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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 천재가 되었다-114화 (114/200)

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114화

“이건 말도 안 돼!”

한라 그룹 이상현 회장은 자신에게 날아들어 온 소환장을 바닥에 내던져 버렸다.

기다렸다는 듯이 아침 뉴스부터 자신에 대한 보도가 이어졌고, 현재 한라 그룹이 벼랑 끝에 몰려 있다는 걸 적나라하게 비판했다. 그리고 그 모든 책임은 이상현 회장에게 있다는 잔인한 보도가 연이어 터져 나왔다.

“도대체 누가! 누가 이딴 걸 퍼뜨린 거야!”

이 회장이 씩씩거리며 소환장을 짓밟고 있는 모습을 임원들은 측은하게 혹은 한심하게 바라봤다.

“출처는 현광입니다. 현광이 그동안 모아 온 자료를 검찰에게 넘겼다고 합니다.”

어느 임원의 대답에 이 회장의 안색이 붉게 변했다.

“현광이 나한테 무슨 원한이 있다고!”

“그동안 호시탐탐 한라를 노려 온 현광이지 않습니까? 이런 식으로 회장님을 흔들어 놓으려는 수작이죠.”

“문제는 현광에서 때린 한 방이 너무 묵직하다는 겁니다. 잘하면 구속 수사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구속이란 말에 이 회장은 더욱 과민 반응을 보였다.

“뭐? 구속?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구속을!”

당연히 잘못한 건 많지 않으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꾹 삼키는 임원들이었다.

현광이 터트리긴 했으나, 이 회장이 회사 자금을 횡령했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기 때문.

거기다 회사가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회삿돈을 훔친 건 큰 잘못이긴 했다.

“주주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습니다. 일단 검찰의 소환에 응하시어 최대한 오해를 풀고 가심이 어떻습니까?”

“예. 빠른 수사 종결로 이 논란을 잠재워야 합니다.”

“그 말은 나더러 검사들 앞에서 살려 달라고 빌라는 겁니까?”

“회장님. 부득이하게 회사 자금을 쓰게 되었고, 그것이 횡령까지 직결될 줄은 몰랐다고 변명이라도 하셔야 합니다. 이 모든 건 회사를 위함이었다고 말이죠. 최고의 변호사들을 선임해 어떻게든 이 사건을 방어해 나간다면 집행 유예로 끝날 겁니다. 검찰이 대기업에 휘둘려 칼을 뽑는 건 종종 있는 일이잖습니까? 저쪽에서도 일을 크게 만들 생각은 아마 없지 않을까요?”

이 회장도 알고 있었다.

자신이 빠져나갈 구멍은 없다는 걸 말이다.

하지만 회삿돈을 빼돌려 비자금을 만드는 건 어느 대기업이나 밥 먹듯 하는 일이 아니던가? 검찰이 유독 자신에게만 칼을 뽑아 든다는 것이 억울할 뿐이었다.

거기다가 이강철 회장처럼 검찰이나 정치권 쪽에 튼튼한 라인을 만들어 놓은 것도 아니라서 사실상 현재 이상현 회장은 혼자 싸워야 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회장님. J&H에 도움을 요청해 보는 것이······.”

“뭐라고요?”

“J&H 이진석 회장이라면 손닿는 곳이 많을 겁니다. 이강철 회장님도 그쪽과 인연이 깊지 않았습니까? 한번 만나 보셔서 도움을 받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입니다.”

그러자 이 회장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그래. 이진석이 있었지.”

이강철 회장의 유언에 따라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이진석이었다.

아버지가 남긴 유언이 마음에 걸릴 테니, 분명 자신을 도와 이 사태를 해결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일단 알겠으니, 다들 안심하고 나가 봐요. 이 일은 내가 책임지고 해결합니다.”

갑자기 자신만만해진 이 회장의 얼굴을 보고는 임원들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런 그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상현 회장은 서둘러 J&H로 향했다.

* * *

검찰이 무섭긴 무섭나 보군.

또다시 이렇게 고개를 숙이며 기어 오는 것을 보면 말이다.

“회사 일을 하다 보면 불미스러운 일이 종종 생기지 않습니까? 특히 회사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라는 비자금 조성은 비록 도덕적이지 못하나 반드시 필요한 일이기도 하고요.”

“그렇군요.”

나는 심드렁하게 반응하며 찻잔을 들이켰다.

그런 내 모습에 조바심이 났는지 이 회장이 거듭 조아리며 말했다.

“한라 그룹은 이제 새로운 시작점을 맞이했습니다. 다시 한번 날아오르는 거죠. 현광은 그게 두려워 저를 공격하는 것이고요. 한라가 크게 성장하기 전에 새싹부터 짓밟아 버리겠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순간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걸 꾹 참았다.

자신이 운전대를 잡고 있으니, 한라 그룹은 반드시 성장한다고 믿는 것인가?

거기다가 이번 공격은 현광의 단독 공격이 아니라, 나와 손을 잡은 협공이다. 그것도 하나 캐치하지 못하고 적군에게 달려와 도움을 달라 비는 꼴이라니.

“회장님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잘못을 했으면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죠.”

“네?”

“검찰도 밥값은 해야 하니까요. 국민들이 죄 있는 사람 벌주라고 세금 주는 거 아닙니까? 억울한 게 있으시면 저한테 풀을 게 아니라, 검찰에 가셔서 푸세요. 하지만 정말로 죄가 있다면 대가를 치르시고요.”

“회장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기업을 이끄는 사람들 중에 저처럼 회사 자금 빼돌려서 비자금 안 만드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런 식으로 몰아가면 곤란합니다. 전 비자금이라는 걸 만들어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군요. 다른 대기업 회장님들도 전부 그런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거야 당연히······!”

말을 하던 이 회장이 갑자기 입을 닫았다. 그러고는 뭔가를 깊이 깨달았다는 듯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설마했는데······ 혹시 현광과 한 패였습니까?”

나는 일단 시치미를 뗐다.

“무슨 말씀이신지?”

“현광과 손잡고 저를 검찰에 넘긴 게 아니냐는 겁니다. 제가 이 일로 검찰에 넘어가 구속 수사를 받게 되면 회장님은 명분을 얻는 거 아닙니까. 나를 쫓아낼 수 있는 명분!”

그래도 돌쇠처럼 멍청한 건 아닌 모양이다.

난 싱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상상은 자유에 맡기겠습니다. 제가 일전에 말씀드렸죠? 전 한라 그룹을 욕심내지 않는다고. 그런데 선한 사람을 이런 식으로 몰아가시다니. 솔직히 실망이 크군요.”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절 살려 주십시오. J&H가 검찰에 손닿는 곳이 많다는 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지금이라도 막아 주세요.”

“이런. 현찰이나 만지면서 돈 놀음 하는 제가 무슨 수로 민중의 지팡이를 막습니까?”

“이 회장님!”

이상현 회장은 상을 세게 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는 그런 그를 언짢게 바라보면서 말했다.

“회장님. 이미 틀렸어요. 현광이 저렇게 폭격을 해 대는데, 제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순순히 받아들이십시오. 그리고 비도덕적인 행위를 하셨으니, 그에 대한 책임으로 회장직에서 물러나는 게 맞습니다.”

“회장직에서 물러나라고요?”

“아니면요? 뻔뻔하게 계속 그 자리를 지키려고 하셨습니까? 회장으로 취임하시자마자 이런 사태가 벌어졌어요. 주주들의 인내심은 한계에 달했을 겁니다. 그동안 이강철 회장님이 일선에서 물러나 모든 걸 회장님에게 맡겨 놓았을 때, 제대로 성과 하나 내신 적이 있으세요?”

이 회장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나는 더욱더 그를 몰아붙였다.

“만약 그때 조금이라도 성과를 보이셨다면 주주들은 동요하지 않았을 겁니다. 솔직히 말해서 비자금 사건으로 끌려가는 경영진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하지만 보통 그런 일이 생긴다고 해서 주주들이 단체로 들고 일어나진 않죠.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오늘만 저한테 전화가 몇 번이나 왔는지 아십니까?”

“그,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전화가 오다니?”

“한라 그룹 우호 지분을 들고 있는 주주들에게서 제게 전화가 빗발치고 있어요. 이강철 회장님이 우려했던 사태가 벌어졌으니, 지금이라도 결단을 내려 이 사태를 수습해 달라고 말입니다.”

“회, 회장님. 단순히 비자금 마련이에요. 누구나 하는 짓이고, 이게 걸린다고 해서 징역형을 사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간단히 집유로 끝날 겁니다.”

“하지만 회사의 이미지는 나락으로 추락하겠죠. 가뜩이나 휘청거리고 있는 곳인데 말입니다. 재판을 받을 동안 회사에 출근도 못 하시고요. 폭풍우에 휘말린 배를 누군가는 이끌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장이라도 터질 것만 같은 얼굴을 하고 있던 이상현 회장이 주먹을 꽉 쥐었다.

그는 내 입장을 정확하게 알아들은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내 회사를 빼앗으시겠다?”

“착각이 심하시군요. 이게 어떻게 회장님만의 회사입니까? 주주들의 회사입니다.”

“말장난하지 마! 어디서 뻔뻔하게 감히 한라 그룹을······! 네가 현광 그룹 정영준 회장과 짜고 친 고스톱이라는 걸 내가 모를 줄 알아!”

“만약 제가 작정하고 현광 그룹과 짜고 쳤다면 회장님은 당분간 햇빛 보기 힘드실 겁니다.”

“뭐, 뭐야?”

“비자금 조성이 집행 유예? 기백 억을 해 드셨는데, 이게 집유로 간단하게 끝날 것 같습니까? 뭐, 실력 있는 변호사들이라면 충분히 그렇게 만들 수 있겠죠. 그런데 J&H와 현광이 단체로 변호사들에게 항의하면 어떻게 될까요?”

대기업 회장들이 재판을 받게 될 땐 검사장급 사람이 2명 이상은 옷을 벗고 나가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검사장이란 명함을 빼고 변호사로 변모하여 대기업 전속 변호사가 되는 것인데, 이때 벌어들이는 돈이 최소 수십억.

그야말로 한 방에 인생을 역전시키는 것이다.

또한 부장검사 출신과 재판장 출신의 변호사들도 대거 투입되어 갖은 로비를 통해 아무리 악질적인 죄라도 가벼운 형량으로 끝내게 만든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라는 것.

그러므로 이들은 대기업의 행보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현광과 J&H가 입김이 꽤 된다는 건 아실 겁니다. 검찰 출신 중 누구라도 한라 그룹을 변호하고 나섰다가는 인연을 끊고 밥줄까지 끊기게 만들겠다고 엄포를 놓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한라 그룹보다 현광이 더 높고, 당연히 J&H도 그 위에 있다.

검사들도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누구도 이상현 회장을 위해 나서 주지 않을 것이다.

아마 구한다고 해도 아무런 연줄도 없는 그저 그런 변호사를 구할 게 뻔하다.

“우리나라 법원은 힘 있는 사람들을 위해 존재한다는 거 아시죠? 빵 하나 훔치면 징역 1년 이상을 받지만, 우린 수백억을 훔쳐도 집행유예로 끝나거나 아예 무죄로 풀려납니다. 지금 회장님은 빵을 훔치다 걸린 격이시고요.”

“지금 날 협박하는 건가?”

“예. 이 정도 협박이면 슬슬 오금이 저리시지 않으세요? 어디 버티고 싶으시면 버텨 보세요. 현광 그룹도 만만치 않지만, 저도 그에 못지않게 지독하다는 걸 알게 되실 겁니다.”

그제서야 이상현 회장의 몸이 오들오들 떨려오는 게 보였다.

화가 나기 때문이 아니다.

지금 그는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정말로 징역살이를 받아 감옥에 갇힐지도 모른다는 공포.

“이 나쁜 새끼. 아버지가 너의 그 악마 같은 본성을 아셨다면 절대로······.”

“제 본성이 이렇다는 걸 아셨기 때문에 한라 그룹의 열쇠를 맡기신 겁니다. 원래 이 세상이 그렇고 그렇지 않습니까. 동화에서나 정의가 승리한다고 하죠. 하지만 현실을 보세요. 악이 모든 걸 지배합니다. 정의는 그 악에 패배하고요. 누구보다도 지독해야 자신의 것을 지킬 수 있는 겁니다.”

설교는 여기까지다.

충분히 경고를 주었고, 이제 남은 건 그의 선택이었다.

“저는 외부적으로 봤을 때 일방적인 강탈이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냥 보기 좋은 모습으로 일선에서 물러나세요. 그럼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수습하겠습니다. 감옥에 들어가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막아 드리죠.”

“······.”

이상현 회장은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충격에 넋을 잃은 것이다.

“저도 이강철 회장님께 죄송한 마음이 없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그분은 한라 그룹을 조금 더 발전시킬 수 있다면 이 정도쯤은 충분히 이해하실 겁니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아마 지금쯤 이강철 회장은 하늘에서 땅을 치고 후회할지 모른다.

그가 원한 건 어떻게든 아들이 주위에서 압박을 받으며 성장하는 것을 기대했을 터.

자신이 세상을 떠나자마자 회사가 강탈당하는 건 원치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철저한 경영인이다.

사적인 감정과 사사로운 인연 때문에 쟁취할 수 있는 트로피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지독하고 더 지독하게 내 것을 지키고 남의 것을 빼앗아야만 이 험난한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난 내가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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