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82화
5년.
미래 커뮤니티 센터 중급 회원이 확인할 수 있는 최대 기간이다.
즉, 나는 5년 후의 미래를 확인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불가능에 가깝다.
권한은 있지만, 그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포인트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
4년, 3년, 2년.
이것들도 각자 거액의 포인트를 요구하며 사실상 내가 정보에 접근하는 걸 막고 있었다.
그나마 1년은 어찌어찌 가능은 한데, 현재 내가 보유하고 있는 포인트를 전부 털어내야 1년 후의 미래를 확인할 수 있다.
1개월 뒤나 3개월 뒤의 내용은 일정 포인트를 지불하고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정보를 사면 살수록 가격이 올라가 나중에는 손도 대지 못하게 만든다.
그래도 다행인 건 비트코인이 어디까지 상승하는지 알게 된 정도?
지금은 폭락을 거듭하고 있지만, 곧 다시 비트코인 열풍이 불게 될 것이다.
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한라 그룹이다.
내가 갑자기 한라 중공업에 눈독을 들이는 건 다 이유가 있다.
한 달 뒤에 벌어질 일련의 사건 때문이다. 그것이 현재 바닥을 치고 있는 대한민국 조선 사업을 다시금 정상으로 되돌려 놓을 것이다.
“가능하겠냐?”
한라 중공업을 인수할 생각이라는 내 말에 현식이는 밥을 물에 말아 먹고 있던 걸 씹으며 말했다.
“금융 그룹을 운영하는 게 아니라 중공업이잖아. 이건 현장에서 뛰어야 돼. 그리고 회사를 잘 굴린다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야. 그 사람들이 자재 바꿔치기해서 뒷돈 챙겨 먹는 걸 어떻게 막으려고?”
흔히들 아는 얘기다.
건설사는 대기업의 돈줄이다.
땅, 인건비, 원재료값을 전부 다 속여 회사 비자금을 챙겨 주는 것이 건설사의 임무였다. 그리고 회사가 어려울 때면 건설사가 무리를 해서라도 돈을 끌어와 수혈을 해 주기도 한다.
옛날이야기이긴 하지만, 요즘도 그런 일이 종종 벌어진다는 걸 부정할 순 없다.
현식이 말대로 이건 책상에 앉아 금융 그룹을 운영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더군다나 사람 한번 잘못 쓰면 내 돈이 어디로 빠져나가는지도 모른 채 탈탈 털리고 만다.
“너는 왜 궁상맞게 물에 밥을 말아 먹고 있어? 제대로 된 거 먹지.”
“물에 밥 말아 먹는 게 왜? 입맛 없을 땐 이거에 김치 올려 먹는 게 최고야.”
“하긴. 하루도 빠짐없이 시켜 먹으니 질릴 때도 됐지.”
“흐흐. 그럼 네가 밥 좀 해 주든가.”
현식이는 그야말로 한량 같은 삶을 사는 중이다.
허구한 날 집에 뒹굴며 무언가를 시켜 먹고 게임을 하거나, 차를 타고 어디론가 놀러 간다.
저번에는 호캉스를 한다며 해외 이곳저곳을 돌아다닌 적도 있었다.
그래도 회사에 중요한 사안이 있으면 여행을 나갔다가도 그날 밤 비행기를 타서라도 돌아온다.
“아무튼, 중공업 인수한다는 거 진심이야?”
“반반.”
“뭐?”
“진심이긴 진심인데, 망설이고 있다는 얘기야.”
“아서라. 다 무너져 가는 중공업 건드려서 뭐 하게? 한라 그룹이 경영 악화도 있지만, 조선 사업이 완전히 추락해서 그런 거잖아. 괜히 똥만 안고 가는 걸 수도 있어. 그리고 그거 입찰 경쟁 떠도 현광 그룹이 꿀꺽할 거야.”
현광 그룹은 우리나라 건설계 톱을 달린다. 동시에 현광 자동차는 우리나라 자동차 시장을 꽉 쥐고 있다. 물론, 두 회사는 이름만 같을 뿐 엄연히 다른 회사다.
그룹에서 일어난 왕자의 난 때문에 계열사들이 서로 쪼개져 완전히 다른 주체의 기업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도 400~500만 원짜리 찌라시 받는 곳이 있어. 현광 건설이 한라 건설을 인수하려고 총알 준비 중이라고 하더라.”
현식이 이놈도 마냥 노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넌 내가 인수전에 참여하는 게 쓸데없는 짓이라고 보는 거야?”
“이미 시나리오가 다 쓰인 것 같으니까 하는 소리지. 청와대가 한라 건설 던져 주려고 일부러 그쪽 때리고 있던 거 아니었어? 현광 건설이 분명 로비를 했겠지.”
정부가 최근 노골적으로 한라 그룹을 공격하긴 했다.
J&H도 그 파도에 휩쓸릴 뻔했으나, 다행히 우리는 잘 빠져나왔다.
“어차피 현광 건설 주려고 밥상 차리는 건데, 우리가 괜히 나서서 들러리 서 줄 필요는 없지. 그놈들 잔치에 끼어들어서 뭐 하려고?”
“음······.”
“그리고 우린 총알 있어? 4조 원 테슬라 주식도 아직 미국에 묻혀 있잖아. 그거 다 빼 오게?”
자금이야 어찌어찌 맞출 수 있다.
다른 금융사들과는 달리 호황을 맞이 하고 있는 J&H다. 당연히 자금이 부족하진 않다. 만약 부족하다면 사모 펀드를 열어 부자들의 돈을 마구 끌어모아도 된다.
문제는 중공업을 인수하는 과정과 인수 후의 일이다.
만약 현광 건설이 미리 청와대와 입을 맞추고 움직였다면 그들에게서 한라 중공업을 빼앗아 오기란 힘들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그냥 돈지랄로 우리가 밀어붙이면 승산이 있다.
그렇게 인수를 한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중공업을 만져 본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 회사를 내가 주무른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답은 정해졌다.
“역시 포기하는 게 맞겠지?”
“그래. 괜히 힘쓰지 마.”
“그래도 잔칫집에 가서 깽판 한번 부릴 순 있지 않냐?”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불안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고 있는 현식이를 놔두고 회사로 향했다.
* * *
“회장님 판단이 정확했습니다. 정부에서 입찰 경쟁 발표를 하자마자 주가가 다 상승했어요.”
“다들 다음 분기 실적도 껑충 뛰는 거냐고 다들 웃음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임원들은 시세 차익을 챙기고 내가 곧 모든 주식을 판매할 거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럴 생각 없다.
“최대한 다 끌어모은 게 맞습니까?”
굳은 내 목소리에 웃고 있던 임원들이 다시 자세를 꼿꼿하게 잡았다.
“예. 최대한 끌어 모았습니다.”
“지분율은요? 중공업 지분율 몇 % 정도 끌어모은 겁니까?”
“12%입니다. 더 구할 수도 있었는데, 저희들 말고 다른 선수들이 있더군요. 나머지는 기관과 채권단이 들고 있습니다.”
현광 건설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도 미리 주식을 매입해 둔 게 틀림없다.
그런 하이에나들이 대기하고 있는데도 12%나 건진 거면 선방한 거다.
“그런데 회장님. 혹시 매입한 주식들을 가지고 있을 생각이신 건지······.”
“예. 당분간 쥐고 있을 겁니다.”
“언제 또 폭락할지 모릅니다. 인수 과정에서 날아가 버릴 수도 있고요.”
“그럴 일 없습니다. 12% 대주주로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만큼은 막아야죠. 거기다 시세 차익을 위해 지분을 매입한 것도 아닙니다.”
임원들은 설마 하는 눈치로 날 바라보았다.
난 그런 그들의 눈빛을 정면으로 받아 주었다.
“다 망해 가는 주식을 계속 쥐고 있으면 제가 돈을 맡긴 투자자분들이 가만있지 않겠죠?”
“예. 그분들이야 워낙 회장님을 믿고 있어서 모든 결정권을 주긴 하셨지만, 망해 가는 주식을 끌어안고 있다는 걸 알면 분명 태클이 들어올 겁니다.”
내 돈으로 투자를 하는 게 아니다.
회삿돈, 그리고 고객이 우리에게 맡긴 돈으로 투자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항상 나는 그들의 눈치를 보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진석이란 이름을 믿고 투자를 했기 때문에 모든 투자 결정권을 내게 맡겼다.
즉, 일일이 어디다 투자를 할 계획이라는 보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분들이 제 계획을 알게 된다면 선뜻 반대를 하진 않을 겁니다.”
“그 말씀은······.”
“우리 J&H 금융도 한라 중공업 입찰 경쟁에 뛰어들겠습니다.”
“회, 회장님!”
설마 하는 일이 벌어지자 임원들의 눈가가 파르르 떨려왔다.
권오준 대표는 아예 눈을 감아 버렸다.
“투자자들이 받아들이겠습니까?”
“회사 자금으로는 인수가 어려울까요?”
“테슬라에 묶여 있는 4조 원을 되찾아 온다면 가능할 겁니다.”
“테슬라를 제외하고는 우리가 운용할 수 있는 자금이 얼마나 됩니까?”
그 말에 권오준 대표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1조 원입니다.”
“그렇다는 건 회사 매입을 위해서 사모 펀드를 열어야 한다는 것이군요.”
“그런데 과연 투자를 해 주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한라 중공업이 쫄딱 망했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인데.”
“저는 영양제 좀 놓아 주고 수혈해 주면 충분히 회생 가능하다고 봅니다. 솔직히 이번 정권이 한라 그룹을 좀 때렸습니까? 도저히 안 되겠으니까 두 손 든 거지.”
“그렇다는 건 회장님도 이 입찰 경쟁이 처음부터 계획된 판이라는 걸 알고 계시겠군요.”
권 대표는 할 말이 많은 듯 보였다.
난 빙긋 웃으며 임원들을 모두 보내놓고 권 대표를 앞에 앉혔다.
그는 임원들이 사라지기 무섭게 우는소리부터 한다.
“회장님. 이번 입찰은 정해진 수순입니다. 현광이 정부에 돈 때려 박고 한라 그룹 압박해서 중공업이 떨어져 나오게 만든 거예요.”
“현광 건설이 그렇게 악을 쓸 정도면 한라 중공업이 꽤 먹음직스럽다는 거겠죠?”
“자꾸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경쟁자들이 있으니, 차라리 한라를 삼켜서 누구도 넘어설 수 없게 못을 박으려는 겁니다. 아마 다른 경쟁사들도 현광 건설이 짜 놓은 판이라는 걸 알고 아예 입찰에서 빠졌습니다.”
“그게 마음에 안 들어요. 다 차려 놓은 잔칫상을 침 흘리며 바라만 봐야 하다니.”
“설사 우리가 그 잔칫상을 빼앗는다고 해도 그걸 다 삼킬 수 있을 거라 보십니까? 여기에는 컴퓨터 보고 돈 굴리는 사람만 있지, 현장에 나가 함바집 먹으며 철근 옮길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권오준 대표가 오죽하면 저런 소리를 하나 싶다.
지금까지는 내 투자 계획을 말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절대 안 된다고 선을 긋는다.
현실적인 면을 보는 것이다.
우리가 인수를 하더라도 운영할 사람이 없으니까.
“저도 압니다. 운영할 수 있는 여력이 없다는 거. 사람도 없고. 하지만 그런 거야 다 데려오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회장님은 한라 중공업이 정말 부활할 거라 생각하시는군요. 이미 조선 사업은 바닥을 쳤고 건설 쪽도 메말라 있지 않습니까?”
“대표님은 모르시겠어요?”
“무엇을요?”
“현광이 저렇게까지 한라를 먹으려 한다는 건 이번 정부가 부동산과 건설 사업에 과감히 투자하겠다는 증거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현광 건설이 내실을 확실히 다지기 위해 한라를 무리하게 집어삼킬 리 없죠.”
“그렇다고 해도 저희와는 먼 나라 이야기 아닙니까? 우리가 만질 수 없는 분야니까요.”
“돈 되는 걸 뻔히 아는데도 마냥 앉아서 두고 보기가 배 아파 그럽니다.”
그 말에 권오준 대표는 눈을 반짝였다.
“혹시나 싶었는데, 회장님은 인수가 목적이 아니라 그냥 잔칫상을 엎어 버리고 싶으신 거군요.”
“흐흐. 저번에 우리가 정부한테 받은 게 있으니 돌려줘야 하지 않을까요? 거기다 남의 잔칫상 엎는 것만큼 짜릿한 게 또 없다고 하던데.”
“개인적인 원한을 사업으로 푸는 건 결코 좋지 않은 일이지만, 저도 구미가 좀 당기는군요.”
권 대표는 음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우리가 확실하게 돈지랄로 밀고 나가면 저기도 화들짝 놀랄 테고, 더군다나 이 소식이 언론을 타게 되면······.”
“우리가 매입한 지분 가격이 더욱 폭등하겠죠.”
그제서야 권 대표는 내가 그리는 그림을 알아챈 모양이다.
인수는 거의 물 건너간 거 같으니, 차라리 매입한 지분 가격을 펌핑시키자는 것이 내 의도였다.
“인수에 필요한 절차가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이틀 뒤부터 신청을 받는다고 하니, 거기에 저희 J&H 이름이 들어가도록 만들죠.”
“저도 철면피를 준비해야겠군요. 저들 눈에는 우리가 정말 인수자처럼 보여야 하니.”
오랜만에 우리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근데 여차하면 내가 정말 인수할 거라는 사실은 끝까지 숨기는 게 좋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