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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 천재가 되었다-91화 (91/200)

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91화

“사우디아라비아 투자는 또 언제 받아 놓으신 겁니까?”

권 대표는 조금 서운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긴박하게 이뤄진 일이기도 하고 확정이 난 일도 아니라서 나도 말하기를 꺼리긴 했다.

“사실 될지 안 될지 모르는 일이었거든요. 괜히 말했다가 쪽 당할 순 없지 않습니까?”

“하하. 회장님이 추진을 하셨다면 무조건 성공했다고 봐야죠.”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이제까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인프라 구축 사업을 시작한다는 건 미래 커뮤니티 센터를 통해 알게 되었다.

우연히 뉴스 기사를 보다가 그들이 인프라 구축을 위한 프로젝트를 발표한 걸 알게 됐다. 당연히 이 노다지를 놓칠 리 없던 국내 건설사들이 달려들었고, 통신사와 더불어 금융계도 돈을 싸 들고 날아갔다.

그런 쟁쟁한 경쟁자들이 프로젝트를 야금야금 먹어 치우기 전에 내가 먼저 선수를 쳐 버린 것이다.

사우디 정부가 프로젝트를 발표하기 전에 나는 메카 인프라 구축에 관심이 있다는 전문을 보냈고, 생각보다 그들은 빠르게 답변을 주었다.

10억 달러를 첫 투자금으로 내놓겠다는 것이 그들의 흥미를 자극한 듯 보였다.

“그런데 회장님. 조선 사업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아까 한 사장과 나누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조선 사업을 처분하는 걸 진지하게 고려하시는 것도······.”

건설사를 손에 넣어 사우디라는 노다지를 던져 주었다. 그 뜻은 당분간 건설사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문제는 조선소.

권오준 대표도 조선 사업이 잘나가는 건설사의 발목을 붙잡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대표님. 솔직히 말씀드려도 됩니까?”

“예. 어떤 것이든 말씀하셔도 됩니다.”

“솔직한 심정은 이렇습니다. 하늘에 맡기는 거죠.”

“······예? 건설사처럼 뭔가 치밀한 계산법이 있는 줄 알았는데요?”

“그런 거 없습니다. 그냥 우리나라 조선 기술력을 믿는 것뿐이죠.”

권오준 대표는 어이가 없었는지 헛웃음을 지었고 나도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늘에 맡긴다라.

어쩌면 정말 하늘이 기적을 보여 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 * *

“저기 배가 왜 멈춰 있는 거야?”

태평양 한가운데에 수백 개의 컨테이너를 싣고 운항 중이던 러시아 선박이 있었다.

거대한 선박일수록 운항 중에 날씨가 좋지 않으면 서로 충돌할 위험이 있기에 항상 GPS를 통해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런데 러시아 선박 하나가 몇 시간째 제자리에 멈춰 있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걸까요?”

“설마 해적?”

“해적들은 러시아 선박을 안 건든다고 들었는데.”

“거기다 태평양 한가운데에 미쳤다고 해적이 나타날 리도 없죠. 정식으로 등록이 되어 있지 않은 선박이 나타나면 바로 미국에서 전투기부터 띄우는데.”

저 멈춰 있는 선박과 마찬가지로 컨테이너들을 잔뜩 싣고 움직이던 미국 화물선은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는 미 해군에 먼저 연락을 넣었다.

현재 미국 영해에 있기 때문에 무슨 문제가 생겼다면 미 해군이 해결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연락을 받은 미 해군은 곧바로 러시아 선박에 접근했고, 그들에게 무슨 문제가 발생한 건지 알아냈다. 선박에 큰 결함이 생겨 이곳 선원들이 우왕좌왕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무슨 문제입니까? 왜 배를 움직이지 않는 거예요?”

“우리도 하루빨리 움직이고 싶어요. 근데 한 군데가 고장 난 게 아니라 수십 군데가 문제를 일으켜 지금 뭘 할 수가 없습니다!”

그냥 자잘한 결함이었다면 선박 내부에 있는 기술자들이 금방 해결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가 문제를 일으키자 도미노처럼 와르르 결함이 쏟아져 배가 아예 멈춰 버리게 된 것. 그리고 이 문제는 이곳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 * *

[J&H 건설의 미래? 쓰러질 수밖에 없다.]

[J&H 건설의 가치를 의심하고 있는 외국인 투자자들.]

[J&H 건설 인수는 크나큰 실수다.]

“아주 신나게 씹고들 있구먼.”

현식이는 샌드위치를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리고 언론에서는 J&H 건설 그룹을 공격하느라 바쁘다.

“현광 그룹 회장이 생각보다 뒤끝이 심하네.”

“딱 봐도 그렇게 생겼더라고. 거기다 그 양반은 J&H가 반드시 무너질 거라 믿고 있어. 아마 잠깐 나한테 한라 중공업을 맡긴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

“흐흐. 우리가 사우디에서 프로젝트 시작한다는 거 알면 어떤 표정 지을지 벌써부터 궁금하네.”

“아마 꽤 볼 만할 거야.”

그렇게 J&H에 대한 부정적인 뉴스가 도배되고 있을 때였다.

[중국 기술력의 한계 왔나?]

[중국에서 만든 선박 3척이 같은 날에 고장 일으켜 멈춰.]

드디어 내가 기다리고 있던 뉴스가 떴다.

현식이도 그 뉴스를 눈여겨봤다.

“뭐야, 저건.”

“뭐긴. 우리한테 기회가 온 거지.”

이윽고 기다렸다는 듯이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왔다.

“회장님!!”

권오준 대표는 놀라움과 흥분으로 가득 찬 얼굴이었다.

나와 같이 샌드위치를 먹고 있던 현식이는 깜짝 놀라 목에 음식물이 걸릴 정도였다.

“뉴스 보셨습니까?!”

“예. 봤습니다. 한날한시에 배 3척이 문제를 일으켰다죠?”

뉴스에서 대대적으로 보도를 하진 않았지만, 러시아 선박과 터키, 그리고 영국의 선박이 동일한 날에 문제를 일으켜 선박이 멈추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리고 그 선박의 출처는 바로 중국.

말도 안 되는 싼 가격을 맞추기 위해 배를 만든 것이 결국 문제를 일으켰다.

만약 함장들이 빠르게 대처를 하지 않았다면 큰 피해가 일어났을 거라는 말도 나왔다.

“대표님. 지금 당장 J&H 건설로 가서 임원들의 엉덩이를 한 번씩 걷어차 주고 오세요.”

“예?”

“제 예상이 맞다면, 저건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동시다발적으로 선박이 멈추는 사태가 벌어졌어요. 다른 배라고 안 그럴까요? 분명 말썽을 일으킬 겁니다.”

“그럼 운송 기업들이 중국을 버리고 우리나라의 함선을 다시 찾는다는······.”

“예. 그러니 임원들을 쪼아야죠. J&H 조선의 기술력이 얼마나 대단하고 안전한지 각 나라에 어필하라고 하세요. 분명 다른 조선소들도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들이 움직이기 전에 우리가 먼저 움직여야죠.”

내 말을 금방 알아들은 권 대표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제가 이렇게 멍하니 있을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지금 바로 달려가겠습니다.”

권 대표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질 않는다.

붙은 혹이라고 생각했던 조선소가 어쩌면 화려하게 부활할지 모른다는 희망을 본 것이다.

내 예상이 맞았다.

권 대표는 올라운더다.

어떤 분야라도 기회가 생기면 우직하게 돌격해 반드시 뜻을 이루고 만다.

내가 흡족한 표정을 하고 있자 현식이가 슬쩍 내게 물었다.

“너 이렇게 될 줄 알았냐?”

“뭘?”

“저거.”

“내가 무슨 수로.”

“음······. 이상한데. 타이밍이 너무 절묘하잖아. 네가 중공업 인수하자마자 갑자기 저런 사건이 터진다고? 네가 저 배에 폭탄 설치한 거 아니야?”

“애가 또 이상한 소리 하고 있네. 빵이나 먹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일이 이렇게 될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왜 중공업을 인수하고자 했겠는가.

사우디에서의 새로운 프로젝트. 그리고 중국 선박 이슈.

첫 번째는 성공적으로 우리가 낚아챈 상태이고, 두 번째도 기회를 잘 잡아야 한다.

현재 3척의 배가 멈춰 서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 일로 각 정부에서 급하게 운송 기업들에게 선박 점검을 하도록 한다.

그러는 동안 또다시 선박이 멈추는 사고가 벌어지면서 위기를 느낀 기업들은 중국 조선소와 맺었던 계약을 전부 파기하고 새로운 계약 대상을 찾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나라였다.

우리나라의 조선 기술력이 가히 세계 최고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지 않은가.

조선 사업을 천천히 철수시키고 있던 현광은 곧바로 정상화를 시켜 각 나라들로부터 러브콜을 받게 된다.

원래대로 일이 흘러갔다면 현광은 한라 그룹을 전부 흡수해 우리나라 최대 조선소를 운영하게 되는데, 그 기술력을 바탕으로 온 나라에서 쏟아지는 주문을 받아 어마어마한 이익을 챙기게 된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한라 그룹은 현광 손에 들어가지 않았고, 현광이 삼키려 들었던 한라 중공업은 내 손에 있다. 한라 조선의 기술력은 결코 현광에 밀리지 않는다. 그리고 여러 나라에서 러브콜이 들어오기 전에 나는 임원들을 움직여 열심히 우리 J&H 조선을 어필하도록 했다.

물론 현광을 택하는 나라들도 있겠지만, 그들 전부가 현광을 택하진 않을 터.

밥그릇이 몇 조각으로 나뉜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현광 건설 회장은 배가 아파 발버둥을 칠지도 모른다.

그 양반이 저러다 또 나한테 쪼르르 달려와 성질을 부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 * *

[중국 조선소가 만든 배는 전부 다 쓰레기다!]

러시아 최대 운송 회사인 POL이 공식으로 내놓은 입장이었다.

얼마나 화가 났으면 대놓고 저런 말을 하겠는가.

그럴 만도 한 것이, POL 기업이 러시아 정부의 지시에 따라 안전 점검을 해 보았는데 그들이 쓰고 있는 중국 선박들이 전부 기술적 결함을 가지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또한 그중 2척은 큰 사고를 일으킬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정말 큰 문제라도 일으켰다면 수많은 선적들이 날아가고 POL은 사방에서 쏟아지는 소송을 감당해야 했을 터. 큰 사고 없이 지금이라도 위험성을 알게 된 걸 다행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러시아뿐만이 아니라 중국 조선소에서 만든 화물선을 쓰고 있던 여러 기업들이 문제점을 발견해 계약 파기 및 대대적인 소송 준비까지 하고 있었다.

중국의 우방인 러시아조차 중국 조선소에서 만든 선박을 쓰지 말라고 못을 박아 버렸고, 그에 따라 여러 나라들도 중국 화물선은 취급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으허허-. 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러시아가 그렇게 못을 박아 주니 다른 나라들도 중국 눈치 안 보고 싹 질러 버리잖아.”

현광 건설 그룹 회장 정영준은 연이어 터지는 호재에 웃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조선소 밥그릇을 싹 다 긁어 간 중국에 이런 역풍이 터질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곧 각 나라에서 러브콜이 올 거야. 그거 전부 챙겨서 그동안 손해 본 것 좀 복구시키자고.”

“물론입니다, 회장님. 이미 몇몇 임원들이 열심히 메일과 전화 돌리면서 일을 따내고 있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그동안 자네들 손가락만 빨고 있었잖아. 내가 그게 꼴 보기 싫어서 절반 이상을 갈아 치웠고.”

정 회장은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상 이상으로 조선소가 추락하는 것을 보고 그는 사업을 접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천천히 조선소 내부를 정리하는 중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대박이 터졌다.

이럴 줄 알았다면 내부 정리로 회사를 축소하지 않았을 텐데,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회사의 규모쯤이야 언제든 넓힐 수 있다. 지금처럼 호재가 계속해서 터진다면 말이다.

“회장님.”

“아. 그래. 김 이사.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어. 그 POL인지 뭐시기인지 하는 놈들이 뭐래? 우리 거 가져다 쓰겠다고 해?”

김 이사는 굳은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이 푹신한 의자가 가시방석처럼 느껴졌다.

“POL에서 저희와 계약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중국이랑은 연 끊었다고 했잖아. 설마 쪽바리 새끼들이랑 붙어먹은 건가?”

“아니요······. 이미 J&H 조선과 계약을 맺었다고 합니다.”

“뭐, 뭐야?!”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미 12곳이 넘는 운송 기업들이 전부 J&H와 계약을 맺었다고 합니다.”

정 회장의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우리 기술력이 최고라는 건 그놈들도 잘 알 텐데, 어떤 상의도 없이 J&H한테 넘어갔다고?”

말을 잇는 김 이사의 입술이 바짝 타들어 갔다.

“그게··· 저희가 최근 규모를 축소하면서 기술력 공백이 크고, 거기다 현광 건설은 최근 여러 문제가 터져서 비도덕적인 기업이라고 J&H가 선전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현광과는 계약을 할 수가 없다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김 이사는 슬쩍 정 회장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아뿔싸.

오늘 무사히 퇴근하기는 그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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