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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 천재가 되었다-117화 (117/200)

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117화

“아무쪼록 오해가 없었으면 합니다. 제가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벌인 실수이니, 부디 저만 탓하시고 현광 자동차를 탓하진 말아 주십시오.”

정주용 회장에게 크게 혼이라도 난 모양인지, 정태호 부사장은 내게 반듯이 허리를 숙였다. 사람이 곱게 나오는데, 나도 곱게 나가 줘야 하지 않겠는가?

“아닙니다. 저도 잠시 흥분을 해서 불필요한 말싸움을 한 것 같네요. 하지만 한번 거래를 맺은 상대와 신뢰를 깨뜨릴 수 없다는 걸 부디 헤아려 주십시오.”

“물론입니다. 저희도 귀사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이런 반응은 의외였다.

현광 자동차가 대놓고 우리를 적대시할 줄 알았는데, 정주용 회장은 제 못난 아들을 내게 다시 보내 사과까지 시켰다.

그 말은 현광 자동차도 무척이나 긴장하고 있다는 뜻이다.

언제 어디서 공격이 들어올지 모른다는 공포감.

거기다가 내가 현광 건설이 나와 손을 잡는다면 총알이 부족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주용 회장은 그걸 깨닫고 최대한 나와 싸움을 피하려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의외네요. 정태호 부사장 성깔이 장난 아니라고 들었는데. 오히려 저렇게 굽히고 오다니.”

정태호 부사장이 떠나고 나서 권 대표는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대한민국 4대 재벌들 중 하나인 정태호 부사장이지 않은가?

아마 평생 남에게 고개 숙여 본 적 없는 사람일 것이다. 그런 그가 저자세를 보이니 당연히 이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그만큼 현광 자동차도 절박하다는 거겠죠. 이번에 리콜 사태로 주가도 많이 떨어지고 여러모로 압박을 많이 받는다고 들었어요. 현광 건설이 한바탕 전투를 벌이려 한다는 걸 알고 긴장하는 거겠죠.”

“금융사들 중에서 가장 자금 상황이 좋다는 J&H가 현광 건설이랑 손을 잡는다면 그것만큼 끔찍한 일이 또 없다는 걸 저쪽에서도 잘 아는 것이군요.”

“아마 그럴 거라 봅니다. 뭐, 우리야 두 회사가 피 터지게 싸워 주면 좋은 거 아니겠어요?”

오늘 아침 이미 계약서는 전부 서명이 되었고, 이제 계열사들은 전부 현광 건설로 넘어갔다. 고작 2.3%밖에 안 되는 지분으로 현광 건설이 어떤 공격을 할지 기대됐다.

나는 권오준 대표와 모닝 커피를 마시고 회의실로 들어갔다.

이미 그곳에는 임원들이 대기 중에 있었다.

“다들 좋은 아침입니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임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나는 자리에 앉아 서류를 펼쳐 보았다.

임원들과의 회의는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이루어진다. 그때마다 국내에서 투자를 요청하는 곳을 선별해서 결정할 때도 있고, 오늘은 해외 투자처를 선별하는 날이었다.

우리나라 금융사는 더 이상 이 좁은 나라에 국한되지 않고 세계 곳곳에 자본을 투입해 이익을 남기려 한다. 그들 중에서 J&H보다 더 활발하게 해외 투자를 즐겨 하는 곳이 없기도 하다.

나는 국내 투자처보다 해외 투자처를 더욱 좋아하는데, 이들이 잠재적 가치가 더 높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그리고 종종 확인하는 미래 커뮤니티 센터를 통해서도 확실히 해외 쪽이 더 좋다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일단 첫 투자처는 J&H 건설 쪽에서 추천을 했습니다. 메카 프로젝트를 진행함에 있어 사우디에 있는 여러 협력사가 참여를 하게 되는데, 순조로운 진행을 위해 그중에서 핵심 회사들을 인수하는 것이 어떠냐고 하더군요.”

“건설 쪽에서 추천이 들어왔다고요?”

“예. 아무래도 원자재들이나 핵심 기술을 쓰는 데에 있어 차라리 회사를 인수하는 게 더 이득이라는 판단을 한 것 같습니다.”

나는 서류를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제가 내일 건설 임원들과 검토해 보겠습니다.”

“예. 그리고 그다음 건은 이번에 우리나라에 투자처를 알아보고 있는 곳입니다. 웹플릭스라는 미국 회사인데, 우리나라에도 진출을 하고 싶다고 합니다.”

웹플릭스.

서류를 보니, 1997년부터 시작한 회사로 처음에는 비디오, DVD를 대여하는 회사였다. 그러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점차 대여점이 사라져 갔고, 이에 위기를 느낀 웹플릭스는 대승적인 결단을 하게 된다.

모든 대여 서비스를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으로 돌리는 것이다.

바로 스트리밍 서비스다.

실시간으로 시청자가 원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감상할 수가 있다.

다운로드를 따로 할 필요가 없으며, 그냥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재생 버튼만 누르면 되는 아주 간단하고 편리한 서비스였다.

또한 다른 사이트들과는 다르게 원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별도로 구매할 필요가 없다.

구독형 서비스를 통해 매월 일정 금액만 내면 웹플릭스에 있는 모든 영화와 드라마를 감상할 수가 있게 된다.

나도 몇 번 웹플릭스에 대한 글을 본 적이 있다.

미래 커뮤니티를 통해서가 아니라 그냥 인터넷상에 떠돌아다니는 글들을 본 건데, 과연 언제쯤 한국에도 웹플릭스 서비스가 시작되느냐는 이야기였다.

“2년 전부터 해외 진출을 시작한 곳입니다. 처음에는 캐나다였는데, 반응이 좋아서 호주에도 진출을 했고, 그렇게 한국까지 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특히 우리나라 인터넷 속도가 최상급이라 아마 다른 곳보다 훨씬 더 시장성이 있다고 본다는군요.”

나는 웹플릭스 기업 정보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지금 웹플릭스 주가가 50달러 정도네요?”

“예. 한국에 진출을 하려면 아무래도 한국 기업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듯합니다. 그래서 지분을 나눠 주는 식으로 투자를 받아 여러 정책적인 도움을 받고 확실하게 기틀을 마련하려 하는 것 같습니다.”

기업이 해외 시장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그 나라에 있는 주요 기업에 투자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그 이름값을 등에 업고 여러 이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생판 아무런 연줄도 없는 해외 기업이 덜컥 들어와 뭔가를 하려 든다면 주변에서 견제가 들어올 테고, 여러 가지로 규제가 끼면서 결국 정착을 실패하게 된다. 하지만 그 나라에 있는 대기업의 투자를 받아 지분을 나눠 가지게 되면 그때부턴 기업의 노하우를 이어받아 편법을 써서 빠르게 정착을 하게 된다.

“근데 이게 과연 통할까요?”

“지금까지 성적을 보면 잘 통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좀 성격이 다르잖아요. 우리나라 인터넷 속도가 세계 최정상 아닙니까? 그만큼 다운로드 속도도 빠르고요. 미국은 영화 하나 받으려면 하루 종일 걸리는데, 우리나라는 몇 분이면 영화 하나는 금방 받잖아요. 우리나라 웹하드 시스템이 얼마나 잘 되어 있는데요.”

우리나라는 인터넷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 그 부작용으로 온갖 불법 다운로드 파일들이 곳곳에 뿌려지고 있다.

한 시간 정도 투자하면 수십 편의 영화 파일을 다운로드할 수 있는 곳은 아마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이다.

그로 인해 영화사들은 DVD를 내놓는 걸 오히려 무서워한다.

수익을 내야 하는 영화들이 웹상에 다운로드 파일로 떠돌아다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 파일이나, 드라마 파일을 다운 받는 건 불법이지 않습니까?”

“불법이라고 해서 국가가 그걸 막아 주진 않죠. 우리나라에서 스트리밍 서비스를 성공시키려면 다른 방법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방법이라면 어떤······.”

“자세한 건 그쪽 사람들을 만나보고 결정하도록 하죠. 여기 보니까 우리 J&H 금융의 투자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거 같은데.”

“예. 그쪽에서는 실무진과 직접 만나 PR을 하고 싶어 합니다.”

“스케줄을 잡아 놓으세요. 잘만 하면 이 서비스를 성공시킬 만한 방법이 나올 것 같으니까요.”

웹플릭스는 조금 더 상의를 한 뒤에 결정해도 늦지 않다.

우리는 그다음으로 넘어갔다.

“현재 미국에서 초미의 관심사로 집중을 받고 있는 회사입니다.”

마지막 추천 회사는 바로 테라노스라는 의료회사였다.

“아직 언론이 정식으로 터트리진 않았지만, 이게 터지면 아마 엄청난 이슈를 타게 될 거라고 합니다. 이미 골드만삭스에서도 투자를 결정했다고 합니다.”

테라노스는 미국에서 시작한 스타트업 의료 회사로, 엘리자베스 홈즈라는 여성이 그 중심에 있다. 이들이 내놓은 의료기기는 굉장히 대단한 것이었다.

“피 한 방울로 250가지의 질병을 그 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는 키트라고 합니다.”

순간 난 내 눈과 귀를 의심했다.

“피 한 방울로 250가지의 질병을 확인할 수 있다고요?”

내가 의료 지식이 높은 건 아니지만, 피 한 방울로 250가지의 질병을 진단 내릴 수 있다는 기술력이 있다는 건 들어 본 적이 없다.

나도 의료 기술에 꽤 관심이 많은 터라 여러 방면으로 항상 그쪽 소식을 듣고 있었다. 그런데 고작 피 한 방울로 그 많은 병을 한 번에 알아낼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엄청난 기술력 발전이 아닐까?

“그게 가능합니까?”

“그쪽에서는 이미 검증을 전부 맞췄다고 주장하는 중입니다. 골드만삭스에 이어 여러 대형 금융사들이 돈을 싸 들고 준비 중인 것을 보면 확실한 게 아닐까요?”

나는 뭔가 쎄함을 느꼈다.

아무리 시대가 미친 발전 속도를 보이고 있다 해도 의료 과학은 다른 것에 비해 발전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다.

약 하나를 개발해도 기본 5년 이상을 바라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피 한 방울로 250가지의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키트가 등장했다니.

이게 정말 사실이라면 의료계는 엄청난 기술적 진보를 이뤄 냈다고 봐야 한다.

분명 이 키트가 수많은 생명을 살리게 될 것이고 비용도 절감시킬 것이다.

그런데 나는 자꾸 저번에 일본에서 발생한 만능 세포 사건이 떠올랐다.

“여러분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이게 사기였다면 진작 알아내지 않았을까요? 대형 투자사들이 나선 것을 보면 확실한 뭔가가 있다는 건데, 저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됩니다.”

“예. 지금 상황을 보면 다들 눈치 싸움을 하는 거 같은데, 이게 오픈되면 순식간에 투자금이 모일 테고 현재 예상치는 50억 달러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게 사기가 아니라 정말 존재하는 기술력이라면 그야말로 대박 종목이다.

에디슨 키트라고 불리는 이 마법의 기기는 전 세계로 퍼져 나갈 것이고, 대체 불가한 항생제처럼 앞으로 수십 년은 의료 시스템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즉, 쓸어 담는 돈의 규모 수준이 엄청날 거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늦기 전에 투자를 하는 것이 맞다만, 나는 아무래도 찝찝했다.

“당연히 우리나라 금융사들도 예의 주시하고 있겠죠?”

“예. 이미 여러 금융사들이 총알 장전 중인데, 그중에서 KV 금융 그룹이 가장 분주하다고 합니다. 그쪽은 벌써 투자 결정을 내리고 테라노스와 긴밀한 협상 중이라는 찌라시까지 퍼졌습니다.”

KV 금융이 무슨 생각인지 알겠다.

해외 대형 투자사들도 나섰겠다, 늦기 전에 자기들이 먼저 나서서 대한민국 투자사는 일절 접근할 수 없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잘하면 우리나라는 KV 금융이 독점으로 투자를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KV 금융은 돈방석에 앉는 거겠네요? 테라노스가 정식으로 키트를 유통하게 되면 KV 금융을 통해야 할 테니까요.”

“예. 그것 때문에 KV 금융이 준비를 철저히 하는 것 같습니다.”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만약 투자를 하겠다고 결정을 한다면 지금부터 KV 금융과 본격적인 투자 경쟁에 들어가는 것이고, 만일 포기한다면 둘 중 하나다.

KV 금융이 엄청난 손해를 보거나, 아니면 엄청난 이익을 보게 되어 앞으로 수십 년은 걱정 없는 황금알을 갖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왠지 전자일 거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리고 이 일로 KV 금융이 큰 손해를 보게 되어 휘청거린다면, 그건 나에게 또 다른 기회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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