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125화
[KV 그룹의 어두운 이면.]
[계속해서 밝혀지는 KV 그룹의 비리. 이들의 행보는 괜찮은가?]
[제보되고 있는 비리만 수십 개. KV 그룹이 위험하다.]
메이저 언론사들이 먼저 포문을 열면서 대한민국에 있는 모든 언론사가 KV 그룹을 집중 공격하기 시작했다.
TV 뉴스에는 온통 KV 그룹 얘기로 시끄러웠고, 이들의 토스를 받은 검찰은 곧바로 수사에 착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미 우리 쪽에서 준비한 검찰 쪽 칼잡이들이 대기하고 있었기에 수사 진행은 일사천리였다. 언론에 기사가 나온 지 고작 하루도 안 된 시간에 검찰은 오대현 회장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그의 큰아들인 오현수도 소환 조사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횡령, 배임, 뇌물 수수, 성매매, 탈세 등등. 정말 다양한 죄목으로 엮어 놓았습니다.”
회사에 복귀하자마자 다시 병원 신세를 지게 생긴 오 회장은 눈을 질끈 감았다.
임원들의 보고는 가히 절망적이었다.
“어떻게 이 정도로 방대하고 자세한 정보를 이진석이 얻게 된 건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이중에는 회장님만 알고 계시는 비밀 계좌까지 있더군요.”
“그게 무슨 뜻이야?”
“이건 필시 회사에서 주역을 맡고 있는 누군가가 기밀 정보를 J&H에게 넘겼다고 봐야 합니다.”
“즉 배신자가 있다?”
“그렇습니다, 회장님.”
오대현 회장은 짧게 물을 들이켠 다음 임원들을 스윽 둘러보았다.
그들은 잔뜩 긴장한 채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었는데, 그런 그들의 모습에 오 회장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 사람들아. 죄지었어? 뭘 그렇게 긴장해. 내가 잡아먹기라도 하는 줄 알겠네.”
하지만 부드러운 미소도 잠시.
오 회장은 유리잔을 냅다 던져 버리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떤 새끼야!! 어떤 놈이 내 뒤통수를 깐 거냐고!!”
그리고 그는 눈에 보이는 임원들을 하나씩 가리켰다.
“최 이사, 너야? 아니면 김 사장인가?”
“회장님. 제가 어떻게 감히 회장님을······.”
“그런 정보들을 유출하는 건 오히려 저희의 목숨줄을 내놓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저희도 먼지가 골고루 묻어 있으니까요.”
“그래. 내 말이 바로 그거야. 혹시라도 내 뒤통수치는 놈이 나올까 봐 자네들한테 갖가지 먼지를 묻혀 놓은 거라고. 그런데 어떤 미친놈이 자폭을 하려는 걸까?”
“······.”
임원들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여기서 오 회장을 배신한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사 배신했다고 한들 할 말이 남아 있겠는가?
“후-. 최대한 언론부터 막아. 그냥 다 오보이고 별일 아니라고 진정시켜. 그래야 주가라도 살리지. 그리고 사태 파악해 와. 변호사들도 준비시키고.”
“예, 회장님.”
임원들이 우르르 회장실 밖을 나가자 그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이진석 그놈이 병실까지 찾아와 경고했을 땐 이 정도로 철저하게 준비를 했을 줄은 몰랐다. 아무리 준비를 잘 해 놓아도 집행 유예로 빠져나갈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대현 회장이 영원히 숨기고 싶은 비리들이 전부 다 검찰 손에 들어갈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 정도로 자세한 정보라면 분명 스파이가 있다는 건데, 당최 그게 누구인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또한 자료들 몇 개는 자신의 서재에 있는 것들이었다.
자기 자식들이 이런 짓을 벌였을 리는 없고, 집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몰래 저지른 일인가? 아니. 항상 보안에 신경 쓰기 때문에 직원들은 그런 짓을 저지르지 못한다.
그래도 혹시 몰라 오 회장은 비서실장을 불러 지시를 내렸다.
“우리 집에서 일하는 직원들, 싹 다 조사해 봐.”
“계좌 내역부터 전부 털어 보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혹시 모르잖아. 내가 집 비우고 있을 때 누가 슬쩍 서류에 손댄 것일지.”
“예, 회장님.”
비서실장에게 지시를 내려 놓고도 찝찝함이 가시지 않았다.
그렇게 고심을 이어 가고 있을 때였다.
“아버지. 이대로 넋 놓고 당하기만 하실 겁니까?”
큰아들 오현수의 말에 오 회장은 고개를 저었다.
“뭐 뾰족한 수라도 있냐? 완전히 덫에 걸렸어. 네가 저번에 말했던 것처럼 말이다. 자랑이라도 하고 싶은 거라면 나중에 실컷 하거라.”
“그게 아닙니다. 판사가 구속영장 청구를 승인하면 그땐 정말 잡혀 가시는 겁니다.”
“그거야 병원 신세 지면 돼. 한두 번 보냐? 마침 내가 쓰러진 전적도 있으니 휠체어 타고 나타나면 강제로 감옥에 처넣지는 못할 게다.”
오대현 회장은 나름 빠져나갈 구멍을 미리 생각해 둔 뒤였다.
그러나 문제는 자기 아들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널 외국으로 잠시 보내 놓는 건데.”
“외국으로 나간다고 해서 소환 조사를 안 받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시간을 최대한 끌 순 있긴 하지. 지금이야 다들 호들갑을 떨지만 한 달도 안 돼서 다 까먹을 게다. 국민들이란 것들은 항상 망각이란 걸 하곤 하니까.”
“그럼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일단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텨 보거라. 그동안 내가 정리를 해 놓으마.”
오 회장은 짐짓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했지만, 그의 눈가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오현수는 놓치지 않았다.
* * *
“회장님이라면 무언가 방법을 만드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군요.”
KV 그룹의 지분을 들고 있는 은행장들, 국가 기관의 대표들, 그리고 금융사 실무진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 중에서 가장 많은 우호 지분을 들고 있는 건 은행장들과 국가 기관이다. 나는 얼굴에 미소를 잃지 않으며 말했다.
“약점을 쥐고 있으면 그곳을 찌르고 흔드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걸 경험을 통해 배웠습니다. 배운 대로 했을 뿐이죠. 이제 저는 여러분의 선택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J&H에 베팅을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좌초되어 물이 차고 있는 KV에 계속 돈을 거시렵니까?”
“흠흠. 저희들이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입장이라는 건 회장님께서도 잘 아실 텐데요?”
은행장 놈들은 아직도 엄살을 피우고 있다.
확실하게 안전이 보장되지 않으면 나서지 않겠다는 건데, 나는 저들의 엄살을 받아 줄 의무가 없다. 그럴 생각조차 없고.
나는 불쾌한 표정으로 그들에게 말했다.
“이런. 이 정도까지 해 드렸으면 저를 따라와 주실 줄 알았는데, 제 오산이었군요.”
“아직은 급하게 갈 때가 아니라는 걸 말씀드리는 겁니다.”
“은행장님.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있겠습니까? 국민들의 관심이 온통 KV 그룹에 집중되고 있을 때 쳐야 한다는 걸 잘 아시는 분이지 않습니까?”
그들은 별 대꾸 없이 침음만을 흘렸다.
그래. 끝까지 그렇게 버티겠다는 거지?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제가 아직 검찰에 넘기지 않은 파일들이 많은데, 오늘 여러분이 하시는 행동을 보니 빨리 넘겨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나는 각 은행장들과 국가 기관의 대표들에게 서류를 하나씩 넘겼다.
금융사 실무진들은 지금 내가 뭘 넘기고 있는지 궁금하다는 얼굴로 바라볼 뿐이었다.
이윽고 그들의 눈동자가 잘게 흔들렸다.
“회, 회장님. 이건 설마···?”
“예.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게 맞습니다.”
그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KV 그룹 오 회장이 들고 있어야 할 장부가 내 손에 있다는 걸 알았으니 점점 똥줄이 탈 것이다.
“이걸 어떻게 손에 넣으신 겁니까?”
“그게 왜 궁금하시죠? 그게 진짜인가, 가짜인가가 중요하지 않겠어요? 여러분의 반응을 보니 틀림없는 진짜로군요.”
“지, 지금 저희를 협박하시는 겁니까?”
“예. 맞습니다. 협박.”
“뭐, 뭐라고요?”
나는 당황해하는 저들을 향해 눈을 부릅뜨며 상을 강하게 내려쳤다.
“제가 지금 여러분과 담소라도 나누려고 아까운 시간을 쪼개서 여기까지 나온 줄 아십니까? 그 파일은 진짜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여러분을 오대현 회장과 굴비처럼 엮어 검찰에 보낼 수 있는 서류들도 다수 가지고 있습니다.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검찰에 서류를 넘겨 내일 검찰청에서 다 같이 모일 수 있게 해 드릴까요?”
“회, 회장님!”
“그러니 지금 결정을 내리십시오. 제 인내심은 이제 한계에 달했습니다. 더 이상 KV 그룹에 시간과 정신을 할애하고 싶지 않군요. 여러분은 그저 제 손만 들어주시면 되는 겁니다. 그럼, 절대 뒤탈이 나지 않게 해 드리죠. 앞으로 영원히 말입니다. J&H의 이름을 걸고 약속드리겠습니다.”
그러자 그들 중 하나가 내게 물었다.
“그걸 저희가 어떻게 믿습니까?”
“믿기 싫어도 믿으셔야 할 겁니다. 이미 정부도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어요. 슬슬 위에서 압박이 시작될 거란 얘기죠. 은행장들께서 목이 남아 있으려면 정부의 말에 따르셔야겠지요? 아니면 전 조금 기다려도 됩니다. 여러분의 옷을 전부 강제로 벗긴 다음, 후임이 이 일을 대신하게 하면 되니까요.”
난 테이블 위에 내 명함 하나를 올려 두었다.
“혹시라도 제 번호를 모르실까 봐 남겨 둡니다. 연락 주십시오. 동의하는지, 아니면 동의하지 않는지. 만약 동의하신다면 제가 끝까지 책임을 져 드리겠습니다. 문제가 생긴다면 그것 역시 해결을 해 드리죠. 은행장을 그만두고 나서도 J&H가 여러분을 모시게 될 겁니다. 하지만··· 끝까지 동의를 하지 않으시겠다면 제가 얼마나 지독한 놈인지 보여 드리겠습니다.”
은행장들은 벙찐 얼굴로 회의실을 나서는 내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 * *
“하-. 이거 아무래도 우리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 것 같습니다.”
은행장들과 국가 기관의 대표들은 이진석이 넘겨 준 서류와 명함을 번갈아 쳐다만 보고 있었다.
“어차피 이러나저러나 죽은 목숨 아닙니까? 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건방진 놈의 말을 따를 필요가 있을까요?”
“마냥 무시할 소리는 아니에요. 이진석 회장의 평판이야 다들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맺고 끊음이 확실하고 자기가 뱉은 말은 무조건 지키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만약 거절한다면 지옥 끝까지 쫓아와 괴롭힐 게 뻔해요.”
“그럼 이진석 말에 따르자는······.”
“그것 말고는 우리에게 남겨진 선택지가 없는 것 같구려.”
“근데 우리가 이진석한테 붙었다가는 오 회장이 가만있지 않을 텐데요?”
“보증한다고 했으니, 그 말을 믿는 수밖에.”
은행장들은 그렇게 의견을 조율하고는 각자 할 일이 뭔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가장 먼저 한 행동은 오대현 회장의 번호를 핸드폰에서 차단하는 것이었다.
* * *
오 회장은 회장실에 홀로 앉아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고 있었다.
오현수는 제 아비가 자신했던 일이 생각처럼 돌아가지 않았음을 깨닫고는 조심스레 다가갔다.
“아버지. 어떻게 됐습니까? 전화를 돌린다는 곳에는······.”
“안 받아.”
“예?”
“이놈들이 서로 짜고 친 고스톱이라도 있는지 내 전화는 다 피하고 있어.”
“······.”
오현수는 충격에 실성해 버린 듯한 오대현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만 보았다.
“개만도 못한 새끼들. 내 돈 처먹을 때는 간이고 쓸개고 다 줄 것처럼 굴더니만.”
하지만 그런 종자들이었다는 건 이미 오대현도 알고 있던 부분이다.
그렇기에 시원하게 욕을 해도 속이 풀리지 않았다.
이 모든 걸 자초한 건 결국 오대현의 잘못된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
“아버지!”
“시끄럽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넌 나가 봐. 네가 감옥 갈 일은 없을 테니 염려 놓고.”
오대현 회장은 오현수를 회장실에서 내쫓은 다음 양주 한 병을 빠르게 비워 나갔다.
술기운이라도 빌려 보려고 한 건데, 오히려 더욱 정신이 또렷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결국 그는 수백 번 고민하다 마침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이 회장. 날세. 오대현.”
끝까지 버티리라 결심했으나, 제 자식을 위해서라도 꼬리를 내려야만 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