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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 천재가 되었다-83화 (83/200)

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83화

“확실하게 단도리 지은 거 맞겠지? 괜히 훼방 놓는 놈이 나와서는 안 돼.”

“걱정 마십시오, 회장님. 이미 청와대와도 얘기가 끝난 겁니다. 부채 50% 감면하고 혈세 투입해서 마무리 짓기로 했습니다.”

현광 건설 그룹 회장 정영준은 한라 건설을 거저먹는다는 것에 큰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채권단의 부채 감면 50%와 더불어 정부가 공적 자금까지 투입해 준다고 하니, 이보다 좋은 조건이 또 있을까.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정치권 놈들의 아가리에 쑤셔 넣은 돈이 상당하다.

정권이 바뀌기 전부터 차근차근 물밑 작업을 해 마침내 그 값을 하는 것이다.

“괜히 딴소리 나오지 않게 해. 건설사들도 어차피 게임 끝난 거 다 알 테지만, 혹시라도 밥상 엎으려는 놈이 있을 수도 있어.”

“예. 다시 한번 체크해 보겠습니다.”

이제 팔 부 능선은 넘었다.

채권단과 은행장들의 도장만 찍으면 된다.

“회, 회장님!”

그때 회장의 비서가 급히 회의실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무례한 행동인 걸 뻔히 알면서도 저리 했다는 건 필시 무슨 큰일이 터졌음을 뜻하리라.

아니나 다를까.

비서는 얼른 회의실에 있는 TV부터 켰다.

-우리 J&H 금융은 이제 금융권에서 국한되지 않고 새로운 분야에도 진출할 것임을 여기에서 천명합니다. 현재 입찰 중에 있는 한라 중공업에 대한 경쟁에 J&H도 참여하기 위해 서류를 제출한 상태입니다.

-그 말씀은 J&H가 중공업에 뛰어들겠다는 건가요?

-J&H는 금융 회사이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우린 금융 회사입니다. 그러나 세계 금융사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단순히 일부 지분만 소유하는 게 아니라 회사 자체를 사들여 크게 성장시킵니다. 우리 J&H도 그렇게 하겠다는 겁니다.

정영준 회장의 안색이 일그러졌다.

저 기생오라비같이 생긴 놈이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 건가?

-저희는 투기 자본도 아니고, 한라 중공업을 인수해 갈기갈기 찢어서 팔 생각도 없습니다. 현재 대한민국 건설과 조선 사업이 많이 움츠러들어 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대한민국의 성장력을 믿고 있으며, 조선 사업의 잠재력을 믿습니다. 반드시 위기를 극복하고 성장한다는 것을 알기에 제대로 살려 보려는 겁니다.

-현광 건설이 입찰에 참여한다는 소식에 다른 건설사들은 전부 백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J&H가 경쟁에 나서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저희는 어떤 경쟁자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물론, 입찰 경쟁이란 것이 돈만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게 아님을 압니다. 그렇기에 다방면으로 J&H의 장점을 살려 이번 경쟁에서 꼭 승리하겠습니다.

돈으로 입찰 경쟁을 이길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돈으로 밀리지는 않을 것임을 명백히 알려 주는 메시지였다.

“이런 호로 새끼가!”

정영준 회장의 입에서 험한 말이 나오자 비서는 조용히 TV를 껐다.

“저 새끼 뭐야? 어디서 굴러온 새끼인데 감히 남의 잔칫상을 엎으려 들어!”

“J&H 금융 그룹이라고, 저번이 LK 금융을 흡수한 곳입니다. 회장은 최연소 신화 금융 사장직을 역임했었고요. 금융권에서는 이진석을 투자의 신이라고까지 부른답니다.”

“내가 저 새끼 칭찬하는 거 들으려고 물은 줄 알아?! 개미들이 뿌리는 현찰이나 주워 먹는 새끼가 갑자기 왜 건설에 뛰어드냐고!”

다 차려진 진수성찬이다.

그리고 정부와 이미 발까지 맞춘 일이라는 건 공공연한 사실.

그렇기에 다른 건설사들도 손가락만 빨며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전혀 예상치 못한 복병이 등장했다.

한참을 씩씩대던 장영준 회장은 잠시 화를 가라앉혔다.

“입찰 들어가기 전에 지분 매입하라고 한 건 어떻게 됐어?”

“아, 예. 선수들 대기시켜서 전부 끌어모으긴 했습니다.”

“그래? 그거 현황 보고서 들고 와 봐.”

뭔가 찜찜한 구석이 있다고 여겼는지, 장영준 회장은 임원들을 시켜 보고서를 가져오게 했다. 이윽고 임원들도 회장과 같이 보고서를 보고 나서야 짧은 탄성을 내질렀다.

“이 새끼들 보게?”

“회장님. 이건 아무래도······.”

“그래. 내가 뭐라고 했냐? 개미들 현찰이나 줍고 다니는 놈들이라고 했잖아.”

보고서를 보면 현광 건설 말고도 다른 세력이 빠르게 물량을 쓸어 담아 가는 정황이 포착되었다. 그리고 그곳은 다름 아닌 J&H 금융.

그들은 금방 감을 잡았다.

“방금 전 기자 회견은 쇼였군요.”

“경쟁에 참여하는 척해서 주식 가격을 왕창 올려 보겠다는 거지. 그런데 금융사가 저리 나선다고 해서 주가가 오르나?”

“J&H라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해외에서도 이진석이 유명하다고 들었습니다. 당연히 우리나라 개미들도 그 이름에 열광하고요. 이진석이 샀으니, 분명 잠재적 가치가 있는 종목이라 생각하고 너도나도 사려 들 겁니다.”

“나 참. 세상 꼴 잘 돌아간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 하나에 휘둘리다니.”

“너무 무시하시면 안 됩니다, 회장님. 이번 분기별 실적에 무려 2조 4,200억을 쓴 놈이니까요.”

가뜩이나 잔칫상 엎으려 하는 놈을 칭찬해 대고 있으니, 정영준 회장은 인상을 찌푸렸다.

“됐고, 그나저나 이놈 청와대에 라인 꽂고 다니는 건가?”

“무슨 말씀이신지?”

“청와대랑 언제 발표하기로 날짜까지 맞췄는데, 이틀 전날부터 갑자기 주식을 매수했어. 천천히 시장 흐름 보면서 매입하던 우리 쪽 선수들만 병신 된 거고.”

정영준 회장 말대로 시기가 참 절묘했다.

마치 언제 발표하는지 미리 알았다는 듯 J&H 금융이 이틀 전부터 무식하게 주식을 매수했으니까. 그로 인해 시장 가격을 상승시키지 않고자 천천히 주식을 매입하고 있던 현광 건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분을 털려 먹었다.

“J&H가 정부와 별로 좋지 않은 사이라는 건 들었습니다.”

“그런 놈이 검찰에 잡혀 갔는데 무혐의로 빠져 나와?”

“그건 아무런 혐의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지······.”

“쯧쯧. 현찰 세는 놈들일수록 뒷주머니에 슬쩍 넣는 놈들이 얼마나 많겠어? 이진석이라고 해서 다를까? 결국 돈 만지는 놈들은 다 똑같다.”

정영준 회장은 이진석과 청와대가 모종의 관계를 유지하는 중이라 확신했다.

임원들도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안색이 굳혀졌다.

“청와대가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는 겁니까?”

“저놈이 당당히 카메라에 얼굴 들이미는 거 보면 모르겠나?”

“설마 우리가 쑤셔 넣어 준 뽀찌가 부족하다고 항의라도 하는 걸까요?”

그 말에 정영준 회장은 잠시 생각을 하다 물었다.

“이번에 우리가 줄 댄 게 누구야?”

“김인호 경제수석입니다.”

“그놈이 어디 라인인데?”

“양호성 제1 부속 비서관입니다.”

재계에서는 문고리 3인방이라 불리는 놈들이다.

정권 초기부터 벌써 그런 타이틀이 나오다니.

청와대 꼬라지가 훤히 보였지만, 그렇다고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때리는 건 이해할 수가 없었다.

“후. 지랄 맞은 새끼들. 얼마나 처해 먹으려는 건지 원. 일단 우리가 돈 쑤셔 넣은 새끼들부터 전화 돌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누가 우리 뒤통수를 때리는 건지 다 알아 와.”

“예, 회장님.”

회장의 엄한 명령에 임원들은 속히 일어나 회의실을 밖을 나섰다. 그리고 정영준 회장은 끊었던 담배를 하나 물고 불을 붙였다.

공들여 차려 놓은 밥상을 빼앗으려 한다면 그 누구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 * *

뉴스를 타고 나간 기자회견은 여러 곳에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가장 침울해 있던 한라 그룹에도 의아한 소식이었다.

“J&H가 갑자기 왜 입찰 경쟁에 뛰어든다는 건지 모르겠군요. 혹시 회장님과 관련이 있는 겁니까?”

“저 젊은이가 나랑?”

“그래도 인연이 있지 않으십니까? 신화 금융 때부터 친분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손녀 따님도······.”

기자회견이 있고 다음 날 모인 임원들의 말에 이강철 회장은 손을 저었다.

“난 아닐세. 저 친구와 연락해 본 적도 없어. 거기다 우리 손녀딸도 한 달에 한 번 얼굴 보기 힘들다고 하더구먼. 워낙 바쁜 인사이니까.”

실망 어린 기색이 임원들 얼굴에 가득하다.

솔직히 그들은 억울하기 그지없었다.

조선 사업은 중국에 1위를 빼앗긴 지 오래고 그나마 지키고 있던 2위 자리도 일본에 빼앗길 위기다.

건설은 아예 메말라 버려 한라뿐만이 아니라 모든 건설사들이 힘들다.

그로 인해 한라 그룹이 자금 문제로 휘청이기는 하지만, 당장 망할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정부는 은행을 압박해 한라에 당장 빚을 갚으라고 엄포를 놓았다.

보통 몇 년 유예를 두고 갚아 나가기 마련인데, 정부는 한라 건설을 부도시킬 작정으로 밀고 들어왔다. 그리고 그 배후에 현광 건설이 있다는 걸 알아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이런저런 죄목을 들이밀며 이강철 회장을 구속 수사하겠다고 검찰이 칼까지 뽑자 결국 백기를 들어야만 했다.

억울하지만, 지금은 바짝 엎드려 천천히 내실을 다지는 게 먼저일 것이다. 그런데 오늘 뉴스를 보자 그들은 혹시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정말 아니라니까? 내가 진짜 그 친구와 나눈 게 있다면 자네들에게 얘기를 했겠지.”

그러자 임원들이 이번에는 이현상 사장에게 시선을 보냈다.

그런 시선에 못 이겨 이현상 사장이 제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 아니. 회장님. 한번 전화라도 해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진석 회장에게 말인가?”

“예. 아마 그쪽에서도 연락을 기다리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내 연락을?”

“정말 인수전에 참여할 거라면 우리 쪽에서 도움을 줄 게 있을 테니까요.”

“현광이 가져가나, J&H가 가져가나 어차피 우리가 먹을 건 없을 텐데?”

“그래도 현광에 분탕질 한번은 할 수 있겠죠.”

씨익 웃는 아들 녀석의 얼굴을 보니 이강철 회장도 따라 미소를 짓게 되었다.

“그래. 멍하니 앉아 있기보다는 한번 찔러 보기라도 해야지. 안 그래?”

그리고 그는 비서를 불러 휴대폰을 건네받았다. 그와 동시에 임원들은 전부 자리를 비워 주었다.

“곧 있음 팔순이 넘는데 아직도 회사 일을 봐야 하다니. 쯧-.”

* * *

“주가는 어떻습니까?”

“연이어 상승 중입니다. 이대로 가면 몇 배로 불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자회견이 결정타였죠. J&H가 인수전에 나선다는 얘기를 듣고 전부 달려들더군요.”

좋은 일이다.

그만큼 화제성이 있다는 뜻이니까.

“입찰 경쟁에 들어가고 나서 우리는 그냥 가만히 있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현광 건설이야 어떻게든 우리를 밀어내려고 언론 플레이를 할 테니까요.”

“그냥 가만히 앉아서 맞아 주자고요?”

“어차피 싸울 생각도 없지 않습니까? 저쪽에서 때리든 말든 그냥 무시하고 주가만 체크하면 되지 않을까요?”

권 대표는 철저히 주가만 생각하고 있다.

내가 설마 한라 중공업을 인수할 거라는 건 눈꼽만큼도 염두에 두지 않고 있는 상태다.

“언론을 보니까 만약 우리가 한라 중공업을 인수하면 어떻게 될지 시나리오를 보여 주는 곳도 있던데요? 꽤 평가도 괜찮았고요. 제가 그랬죠? 철면피 깔고 우리가 정말 인수자처럼 보여야 한다고.”

“음···. 회장님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최대한 우리가 유리한 쪽으로 기사를 내 보죠.”

“예. 아예 우리도 시나리오를 써서 냅시다. 만약 우리가 현광 건설을 인수하면 어떤 식으로 발전시키고, 또 어떻게 운영을 할 것인지 등등. 꼼꼼하게 써야 저쪽에서도 열을 올리지 않을까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상대를 속이기 위해 꼼꼼해야 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정말 중공업을 인수하고 나서 쓰이게 될 리얼 시나리오일지 모른다.

띠리링-.

그때 내 개인 핸드폰이 울렸다.

내 번호를 아는 건 중요한 사람이 아니면 없다.

품 안에 꺼내서 보니, 이강철 회장이었다.

나는 공손하게 전화를 받았다.

“회장님. 미리 연락드리지 못해 송구스럽습니다. 예. 아, 예. 그렇죠. 하하. 잘 알겠습니다. 곧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내가 전화를 끊자 권오준 대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제가 생각하는 그분입니까?”

“예. 이강철 회장님이신데, 한번 만나 보고 싶다네요. 아무래도 어제 기자회견 때문이겠죠.”

“음. 굳이 그 일로 만날 필요가 있을까요? 한라 건설은 이미 퇴장당한 투수인데.”

“퇴장을 당했다고 해서 영원히 그라운드에 서지 못하는 건 아니니까요. 공 던지는 솜씨는 아직 남아 있지 않겠습니까?”

“던지는 솜씨가 녹슬어서 벤치로 물러난 거지 않습니까.”

“그래도 이강철 회장님만의 변화구 하나쯤은 있겠죠?”

권 대표는 영양가 없는 만남이라 생각했지만, 나는 이강철 회장이 아직 까지 않은 패 하나쯤은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걸 던져 줄지 말지는 나한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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