야 할 것 같으니 여기서 파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이제 겨우 몇 병 마셨다고 벌써?”

“너도 그만 놀고 일이라는 걸 좀 하세요. 부회장님.”

현식이는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구태여 우릴 붙잡지 않았다.

나도 일찍 잠에 들려 했으나, 미래 커뮤니티 센터를 보면서 앞일을 구상하느라 뜬 눈으로 밤을 보내야만 했다.

* * *

“이 자리에 모여 주신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새롭게 KV 그룹의 회장으로 선임된 이진석이라고 합니다.”

내 짧은 인사말에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KV 그룹의 임원들과 직원들이 한자리에 모인 날이지 않은가.

그들은 조금이라도 눈도장을 찍고자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KV 그룹은 여러 역경을 헤쳐 나가며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저는 오대현 전 회장님의 뜻을 받들어 KV 그룹을 더욱 견고하게 세워 나갈 예정입니다.”

여기까지 들으면 보통 취임사나 다름이 없다. 하지만 나는 듣는 이들의 정신이 번쩍 들 만한 것을 가져왔다.

“아마 많은 분들이 제 스타일을 아실 겁니다. 저는 제가 뱉은 말을 반드시 지키며, 그것을 위해서는 어떤 희생도 감수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KV 그룹을 견고하게 하고자 내일부터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착수할 겁니다. KV 그룹에 도움이 되지 않는 계열사는 과감히 떼어낼 것이고, 가능성을 가진 계열사에는 아낌없이 돈을 투할 것입니다.”

그 말에 직원들의 안색이 확 달라졌다.

서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어떤 이는 기대감을, 또 어떤 이는 근심을 얼굴에 역력히 드러냈다.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입니다. 회사를 새롭게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희생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원활한 협조가 이루어지길 바라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취임사를 마쳤다.

연회장 분위기가 완전히 얼어붙는 바람에 사회를 보는 MC는 진땀을 빼야 했고, 나는 취임식이 끝나는 즉시 임원들을 한곳에 불러 모았다.

하지만 그들과 만나기 전에 먼저 대주주들부터 대면을 해야만 했다.

“회장님. 갑자기 구조조정이라니요?”

“예. 분명 국민들에게 많은 눈총을 받게 될 겁니다.”

국기 기관들은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얘기를 꺼냈고, 각 금융사들은 주가가 폭락을 할까 걱정하는 눈치였다. 나는 그들의 우려를 한 번에 잘라냈다.

“제가 취임을 한다는 소문이 퍼지자마자 KV 그룹 주가가 얼마나 올라갔는지 아십니까?”

“그거야······.”

“무려 25%입니다. 그것도 KV 그룹에 속해 있는 모든 주가를 종합해서 25%라는 얘기입니다. 고작 며칠 만에 말이죠. 그건 곧 국민들의 저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국민들은 제가 어려움에 빠진 KV 그룹을 구하고자 나선 것으로 알고 있어요. 구조조정은 피치 못할 사정이라고 이해할 겁니다.”

이래서 언론이라는 것이 무섭다.

나에 대한 평판이 좋은 것도 있지만, 돈을 뿌려 가며 언론을 움직인 것도 한 몫했다.

금융업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내가 KV 그룹을 강탈했다는 걸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다들 KV 그룹이 위기에 빠져 내가 한라 그룹 때처럼 소생을 시키기 위해 나선 것이라 생각한다.

“전 그 기대감에 부응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돈을 까먹을 생각은 없으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이건 꼭 해야 할 일이기도 합니다. 언제까지 KV 그룹이 쓰러지는 걸 가만히 지켜볼 생각이십니까? 제 수중에 들어온 이상, 전 이대로 놔둘 생각 없습니다.”

나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런 말도 하지 못 하는 그들을 뒤로하고 회장실 안에 들어갔다. 그곳에는 각 계열사를 맡고 있는 사장들과 임원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또한 오대현 회장의 아들인 오현수와 오현중도 각자 한 자리씩 차지했다.

두 사람의 얼굴은 더 이상 제국의 왕자가 아니었다.

항상 떵떵거리며 이 자리에 앉아 있었겠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

능력이 없다면 당연히 회사를 나가야 한다.

“오셨습니까, 회장님.”

권 대표가 미리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회장실에 등장하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모두 자리에 앉으세요.”

이제 누가 살고 또 누가 죽을지 알려 줘야 할 차례다.

“제 취임사는 잘 들으셨으리라 봅니다. 그리고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여기서 어떤 계열사들을 털어 내고 갈 것인지 말씀드리죠.”

올 게 왔다는 듯한 표정으로 임원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권 대표는 내 신호를 받아 헛기침을 터트리며 말을 이어 나갔다.

“KV 그룹에는 총 30개의 계열사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중 부실한 것으로 판단된 10개의 계열사들은 빠른 시일 내에 해체할 예정입니다.”

그 말은 여기 있는 임원들 중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옷을 벗어야 한다는 소리였다.

권 대표는 계열사 항목을 하나씩 불러 주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한숨이 푹푹 쉬어 나왔다. 그렇게 10개의 계열사 리스트를 불러 준 뒤, 나는 다른 서류를 뒤적이며 누군가를 불렀다.

“오현중 부사장님?”

“예? 아, 예.”

“대체 오현중 부사장님은 어떻게 부사장님이 된 겁니까?”

“······?”

“KV 그룹은 유통, 호텔, 그리고 금융. 이렇게 3가지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오현중 부사장님은 특별한 이력도 없이 금융에 입사하여 빠른 승진을 거듭했고, 실적도 없는 사람이 부사장까지 됐습니다. 이게 옳은 일이라 보십니까?”

여기 있는 사람들 중 오현중이 어떻게 부사장이 됐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다.

오대현 회장의 아들 아닌가? 다들 당연하게 그가 부사장이 되는 걸 받아들였을 터. 그러나 이제 이곳에 그의 방패가 되어 줄 오대현 회장은 없다.

“J&H는 오로지 실적을 위주로 높낮이를 결정합니다. 회장 자리조차 실적으로 판단합니다. 만약 제 감이 녹슬어서 실적을 내지 못한다면 전 자진으로 회장직을 내려놓을 겁니다. 그만큼 냉정하게 평가하고 운영을 해야 하는 것이 그룹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오현중 부사장님에게 그 자리는 너무 분에 넘치는 것이 아닌가 싶군요.”

“그게 무슨······.”

“오늘부로 오현중 씨는 해고입니다. 그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어요. 그래도 이대로 물러나기는 아쉽겠죠? 과장 자리를 내줄 테니 거기서부터 정정당당하게 실적을 쌓고 올라오세요. 실력만 된다면야 사장 자리도 아깝지 않습니다.”

오현중은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날 쳐다보기만 했고, 임원들은 고소하다는 듯 남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나는 멍 때리고 있는 오현중에게 호통을 쳐 댔다.

“뭐 하고 있습니까? 어딜 과장 따위가 임원 회의에 참여를 하려고? 당장 나가세요.”

“이, 이게 도대체 뭐 하는 짓이야? 아버지를 몰아내고 이제 나까지?”

“실력이 없으니 나가라는 겁니다. 사람 부르기 전에 얼른 나가세요. 험한 꼴 보기 싫으면.”

오현중은 결국 망연자실하며 회장실 밖을 나가야만 했다.

그리고 나는 그다음으로 오현수를 바라보았다.

그도 반쯤 포기한 듯한 얼굴로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나가려 들었다.

“지금 뭐 하십니까?”

“어차피 저도 쫓아낼 생각이시잖아요. 알아서 나가 보겠습니다.”

“그럴 리가요. 앉으세요. 오현수 사장님은 유통 쪽에서 꽤 높은 실적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KV 그룹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유통 아닙니까? 특히 대형 마트 운영에 있어 오 사장님의 경영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이 많더군요. 전 오 사장님을 쫓아낼 생각이 없어요.”

그 말에 오현수와 임원들 모두 놀란 눈동자로 날 바라보았다.

“왜들 그렇게 보시죠?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전 오직 실적으로 평가한다고. 만약 오 사장님이 더욱 분발해서 잘만 해 준다면 회장 자리라고 해서 아깝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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