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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 천재가 되었다-126화 (126/200)

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126화

“점점 더 얼굴이 좋아지네. 좋은 거 많이 챙겨 먹는가 봐?”

“회장님은 점점 더 안색이 안 좋아지시네요. 한약이라도 챙겨 드릴까요?”

“맘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말고 자리에나 앉아.”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하며 화를 낼 줄 알았는데, 오 회장은 망연자실한 안색이 역력했다. 화를 낼 힘조차 없는지 그는 낮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여기까지 하자고 하면 씨알도 안 먹히겠지?”

“잘 아시네요.”

“정말 이 늙은이를 감옥에 보낼 생각인가?”

“제 기준으로는 아직 회장님은 늙은이라 불리실 분이 아닙니다. 충분히 그라운드에서 날뛸 수 있는 분이죠.”

“그래서 감옥에 보내겠다?”

“예. 위협이 되니까요. 하지만 이 세상에서 타협하지 못할 건 죽음밖에 없다고 전 믿고 있습니다. 상호 간의 거래를 통해 협상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감옥에는 보내지 않겠다는 뜻이군.”

“이미 뒤집기 힘든 판이에요. 제가 건넨 손 잡으십시오. 그럼, 최악의 경우는 면하실 수 있을 겁니다.”

오대현 회장은 얼굴을 조금 붉히며 이빨을 드러냈다.

“내게도 최후의 한 수가 있다는 생각은 안 해 봤나?”

“이 자리에서 절 때려 죽이셔도 이미 브레이크를 밟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둘 중 하나밖에 없다는 뜻이죠. 보기 좋게 회장 자리를 내려놓고 떠나느냐, 아니면 강제로 옷을 벗게 되느냐.”

이 큰 흐름을 오 회장이 막을 방법이 없다.

우호 지분을 들고 있는 기관들 모두 내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나 변수는 만들어질 수 있기 마련. 그것을 미리 차단하기 위해 나는 오 회장을 설득하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 좋게 조용히 회사를 넘긴 뒤 떠나라고 말이다.

이것을 거부한다면 오 회장은 감옥살이를 견뎌야 할 것이다.

나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오 회장을 마지막으로 설득했다.

“회장님. 저는 여기서 깔끔하게 마무리를 짓고 싶습니다. 제가 회장님과 인연이 없는 것도 아니고, 구태여 감옥까지 보내야 하겠습니까? 제 마음이 많이 불편할 것 같네요.”

“그쪽 마음 불편하기 싫어서 타협을 하자? 지나가던 개가 다 웃겠네.”

“솔직히 껄끄러운 건 맞죠. 정부에서도 이 일을 깊게 파는 걸 원치 않고 있고요. 그쪽 인사들이 줄줄이 엮일 테니까. 그래서 눈치를 좀 보는 겁니다.”

그제서야 오 회장도 짧게 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모든 걸 포기할 마음이 생긴 걸까?

“원하는 게 뭐야?”

“그 어떤 비리에도 연루되어 있지 않지만, 국민들에게 큰 심려를 끼쳐 드린 점을 죄송스럽게 생각해 회장 자리에서 물러난다는 발표를 하십시오.”

“그리고?”

“들고 계신 지분은 저한테 다 넘기세요. 가격은 후하게 쳐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럼 검찰이 현재 칼질하고 있는 문제들은 회장님에게 최대한 피해가 안 가는 선에서 마무리 짓겠습니다. 물론, 임원들 몇몇은 회장님 대신해서 감옥을 가야 하겠지만, 그 사람들 뒷일이야 우리가 알 바가 아니죠.”

“그 사람들도 다 처자식이 있는 양반들이야. 책임은 져 줘야 하지 않나?”

“회장님이 아랫사람을 그렇게 신경 쓰시는 줄 몰랐습니다. 딱히 그럴 분은 아닌 것 같은데요?”

“쯧. 괜히 이상한 말 나올까 봐 그런 거지.”

“그런 건 신경 쓰지 마십시오. 제가 알아서 처리합니다.”

사실상 교도소 가기 싫으면 회사를 넘기라는 뜻이었다.

“굳이 내 지분을 가져가려는 이유가 뭔가?”

“그래야 이런 일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요. 회장님이 역으로 제 더러운 곳을 끄집어내서 또다시 반정을 일으킬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전 그런 꼴 못 봅니다. 경영권 방어를 확실하게 해야 무너지지 않으니까요.”

“어차피 내 지분을 가져간다고 해서 경영권 방어가 완전해지는 건 아니야. 기관들이 또 다른 사람 손을 들어주면 되니까.”

“기관이 들고 있는 지분들도 천천히 회수할 겁니다.”

“돈이 장난 아니게 많이 들어갈 텐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설마 제 주머니 걱정을 해 주시는 겁니까?”

“젠장. 한마디를 해도 얄밉단 말이지.”

잠시 생각을 이어 가던 오 회장은 끝내 결정을 내렸다.

“넘겨주지. 자네가 원하는 대로 해 줄게. 가격은 좀 세게 쳐 줘야겠지만.”

조금 더 버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포기가 빠르다.

오히려 이런 행동이 더 의심스러웠다.

그런 내 표정을 보고는 오 회장이 웃음을 터트렸다.

“왜? 주겠다니까 또 싫은가 보지? 그냥 가져가지 말든가.”

“아니요. 버럭 화라도 내면서 버티실 줄 알았거든요.”

“뭐, 나만 걸고넘어졌으면 순순히 감옥 가서 징역살이하고 왔겠지. 어떻게든 수작을 써서 빠르게 빠져나왔겠지만.”

“그런데요?”

“네가 우리 장남까지 구렁텅이에 처넣으려 하니까 여기서 내가 백기 들고 항복해 주는 거야.”

결국 아들 때문이라는 건가.

만약 오 회장이 끝까지 버티고 감옥까지 갔다 왔다면 KV 그룹을 계속해서 주물럭거리는 건 힘들었을 것이다. 아마 몇 년 동안은 진흙탕 싸움을 하게 되었을 터.

그런 피곤한 게 싫어 내가 먼저 KV 그룹을 포기할 것이다.

그러나 오 회장이 지분을 전부 다 내려놓고 간다면 그와 싸울 일은 없게 된다.

“나 혼자 감옥 가는 건 괜찮아. 내가 옥살이를 처음 하는 줄 아나? 오래 있진 않았지만, 몇 달은 혼자 독방에 갇혀 있었어. 감옥은 별로 무섭지 않아. 그쪽도 썩을 만큼 썩어서 교도소장한테 돈 좀 안겨 주면 호텔처럼 생활할 수 있거든.”

재벌들이 교도소에 간다고 해서 정말 다른 수감자들과 같은 생활을 하진 않는다.

돈으로는 안 되는 게 없다는 걸 보여 주듯, 이들은 호화로운 생활을 감옥에서도 이어 간다. 저번에는 SJ 그룹 장남이 감옥 대신 교도소 옆에 있는 호텔에 방을 잡아 숙박을 하는 것이 밝혀져 큰 논란이 있지 않았던가?

“하지만 내 아들만큼은 그런 곳에 보낼 수 없어. 그놈 인생에 빨간 줄 긋는 건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진 안 돼.”

“이 일을 하다 보면 그런 일이 생길 수밖에 없는 거 아닙니까?”

“흐흐. 그건 자네도 포함이겠지?”

“저도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입니다. 먼지 안 묻는 곳이 없죠.”

“그래. 나도 잘 알아. 하지만 부모 마음이라는 게 어쩔 수가 없더군. 내 자식만큼은 이 더러운 경험을 시켜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퍼뜩 드는 걸 보면 말이야. 자네도 애를 가지면 알게 될 거야.”

장남을 저리도 끔찍하게 생각하는 양반인 줄 몰랐다.

돈밖에 모르는 냉혈한인 줄 알았더니.

“나는 물론이거니와 내 아들도 절대 다쳐서는 안 돼. 그걸 약속해 준다면 전부 다 넘겨주지.”

“물론입니다. 전 신용을 무척이나 중시하니까요. 약속은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좋아. 어차피 계약서 같은 건 쓸 생각이 없겠지? 그럼 이거 하나만 알려 줘. 자네가 검찰한테 넘긴 정보들을 보니까 보통 것들이 아니라서 말이야. 소스가 어딘가? 내 측근들도 가질 수 없는 것들이던데?”

“출처가 한 곳이겠습니까? 제 정보력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뜻 아니겠어요?”

“혹시 저번에 LK 금융 인수 때 비엣콤 비밀 계약서를 넘긴 곳이 그 소스인가?”

“글쎄요. 맞을 수도, 아닐 수도 있죠.”

“쯧. 생긴 것과 다르게 입 한번 무겁네.”

“제가 말씀드렸죠? 전 신용을 무척이나 중요하게 여깁니다.”

오 회장은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내가 그에게 소스를 밝히지 않는 건 순전히 오 회장을 위한 일이었다.

감히 상상이나 해 봤을까.

그의 온갖 비리가 전부 딸에 의해 폭로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 사실을 알려 줬다면 오 회장은 여기서 쓰러져 죽었을지도 모른다.

장남을 위해 회사를 과감히 포기한 그다.

자식을 끔찍하게 여기고 또한 믿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어찌 자식들이 항상 부모 맘과 같겠는가.

나는 나중에 자식을 낳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 * *

“오빠. 그 소문이 사실이야? J&H가 KV 그룹 경영권을 빼앗으려 한다는 거.”

“응? 어디서 그런 소문을 들었어?”

“나도 듣는 귀가 있어. 우리 동기들이 전부 금융계에서 일하고 있잖아.”

“별일 아니야. 그놈이 아무리 날뛰어도 무슨 수로 KV 그룹을 빼앗아.”

오현중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했지만, 백수진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친구들이 나누는 얘기를 들어 보면 현재 상황이 꽤 심각하다는 걸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백수진의 눈빛을 본 오현중은 짐짓 인상까지 쓰며 말했다.

“수진아. 오빠 말 못 믿어? 정말 아무 일도 아니라니깐?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KV 그룹 같은 곳이 그렇게 쉽게 넘어가겠어?”

“그럼 다행이지만······.”

불안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금융계에서도 J&H가 모든 판을 짜고 오대현 회장을 감옥에 처넣으려 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항상 그렇듯, 대기업 회장들은 감옥에 가는 경우가 흔치 않다.

이번에도 그렇게 될 거라 오현중은 믿어 의심치 않았고, 불안해하는 수진을 타일렀다.

하지만 사건은 곧 터지고 말았다.

“오, 오빠. 이것 좀 봐.”

오현중은 백수진이 건네준 핸드폰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 뭐야. 이게?”

“방금 나온 기사야. 지금 뉴스에서 생방송으로 보여 주고 있다잖아.”

마치 이성을 놓은 사람처럼 오현중은 술집 주인에게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대기 시작했다.

“채, 채널 좀 옮겨요! 뉴스 채널로!”

“예? 지금 손님들이 다 축구 보고 있는데 갑자기 채널을 옮기면······.”

“빨리 돌리라니깐!!”

오현중이 막무가내로 채널을 돌리게 하면서 TV에는 축구 대신 오대현 회장의 얼굴이 나왔다.

“저는 모든 책임을 지고 회장직을 사퇴하고자 합니다.”

그 말 한마디로 오현중은 넋을 잃고 말았다.

그 밑으로 나오는 자막에는 오대현 회장이 이 시간부로 회장직을 내려놓는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또한 KV 그룹의 차기 회장은 J&H의 이진석 회장이 될 거라는 말도 남겼다.

“아니. 축구 보고 있는데 누가 저딴 뉴스를 켠 거야!”

“당장 채널 돌려!!”

술집 손님들의 항의에 주인은 다시 얼른 채널을 돌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오현중은 한동안 말없이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고 있었다.

“오빠.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방금은 별일 아니라면서!”

“······.”

백수진은 오현중의 표정만 봐도 상황을 알 것 같았다.

오대현은 오현중에게 말 한마디 없이 회장직을 내려놓은 것이다. 즉, 오현중은 처음부터 회사에서 중요한 인물이 아니었던 것.

거기다 오대현이 회장직을 내려놓고 이진석에게 차기 회장직을 물려줬다는 건 결국 KV 그룹이 J&H에게 흡수된다는 뜻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자 백수진은 더 이상 오현중의 얼굴을 보기가 싫어졌다.

그녀는 멍청하게 앉아만 있는 오현중을 놔두고 술집에서 먼저 나왔다.

백수진은 괜히 눈물이 나왔다.

돈이 많은, 그것도 재벌인 남자와 만나 누구도 무시 못 할 인생을 살겠다는 백수진의 꿈이 산산조각 나는 순간이니까.

그리고 만약 끝까지 이진석의 옆자리를 지켰다면 그 꿈을 충분히 이루고도 남았을지 모른다.

“이래도 괜찮은 걸까?”

백수진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이진석의 전화번호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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