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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 천재가 되었다-81화 (81/200)

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81화

“LK 금융 인수 때부터 J&H는 회장님의 이름을 브랜드로 삼아 지금까지 달려왔습니다. 역사는 매우 짧지만, 누구보다도 뛰어난 성장세를 보여 주고 있지요. 그것이 브랜드의 힘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그 브랜드가 땅밑까지 추락한다면 건재해 보이는 J&H도 순식간에 나락으로 빠진다는 뜻입니다.”

권오준 대표가 무엇을 말하는지는 나도 알겠다. 하지만 이런 진흙 묻은 돈 때문에 누군가가 피해를 입는 건 원치 않았다.

“비자금을 조성하겠다는 건 어디까지나 제 의지였습니다. 책임도 제가 집니다.”

“회장님.”

권오준 대표는 무겁게 목소리를 내렸다.

“그 어느 기업도 물주가 책임을 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예?”

“유명한 대기업들을 보십시오. 가끔씩 비자금이나 회계 문제로 일이 터지지 않습니까? 누가 봐도 재벌 총수들이 뒤에서 돈을 쏙쏙 빼먹은 건데, 모든 책임은 그들이 아니라 그 밑에 있는 머슴들이 집니다.”

“권 대표님은 제 머슴이 아니십니다.”

“하하. 회장님한테 월급을 받는 순간 잘 배운 머슴이 되는 거지요. 그리고 딱히 불만은 없습니다. 제 주인이 남들보다 몇백 배는 뛰어난 분이라는 걸 아니까요. 그래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회장님께서는 무슨 일이 있으셔도, 설사 손에 피를 묻히셔도 항상 그 자리를 지키셔야 합니다.”

노골적인 말이었다.

권오준 대표는 내가 여느 재벌 총수와 다름없는 뻔뻔한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권 대표님을 감옥에 보낼 순 없는 노릇 아닙니까?”

“어차피 비자금 문제가 터져도 검사장, 판사장 출신 변호사들 데리고 오면 집행 유예로 끝납니다. 감옥 갈 일 없습니다.”

“그래도 명예에······.”

“야. 너도 그만해라.”

그때 불쑥 끼어든 현식이었다.

“권 대표님 말씀이 무슨 뜻인지 몰라? 권 대표님은 끔찍하게 널 위하시는 거잖아. 그리고 이건 단순히 너만을 위한 게 아니야. 네가 쓰러지면 회사 전체가 쓰러져. 만약 이런 문제가 터지고 권 대표님만으로 수습이 안 되면 나라도 나서서 총대 멜 거다.”

“아니. 너까지 왜 이래?”

“잊었어? J&H에 내 지분도 있어. 금이야 옥이야 키운 회사가 하루아침에 망하게 생겼는데 감옥 가는 게 대수냐?”

이 둘이 이렇게까지 나올 줄은 몰랐다.

그냥 나중을 위해, 되도록 쓰지 않기를 바라는 비자금을 조성하는 일인데, 이 정도의 말까지 나올 줄이야.

“떳떳한 경영인, 투명한 재벌, 검은돈 없는 총수. 이런 건 다 판타지에 불과합니다. 혹시라도 그런 걸 바라시는 거라면 국민들이 홀딱 넘어가도록 겉모습만 그렇게 만들면 됩니다. 이미 검찰이 시원하게 판을 벌여 준 덕분에 회장님의 이미지가 상승하지 않았습니까?”

비자금을 조성하기 시작한 것도 검찰이 수사를 종결시킨 뒤였다.

그러므로 여기 있는 세 명을 제외하고는 우리가 비자금을 조성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사람들은 나를 세상에서 제일 깨끗한 경영인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최대한 먼지가 묻지 않게 회계 장부를 교묘한 방법으로 쓰고 있는 중입니다.”

“1,000억이나 되는 돈인데요?”

“2조 원이 넘는 돈을 벌지 않았습니까. 다들 그거에 정신이 팔려 1천억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신경조차 쓰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해외에 법인을 두고 있어서 자금 조성이 생각보다 쉽죠. 유령 회사 만들어 놓고 투자금을 거기다 넣은 다음, 투자 실패로 꾸며서 돈을 회수하면 되니까요.”

전형적인 비자금 조성 방법이다. 그리고 이 올드한 방법이 매번 통한다. 특히 우리의 뿌리가 해외에 있다면 더더욱!

“비트코인 거래소를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조사해 보니, 계좌 추적을 하는 게 생각보다 까다롭더군요. 그래서 이리저리 자금을 돌리면 자금 조성이 어렵지 않을 겁니다. 딱 한 달만 작업하면 원하는 때 얼마든지 쓸 수 있는 비자금이 완성되는 거죠.”

이미 전반적인 계획을 수립해 놓은 권 대표였다. 그리고 그 계획은 지금 실행 중이다.

“그러나 어디든 허점이 있기 마련이죠. 제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만일 그 부분이 까발려지면 그땐 제가 책임을 지면 됩니다.”

내 굳은 표정에 권오준 대표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날 풀어 주었다.

“무조건적인 충성은 아닙니다. 저도 능구렁이 같은 속내가 있는 거죠. 회장님을 위해 한 몸 던지면 그에 따른 대가가 따르지 않을까 하는 계산도 있습니다.”

그런 계산이 있다고 해도 남을 위해 대신 총알을 맞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말은 권 대표의 변명에 불과하다. 이 사람은 진심으로 날 지키려는 것이다. 그리고 난 이 사람이 나를 대신해 감옥에 들어가는 일만큼은 막고 싶었다.

* * *

[정직함의 표본. 참된 경영인. 이진석 회장은 누구인가?]

[투자의 귀재, 투자의 신. 그리고 공정함과 투명함을 주장하는 인물.]

언론은 정말 낯이 뜨거울 정도로 이진석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았다.

권 대표가 돈을 조금 쓴 것도 있지만, 이건 SNS와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의 역할이 컸다.

예전 세상은 TV와 언론이 세상을 리드했었지만, 지금은 점점 국민이 세상을 리드해 가는 시대가 됐다.

그 흔한 비자금과 탈세 등, 어느 것 하나 비리가 발견되지 않자 국민들은 인터넷을 통해 이진석을 칭송했고, 무조건 이진석을 깎아내리기 바빴던 악플러들은 설 곳이 없어졌다.

그런 시대의 흐름을 따라 각종 프로그램에서 이진석에게 인터뷰를 요청했고. 투자 한번 해 본 적 없는 사람도 이진석이란 이름은 한 번쯤 들어볼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 금융 시장은 이진석이 아니라 다른 곳에 집중하고 있었다.

“주식 현황 다 체크했어?”

“예. 지금 폭풍전야입니다. 언제 터질지 모르니 다들 발만 동동 구르고 있어요.”

장이 오픈하고 나서부터 증권사 직원들은 계속해서 차트를 확인하며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그들이 모두 주목하고 있는 건 바로 한라 그룹.

한라 그룹의 계열사 중 하나인 중공업 쪽이 휘청거리고 있다.

소문에 의하면 조만간 한라 중공업이 경영 악화로 부도 처리가 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소문이 이틀 전부터 퍼져 나가 주가가 연이어 바닥을 찍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오늘은 한라 중공업을 현광 그룹에서 매각한다는 찌라시가 퍼져 바닥을 찍은 주가가 또다시 상승세를 탔다.

그리고 남은 건 한라, 혹은 현광 그룹의 공식 발표.

공식적인 발표가 나오지 않는 한 어느 한쪽에도 돈을 걸기가 애매한 상황.

증권사 모두 침묵하며 공시가 뜨기를 기다렸다.

* * *

증권사들이 전부 혼돈에 빠져 있을 때, 나는 회장실에 앉아 한가롭게 커피를 마셨다.

고급스러운 가죽 시트에 몸을 기대며 100g당 1,000만 원을 호가한다는 원두로 만든 커피를 마셔보니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루왁 커피라고 해서 마셔 보긴 했는데, 나는 그냥 회사 내에 있는 카페 커피가 더 맛있는 것 같았다.

“회장님.”

권오준 대표가 회장실 안으로 들어오면서 나는 잠깐이나마 즐겼던 재벌 놀이를 끝냈다.

권 대표를 비롯해 임원들 모두 한 자리씩 앉아 회의를 시작했다.

“상황은 어떻습니까?”

“엎치락뒤치락하는 중입니다. 지금쯤이면 정부에서도 콜을 받은 게 있을 텐데 이 양반들······ 좀 오래 끄네요.”

한라 중공업 주가가 바닥을 치다 다시 고점을 찍는 일이 고작 하루 만에 벌어졌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즐기는 듯 정부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한라 그룹 정도면 국가 기관의 돈이 당연히 들어가 있을 터. 그렇기에 함부로 파산을 시킬 순 없다. 그리고 매각을 하려면 은행과 채권단이 나서서 담판을 져야 한다.

임원들의 말대로 정부는 지금쯤 대충 각이 잡혔을 것이다.

한라 중공업을 매각시킬지, 아니면 이대로 부도를 내 버릴지 말이다.

그리고 난 이미 그 결과를 알고 있었다.

“지금 주가가 얼마나 됩니까?”

“한라 중공업은 1만 원까지 폭락했고, 한라 건설도 역시 7천 원까지 폭락했습니다.”

한라 중공업의 최고 주가는 12만 원이었다.

우리나라 5대 중공업이지 않던가.

거의 보름 동안 혼돈이 계속되면서 주가가 올랐다 내려갔다를 반복한다.

문제는 중공업과 관련된 계열사들 모두 폭락을 면치 못한다는 것이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과연 정부가 매각 쪽에 손을 들어 줄까요?”

임원들은 하나둘 의견을 내놓기 시작했다.

“정부 초기입니다. 총선도 곧 있으면 열리고. 이럴 때에 3만 명에 가까운 실업자를 내놓으려 할까요?”

“한라 그룹은 이미 몇 년 전부터 경영 악화였습니다. 그리고 최근 조선 사업이 중국과 일본에 밀리면서 더욱 악화되지 않았습니까?”

“지금 돈을 쏟아붓는다고 해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입니다. 정부도 그걸 알아요. 괜히 공적 자금 들여 희생하려 들지 않을 겁니다.”

의견이 팽팽했다.

몇 년 전부터 적신호가 켜진 한라 그룹이 중공업 계열사를 부도내어 정리할 거라는 의견이 더 우세했다.

어느 정도 임원들의 얘기를 듣다가 나는 헛기침을 한번 터트렸다.

그러자 열띤 토론을 이어 가던 임원들 모두 입을 다물었다.

내가 최종 결론을 내릴 것임을 그들은 아는 것이다.

난 마시던 커피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지금부터 한라 중공업에 관련된 주식들은 전부 쓸어 담습니다. 건설, 일렉트릭, 조선 등등. 한라 중공업 그룹에 속해 있는 계열사 주식은 다 끌어모으세요.”

“회, 회장님. 그러다 한라 그룹이 중공업을 부도 신청 내버리면 다 휴짓조각 됩니다.”

“제가 그걸 모르겠습니까?”

내 따가운 눈총에 임원들은 짧게 탄성을 내질렀다.

“회장님은 무조건 매각을 한다고 보시는군요.”

“예. 정부 지지율이 좀 간당간당하죠? 이럴 때 중공업 그룹 하나를 터트려 버린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앞으로의 정권을 위해서라도 국민들 눈치를 좀 봐야죠. 혈세를 들여서라도 중공업을 살리고자 들 겁니다.”

현재 정부는 지지율이 반반이다.

누구 하나 우세하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팽팽하다는 건데, 대선 때도 이러더니 이번 총선 때도 마찬가지다.

총선 전에 중공업 그룹을 폭파시키면 야당이 하이에나처럼 물어뜯을 것이 분명하기에 청와대는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중공업이 와해되는 걸 막을 것이다.

“청와대에서 매각 발표를 하면 주가는 다시 오를 겁니다. 전처럼 폭등하지는 않겠지만, 휴짓조각 되는 건 막겠죠. 우리나라 개미들이 쥐고 있는 투표권은 무시 못 하니까요.”

“그렇게 되면 저희는 시세 차익을 보겠군요.”

“예. 하지만 시세 차익 보자고 이 짓 하는 거 아닙니다.”

“예? 그러면······.”

나는 아직 내 속내를 전부 드러내진 않았다.

“일단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제 지시는 모두 기억하시겠죠? 현 시간부로 한라 중공업에 관련된 주식들 전부 쓸어 담으세요. 어서요.”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임원들이 서둘러 밖을 나섰다.

그리고 권오준 대표는 그 자리에 남아 은근하게 물었다.

“회장님. 혹시 제가 생각하고 있는 그거 맞습니까?”

“그거라니요?”

“제가 저번에 한라 그룹이 휘청거리니 혹시 몰라 보고서를 올린 적이 있지 않습니까.”

“예.”

“정말 인수에 염두를 두시는 건······.”

“글쎄요. 아직은 지켜보기 단계입니다. 지금 건설부터 조선까지 전부 위기이지 않습니까? 자칫 잘못 인수하면 폭탄을 갖게 되는 걸 수도 있죠.”

나는 일단 말을 아꼈다.

권오준 대표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할 일을 하기 위해 회장실을 나갔다.

“한라 그룹이라······.”

난 3일 전에 미래 커뮤니티 센터를 통해 찾아본 자료를 다시 한번 훑어보았다.

정부는 바로 내일 한라 중공업 입찰 경쟁을 선포하게 된다. 그때 바닥을 찍었던 주가들이 폭등하기 시작하는데, 그에 따른 시세 차익은 꽤 짭짭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건 그다음 단계였다.

왜냐하면 나는 앞으로 한 달 뒤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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