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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 천재가 되었다-109화 (109/200)

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109화

“이거······ 생각보다 세게 나오는데요?”

“그렇죠? 김 장관이 괜히 어깨에 힘주고 있었던 게 아니네요.”

어젯밤 김 장관이 직접 찾아와 우리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청와대가 풀 서포트를 할 예정이니, 다시 LK와 협상을 해 달라고 말이다.

그 말은 청와대가 방망이를 휘둘러 LK가 협상 테이블에 나오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지금 뉴스를 보라.

온통 LK 이야기밖에 없다.

청와대가 단단히 독을 품었는지 작정하고 LK를 물어뜯고 있다. 그에 맞춰 검찰이 칼을 뽑아 LK 임원들을 하나씩 소환해 갖가지 먼지들을 털어 내는 중이었다.

“솔직히 청와대가 이 정도로 우리 템포에 맞춰 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어제 김 장관이 그랬잖아요. 이번 대선을 간신히 이기지 않았습니까? 즉, 여론이 무조건 대통령에게 있다는 뜻이 아니에요. 총선도 승리를 거두긴 했지만, 완전히 압승이라고 보기도 어렵죠. 그래서 이번 용산 프로젝트로 민심을 얻으려는 겁니다. 지금 괜히 말만 꺼냈다가 욕먹고 있는 창조 경제에 힘을 실어 주기도 하고요.”

우리가 김 장관을 통해 불쾌한 심정을 드러냈으니, 청와대에서 뭔가 행동에 나서 줄 거라는 예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청와대와 쌓은 감정이 결코 좋지 않기 때문에 분명 청와대도 크게 행동에 나서진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LK 그룹을 몰아붙일 줄이야.

“보수 정당이 아무래도 친재벌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조언했던 대로 이 기회에 그런 이미지를 조금 벗어던져 보겠다는 거죠.”

“뭐, 우리야 좋죠. 안 회장 얼굴이 볼 만하겠는데요?”

“흐흐. 아마 미치고 팔짝 뛸 겁니다. 제가 전화 좀 돌려 보니까, LK 그룹에서 검찰에 압력을 좀 넣었던 모양입니다. 금감원에도 LK 그룹이 우리 J&H를 찔렀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청와대가 저렇게 나오면 누구 하나 나설 생각을 못 하겠죠.”

정권 초기에는 재벌들이 돈을 퍼다 줘도 검찰은 청와대 앞에 꼼짝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정권 초기에 인사 결정이 이뤄지고 새로운 검찰총장을 비롯한 검사들의 승진 기회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검사의 인생을 화려하게 책임져 줄 게 아니라면 지금은 검찰에 압력 넣는 걸 자중해야 한다.

안 그러면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

지금의 LK 그룹이 딱 그 짝이었다.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청와대가 토스한 걸 검찰이 제대로 스파이크 쳤는데, 우리가 안 나가겠다고 버틸 순 없지 않습니까?”

권 대표의 말이 맞다.

청와대는 지금 LK 그룹을 짓밟고 있었다. 자기 말을 듣지 않은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하는 것이다. 거기다 LK 그룹이 소송을 건 것도 있어서 여러모로 쌓인 게 있었을 터.

그와 동시에 우리에게도 압박을 주는 것이다.

내가 이 정도까지 하는데, 만약 너까지 반항한다면 LK 그룹처럼 똑같이 밟아 주겠다고 말이다.

“이건 안 나갈 수가 없네요. 청와대가 제대로 보조를 맞춰 주는데, 이 호의를 무시하는 건 바보죠. 바로 김 장관한테 연락 넣으세요. 우리 J&H는 언제든 협상 테이블에 나갈 생각이 있다고 말입니다.”

“예. 바로 전달하겠습니다.”

권오준 대표는 지체하지 않고 김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내 뜻을 전달했다.

그동안 나는 뉴스를 보며 LK 그룹이 두들겨 맞는 걸 즐겁게 감상하고 있었다.

지금쯤 저 뉴스를 보고 있을 안영상 회장의 표정을 내가 봤어야 하는 건데,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 * *

“······.”

무겁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저 말 많은 안영상 회장이 1시간 동안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담배만 피우는 중이었다. 임원들은 가시방석에 앉은 듯 이 상황이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처음부터 이진석 회장과 좋게 풀었다면 일이 이 지경까지 흘러가진 않았을 것이다.

벌써 담배 6개비를 다 피운 안 회장이 끊어질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내일은 또 누가 검찰청으로 간다고?”

“내일은 유통 쪽 임원들이 끌려간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리고 뭐?”

“검찰에서 조용히 언질을 줬습니다. 회장님이 결단을 내려 주시지 않으면 다음 소환장은 회장님에게 갈 거라고······.”

담배곽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이 세게 들어갔다.

안 회장은 절로 욕설이 튀어나왔다.

“이런 시발. 좆 같은 새끼들.”

청와대가 설마 그 어린놈의 편을 들어 줄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온몸이 부르르 떨려왔지만, 검찰의 경고는 곧 청와대의 경고였다.

협상 테이블로 나가지 않으면 이 칼바람은 쉬지 않고 불게 될 것이다.

현 정권이 끝나는 그날까지 말이다!

“후-. 이거 버틴다고 버틸 수가 없는 거겠지?”

“예. 검찰이 작정하고 터는 중이라 큰 죄가 아니더라도 꼬투리 하나를 잡으면 계속 물고 늘어질 겁니다. 거기다 회장님을 소환 조사하겠다는 말까지 하는 걸 보면 저쪽에서도 뭔가를 잡고 있는 게 아닐까요?”

“먼저 소환됐던 임원들이 뭐 흘린 거 아니야? 그 새끼들이 괜히 헛소리해서 나까지 끌려 나가는 거 아니냐고.”

임원들은 어이가 없었다.

회장이라는 작자가 저런 말을 지껄이다니.

그리고 그 사람들이 피해를 본 건 전부 안 회장 때문이지 않은가?

“그건 아닙니다. 전부 입 꾹 다물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하여튼 다 쓸모없는 새끼들만 있어서 내가 이 고생이지.”

“······.”

할 말이 참 많았지만, 임원들은 꾹 참았다.

그리고 안영상 회장도 바보는 아니었다. 여기서 자존심을 세웠다가는 정말 가문의 망신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어디까지 파헤칠지는 모르겠으나, 안 회장 본인에게도 징역이 떨어질 수도 있다.

“김 장관한테 연락 넣어. J&H랑 재협상하겠다고.”

“예, 회장님.”

임원들의 표정이 일순 밝아졌다.

그러나 안 회장의 성질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번에 검찰청으로 불려간 새끼들 다 옷 벗으라고 해.”

“예?”

“아무래도 찝찝해. 그 새끼들이 뭔가를 흘렸으니까 청와대가 저렇게 나오는 거겠지. 그냥 다 옷 벗기고 허튼수작 부리지 말라고 못 박아.”

“아······ 예.”

끝까지 지독함을 보여 주는 인간이다.

하지만 어쩌랴.

임원들은 그저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

* * *

2차 협상부터는 내가 직접 나서지 않았다.

권오준 대표를 대리인으로 내보냈는데, 그는 아주 만족스러운 성과를 가져왔다.

“LK 관광개발이 지분 매각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것도 30%가 아니라 25%의 가격으로요.”

“아니. 그걸 또 어떻게 깎으셨어요?”

“어차피 저쪽은 선택권이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슬쩍 던져 봤죠. 아주 죽일 듯이 노려 보더군요. 그런데 정말 방법이 없었는지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안 회장이 혈압으로 쓰러진 건 아닌지 모르겠다.

하여튼 권 대표도 참 지독한 면이 있는 양반이다. 난 그런 권 대표가 참 좋다.

“이제 용산 프로젝트의 92%의 지분을 우리 J&H가 소유하게 됐습니다. 나머지는 철도공사가 들고 있고요. 사실상 J&H 건설 그룹의 자체적 프로젝트가 됐어요.”

“잘됐네요. 정부 쪽에서 한번 훈수 두기 시작하면 끝도 없어요. 사전에 우리가 독점으로 가져가는 게 맞다고 봅니다. 이건 건설 임원들 싹 다 모아서 어떻게 진행을 할지 한번 잘 계획을 세워 보죠.”

“예, 회장님. 건설 쪽 임원들부터 싹 다 불러 모을까요?”

“그렇게 해 주세요. 거기도 아마 똥줄이 타고 있을 테니까요. 아! 그전에 권 대표님.”

“말씀하십시오.”

“검찰에 좀 알아봐 주실 게 있어요.”

검찰이란 말에 권 대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떤 걸 알아보시려는 건지······?”

“이번에 청와대가 LK 그룹을 사정없이 때렸잖아요. 근데 그 강도를 보니까 보여 주기식이 아니라 정말 진심으로 때리는 거 같았어요. 그 말은 검찰이 뭔가를 들고 있다는 거 아니겠어요?”

“LK 그룹의 비리를 말씀하시는 거군요.”

“예. 저번에 제가 현광 건설 비리 문서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지 않았습니까? 그 정도의 문서를 들고 있으니 청와대가 세게 나간 거라고 봐요.”

청와대가 아무리 친재벌 인식을 벗고 LK 그룹에 제대로 힘자랑을 하려 했다고 해도 그 강도가 좀 지나쳤다. 아무런 증거 없이 일방적으로 대기업을 공격할 순 없다.

그래서 든 생각이, 지금 검찰은 그동안 모아 온 증거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난 그게 갖고 싶었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씀이십니다. 전 거기까지 생각을 못 했는데, 역시 회장님은 다르시군요.”

“하하. 딱히 그런 건 아니고요. 안 회장 그 양반한테 몇 방은 더 먹여 주고 싶어서요. 이대로 끝내기는 좀 아깝지 않습니까?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찔러 보는 거죠.”

“제가 검찰 쪽에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운이 좋다면 아주 쓸 만한 걸 건질 수 있을지도 모르죠.”

“예. 이제 임원들을 불러 주세요. 건설도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는 걸 각인시켜 줘야 하니까요.”

건설 임원들이 그토록 원하던 용산 프로젝트를 가져와 주었다.

솔직히 거의 강탈 수준으로 가져온 거라 그만큼 좋은 결과를 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욕만 먹고 건설 그룹이 흔들려 LK 관광개발 꼴이 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애초에 하지도 않았는지 내 부름에 달려온 건설 임원들의 얼굴에는 새로운 장난감을 가진 아이들 같은 미소가 가득했다.

“모두 소식은 들으셨을 겁니다. 용산 프로젝트, 결국 우리 손으로 가져왔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회장님.”

“저희가 제대로 해내 보겠습니다.”

하지만 좋은 덕담이나 나누려고 이들을 불러낸 것이 아니다.

“명심하셔야 합니다. 사우디의 메카 프로젝트와 용산 프로젝트. 이 두 개를 동시에 진행시켜야 해요. 나는 그중 하나라도 삐걱거리는 걸 원치 않습니다. 그러니 모두 전심을 다해 진행해 주세요. 만약 용산 프로젝트가 수렁에 빠지는 게 보이면 전 망설이지 않고 중단시킬 겁니다.”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중단을 시켜 버리겠다는 내 일침에 임원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금융과는 다르게 나는 건설 그룹 쪽을 좀 더 바짝 압박하고 있다. 일단 이들은 처음부터 내 사람이 아니기도 했고, 금융과는 다르게 건설은 언제든 나 모르게 뒤에서 다른 짓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항상 경계하고 주시해야 한다.

“지금은 제가 권 대표를 통해서 이틀이나 사흘에 한 번씩 보고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다이렉트로 직접 보고를 듣겠습니다. 그것도 매일이요. 프로젝트 진행 상황을 매일 보고해 주셔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숨기는 게 있다면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예, 회장님.”

“제가 이런 쪽에 민감합니다. 그러니까 솔직하게만 말을 해 주시면 돼요. 당장의 실적으로 여러분을 피곤하게 만들고 싶은 생각은 요만큼도 없어요. 그러니 뭐든 숨기지만 않으시면 됩니다. 그것만 지키면 제 신뢰를 얻게 될 거고, 여러분이 옷 벗을 일도 없어질 거예요.”

당장 실적이 좋지 않은 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가리기 위해, 스스로의 안위를 위해 내게 거짓 보고를 올리거나 아예 말을 하지 않고 숨기는 건 절대 용납할 수가 없다.

나는 경영의 엔진이 바로 신뢰에 있다고 본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면 톱니바퀴가 하나씩 엇박자로 돌아가기 시작하면서 기업 전체에 영향을 끼치게 될 터.

아직 J&H는 완성된 기업이 아니기에 더더욱 조심을 해야 한다.

“자. 그리고 다음 안건은······.”

그렇게 회의를 계속 진행하려는 찰나.

비서실장이 허겁지겁 달려와 조용히 귓속말로 속삭였다.

나는 그것을 듣고 믿을 수 없다는 듯 비서실장을 쳐다보았다.

“그게 정말이에요?”

“예, 회장님. 방금 전 소식이 왔습니다.”

“어디입니까?”

“강남 세브란스라고 합니다.”

나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영문을 몰라 하는 임원들에게 말했다.

“다들 따라 나갈 준비 하세요.”

“왜 그러십니까, 회장님?”

“이강철 회장님이 쓰러지셨다고 합니다. 아마 조만간 돌아가실 것 같다네요.”

그 말에 임원들의 얼굴에 핏기가 사라졌다.

예전에 모시던 주군이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소식에 충격을 먹은 것이다.

나는 임원들과 함께 빠르게 회사 밖을 나섰다.

어쩌면 우리가 도착할 때쯤이면 이강철 회장은 삼도천을 건너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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