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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 천재가 되었다-108화 (108/200)

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108화

나와 손을 맞잡은 안영상 회장.

내가 빳빳한 자세와 굳은 표정을 보여 주니, 그는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말했다.

“뭐 기분이라도 상하셨나? 내가 이렇게 퍼뜩 불러내서?”

“기본 아닐까요? 적어도 제가 누굴 만나는지는 사전에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솔직히 좀 불쾌하군요.”

“애초에 회장이란 양반이 아랫것을 시키지 않고 직접 협상을 하겠다고 테이블에 나오는 게 문제지. 안 그래?”

그는 내 자리를 가리켜 주었다.

“일단 앉지.”

안영상 회장은 사람을 앉혀 놓고 담배부터 물었다.

실내에서 담배를 뻑뻑 피워 대는 것도 문제지만, 손님이 왔으면 자중을 하는 게 정상 아닌가?

“자네가 억울할 게 뭐가 있어? 억울한 건 나야. 자네를 이렇게 불러들이는 게 얼마나 자존심 상하는 일인지 알아?”

“어째서 그렇습니까?”

“몰라서 묻나? 서로 급이 다른 인사들끼리 한 자리에 마주하는 것만큼 불쾌한 게 또 없지.”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

3대를 이어 오는 재벌가 회장이라고 해도 그렇지, 이렇게나 개념이 없을 수 있단 말인가.

소문으로는 좀 들었어도, 이 정도로 사람이 막장일 줄은 몰랐다. 하지만 그의 막장력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실무진들한테 들었어. 30% 가격만 쳐 주겠다고 했다지?”

“예.”

“뭐, 나도 100% 다 받을 생각은 없네. 그러니 60%로 하지.”

“싫습니다.”

“줄 때 받아. 60%도 내가 많이 양보한 거야.”

“오히려 양보하는 건 접니다. 30%로 드리는 것도 제가 양보를 많이 하는 거죠. 60%로 달라고 할 게 아니라, 30%라도 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시는 게 맞습니다.”

안영상 회장은 물고 있던 담배를 내려놓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뭐야? 고맙다고 인사?”

“제가 아니면 어차피 돈 한 푼 받지 못할 지분 아닙니까?”

“하! 내가 그깟 돈이 아까운 줄 알아?! 오히려 이번 프로젝트에 욕심을 내는 건 너잖아. 그래서 그냥 불에 태워 버리려고 한 지분을 던져 주겠다는데, 감사하다고 넙죽 엎드려도 시원찮을 판에 그따위 말을 해!?”

처음부터, 그리고 지금도 이 양반은 선이라는 걸 모른다.

태어났을 때부터 금수저로 태어나 고생 한번 해 보지 않고 회장 자리까지 올랐을 테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성격이 파탄 난 놈이라면 병원에 가서 검사라도 받아야 하는 거 아닐까?

“거기까지만 듣죠. 말도 통하지 않는 꼰대랑은 더는 대화를 이어 가고 싶지 않습니다.”

“뭐, 뭐야?! 너 지금 뭐라고 했어!”

“귀도 먹으셨습니까? 나이도 드실 만큼 드신 분이 개념이라는 걸 아주 말아 드셨군요. 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사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아무튼, 회장님 뜻은 잘 알겠습니다. 저한테 팔 생각이 없으시니, 저도 그럼 용산 프로젝트에서 손을 떼야겠네요.”

역시 시간 낭비였다.

이런 상종도 하지 못할 인간과 같은 공기를 마시고 있다는 게 끔찍할 뿐이다.

그는 내 뒤통수에다 대고 버럭 소리를 질러 댔다.

“이 새끼가 미쳤나. 밑바닥에서 구르던 놈이 그 자리에 앉으니까 뭐라도 된 줄 알아? 그래 봐야 넌 천민이야. 너희들과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신분이 다르다고! 감히 주제도 모르고 내게 그따위 말을 해? 넌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내가 가만 안 둘 테니까!”

“예. 그 높으신 신분으로 잘 먹고 잘사시기 바랍니다. 똥이 무서워서 피한답니까? 더러워서 피하지.”

“이, 이 새끼가 끝까지!”

혈압이 잔뜩 올라 쓰러질 것처럼 소리를 지르는 안영상 회장을 놔두고 나는 회장실 밖을 나섰다. 밖에서도 들리는 고성에 하얗게 얼굴이 질려 있던 권오준 대표가 내게 따라붙어 물었다.

“회장님. 괜찮으십니까?”

“예. 괜찮습니다.”

“안에서 엄청나게 큰 소리가 들리던데······.”

“오늘의 성과라고 하면, 안영상이란 인간이 얼마나 저급한 놈인지 알게 되었다 정도일까요?”

“회장님께서 그 정도로 화를 내신다면 안 회장이 어떻게 행동했는지 안 봐도 뻔하군요.”

“예. 얼른 나갑시다. 이 비열하고 더러운 회사에 오래 머무르고 싶지 않네요.”

나는 권오준 대표와 빠르게 회사를 나와 차량에 올랐다.

그리고 안에서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권 대표에게 전부 말해 주었다.

얼마 안 있어 권오준 대표도 나와 마찬가지로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저도 몇 번 들은 적은 있습니다. 안 회장 인성이 아주 개판이라고 말입니다. 회사 물려받기 전에도 허구한 날 사고를 친 전적이 있다고 하더군요.”

“예. 저도 듣긴 했는데, 듣던 것 이상으로 개념이 없어요. 저쪽 임원들은 하루하루가 지옥일 겁니다.”

“그런데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아무래도 다 나가리 된 거 같은데요?”

“안 회장이 저런 식으로 나오는데 제가 굳이 굽힐 필요 있을까요? 용산 프로젝트가 별로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최악이더군요. 그냥 포기하렵니다. 대신, 그냥 포기하는 건 적성에 안 풀려요.”

내 말을 금방 알아들은 권 대표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못 먹는 감 찔러나 봐야죠. 제가 김 장관을 압박해 보겠습니다. 아마 청와대에서 막판에 일이 LK 그룹 때문에 엎어진 걸 알면 아주 극대노를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예. 언론을 보니까 당장이라도 우리 J&H가 프로젝트를 가져가서 창조 경제의 시작을 알린다는 것처럼 떠들어 대던데, 청와대는 뒤통수 제대로 맞은 느낌이 들 거예요.”

청와대는 이번 프로젝트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니 내가 과한 요구를 해도 웬만하면 수용해 주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이번에는 정부의 뜻에 따라 발을 맞춰 주려고 했는데, 막판에 와서 LK 그룹이 뒤집어 버렸다.

가뜩이나 소송을 걸고 검찰을 들쑤셔 놓은 LK 그룹이 결코 좋게만 보이진 않을 터

이번 기회에 청와대도 재벌을 상대로 힘자랑을 한번 할 때가 오긴 했다.

“김 장관한테 어필을 하세요. 친재벌이라는 오명을 청와대도 벗어야 하지 않겠냐고 말입니다. LK 그룹 정도면 조금 털어도 먼지가 왕창 나오지 않겠어요?”

“청와대가 발끈할 정도로 제가 말을 전달해 보겠습니다.”

“예. 안 회장이 화병으로 쓰러질 정도로 청와대가 방망이 좀 휘둘러 줬으면 좋겠네요.”

안 회장은 LK 그룹의 힘을 믿어 의심치 않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정부와 정면으로 부딪치게 되면 결국 상처를 입는 것은 LK가 될 것이다.

* * *

“이런 싸가지 없는 새끼 같으니라고!”

이진석 회장이 안 회장과 한바탕 말싸움을 벌이고 회장실을 떠났다는 얘기를 듣고 임원들은 후다닥 달려왔다.

그들은 손에 잡히는 물건이란 물건은 전부 다 던지는 안 회장을 보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저 성질머리로 또 일 하나를 그르친 게 틀림없다.

“회장님. 진정하십시오.”

“진정? 지금 내가 진정하게 생겼어!? 그 천하디천한 놈이 감히 내 앞에서 눈 똑바로 뜨고 그따위 말을 지껄였는데!”

임원들은 1시간 동안 회장을 달래며 간신히 그의 화를 진정시킬 수 있었다.

“60%요?”

“그래. 60%만 달라고 했지. 그런데 그 건방진 놈이 30% 아니면 절대 하지 않을 거라며 밖을 나가 버리더군.”

“회장님. 아무리 그래도 60%는 조금 높지 않았을까요?”

“뭐야? 지금 넌 누구 편을 드는 거야?”

“그, 그건······.”

“그놈이 그 정도 성공을 이뤄 낸 건 다 내 덕분이야. 내가 LK 금융을 넘기지 않았으면 지금쯤 이도 저도 아닌 놈이 되었겠지. 이제야 인간 노릇을 조금 하게 해 줬더니, 은혜도 모르고 까불어 대다니.”

안영상 회장은 다시 곱씹어 봐도 화가 솟구쳐 담배를 계속해서 피워 댔다.

하지만 임원들은 점점 똥줄이 타들어 갔다.

“회장님. 저희가 그 프로젝트에 쏟아부은 돈이 꽤 되지 않습니까? 30%라도 돌려받는 게 낫지 않을까요?”

“아니. 이 새끼들이 아까부터 뭐라고 지랄을 떠는 거야? 그깟 돈이 아까워서 내가 그 시퍼렇게 어린놈한테 머리라도 숙이라고?”

“머리를 숙이는 게 아닙니다. 그냥 적선한다 생각하시고······.”

“입 닥쳐!”

안 회장이 재떨이를 던져 버리자 임원들은 모두 입을 꾹 다물었다.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그냥 이거 치워 버려. 소각되든 말든 알아서 하라고 해. 그리고 소송은 계속 진행한다.”

거기서 화가 풀리지 않은 안 회장이 임원들에게 다른 명령도 남겼다.

“검찰한테 돈 좀 찔러. 아무래도 이진석 그 새끼를 가만 놔두면 안 될 거 같아. 뭐라도 털어서 나오면 수사하라고 해! 금융계에서 몸 구른 놈치고 먼지 안 나오는 새끼 없어.”

“저번에 이미 검찰이 크게 수사를 한 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때 무혐의로 전부 풀려났는데······.”

“그래도 털라고 해! 분명 뭐라도 나올 거 아니야! 그 새끼가 다니는 유흥업소도 알아내서 어떻게든 이미지에 스크래치를 내라고! 다들 명심해. 며칠 내로 그 새끼 얼굴이 뉴스에 대문짝만하게 나오지 않으면 당신들 전부 다 모가지 날아가는 거야. 알겠어?!”

안 회장의 호통에 임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회장실을 나왔다.

그들은 전부 회사 밖을 나설 때까지 한마디도 나누지 않다가, 마침내 그 지긋지긋한 곳을 빠져나와 입에 담배를 물고 나서야 불만을 토로했다.

“미친 거 아니야? 저 영감탱이가 또 지랄이네.”

“이진석 그 양반, 듣기에는 아주 사람이 좋다고 하던데. 그런 사람이 자리를 박차고 나갈 정도면 또 안 회장이 개지랄을 떤 거겠지.”

“인성 좋은 새끼가 30%로 가격을 후려치냐? 솔직히 30%는 선 넘은 거지.”

“아니. 어차피 가만 놔두면 휴지 되는 것들 아니오? 30%도 많이 준 거지. 안 그래?”

임원들은 서로 담배 연기를 나누면서 갑론을박을 펼쳤다.

하지만 하나로 의견이 모이는 건 안영상 회장에 대한 평가였다.

“니미. 내가 그냥 그만둬야지.”

“귀신은 저런 새끼 안 잡아가고 뭐 하나?”

“그런데 이제 정말 어떻게 되는 거야? 이대로 쫑 나는 건가? 30%로 줄 때 좀 받지, 그놈의 성격은.”

“문제는 이번 프로젝트를 청와대가 신경 쓰고 있다는 거지. 괜히 이러다가 한바탕 칼바람이 부는 건 아닌지······.”

“정말 그랬다가는 나 그냥 안 죽어. 저 새끼라도 데리고 같이 뒤질 거야.”

“어휴. 상상만 해도 끔찍하네.”

임원들도 조금은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 프로젝트가 엎어지면 과연 청와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중요한 포인트인데, 그저 조용히 넘어가기를 기원할 뿐이었다.

“그래도 설마 무슨 일 있겠어?”

“몇 년 전에 버려진 프로젝트인데. 그나마 우리가 조금 드세운 건 맞잖아. 청와대도 양심이 있으면 우리 뒤통수 치면 안 돼.”

임원들은 괜찮을 거라고 위안 삼으며 퇴근길에 나섰다.

그렇게 이틀이 지난 뒤였다.

해외로 여행을 떠났던 안 회장이 서둘러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임원들을 소집해 목이 찢어져라 소리쳐 댔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이진석 그 새끼를 털어 보라고 했는데, 저 새끼들이 왜 우리를 터는 거야!!”

안 회장의 얼굴에 당혹감이 가득했다.

그건 임원들도 마찬가지.

그들이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벌어진 것이었다.

검찰이 갑자기 익명의 투서를 받았다는 핑계로 LK 그룹 수사를 시작했다.

“J&H가 청와대에 말을 전한 거 같습니다. 다 된 거래인데, 막판에 LK가 엎었다면서······.”

“뭐?! 청와대는 그 새끼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서 지금 힘자랑 한번 해 보겠다는 거야, 뭐야! 내 이럴 줄 알았지. 유미화 그 여자는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그래서 당신들은 그냥 멍하니 지켜만 볼 거야? 뭐라도 해야지!”

“회장님. 상황이 심상치 않습니다. 저희도 전화를 여러 번 돌려 봤는데, 검찰 쪽에서 전부 등을 돌렸어요.”

“청와대가 다이렉트로 수사를 꽂은 게 맞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우리 그룹을 대놓고 수사할 순 없을 겁니다.”

임원들의 말에 그제서야 안 회장도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다.

“그럼 이제 어쩌자고?”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요?”

“기다려?”

“예. 분명 일방적으로 때리진 않을 겁니다. 한번 겁부터 주고 협상할 만한 뭔가를 던져 주겠죠.”

안 회장은 답답함에 크게 한숨을 내쉬며 담배를 물었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 모든 일을 자신이 초래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반성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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