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103화
일주일 동안 주식 시장은 별다른 사건 없이 상승세를 이어 갔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고, 그 정권은 총선까지 승리했다. 또한 대통령이 발표한 창조 경제의 계획으로 4차 산업에 적극적인 투자를 장려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 코스피 지수와 코스닥 지수 모두 상승했으며, 지금은 그 어떤 주식을 사도 상승 효과를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시기였다.
당연히 바보가 아닌 이상, 우리 J&H 금융이 내놓은 블루칩을 타 금융사들이 모조리 쓸어 갔을 것이다.
한 가지 의외인 건 천하 금융이 우리가 건네는 블루칩을 단 한 주도 건드리지 않았다는 거다.
무슨 낌새라도 느낀 것일까?
그들은 아마 오늘 오후부터 놀란 가슴을 쓸어내릴 것이다.
오전 11시 50분.
아직까지는 평화로운 주식 시장.
그러나 정확히 5분 뒤, 평화로웠던 주식 시장이 대혼란을 맞이하게 되었다.
-오늘 오전 11시 50분. 북한이 또 한 번 핵 실험을 강행했다고 정부가 발표했습니다.
-저번 핵 실험보다 몇 배는 더 강력한 핵 실험으로 밝혀졌으며, 북한은 성공적인 실험을 진행했다는 발표도 내놓았습니다.
연이어 날이 선 발언으로 한국 정부에게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던 북한이 드디어 사고를 치고 말았다.
저번 핵 실험도 최대 규모라고 알려졌었는데, 이번에는 그보다 더 큰 핵 실험을 벌여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한술 더 떠서 북한 정부는 단시일 내에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고 미국 뉴욕 또한 핵미사일로 초토화시키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당장 핵미사일을 발사해 전쟁을 일으킬 것처럼 북한이 행동에 나서자 주식 시장은 3일 동안 대폭락을 거듭했다.
북한은 쉬지 않고 전쟁을 일으킬 거라며 떠들어 댔고, 미국은 북한의 핵미사일로 멸망할 거라며 자신감까지 드러냈다.
그들이 군사들을 전방에 배치하고 포문을 활짝 열어 놓기까지 하자 우리나라 정부도 후다닥 방어 태세에 나서면서 더욱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이러다 곧 예비군 비상소집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면서 사람들은 전부 패닉에 빠졌다. 벌써부터 해외로 도피를 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분위기가 매우 험악했다.
“이거 정말 전쟁이라도 일어나는 건 아니겠죠?”
“걱정되십니까?”
“분위기가 너무 험악해서 말입니다. 저번에도 이런 비슷한 일이 있긴 했지만, 이 정도로 심각하진 않았어요. 흡사 연평도 포격 때를 보는 것 같군요.”
2009년이 있었던 연평도 포격 사건.
그날 주식 시장이 완전 개박살 났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번에도 그때와 같습니다. 북한이 저러는 게 한두 번이던가요? 지금은 많이 출렁일지 몰라도 결국 거기서 끝납니다. 저 나라가 원하는 게 뭔지 세상 사람들이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그거 달라고 칭얼대는 거고요. 분명 저러다가 말 겁니다.”
“회장님은 언제나 참 침착하시네요. 그런데 혹시 이럴 줄 알고 계셨습니까? 북한이 핵 실험 한다는 거요.”
“아뇨. 몰랐는데요?”
“아니. 타이밍이 너무 절묘하지 않습니까? 갑자기 블루칩을 전부 다 시장에 던져 놓으셔서 금융사들이 날름 그걸 삼켜 버렸어요. 근데 지금 보십시오. 저희가 던진 블루칩이 전부 대폭락을 이어 가는 중입니다.”
70만 원을 호가하던 현광 자동차의 주가가 어느새 30만 원까지 폭락했다. 그리고 120만 원을 호가하던 천하 전자의 주식 역시 60만 원대로 추락했다.
온 국민이 전쟁의 공포를 피부로 느끼고 있는 것이고, 그 증거가 바로 주가였다.
정말 전쟁이 일어나 한국이 멸망할 거라는 믿음에 사로잡힌 외국인들이 갖고 있는 주식을 전량 팔아넘기면서 발생한 부작용이었다.
“지금 금융사들도 전부 난리입니다. 다들 들고 있는 지분을 내놓고 파느라 여념이 없어요.”
“우리한테서 블루칩을 사 간 금융사들이 불나게 전화를 걸더군요. 도로 가져가라고 말입니다.”
임원들은 아주 재밌어 죽겠다는 얼굴이었다.
그러면서 그들의 눈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대체 내가 어떻게 알고 이렇게 일을 꾸몄는지 말이다.
“회장님의 설계가 너무나도 완벽했습니다. 다른 금융사들은 지금 엄청난 피해를 보고 있는데, 저희는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어요. 약간의 타격이 있긴 하지만, 다른 곳에 비하면 정말 미미한 수준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타격을 입지 않았다는 것에 안주해선 안 된다.
“그 말은 저희도 마이너스라는 거네요?”
“예? 그거야 아주 미미한······.”
“전 파란색이 무척 싫습니다. 빨간색이 좋아요. 파란색을 보면 항상 지표가 마이너스로 향하는 것처럼 보여서 말이죠.”
그들은 웃는 얼굴을 싹 지우고 진지하게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지금 금융사에서 다시 저희에게 돌려주겠다는 블루칩들, 싹 다 가져오세요.”
“예?”
“회장님. 어디까지 추락할지 모르는 주식들을 다 가져오라는 말씀이십니까?”
임원들은 적잖게 당황한 목소리를 냈다.
왜 이들은 그 뒤에 숨겨진 내 뜻을 읽지 못할까?
“권 대표님. 천하 전자가 망할 거 같습니까?”
“아니요. 하지만 정말 전쟁이 일어난다면 망할 수도 있겠죠?”
“글쎄요. 우리나라가 망해도 천하 그룹은 망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있죠? 그리고 생각해 보세요. 정말 전쟁이 터진다면 여기 있는 우리들 중 몇이나 살아남겠습니까? J&H도 분명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겁니다.”
“그건······.”
“그 뜻은 곧 이번 베팅에 실패해도 어차피 다 죽는 시나리오밖에 없다는 겁니다. 반대로 성공한다면? 남들은 겁을 먹고 다 도망쳤을 때, 우리 혼자 보물섬에 있는 보물들을 전부 긁어 오는 거죠.”
우리가 실패했다는 건 결국 전쟁을 통해 대기업들이 죄다 문을 닫았다는 건데, 그렇다면 J&H도 미사일 세례를 맞고 사라진다고 봐야 한다.
즉, 어차피 그렇게 사라지느니 차라리 갖고 있는 돈을 전부 다 베팅을 하여 한 방을 노리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실패하면 다 같이 죽는 거고, 성공하면 큰 수확을 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다른 금융사들은 그 간단한 걸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건 여기 있는 임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저기 회장님. 전쟁이 안 일어난다고 해도 블루칩들이 언제 주가를 복구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실적 발표가 망가진다는 얘기죠?”
“그렇습니다. 실적 발표 때문에 발발 떠는 것이 금융사 직원들 아닙니까? 펀드 매니저들도 고민이 많을 겁니다.”
금융사들이 그렇게 냉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은 다 실적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실적에 집착하지 않는다. 굳이 그럴 필요도 없고 말이다.
“직원들에게 모두 전하세요. 실적은 걱정하지 말고 내 지시에 따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블루칩의 힘을 잊으셨습니까? 지금까지 모진 풍파를 이겨 온 칩들이에요. 이번에도 그럴 거고요. 주가는 금방 정상으로 돌아옵니다. 우린 거기서 엄청난 차익을 챙기게 될 거고요.”
우리가 시장에 내놓은 주식들의 규모만 10조 원이 넘었다.
딱 3배만 남겨 먹어도 30조 원이 넘는다.
그런데 지금 분위기로 봐서는 5배도 가능할 것 같았다.
“실적 걱정은 하지 말고 블루칩은 전부 다 긁어 오세요. 우리가 판매한 양보다 더 많이 끌어 와도 좋습니다. 그리고 블루칩까지는 아니지만, 국가 정세가 안정되면 덩달아 오를 만한 주가들도 싸그리 쓸어 와도 좋고요. 그것을 실적으로 따지겠다고 공지를 돌려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야 직원들도 힘을 내서 달리지 않겠어요?”
“회장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임원들은 각자 카트를 끌고 금융사들이 던지는 블루칩을 줍기 위해 쇼핑을 떠났다. 아마 요새 들어 가장 짜릿하고 재밌는 쇼핑이 될 것이다.
* * *
“이진석 이 사람 정보통은 CIA라도 되는 건가? 이걸 대체 어떻게 미리 알아낸 거지?”
북한 핵 실험 이후 한국 주식 시장이 풍비박산 나면서 천하 금융의 임원들은 십 년 감수했다는 표정을 지어야만 했다.
만약 이들이 끈질기게 장기철 사장을 설득해 바닥에 떨어진 블루칩을 죄다 매수했다면 지금쯤 엄청난 손해를 보고 손절을 쳤을 것이다.
그러나 장기철 사장은 이미 일이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기에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다만, 어떻게 이진석이 사전에 정보를 얻었는지가 궁금했을 뿐.
“청와대도 북한이 핵 실험을 진행하려 한다는 걸 사전이 인지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진석이 무슨 수로 알아냈겠습니까?”
“그러니까 하는 말이야. 청와대도 모르는 걸 이진석은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 일이 터지기 전에 블루칩을 전부 다 던져 버리고 옵션 판매까지 중단했어. 사전에 폭탄을 다른 금융사들에게 던져 버린 거야. 덕분에 금융사들은 지금 다 좆 됐고.”
“설마 청와대도 모르는 정보를 이진석이 미리 가졌다고 보기에는······.”
“이상하지? 이놈 정보통이 정말 CIA에 있는 거 아니야?”
농담 아닌 농담이었다.
청와대보다 더 위에 있는 정보통을 이진석은 갖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판을 깔아 놓을 수 없었을 터.
하지만 그런 것이 과연 가능하단 말인가?
어찌 되었든, 천하 금융은 장기철 사장이 이진석의 행동을 기이하게 여겨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덕분에 큰 손해는 면했다. 문제는 지금 그들이 들고 있는 블루칩들이 하락세를 계속해서 이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상태면 이번 분기 때 자판을 두드리면 한숨 밖에 나오지 않을 게 뻔했다.
실적에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임원들에게는 공포스러운 순간이 아닐 수 없다.
“회장님. 우리가 들고 있는 블루칩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마 이번 달은 계속해서 하락세를 유지할 것 같습니다. 거기다 북한이 만약 연평도 때처럼 어디 한 곳이라도 공격하게 되면 그땐······.”
“전쟁이지. 그때 되면 주식이든 뭐든 다 휴짓조각이 될 텐데, 벌써 그 걱정 할 필요가 있을까?”
“예? 그럼 지금 들고 있는 지분을 판매하지 않으시겠다는 겁니까?”
“그래. 원래 기회는 위기에서 온다는 거 당신들도 잘 알잖아. 그동안 이런 충격을 경험해 오면서 다 잊어먹은 거야?”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다.
한국 주식 시장은 항상 큰 충격 이후에 반등을 거듭했다. 이것은 주식의 기본적인 이치였다. 그러나 사람은 공포에 잠식되면 이성을 잃게 된다.
지금 사람들은 언제 한국 주식 시장이 망할지 모른다는 비이성적인 공포에 사로잡혀 있다. 아무리 교육을 잘 받은 엘리트들이라도 이런 공포에는 냉정함을 유지하기 어렵다.
하지만 장기철은 임원들과는 다르게 여기에서 다른 기회를 보고 있었다.
“전쟁? 웃기지 말라고 해. 북한 돼지 새끼들이 쇼하는 게 한두 번도 아니잖아? 그런 거에 또 속아 넘어가는 건 그냥 지능 수준이 낮은 거지.”
“그럼 어떻게 할 생각이신지······.”
“이진석이, J&H가 하는 대로 정확하게 따라 하면 돼. 그놈들은 사전에 이런 일이 터질 거라는 걸 알고 있었어. 아마 지금쯤 마트에서 물건 담듯이 블루칩을 사들이고 있을걸?”
“어디까지 떨어질지 모르는 블루칩들을요?”
“당신들 말대로 어디까지 떨어질지는 모르지만, 언젠가 오른다는 건 알고 있잖아? 그러니까 J&H가 사들이는 거고. 그놈들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 한번 알아봐. 분명히 대량 주식 매수를 하고 있을 거야. 우리도 그걸 따라 하면 돼.”
장기철 사장의 말에 임원들은 결코 좋은 표정을 지을 수가 없었다.
장 사장 말대로 블루칩이 언젠가 주가를 복구한다 해도 그동안의 실적으로 인해 이들의 목이 날아갈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그들의 마음을 헤아린 장기철 사장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1년 동안은 당신들 목을 내가 지켜줄 테니까, 걱정 말고 다들 J&H가 뭘 하고 다니는지 알아 와.”
그제서야 임원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1년의 유예 기간.
그러나 이들이 한 가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재벌 일가의 약속은 항상 바뀌기 쉽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