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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 천재가 되었다-104화 (104/200)

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104화

쉬지 않고 위협적인 발언을 쏟아내는 북한 탓에 주식 시장은 한동안 폭락을 이어 갔다. 그러나 조금씩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도 점점 익숙해져 갔다.

북한이 말만 저렇게 늘어놓고 막상 행동에는 나서지 않는다는 걸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한 사람들의 마음은 항상 주식 시장에 잘 반영된다.

추락을 거듭하던 코스피 지수가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고, 우리나라에서 완전히 손을 털었던 외국인 투자자들도 북한이 블러핑을 친다는 것을 깨닫고는 허겁지겁 돈을 싸 들고 돌아왔다.

공포에 사로잡혀 보는 눈을 잃었던 개미들도 뒤늦게 개안을 하고는 외국인들을 따라 다시 시장에 돈을 퍼붓기 시작했다.

“정말 엄청나게 벌어들였습니다. 회수한 10조 원을 재투자해서 3배 이상을 벌었다고 합니다. 이거, 이번 실적 발표 때 또 한 번 모두를 놀라게 만들 것 같습니다.”

10조 원을 재투자해 3배가 넘는 이익을 챙겼다.

내 기준으로는 조금 아쉬운 수치였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어마어마한 성과를 올린 건 확실했다.

단기간에 20조 원에 달하는 이익을 챙겼으니 말이다. 이건 대한민국 금융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사건이다.

물론 이 20조 원을 전부 회삿돈으로 챙길 수 있는 건 아니다. 이 중에서 절반 이상은 고객들의 돈이다. 그들이 원한다면 그 돈을 각 통장에 쏴 줘야 한다. 그래도 수조 원의 이익을 챙겼고, 이것으로 우린 새로운 걸 시작할 수 있게 됐다.

“통곡 소리가 잦아들 때까진 최대한 언론에 우리가 많은 돈을 벌었다는 사실이 새어 나가서는 안 됩니다.”

“예. 보통 이런 일이 생기면 사람들은 누군가의 탓을 하기 때문이죠. 굳이 우리의 잘못이 아니더라도 희생양이 되어 여론몰이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더욱 조심해 주세요. 괜히 여론이 나빠져서 손해를 볼 순 없으니까요.”

우리는 세상의 흐름을 잘 알고 있다.

모든 사람에게는 이런 마인드가 존재한다.

나는 구렁텅이에 빠졌는데, 왜 너는 같이 빠지지 않았느냐?

이번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다들 나락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을 때 우리만 떵떵거리며 누워 있는다면 공분을 사게 될 것이 뻔하고, 별의별 루머들이 다 돌아 J&H를 갉아 먹을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은 언론 통제를 하여 최대한 그런 비난의 화살에 맞지 않게 수그리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금융사 직원들은 지금 곡소리를 내고 있을 때, 우리 J&H 직원들은 한창 축배를 드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곧 터져 나올 성과급이 꽤 된다는 걸 다들 알고 있는 거죠.”

권오준 대표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회사의 이익은 곧 직원들의 이익으로 돌아간다. 특히 금융사는 기본 월급보다 성과급이 훨씬 더 많이 나오기 때문에 아마 며칠 동안은 축배를 드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

그와 반대로 다른 금융 회사들은 지금 초상 분위기라서 숨소리 한 번 내기 힘들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천하 금융은 어떻습니까?”

“천하 금융이요?”

“예. 그쪽은 우리가 꼬리를 살살 흔들었는데도 넘어가지 않았어요. 다른 금융사들이 이 악물고 블루칩을 쓸어 갔을 때도 그쪽에 손 한 번 대지 않았습니다.”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다른 금융사들이 단체로 몰려와 열심히 블루칩을 쇼핑해 가는 동안, 천하 금융은 아주 꼿꼿한 자세로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분명히 금융에서 돈을 굴리는 사람이라면 블루칩에 욕심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는데 말이다.

당연히 나는 그쪽에 흥미가 생길 수밖에 없었고, 이번에는 어떤 행동을 보여 줄지도 궁금했다.

“방금 알아봤는데······ 하하. 이거 좀 그림이 웃깁니다.”

“왜 그렇죠?”

“우리와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답니다. 들고 있는 블루칩은 전부 킵해 두고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주식들을 선별해 마구 쓸어 담았다고 하더군요. 아마 천하 금융 장기철 사장도 회장님과 같은 생각이었던 모양입니다. 위기가 곧 기회로 바뀐다는 걸 눈치챈 거죠.”

“그럼 거기도 이익을 꽤 봤겠네요?”

“예. 아무래도 그렇겠죠. 하지만 우리만큼은 아닙니다. 우린 아예 싹 다 팔았다가 저점을 찍었을 때 다시 사들였으니까요.”

권오준 대표는 오히려 이 상황을 좋게 받아들였다.

“그렇지 않아도 다른 금융사들이 우리를 물어뜯을까 봐 조금 걱정했는데, 이렇게 되면 천하 금융도 덩달아 욕을 먹게 되니, 함부로 언론 플레이를 할 수 없을 겁니다. 그랬다가는 천하 그룹과 전쟁을 하겠다는 뜻일 테니까요.”

천하 금융은 천하 금융이란 말인가.

그들이 우리와 비슷한 행동을 취해 준 덕분에 다른 금융사들이 우릴 공격할 여지를 남겨 주지 않게 되었다.

천하 금융이 곧 우리의 방패막이가 된 셈이다.

“그리고 정부랑 엎치락뒤치락하던 LK 관광개발이 최종 부도를 냈답니다.”

용산 프로젝트에 최대 주주로 엮여 있던 LK 관광개발은 이미 몇 주 전부터 부도를 내겠다고 으름장을 내놓고 있었다. 그러면서 정부와 여러 협상을 이어 왔던 거 같은데, 결국 참지 못하고 부도를 내 버렸다.

“결정적인 책임은 전부 한국철도공사에 있다며 소송까지 걸었답니다. 제대로 붙어 보겠다는 거죠.”

“뭐, 그런다고 해서 달라질 게 있을까요? 한쪽만 잘못한 게 아니라 양쪽 모두 일을 잘못했기 때문에 그 상황까지 몰린 거지 않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그냥 시위하는 겁니다. 너도 한번 엿 먹어 보라는 거죠. 아무튼, 김 장관 똥줄이 꽤 많이 타겠습니다. 북한 사태 때문에 우리한테 제대로 말도 못 하고 있다가 일이 이렇게까지 커진 거니까요.”

나는 북한 사태가 터지기 전에 김 장관으로부터 연락이 올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저울질을 하다가 내게 연락을 넣을 타이밍을 놓쳤다.

“저희가 최대한 편의를 봐 준 것도 있는데, 김 장관은 간만 보다가 우리 쪽에 아예 연락도 안 넣었어요. 좀 괘씸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번 프로젝트는 포기하시려고요?”

“어차피 제 프로젝트도 아니었습니다. 포기할 것도 없어요. 김 장관이 발만 동동 구르는 거죠 뭐.”

“J&H 건설 임원들은 많이 아쉽겠군요. 이리저리 준비를 좀 해 놓은 것 같던데.”

“그것 말고도 할 일은 많아요. 메카 프로젝트만 신경 써도 거긴 앞으로 10년은 문제없을 겁니다.”

우리가 제안한 프로젝트가 결코 나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끝까지 간을 봤다는 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이번 프로젝트는 그냥 쳐다도 보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저쪽도 결국 필사적인 발버둥을 보여 주었다.

“누가 찾아와요?”

“김용권 국토부장관님이요. 그분이 직접 회사까지 찾아오셨습니다.”

“일단 얼른 모시고 오세요.”

1층 로비 상황을 전해 주던 비서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가득했다.

일반인도 아니고 무려 장관이란 양반이 미리 전화 한 통 없이 찾아왔으니 말이다.

“그 양반은 예의를 모르는 건지, 아니면 그만큼 급했던 건지······.”

권오준 대표는 투덜거리면서도 당장에 웃음보가 터질 것처럼 보였다.

김 장관이 여기까지 뛰어왔다는 건 위에서 엄청난 압박을 받았다는 것이고, 그 말은 J&H 말고는 선택권이 없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이번에 J&H 금융은 큰 투자 수익을 올리지 않았던가. 그 소식이 분명 김 장관의 귀에도 들어갔을 것이다.

“회장님. 이렇게 불쑥 찾아와서 정말 죄송합니다.”

김 장관은 저번보다 더욱 예의 갖춘 모습으로 내게 허리까지 숙였다.

나는 그를 얼른 일으키며 대꾸했다.

“왜 이러십니까. 그냥 전화 한 통화만 해 주셨으면 제가 바로 달려갔을 텐데요.”

“아닙니다. 급한 사람이 먼저 와야죠. 누가 감히 쩐주를 오라 가라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말하는 걸 보니 어지간히 급해 보이긴 한다.

“자. 일단 앉으시죠. 가볍게 차라도 한잔하시고요.”

“그냥 냉수로 주십시오. 속이 좀 타는군요.”

“그럴까요?”

비서가 얼른 시원한 냉수 한 컵을 가져오자 김 장관은 단숨에 들이켰다.

나는 권오준 대표와 슬쩍 눈빛 교환을 한 뒤 말문을 열었다.

“소문은 들었습니다. LK 관광개발이 좀 세게 나온다고 하던데요?”

“하-. 그렇지 않아도 그것 때문에 골치가 아픕니다. 그래도 LK가 대기업이지 않습니까? 관광개발이 저렇게 무너졌으니, 뭐라도 부숴야 직성이 풀리는 모양입니다. 지금 소송도 걸고 검찰까지 쑤셔서 아예 개싸움을 만들려 하고 있어요.”

“그렇군요.”

난 소파에 몸을 기대고 여유롭게 커피를 홀짝였다.

어차피 남의 일이지 않은가?

김 장관은 그런 내 모습에서 뭔가를 느꼈는지 더욱 절절하게 말했다.

“그래서 회장님에게 달려온 겁니다. 그렇지 않아도 저번에 보내 주신 계획안을 검토 끝내고 연락을 드리려 했습니다. 회장님이 나서 주셔서 그 계획안대로 일을 진행하신다면 교통 정리가 깔끔하게 될 것 같은데······.”

“음. 그런가요? 제가 끼어들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오지 않았습니까?”

“전혀 아닙니다. 건물 철거하고 땅 들어낸 거밖에 없어요. 아직 벽돌 한 장 쌓지도 않았고요. 인수인계받을 것도 거의 없습니다. 그냥 이미 일구어진 땅에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어떻게든 나를 살살 유혹해 보려고 했지만,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나는 들고 있던 잔을 내려놓고 미소를 지었다.

이 양반한테 따끔하게 한 소리는 해야 하지 않겠는가?

“장관님.”

“예, 회장님.”

“임을 부르던 기차가 이미 멀리 떠난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으십니까?”

그러자 김 장관의 표정이 꽤 볼만해졌다.

그는 내가 무슨 뜻으로 이런 말을 하는지 잘 알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아예 노골적으로 나갔다.

“솔직히 저는 며칠 내로 연락이 올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장관님께서는 끝까지 저울질을 하시더군요. 이미 다 끝난 프로젝트에 저울질할 게 대체 뭐가 있었던 겁니까? 그렇게 살살 간을 보다가 미끼를 던지면 저희가 덥석 물 줄 아셨어요?”

“회, 회장님.”

“그래서 조금 화가 나기도 했고, 사실 궁금하기도 합니다. 왜 그렇게 시간을 끄셨는지.”

김 장관은 곤란한 얼굴로 고민하다 결국 눈 질끈 감고 실토했다.

“사실 청와대에서 J&H 건설이 개입하는 걸 원치 않는 듯했습니다.”

“그건 장관님 뇌피셜입니까? 개인 추측으로 하시는 말씀이냐고요.”

“그게······.”

나는 상을 한 번 내려치며 언성을 높였다.

“장관님. 저도 자존심이라는 게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계속 숨기기만 하신다면 제가 장관님과 어떻게 편을 먹을 수 있겠습니까?”

김 장관의 나이가 나보다 얼마나 많든, 사회적 지위가 얼마나 높든 상관없다. 지금은 내가 갑이고, 그는 을이다. 그리고 갑은 항상 목청을 높여 상대를 몰아붙일 수 있는 힘이 있다.

거기다 무작정 몰아붙이는 건 하수가 하는 짓이다. 넌지시 우리가 함께 편을 먹자는 의중을 보여야 상대도 눈을 번뜩인다.

“그 말씀은 절 책임져 주시겠다는 뜻입니까?”

이번 사태를 책임지고 김 장관이 사퇴할 가능성이 높다.

아마 김 장관으로서는 상상하기 싫은 미래일 터.

“그건 장관님의 태도에 달리지 않겠어요? 제 스타일은 확고합니다. 한 번 저와 손을 잡은 사람의 뒤통수는 때리지 않아요.”

그제서야 김 장관도 넥타이를 조금 풀고 허심탄회하게 속내를 드러냈다.

“청와대에서 노골적으로 J&H를 배제하라는 압력을 줬습니다. 사실, 저는 회장님이 주신 계획안을 보고 정말 마음에 들었거든요. 용산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너무 장황했어요. 현실 가능성이 없었죠. 그러나 J&H의 계획안은 충분히 실현 가능한 이야기였습니다. 시간만 잘 들인다면 초기 계획안처럼 정말 대단한 도시를 세울 수 있을 겁니다.”

이번에도 역시 청와대인가.

김 장관은 그동안 말 못 한 사정들을 하나둘 토해 내며 나와의 오해를 풀고 동시에 손을 잡으려 했다.

그리고 마지막 말이 내 귀에 쏙 들어왔다.

“지금 청와대도 두 손 두 발 다 들었습니다. 누가 되었든, 일단 이 프로젝트만 맡아 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달려올 수 있었던 거고요.”

그 말인즉슨 내가 어떤 요구를 해도 청와대는 들어줄 의향이 있다는 뜻이다.

권오준 대표도 그곳에 숨겨진 뜻을 파악하고는 눈을 반짝였다.

나 역시 눈을 반짝이며 우린 서로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우리도 청와대를 등쳐먹을 기회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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