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95화
“맙소사! 아버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임원들과 연을 끊으신 겁니까? 그들은 한라 중공업과 우리를 이어 줄 유일한 희망이었어요!”
“뭐? 유일한 희망? 이런 한심한 놈! 그러니까 네가 그 모양 그 꼴인 게다! 세상 볼 줄 모르는 놈이 어떻게 한라 그룹을 맡는다는 게냐?”
“아버지!”
이강철 회장의 서재에서 고성이 오고 갔다.
그의 장남인 이상현 부회장은 제 아비의 뜻을 전혀 헤아리지 못하고 있었다.
“후회하실 겁니다! 아버지는 그 젊은 놈한테 한라 그룹을 통째로 넘긴 거나 다름이 없어요! 어떻게 저와 상의 한마디 없이 그런 일을······! 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습니다.”
이상현 부회장은 거칠게 문을 열어 밖으로 나가 버렸다.
이강철 회장은 한심한 제 아들을 붙잡고 싶었지만, 이제 그럴 힘도 없었다.
“할아버지······.”
밖에서 두 사람이 고성을 지르며 싸우는 걸 걱정스럽게 듣고만 있던 이한별이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왔다.
“괜찮으세요?”
“그래. 괜찮다. 잠깐 여기 와서 앉아 보거라.”
아들에게 서슬 퍼런 눈빛을 보였던 이강철 회장이지만, 제 손녀에게는 부드러운 눈길을 보냈다.
“이 회장이랑은 잘 만나고 있고?”
“네? 그게······.”
“왜? 관계가 소홀해진 게냐?”
이한별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대답했다.
“한라 중공업이 J&H에 넘어간 뒤로 조금 관계가 뜸해졌다고 해야 할까요. 아빠도 진석 씨를 마냥 좋게 보는 것 같진 않고요. 그리고 방금도 진석 씨 때문에 싸우신 거 아니에요?”
이강철 회장은 손녀의 손을 따뜻하게 붙잡았다.
그러나 이강철의 몸은 이미 노화되어 더 이상 온기가 뜨겁게 남아 있지 않았다. 그것이 이한별의 마음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그런 건 아무 상관이 없다. 이 할애비가 말했지?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랑 살아야 후회하지 않는다고. 너도 이 회장을 좋아하지? 그런 남자 찾기 힘들 거야. 그렇게 지혜롭고 현명한 사람을 만나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란다. 그러니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네 마음을 따르거라.”
“···예.”
그렇게 할아버지와 정담을 나눈 뒤 이한별은 복잡한 마음으로 서재를 내려왔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이상현 부회장이 다가왔다.
“너 아직도 이진석 그놈 만나고 다니니?”
“응?”
“너 그 자식이랑 당장 헤어져! 그놈 아무래도 우리 그룹을 노리는 거 같다. 겉으론 그렇게 안 봤는데, 아주 속이 시커먼 놈이야. 할아버지를 살살 꼬드겨서 임원들을 다 빼앗아 갔어! 그놈은 분명 한라 그룹을 노리고 있는 거다. 그런 놈이랑은 상종도 하지 마!”
“······.”
“왜 대답이 없어?! 당장 헤어지라니깐!”
순한 양처럼 고성 한번 지르지 않던 이상현이 저렇게 흥분하는 모습은 이한별도 처음 봤다. 그만큼 회사가 벼랑 끝에 몰렸다는 위기감이 있는 것일 터.
한쪽은 마음을 따르라고 하고, 다른 한쪽은 제 마음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이한별은 두 사람 사이에서 큰 고민에 빠졌다.
* * *
[오늘 저녁에 시간 되세요?]
보통 문자를 보내면 10분 안에는 꼭 답을 하는 이한별이었다. 그런데 3일 동안 답장이 없다. 연락을 해 봐도 받지를 않는다.
아무래도 한라 중공업을 인수하고 나서 한라 그룹을 조금씩 압박해 가는 게 마음에 걸린 모양이다. 소문을 듣자 하니 이상현 부회장이 아주 이를 갈고 있다던데, 그 사이에 낀 이한별은 심적으로 힘들 게 분명했다.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생겼다.
하지만 그런 것도 잠시.
나는 한창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뉴스에 시선을 집중했다.
총선이 끝나고 나서 여당은 축배를 높이 들었다.
야당의 반격이 만만치 않기는 했으나, 대통령의 파워는 역시 무시할 수 없었다.
국민들도 바보는 아니다.
자신들이 뽑은 대통령이 힘 있게 하고자 하는 일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여당을 밀어줘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로 인해 여의도에 있는 여당 의원들은 전부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는 상태였고, 야당은 일단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난 채 기회를 노렸다.
당분간 이 나라의 체제는 여당을 중심으로 돌아갈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총선이 끝나고 얼마 안 지나서 일이 하나 터지고 말았다.
“정부는 신속하게 이 사건을 집중 조사해야 합니다. 어떻게 21세기에 여론 조작이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그것도 나라의 위협을 감시해야 할 국정원이 청와대의 수족이 되어 여론 조작에 가담했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저번 정권이 국정원을 동원해 여론 조작에 가담했고, 이것이 차기 대통령 선거와 총선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서울 검찰청 이신열 검사가 처음으로 이 사건을 끄집고 나섰는데, 기회만 노리고 있던 야당은 생각보다 빠르게 약점이 드러나자 신나게 물어뜯었다.
“국회가 특검을 해서라도 명명백백 밝혀야만 합니다. 만일 여론 조작이 사실이라면 총선은 무효로 해야 하지 않습니까? 이건 선거 조작이나 다름없으니까요.”
총선이 끝나고 나서 참 말이 많았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개표함을 폐기해 버리고 투표를 조작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 데다, 이번에 여론 조작까지 터지자 한꺼번에 싸잡아 선거 조작으로 몰아 가는 중이었다.
그러나 내가 볼 땐 지금 야당이 때를 잘못 노린 것 같았다.
선거 조작이라고 백날 외쳐 봐야 바뀌는 건 하나도 없다. 왜냐하면 현 정권이 이제 막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2~3년 동안은 막강한 힘을 휘두르며 자기 입맛대로 정책을 실현해 나갈 것이다.
검찰에서 먼저 의문을 제기했다고는 하나, 정의로운 검사는 검찰청에서 오래 살아남질 못한다. 저 이신열이란 검사는 조만간 좌천될 게 뻔했고, 이 사건은 한창 언론에서 떠들어 대다 슬그머니 사라질 게 분명했다. 한두 번 보는 레퍼토리가 아니기 때문에 충분히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씁쓸한 말이지만, 어느 정권이나 부정부패는 넘쳐나니까.
“여당이 여론 조작을 했다고 몰아가는데, 야당은 그런 짓을 안 했다고 자부하십니까? 광우병 사태를 생각해 보세요. 온 세계 사람들이 북한 공작에 의해 놀아난 사태라고 코웃음을 쳤습니다. 그때의 일을 주모한 의원님들도 그 일이 부끄러워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잖아요.”
여당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여당은 색깔론으로 반격에 나서서 야당을 공격했는데, 그 중심에서 과거 한미 FTA에 있었던 광우병 사건을 물어뜯었다.
야당 의원들에게는 가히 흑역사라 불리는 사건이다.
한미 FTA를 통해 들여오는 미국산 소고기가 광우병을 일으킨다는 다소 신뢰성 없는 괴담을 퍼뜨려 국민을 선동한 것인데, 각 나라에서도 이해하기 힘든 음모론이라고 놀림을 받았다. 특히 북한 공작에 의한 선동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야당 의원들은 아예 광우병의 ‘광’ 자도 꺼내지 않을 만큼 그날의 흑역사를 완전히 지워 버리고자 했다.
특히 그때 인터넷을 통해 음모론이 퍼져 나갔던 만큼 여당은 야당이 오히려 여론 조작을 하고 있는 게 아니냐며 공격했다.
“참 가지가지 한다. 언제쯤 저 새끼들은 국회에서 안 싸우고 신사적으로 법안을 처리하려는지.”
현식이는 국회에서 아주 패싸움을 벌이고 있는 여야 의원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오죽하면 사람들이 전쟁 터지면 일단 국회에 미사일부터 쏴야 한다는 유머를 만들어 냈겠는가.
“근데 너 오늘 하루 종일 뉴스만 본다?”
“이보세요, 부회장님. 당신도 금융사 부회장이면 하루 종일 뉴스만 보셔야죠.”
“이거 안 보이냐? 네가 그때 괜한 말을 해가지고 권오준 대표가 매일 나한테 서류 던져 주잖아!”
현식이가 투덜거리며 서류 더미를 가리켰다.
권오준 대표도 현식이가 마냥 놀고먹는 걸 가만 지켜보진 않았다.
“그런데 뉴스에 뭐라도 있어? 유독 여론 조작에 관한 것만 찾아보네?”
“음···. 생각보다 소스가 괜찮은 거 같아서.”
“무슨 소스?”
“여론 조작이라는 거. 지금은 포탈 사이트 댓글이나 커뮤니티 글을 마구 올려서 선동을 하잖아. 그런데 조금 더 체계화된 방법이 없나 해서.”
현식이는 나를 반쯤 미친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이놈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래서 네가 여론 조작을 하겠다는 거야, 뭐야?”
“아니. 내 말은 지금 시대가 점점 바뀌고 있잖아. 예전에는 TV가 우리의 인식을 이끌어 갔다면, 지금은 인터넷이 그걸 대신하고 있으니까. 이제 TV 시대는 도태되고 인터넷이 모든 걸 장악하겠지. 요즘 웹드라마 같은 걸 시도하는 곳이 꽤 있다고 들었어. 예능도 그렇고. 아직 보편화가 되진 않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렇게 될 거라더라. 너튜브를 중심으로 말이야.”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파워를 자랑하는 너튜브.
너튜브를 이용해 조회수와 구독자 수를 늘려 상당한 돈을 벌어들이는 BJ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그리고 각 케이블 TV들도 너튜브의 성장세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닫고는 하나둘 그곳에 진출해 새로운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야?”
“만약 우리가 여론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쳐. 그것만큼 엄청난 힘이 또 있을까? 여론을 움직인다는 건 곧 정치권에까지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뜻이야.”
“그래서 여론을 쥐고 흔드는 사람이 되어 보겠다? 아예 주가 조작을 하겠다고 하지 그러냐.”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이.”
여론 조작은 굉장히 민감한 사안이다. 그러나 그것을 할 수 있는 힘만 있다면 그것만큼 달콤한 유혹이 또 없을 것이다. 그리고 J&H 금융과 건설 그룹을 동시에 운영하고 있는 이때, 나는 여론의 힘을 잘 쓸 줄 알아야 앞길이 평탄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나에게 여론을 쉽게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다면 어떨까?
언론사를 인수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그러나 점점 사람들은 언론을 믿지 않고 있다. 오히려 SNS에 나도는 말을 더욱 신뢰하고 있는 추세다.
그렇다면 서민들의 인식을 확 바꿔 버릴 수 있는 인플루언서들을 고용해 SNS를 이용하여 여론을 좌지우지해야 한다는 건데······.
“내가 괜한 생각을.”
나쁜 뜻으로 여론을 조작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우리 회사를 보호할 수 있을 정도의 여론몰이는 필요하다고 여겼다.
[당신을 위한 특급 정보!]
그런데 마치 내 마음을 읽고 있었다는 듯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어 댔다.
미래 커뮤니티 센터에서 가끔씩 보내는 특별 이벤트. 그중에서 특급 정보를 내주는 것도 있었다. 나는 홀린 듯이 광고를 눌러 이 어플이 내게 주고자 하는 정보가 뭔지 알아내고자 했다. 그에 따른 포인트를 지불해야 했지만, 그리 비싼 금액도 아니었다.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나이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너튜브로 몰려 최고의 BJ가 되고자 합니다. 하지만 경쟁 시대에 누군가는 성공하고, 누군가는 실패하기 마련. 이런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은 BJ들은 100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획득하고 매일 수십만 명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인플루언서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기사인지, 아니면 누군가가 포스팅을 해 놓은 글인지는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글이 2020년에 작성되었다는 것이다.
[가장 주목받고 있는 대한민국 인기 BJ들은 과연 누구일까요? 그 명단을 지금부터 확인해 보시죠!]
그 글에는 앞으로 100만이 넘는 구독자들을 모으고 매일 영상을 올려 적게는 수십만, 많게는 수백만까지 조회수를 폭발적으로 늘리는 BJ들의 정보가 담겨 있었다.
“거기다 BJ들이 어디 소속사에 포함되어 있는지도 적혀 있네.”
이날 처음 알았다.
개인 방송을 하는 BJ들도 소속사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겠지만, 인기가 높아질수록 소속사가 필요해질 것이다.
편집자를 구해야 하고, 세금 문제도 해결해야 하고, 콘텐츠 부족도 해소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 왜 이 어플이 내게 이런 정보를 내주었는지 알 것 같았다.
어쩌면 이건 내게 또 다른 기회가 될지 모른다.
여론 조작이란 말이 불편하긴 하지만, 내 회사를 위해서라면 여론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게 중요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