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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 천재가 되었다-112화 (112/200)

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112화

“부회장 그 양반도 똥줄이 타겠지. 한라 그룹의 우호 지분은 영원히 자기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지 애비가 죽기 전에 거하게 사고를 치고 간 거야.”

정 회장은 피고 있던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말을 이었다.

“죽음이라는 거, 그리고 그 뒤에 남겨진 유언이라는 거.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거거든. 이강철 회장을 직접 대면한 은행장과 금융사 사장들이 이상현 부회장의 호소를 들으려고 할까? 제 아비가 회사를 너한테 넘겨주라고 마지막 유언을 남겼는데?”

“하지만 이강철 회장님께서는 한라 그룹이 점점 하락세를 타면 그때······.”

“쯧.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마. 내가 널 몰라? 세상에서 제일 욕심 많은 놈이 그때까지 잘도 기다려 주겠다. J&H에 흡수를 하면 이득일지, 아니면 손해일지 철저히 계산한 다음 주머니에 쏙 넣으려 하겠지.”

이 영감 매섭다.

사람을 꿰뚫어 보는 건 연륜인 건가, 아니면 정영준 회장만의 능력인 건가?

“흐흐흐. 네가 홀라당 내 밥상을 가져갔을 때부터 알아봤지. 그리고 LK 관광개발 건도 25%밖에 안 줬다며?”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왜 정 회장이 이 일에 관심을 갖는지가 궁금했다.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하십시오. 욕심 많은 제게 충고를 해 주려고 온 것 같진 않으신데요?”

“젊은 놈이 눈치 하나는 빨라서 좋아.”

그럼 그렇지.

정 회장도 나름의 목적이 있었다.

“이 회장도 죽었으니, 이제 눈치 볼 것도 없지? 그냥 바로 진행하지 그러나?”

“남의 일에 은근 오지랖이 심하시군요.”

“남의 일이라고 보지 않으니깐. 원래 네가 끼어들지만 않았어도 내 회사가 될 곳이었어.”

“그 말씀은 한라 그룹에 있는 계열사 몇 개를 챙기고 싶으시다는······?”

“잘 봤네. 적당하게 가격 쳐 줄 테니까, 몇 개만 나한테 넘겨. 그러려면 얼른 회사부터 빼앗아 와야겠지? 이상현 저놈이 뭔가 할 시간을 주면 안 돼. 속전속결로 진행하는 게 좋을 거야.”

어찌 보면 날로 먹겠다는 심보처럼 보이지만, 그리 나쁜 제안은 아니었다.

“한라 그룹을 그냥 삼키려 들면 여러모로 탈이 날 수밖에 없을걸? 그래서 내가 자네에게 소화제 하나 주겠다는 거야.”

그 말대로 한라 그룹을 통째로 삼키면 당연히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

현광 건설에 몇 개 던져 주는 것만으로도 그 부작용이 최소화될 여지가 있다.

하지만 항상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되는 법.

“호의를 베풀 분은 아닌 거로 알고 있는데요?”

“흐흐. 서로 이득 보자는 거지.”

“대체 왜 이렇게 한라 그룹에 집착하십니까? 한라 그룹보다 뛰어난 회사들도 많잖아요.”

“내가 눈꼴 시려서 그런다. 꿀꺽 삼키려 했던 회사가 생판 남에게 넘어가는 꼴을 보기가 힘들어서.”

감정적 이유 때문이라고?

그렇다면 한라 그룹에 있는 계열사가 아니라 J&H에 흡수된 과거 한라 중공업의 계열사를 달라고 했어야 한다.

나는 분명 뭔가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영감이 이렇게 한라 그룹에 집착하는 건 아닐 테니까.

“이 사람아. 뭘 그리 의심하고 있어? 당장 내일이라도 후딱 끝내자고. 나도 언제 이강철 회장 뒤를 따라갈지 모르니까.”

여기서 확정을 짓는 건 위험하다.

“일단 회장님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 추후에 다시 연락을 드리죠. 지금 당장은 뭐라 드릴 대답이 없네요.”

“쯧-. 팍 쫄기는. 알아서 하시게. 그런데 오래 끌수록 가격도 내려가는 거 알지? 잘 생각하는 게 좋을 거야.”

할 말을 다 했다는 듯 정 회장은 먼저 밖을 나갔다.

그는 여러 사람들의 인사를 받으면서 장례식장을 먼저 떠났는데, 나는 저 음흉한 영감의 뒷모습을 잠깐 멍하니 바라보았다.

“회장님.”

정신을 차린 건 권오준 대표 덕분이었다.

“무슨 얘기를 나누신 겁니까?”

“여기서 할 이야기는 아니고, 좀 이따 회사 들어가서 알려 드릴게요.”

“아, 예.”

정영준 회장.

한라 중공업도 아니고 한라 그룹에 속해 있는 계열사들 중 몇 개를 사겠다는 건 필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를 알게 된다면 더 세게 가격을 부를 수 있을지도?

* * *

“장례 동안 많은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회장님.”

장례가 마무리된 뒤, 이 부회장은 별도로 자리를 만들었다.

그는 아주 정중한 자세로 내 잔을 술로 채워 주었다.

“부회장님. 갑자기 말을 높이시는 게 영 거북스럽습니다. 예전처럼 막 대해 주셔도 됩니다.”

막 대하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그는 금방 알아차렸다.

“아이고. 그땐 제가 정신없어서 그만······. 이진석 회장님만큼 사람 좋으신 분이 또 없는데, 뭔가 단단히 착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때의 무례는 용서해 주십시오.”

며칠 만에 사람이 이렇게 바뀐다.

역시, 회장이란 자리가 좋긴 좋은가 보다.

“그런가요? 제가 딱히 좋은 사람은 아닌데.”

“그럴 리가요? 그러니까 우리 한별이가 회장님에게 푹 빠진 거 아니겠어요?”

이한별까지 슬쩍 언급을 한다.

더 얘기가 나올 것 같아 나는 잔을 내려놓고 진지하게 말했다.

“부회장님. 아니, 이제 회장님이라 불러 드려야겠군요. 이렇게 저를 극진히 대접한다고 해서 회장님의 유언이 달라지진 않습니다.”

빈 잔을 다시 채우고 있던 이 부회장의 행동이 뚝 멈춰 버렸다.

그러고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어쩔 생각이십니까? 회장님 생각이 궁금하군요. 이대로 정말 한라 그룹을 강탈해 버릴 셈이세요?”

“강탈이란 말이 어울리진 않군요. 돌아가신 이강철 회장님께서는 끝까지 회사를 지키고 싶어 하셨어요. 그리고 그 회사를 지키는 데에 저를 점찍어 놓으신 거고요.”

“결론부터 말해 봐요. 내일 당장 짐부터 싸야 합니까?”

“아니요. 이강철 회장님은 회사가 무너지는 것 같으면 그때 경영권을 빼앗으라고 하셨어요. 지금 당장 회사가 무너지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 말에 이 부회장 얼굴이 조금 펴졌다.

당장은 목을 치지 않겠다는 얘기에 안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지켜만 볼 생각은 없습니다. 한라 그룹의 내부적인 문제부터 해결을 해야 회사가 성장을 하지 않겠어요? 이대로 가면 분명히 한라 그룹은 무너질 겁니다.”

“그 말은 경영에 참여를 하겠다는······?”

“못 할 게 있을까요? 한라 중공업을 인수하면서 꽤 많은 지분을 들게 되었습니다. 거기다 회장님의 유언도 있지 않습니까. 그 모든 걸 종합해 보면 충분히 경영에 참여할 수 있을 거라 보는데요?”

“그건 결국 절 허수아비로 만들겠다는 거 아닙니까?”

“싫으세요?”

“뭐, 뭐라고요?”

“허수아비가 싫으시냐고요. 그럼, 아예 그 자리를 제가 가져가 볼까요?”

“······.”

이 부회장은 뭐라 답을 하지 못했다.

내가 이렇게 대놓고 말할 줄은 몰랐을 테니까.

“언제든 말만 하세요. 허수아비 같은 그 명함, 제가 시원하게 없애 드리겠습니다. 만약 그게 싫으시다면 한라 그룹의 회장으로서 최선을 다하세요. 다른 걱정은 다 제쳐 두시고요. 어차피 그것 말고는 회장님에게 남은 길이 없지 않습니까? 어쩌면 돌아가신 이 회장님도 그걸 바라신 것일 수도 있고요.”

이 부회장은 잠시 말이 없다 술잔을 깨끗하게 비워 버렸다.

“후-. 이 나이 먹고 젊은 사람한테 훈계나 다 듣다니. 내가 인생을 헛살긴 헛살았나 보네.”

“비즈니스에 나이를 따지지 마시죠. 다른 때라면 제가 극진히 어른 대접을 해 드렸겠지만, 지금은 그룹을 경영하는 사람으로서 회장님을 마주하고 있는 겁니다.”

“아아. 미안해요. 잠깐 말이 헛나왔네. 앞으로 조심할게요.”

그러고는 그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일어나 볼게요. 오늘 얘기하는 걸 들어보니, 당장 내 옷을 벗길 건 같진 않고······. 그렇다고 계속 지켜만 보진 않을 것 같으니 뛰어다니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어요?”

그래도 완전 멍청한 양반은 아니었다.

“저도 이런 불편하게 만들어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강철 회장님처럼 저 역시 한라 그룹을 걱정하고 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어찌 되었든······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우리 둘은 어색한 악수를 나눈 뒤 헤어졌다.

이 부회장은 급하게 회사로 돌아간 거 같은데, 오늘 일로 조금이라도 나아졌으려나 모르겠다.

“회장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권 대표님. 아직 퇴근 안 하셨어요?”

“예. 회장님이 왠지 금방 회사로 돌아오실 것 같아서요. 이 부회장은 뭐라고 합니까?”

“뭐, 자기 목숨줄이 얼마나 남아 있나, 그거 확인하러 온 거였어요. 당장은 제가 목을 칠 생각이 없다는 걸 알려 줬으니, 안심하고 최대한 열심히 일해 보려 할 겁니다.”

그러자 권 대표가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저런. 괜한 희망을 심어 주셨네요.”

“괜한 희망이요?”

“예. 아무래도 정영준 회장 말대로 단번에 해치워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권 대표가 저렇게 말할 정도면 분명 흥미로운 일이 있는 것이다.

나는 얼른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권 대표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저번에 장례식 끝나고 나서 저한테 그런 지시를 내리셨죠? 한라 그룹 지분을 한번 조사해 보라고 말입니다.”

장례식에서 정영준 회장과 만난 뒤 찝찝함에 나는 권 대표를 시켜 한라 그룹 지분을 자세히 조사하게 했다.

정 회장이 저렇게 적극적으로 나오게 만드는 뭔가가 그 안에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랬죠. 설마 거기서 진짜 뭔가 나온 겁니까?”

“예. 아주 대박 하나가 떴습니다.”

“대박? 그 정도예요?”

“예.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한라 그룹 계열사 중에 무려 현광 자동차 지주 회사 지분을 들고 있는 곳이 있습니다.”

나는 눈을 크게 뜨며 권 대표에게 되물었다.

“그게 정말입니까?”

“제가 그걸 발견했을 때 딱 회장님 같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한라 그룹 측에서도 이걸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라 투자파트너스라는 계열사가 있습니다. 지금은 거의 버려진 곳이긴 한데, 여기에 현광 주식이 섞여 있더라고요?”

“몇 퍼센트요?”

“2.3%입니다. 좀 애매하죠.”

애매하긴 확실히 애매하다.

대주주로써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퍼센티지는 3.

2.3%는 그런 권한을 행사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정 회장이 눈독을 들일 만하다.

아직까지도 과거 재계 1위였던 현광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양반 아닌가?

“이게 정확히 어떤 식으로 흘러갔는지는 모릅니다. 한 가지 추측할 수 있는 건, 현광 그룹이 쪼개지기 전에 한라 투자파트너스에서 현광 주식을 사들여 놓은 것일 수도 있어요.”

“그러다 그룹이 쪼개지고 자동차 그룹이 새로 생기고 지주 회사가 만들어지면서 가치가 뛴 거군요.”

“예. 오래전부터 묵혀 있던 곳이라 현광 자동차 쪽에서도 이런 게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을 겁니다. 어쩌면 이강철 회장님도 모르고 계신 걸 수도······.”

“아뇨. 알고 계셨을 겁니다. 그런 쪽에는 워낙 철저한 분이니까요. 이제야 퍼즐 조각이 맞네요. 현광 건설이 왜 이렇게 한라에 집착을 하나 했더니, 그런 주식을 숨기고 있었군요.”

이강철 회장은 그런 주식이 숨겨져 있다는 걸 내게 따로 말해 주지 않았다. 그냥 숨긴 걸 수도 있고, 딱히 말할 가치를 못 느꼈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그 주식의 존재를 알고 작정해서 한라 그룹을 삼키려 들려 한다는 걸 염려했던 것일 수도.

“일이 참 재밌게 흘러가네요.”

“예. 우리한테는 더없이 좋은 일이니까요. 이제 현광 건설 회장님을 들었다 놨다 할 수 있을 겁니다. 2.3%가 별거 아닌 것처럼 보여도 단 1% 차이로 경영권이 박탈당하기도 하지 않습니까?”

권 대표 말대로다.

지주 회사의 지분은 억대의 돈을 뿌려도 갖기가 힘들다. 왜냐하면 그것은 곧 회사의 경영권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현광 자동차의 지분은 얼마든지 돈을 뿌리면 가질 수 있지만, 그곳을 통치하는 지주 회사의 지분을 갖게 되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다.

아마 오래전에 한라가 종이 쪼가리에 불가한 어느 현광 계열사의 주식을 사들였고, 그것이 어쩌다 보니 현광 자동차 그룹의 지주 회사로 변모하여 가치가 달라졌을 확률이 높다.

“흐흐. 제가 이걸 알아차렸다는 걸 그 영감님이 알게 되면 참 볼 만하겠습니다.”

감히 이런 걸 숨기고 계열사만 쏙쏙 빼 가려 했단 말이지?

이 영감님, 페어플레이가 뭔지 제대로 보여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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