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97화
클린 히트.
2005년에 설립을 한 이 회사는 아직까지 이렇다 할 성과를 보여 주지 못하는 회사였다.
그것을 증명하듯, 클린 히트가 자리 잡고 있는 회사 건물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내가 이곳을 직접 방문하면서 경호원들이 주르륵 나열되자 꼭 압수 수색을 하러 온 검찰청 직원들 같아 모양새가 조금 웃기긴 했다.
그렇게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나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 5층에 있는 클린 히트 사무실에 들어갔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강시현이라고 합니다.”
날 기다리고 있던 강시현 대표는 벌떡 일어나 내게 인사부터 올렸다.
나도 정중히 인사를 받아 주며 우리 두 사람은 악수를 나눴다.
“많이 누추한 곳이라 괜찮으실지 모르겠습니다.”
“괜찮습니다. 혹시 모르지 않습니까? 이곳이 잘돼서 청담에 큰 빌딩을 세워 이전하게 될지. 세상일은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
“하하. 그렇군요. 세계에서 미다스 손으로 불리시는 회장님이 저희 회사에 투자를 하신다면 분명 그렇게 될 거라 믿고 있습니다.”
나는 강시현 대표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아직 뭘 내세울 수는 없는 처지이지만, 자신감이 가득 차 보이고 무엇이든 열정적으로 실행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의지가 보였다.
“솔직히 아직도 믿기지 않습니다. 대형 기획사들도 J&H에 투자 의뢰를 넣었다고 들었는데······.”
“거기는 이미 완성된 곳이 아닙니까? 여러 곳에서 투자를 받았고요. 전 그런 거 별로 안 좋아합니다. 이왕 투자를 할 거면 화끈하게 해서 아직 성장을 못 한 회사를 키우고 싶습니다. 제가 경영에 조금은 관여할 수 있게 말입니다.”
경영에 관여를 한다는 말에 강시현 대표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런. 제 스타일을 잘 모르시는군요. 이제까지 대대적으로 투자한 곳마다 전 항상 경영에 조금이라도 참여를 했습니다. 들어보니, 대표님 사촌이 캣마블에서 대주주이고 이사직까지 맡고 있다던데, 혹시 못 들으셨습니까?”
“아. 조금은 들었습니다. 그런데 근무 환경을 바꾼 것 빼고는 전혀 터치를 안 하셨다고 하더군요. 투자금을 확실하게 챙겨 주셔서 게임 개발이 무척 수월했다고······.”
“예. 저는 대표님의 경영 철학을 건들 생각이 없습니다. 그리고 원한다면 직원들의 근무 환경을 개선해 줄 수도 있고요. 다른 주주들처럼 경영에 깊이 관여하는 것도 사절입니다. 제가 이리저리 하는 일이 많아서 크게 신경을 못 쓸 거 같거든요.”
그제야 강시현 대표의 얼굴이 풀렸다.
그러나 내가 경영권을 쥐고 흔들 수 있을 만큼의 지분을 원한다는 건 변함없는 사실.
“대표님께서 90% 이상의 지분을 들고 계신 거로 알고 있습니다.”
“아, 예. 그런데 그중 절반은 은행 쪽에 담보로 잡혀 있죠.”
“그렇군요. 그럼, 제가 그 부채를 해결해서 대표님과 딱 6 대 4로 나누고 싶은데요? 물론 6은 접니다.”
그 말에 강시현 대표는 고개를 흔들었다.
“죄송하지만, 6은 안 될 것 같습니다. 5 대 5라면 받아들이죠.”
“경영권을 걱정하시는 겁니까?”
“처음 회사를 세웠을 땐 은행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온전히 제 돈만 쏟아부은 겁니다. 지금이야 자금이 필요해져서 은행에 신세를 지고 있긴 하지만, 경영권을 빼앗기지 않을 만큼만 지분을 담보로 맡긴 겁니다.”
저건 욕심이라고 보기보다 자신의 경영 철학을 절대 바꿀 수 없다는 뜻이다.
자신의 철학이 곧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걸 강력하게 믿고 있다는 건데, 구태여 그걸 부정하게 만들 필요는 없지 않은가.
“좋습니다. 그럼, 5 대 5로 가죠.”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가격은 어느 정도로······.”
“100억 드리죠.”
강시현 대표의 눈이 번쩍 켜졌다.
“배, 백억이요?”
“적습니까?”
“아니요. 매우 과분할 정도로 많군요. 저희는 아직 대형 기획사도 아니고 보시다시피 이런 작은 사무실에서 바득바득 기어가는 중입니다. 그런데 100억이면······.”
“100억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한번 불이 붙으면 저는 1,000억도 던질 수 있습니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런 소형 기획사에 무려 100억이란 돈이 떨어졌다.
그 돈이면 자신의 철학에 따라 마음대로 음악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대신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조건이면 100억이란 돈을 던질까 싶은 얼굴이다.
“대표님은 보이 그룹이나 걸 그룹을 키워 음악 시장에 내놓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 조금 다른 사업을 했으면 합니다.”
“다른 사업이요?”
또다시 표정이 안 좋아졌다.
“아, 물론 그렇게 돈이 많이 들어가는 건 아닙니다. 혹시 너튜브를 자주 보시나요?”
“물론입니다. 세계 트렌드가 점점 너튜브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앨범이 나오면 무조건 너튜브를 통해 홍보부터 하고요.”
“예. 너튜브가 확실히 세상을 쥐락펴락하고 있죠. 그리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BJ를 시작해 꿈을 이뤄 나가고 있습니다. 저는 그 BJ들이 시대의 목소리가 될 거라 봅니다.”
“그 말씀은······.”
“떡잎이 남다른 BJ들을 클린 히트 기획사로 끌어들이고 싶군요. 알아보니까 유명 BJ들을 스카우트해 기획사로 들여놓는 곳이 늘어나고 있답니다.”
강시현 대표의 얼굴이 조금 미묘하게 바뀌었다.
인터넷 BJ들을 기획사로 들여와 그들을 관리한다라.
“만약 그들 중 정말 유명해지는 BJ들이 있다면 그룹 홍보에도 큰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요?”
“그렇긴 합니다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제안이라서요. 혹시 BJ들에게 관심을 보이시는 이유라도 있을까요?”
“별거 아닙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그들은 차세대 목소리가 될 겁니다. 어린 친구들부터 어른들까지 유명한 BJ들의 목소리를 듣게 되겠죠. 전 그 목소리가 갖고 싶은 겁니다. 아! 물론, 무슨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려고 그러는 게 아닙니다.”
그렇다고 순수히 좋은 의도라고 볼 수도 없다.
강시현 대표가 내 말뜻을 잘 헤아렸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 사람은 지금 눈앞에 100억이 아른거릴 것이다.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수익이 빵꾸가 나면 그 구멍을 제가 알아서 채워 드리죠. 원하시면 투자금을 더 드릴 수도 있습니다.”
“하하. 말씀만 들어도 벌써부터 든든합니다. 그런데 조금 생각할 시간을 주시면 안 될까요?”
“예. 알아보실 만큼 알아보십시오. 그리고 현명하게 선택해 주시기 바랍니다. 단, 이것만 기억해 주세요. 오늘 저와 나눴던 대화를 다른 이에게 흘리지만 않았으면 좋겠군요. 괜히 구설에 오르긴 싫거든요.”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하자 강시현 대표는 움찔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가진 재력과 J&H의 힘이라면 이깟 작은 기획사 하나쯤은 순식간에 사라지게 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럼,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나는 강시현 대표와 만남을 끝내고 차에 올라탔다.
차에서 기다리고 있던 권오준 대표가 호기심 가득 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얘기는 잘 끝내셨습니까?”
“예. 조금 생각할 시간을 달라는군요.”
“허어-. 100억이란 돈을 던졌는데 덥석 물지 않았다고요?”
“제가 BJ들을 기획사에 들여왔으면 하는 게 마음에 걸리는 모양입니다.”
“흠. 눈치가 좀 빠른 사람일 수도 있겠군요.”
“뭐, 제가 꼭 나쁜 의도로 BJ들을 모으는 건 아니니까요. 점점 BJ 생태계가 커지고 있는 만큼 그런 쪽에 기획사를 차리면 금방 성장할 겁니다. 분명 미래가 있는 분야예요.”
나도 퇴근을 하면 너튜브를 보면서 몇몇 BJ들을 구독해 놓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다른 BJ들이 치고 올라오면서 인터넷 동영상과 편집 품질이 지상파보다 훨씬 좋게 변하고 있다는 것도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나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 권오준 대표는 긴가민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저도 오늘부터 너튜브를 유심히 살펴봐야겠군요. 회장님께서 바라보시는 비전이 뭔지 알아내려면 말입니다.”
“예. 한번 봐 두시는 게 좋을 거예요. 그런데 강시현 대표의 평판에 대해서는 좀 알아보셨습니까?”
“아, 네. 여러모로 알아보니, 딱히 하자가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음악에 대한 열정이 넘쳐나고 다른 기획사들처럼 돈놀이를 하려고 마구 그룹을 뽑아내는 곳도 아니라고 합니다. 다만······.”
“다만?”
“야망이 너무 크다고 해야 할까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그런 얘기를 한다는군요. 한국뿐만이 아니라 세계 정상 위에 서는 그룹을 만들어 낼 거라고요. 비틀즈처럼 말이죠. 그래서 망상이 너무 심한 거 같다는 말이 나오곤 한답니다. 지금까지 성과가 크게 없었던 것도 전부 한국보다는 세계를 타깃팅 삼았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었습니다.”
역시, 방금 전 만남에서 느꼈던 것처럼 야망이 큰 사람이었다.
이런 작은 기획사에서 머무는 게 아니라 세계를 아우르는 기획사를 만들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가당키나 합니까? 저번에 우리나라 가수 하나가 빌보드 2위에 올랐다는 건 들었습니다. 근데 세계적으로 코믹 요소가 잘 어우러져서 먹힌 거지, 과연 비틀즈나 퀸 같은 보이 그룹을 만들어 빌보드를 장악할 수 있을까요?”
“글쎄요. 근데 이런 말이 있잖아요. 역사는 항상 미친놈이 만든다고. 어쩌면 그 터무니없는 야망이 정말 현실로 다가올지 누가 알겠습니까. 저도 밑바닥에서부터 여기까지 올라왔는걸요.”
세상일은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은 채 꿈을 꾸는 자는 반드시 뭔가를 만들어 내기 마련.
나는 이 회사가 참 재밌는 사건을 일으킬지 모른다는 직감이 들었다.
꼭 이곳에 투자를 하고 싶다.
* * *
정확히 이틀 만에 다시 연락이 왔다.
아니. 강시현 대표가 직접 J&H로 찾아왔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결정은 하셨습니까?”
“주변에서 이 투자를 받지 않으면 미친놈이라고 하더군요.”
100억이란 돈을 선뜻 건넨다고 한다면 일단 의심부터 할 것이다. 하지만 100억을 건네는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신뢰도가 확 달라진다.
“다른 곳도 아니고 J&H의 이진석 회장님이 건네는 투자금은 그게 설령 사기라고 해도 받아야 한다는 말이 있답니다. 그만큼 회장님의 성공 신화가 대단하다는 거겠죠.”
“하하. 저도 틀릴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주변 평판은 그렇지 않던데요? 제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엄청나시더군요. 그래서 투자 결정을 빠르게 내렸습니다. 그리고 회장님께서 말씀하신 BJ 분야도 알아보니 확실히 미래가 밝아 보이더군요. 왜 진작 그쪽 시장을 생각해 보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요.”
다행히 강시현 대표는 BJ 세계의 미래가 상당히 밝다는 걸 빠르게 캐치해 냈다.
내 투자금 많이 받아내고자 사탕발림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고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BJ들을 영입해 관리하면서 수익을 나눈다면 저희도 큰 이익을 볼 겁니다.”
“그럼, 투자를 받으신다는 거겠죠?”
“예. 회장님의 투자가 결코 틀리지 않았다는 걸 보여 드리겠습니다.”
“좋습니다. 정확한 투자 계획부터 정리해 알려 주십시오. 그것을 한번 검토해 보고 계약서를 작성하게 될 겁니다.”
“예. 감사합니다, 회장님.”
강시현 대표는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여 정중히 인사를 올렸다.
이제 절반은 됐다.
대형 기획사는 아니지만, 열정 넘치는 대표가 있는 작은 기획사를 시작으로 나는 계속해서 돈을 투자해 이곳을 반드시 대형 기획사 못지않은 곳으로 만들 것이다.
“제 투자 스타일은 간단합니다. 대표님이 실패하고 넘어져도 상관없습니다. 저는 대표님의 비전이 이뤄질 때까지 계속해서 돈을 퍼부을 겁니다.”
“저, 정말이십니까?”
“예. 그러니까 시원하게 지르세요. 돈 걱정은 평생 들지 않게 해 드리겠습니다.”
사업하는 사람에게 이보다 더 든든한 말은 없을 것이다.
실패해도 괜찮다.
성공할 때까지 지원해 주겠다는 약속이 얼마나 크게 다가오겠는가.
“아참. 그런데 이번에 새로 준비하고 있는 보이 그룹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아, 예. 세계를 목표로 하는 보이 그룹입니다. 아직 그룹명을 정하진 않았는데, 조만간 이름을 정하고 세계를 목표로 마케팅을 이뤄 나갈 겁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빌보드를 장악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강시현 대표의 얼굴만 보면 이미 자신이 만든 그룹이 빌보드를 점령한 것만 같았다.
저렇게 열정 넘치는 사람을 보면 나도 덩달아 힘이 나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