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121화
테라노스 천하.
미국, 유럽, 아시아를 가리지 않고 테라노스는 온 세계에 이름을 떨치며 투자자들을 열광시켰다.
온 세계의 돈이 마치 테라노스에 집중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는데, 테라노스의 CEO 엘리자베스 홈즈는 쉬지 않고 방송에 출연하며 본인의 주가를 올렸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모두가 달갑게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니었다.
헤럴드 신문사의 로널드 제임스 기자는 공식 석상에서 엘리자베스 홈즈가 에디슨 키트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피하고 있다는 걸 의심스럽게 생각했다.
그는 몇 차례 홈즈에게 에디슨 키트의 원리를 설명해 달라고 물었지만, 홈즈는 마치 의료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 같은 설명을 내놓으며 의구심을 가지게 만들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테라노스 본사에도 몇 차례 메일을 보냈으나, 자세한 사항은 알려 줄 수 없다는 답만 보내 왔다.
헤럴드 신문사는 미국에서 힘 있는 언론사들 중 하나로 뽑힌다.
그들은 로널드 제임스의 의혹이 타당하다고 여겨 모든 자원을 아끼지 않고 그를 지원해 주었다. 그 결과 제임스는 헤럴드를 등에 업고 테라노스 본사 직원들에게까지 접근하게 되는데, 이들로부터 놀라운 증언을 받아내게 된다.
[에디슨 키트는 사기였다!]
세계적인 사기극이 만천하에 드러난 순간이었다.
* * *
“회장님!”
“기, 김 실장. 저, 저기서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테라노스가 사기였다고?”
비서실장은 창백하게 얼굴이 질려 버린 오대현 회장의 모습을 오늘 처음 보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아는 모든 걸 회장에게 보고했다.
“미국의 헤럴드 언론사가 테라노스 직원들을 일일이 인터뷰해서 사실 에디슨 키트가 사기였다는 걸 밝혀 냈다고 합니다. 가지고 있는 증언만 백여 개 가까이 된다고······.”
“그, 그럼 우, 우리 돈은! 내가 저쪽에다 꼬라박은 돈은!!”
“일단 임원들을 전부 소집해서 제대로 상황을 파악해 보심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아. 그, 그래. 얼른 다 불러 모아! 어서!”
오대현 회장은 두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지만,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려 했다.
그래. 뭔가 잘못된 뉴스일 것이다.
언론사 놈들이 뭣도 모르고 떠들어 대는 게 한두 번이 아니지 않은가?
분명 이건 오보일 거라고 오 회장은 확신했다.
하지만 임원들이 회장실에 모이고 나서야 그는 오보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회장님······. 테라노스가 정말로 큰 사기극을 벌인 것 같습니다.”
임원들도 각자 정보통이 있다.
그들은 회장실로 오기 전 이미 여러 정보통을 통해 테라노스에 대한 소식을 접했을 것이다. 오 회장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저, 정말이야? 정말 테라노스가 사기였다고?”
“예. 다방면으로 알아보니, 에디슨 키트라는 건 애초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게 말이 돼? 직접 시연까지 해서 보여 줬다며!”
“그것도 전부 조작이라고 합니다. 사실은 각 의료 기관에 성분을 분석하도록 하고 마치 에디슨 키트가 전부 알아낸 것처럼 보여 줬답니다.”
오 회장은 정신이 아찔해졌다.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은 기술력에 자신은 멍청하게도 2조 5천억이라는 거금을 투자한 것이니까.
“그래서······ 돈은? 우리 돈은!”
“이미 테라노스 핵심 간부들은 전부 잠적을 한 상태고, 엘리자베스 홈즈도 현재 소재 파악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거기다 회사에 투입된 돈이 어디로 사라졌는지는 아직 모른다고······.”
대답을 하는 임원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져만 갔다.
이런 패턴은 오 회장도 여럿 보지 않았던가.
겉만 번지르르한 회사가 투자금만 받고 사라져 버리는 일.
대개 그런 돈은 돌려받기가 불가능하다.
“허억-.”
말인즉슨, 2조 5천억이라는 돈이 공중분해 된 것이다.
오 회장은 심장이 쿵쾅대면서 숨을 쉬기가 힘들어졌다.
“회, 회장님!!”
임원들은 화들짝 놀라 오 회장에게 달려갔다.
의자에서 뒤로 넘어갈 뻔한 오 회장은 임원들을 붙잡고 울먹이며 말했다.
“어, 어떻게든 찾아와. 그 돈! 어떻게든 다 찾아오라고! 미국에 소송을 하든 뭘 하든 무슨 짓을 해서라도 반드시 찾아와야 돼! 그렇지 않으면 내 회사가······ 억!”
그 말을 끝으로 오 회장은 의식을 잃고 말았다.
“회장님!!”
“구급차! 구급차부터 불러!”
임원들은 빠르게 회장을 병원으로 옮겼고, 다행히 오 회장은 건강상 큰 피해는 없었다.
그래도 아직은 의식을 되찾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임원들은 병원 흡연실에 옹기종기 모여 사태를 논의했다.
“이번 거 복구하기 힘들겠지?”
“테라노스가 완전히 뻥튀기된 곳이라며. 그냥 사기꾼들이 모여 있는 곳이야 거긴. 그런 곳에 2조 5천억이라는 거금을 투여했잖아. 알아보니까 거기서 돈 찾은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하네? 거기다 사기로 고소를 한다고 해도 끝까지 재판으로 끌고 가면 사실상 투자한 금액은 못 찾는 거지. 설사 찾는다고 해도 절반 이상은 까먹을걸?”
“시발. 그러니까 내가 거기는 절대 투자하면 안 된다고 그렇게 말했잖아! 황 이사, 당신이 회장님 옆에서 부추긴 거 아니야?”
“뭐? 말이 좀 이상한데? 우리 모두 다 동의한 일 아니었나? 회사가 조금씩 기울기 시작하니까 이런 짓이라도 벌여서 먹여 살리려 한 거 아니었냐고. 그런데 이걸 내 탓으로 돌려?”
하지만 정작 그들은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아 나서기보다는, 서로 남 탓을 하며 살길을 모색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대다수 임원들은 회장님한테 간신 노릇을 했지만 나를 포함해 몇몇 임원들은 끝까지 반대했어. 누가 봐도 사기꾼이나 다름없는 놈들이잖아. 그런데 여기다 2조 원이 넘는 돈을 왜 퍼붓냐고.”
“그렇게 반대를 했으면 끝까지 했어야지. 막판에 꼬랑지 말고 조용히 있던 놈들이 지금 와서 무슨 딴소리를 하는 거야!”
“뭐야? 이 새끼가 얻다 대고 막말이야. 임원 됐다고 위아래도 없냐, 인마?!”
그렇게 한창 임원들끼리 싸움을 벌일 때였다. 그때 난입을 한 것이 바로 오대현 회장의 첫째 아들, 오현수였다.
“지금 여기서 싸우실 때입니까?”
오현수의 등장에 그들은 서둘러 입을 막았다.
“KV 그룹의 임원이라는 분들이 여기서 진득하게 모여 뭘 하나 하고 와 봤더니, 서로 남 탓하기 바쁘시군요. 지금 눈앞에 있는 위기부터 해결을 해야 할 거 아닙니까?”
“오, 오 사장님. 저희는 그런 게 아니라······.”
“여러분에게 실망입니다. 과거의 일이 무슨 쓸모랍니까? 당신들이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건 이런 때를 위함이라는 걸 모르시는 건가요? 당장 해결책부터 내놓아 보세요.”
“······.”
누구도 말문을 열지 못했다.
현 상황을 보라.
2조 5천억이라는 돈이 사라져 버렸다. 이걸 지금 당장 어떻게 복구시킨단 말인가?
다들 어쩔 줄을 모르며 침묵만을 지키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한심하게 바라보며 오현수가 말했다.
“일주일 전에 제가 평소 친분이 있는 언론사 기자들을 통해 이런 정보를 받았습니다.”
“어떤······.”
“J&H 이진석 회장이 각 은행장들과 금융사 사장들을 계속해서 만나고 있다더군요.”
“그거야 종종 있는 일이지 않습니까?”
금융사를 이끄는 회장이나 사장이 타 금융사의 사장이나, 협력 가능한 은행장들을 만나는 건 자주 있는 일이다.
“예. 그런데 이진석이 그들을 만나고 나서 하는 일이, 직원들을 움직여 KV 그룹 지분을 파고들고 있다는군요. 은행장을 만나고 또 국가 기관의 간부들을 만나서 접대를 하고는 그들과 협력하여 KV 그룹 지분 조사를 하고 있었던 겁니다.”
“예?”
“아니. 도대체 왜 그런 짓을······.”
“딱 보면 모르시겠어요? 한라 그룹이 이어 이번에는 KV 그룹을 노리고 있는 겁니다.”
임원들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J&H가 다른 곳도 아니고 KV를 노린다?
“그,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저희가 한라 그룹처럼 나약한 곳도 아니고, 그리 쉽게 J&H에게 쌈 싸 먹히는 곳은 아닙니다!”
“예. 이진석 회장이 뻘짓을 하고 있는 거예요.”
임원들은 어림도 없는 소리라며 반박했으나, 오현수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정신을 못 차리셨나 보군요. 우린 2조 5천억이라는 어마어마한 손실을 봤습니다. 이게 단순히 매출과 이익을 따지는 거였다면 그냥 넘어갔겠죠. 그런데 회사 자금과 더불어 은행에 빚까지 내면서 투자를 했어요. 그리고 단 한 푼도 남김없이 날려 먹었죠.”
오현수는 한 임원에게 시선을 돌려 물었다.
“황 이사님. 우리가 당장 다음 주에 200억 정도를 외국에 송금시켜 줘야 하는데, 감당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차 이사님도 150억 정도 해결해야 할 어음이 있죠? 그것도 이번 주에 말입니다. 그뿐인가요? 우리가 지금 당장 지급해야 할 돈이 1,000억이 넘습니다. 이거 지금 다 감당할 수 있어요?”
“그거야 시일을 조금 뒤로 미루면 가능합니다.”
“예. 이제까지 회사 자금 상황이 좋지 않으면 미루는 게 가능했죠. 그런데 조만간 KV 그룹이 잘못된 투자로 2조 5천억 원 손해를 봤다는 소문이 퍼질 겁니다. 이 소문을 듣게 되면 그들이 과연 가만있으려 할까요? 우리 그룹에 투자하고 있는 투자자들은 또 어떻고요?”
“그건 언론을 통제하면 되지 않습니까? 최대한 외부에 소식이 퍼지지 않게 잘 관리를 한다면······.”
“제가 아까 그랬죠? 언론사 기자들을 통해 얻은 정보가 있다고. J&H가 지금 거하게 터트릴 준비를 하고 있답니다. 이미 언론사 데스크에 전부 다 돈을 뿌려 놓고 KV 그룹을 공격할 자극적인 기사들만 준비를 했다네요. 이것들을 막으실 수 있겠어요?”
그제서야 임원들도 심각성을 깨달았다.
“대, 대체 무슨 기사로 공격을 하려고 그런답니까?”
“뻔하지 않겠어요? KV 그룹이 2조 5천억 원이라는 매우 큰 돈을 투기로 잃었고, 그건 고스란히 직원, 고객, 그리고 하청 업자들이 감당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투기라뇨! 당치도 않습니다! 거기다 고객들이 무슨 피해를 입는단 말입니까?”
“J&H가 작정하고 기사를 뿌린다면 국민들은 그걸 보고 믿게 될 겁니다. 우리가 2조 원이 넘는 돈을 잃은 건 사실이잖아요. 그리고 문제는 이진석 회장이 과연 각 은행장들과 금융사 대표들을 만나 무슨 얘기는 나눴냐는 겁니다.”
“KV 그룹 지분을 조사하는 거 아니었습니까?”
“예. 그런데 그 사람이 과연 지분 조사만 했을까요? 현재 우리에게 우호적인 지분들을 전부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 할 수도 있다는 거예요. 한라 그룹 보세요. 한라 그룹 이강철 회장님이 돌아가시자마자 바로 우호 지분을 자기 쪽으로 돌려 버렸잖아요.”
순간 임원들 등골에 식은땀이 흘렀다.
전광석화처럼 한라 그룹을 빼앗은 이진석.
KV 그룹이라고 해서 과연 안전할까?
만약 우호 지분을 들고 있는 대주주들이 이번 사태를 알게 된다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이, 이거 잘못하면 KV 그룹이······.”
“예. 둘 중 하나입니다. 통째로 빼앗기거나, 아니면 갈기갈기 찢겨 나가거나. 만약 이진석이 우호 지분을 다수 확보하게 되면 경영권 싸움으로 인해 그룹이 찢겨 나갈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정말 최악의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거기다가 언론사가 작정하고 공격을 하기 시작한다면 KV 그룹의 주가는 바닥을 치게 될 것이고, 그렇다면 더욱더 공격하기가 쉬워진다.
“이제 각자 할 일이 뭔지 아시겠습니까? 저는 아무리 봐도 이진석 회장이 우리에게 덫을 놓았던 것 같아요. 그렇지 않고서야 테라노스 사태가 터지기 일주일 전부터 이렇게 작업을 할 수 없을 테니까요.”
“이진석은 처음부터 테라노스가 사기라는 걸 알았다는······.”
“예. 일부러 회장님을 자극해서 판돈을 올려놓은 거고, 일이 터지니까 이제 만찬을 즐기려는 거죠.”
그렇다면 더더욱 소름 돋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이진석이란 놈은 어떤 머리를 가졌기에 이런 일을 꾸밀 수 있단 말인가.
“뭣들 하고 계십니까? 지금 한가하게 여기서 놀 시간이 아니에요. 어서 가서 언론 데스크부터 막으세요! 주주들이 요동치면 KV 그룹도 한라처럼 순식간에 무너지는 겁니다.”
오현수의 호통에 임원들은 후다닥 흡연실을 나가 버렸다.
회장이 쓰러진 지금, 회사를 이끌어야 하는 건 오현수의 몫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