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80화
“이제 저 새끼도 끝이야.”
오현중은 아주 기분이 좋다는 듯 위스키가 담긴 술잔을 기울였다.
재벌 자제들끼리 갖는 모임.
각자 교제 중인 여자친구 한 명씩 끼고 나와 친목을 다지는 자리였다. 그 자리에는 당연히 백수진도 있었다.
TV에 나오고 있는 이진석을 가리키며 오현중은 약간의 취기를 빌려 말을 이었다.
“그동안 너무 설쳤어. 수진이 너도 뭔가 이상하다 생각하지 않았어? 저 젊은 나이에 금융 그룹의 회장이 된다? 이상해도 한참 이상하잖아. 든든한 뒷배가 있지 않는 이상 저렇게 되기 힘들어.”
“그러니까 오빠 말은 진석이가······. 아니, J&H 회장이 사기꾼이다?”
“그래. 개미들이랑 알부자들 돈 좀 끌어모으려고 어떤 놈들이 판을 깔아 놨겠지. 저런 일이 한두 번이야? 쩐주는 따로 있고 앞에 허수아비만 세워 놓은 거지.”
뉴스만 봐도 이진석에 대한 부정적인 내용만 가득했다.
전문가들도 뉴스에 나와 한마디씩 했는데, 하는 말마다 J&H에 비수를 꽂았다.
“시작부터가 이상한 회사였습니다. 뜬금없이 외국계 법인으로 나타나 LK 금융을 흡수하지 않았습니까? 거기다 신화 금융에서 변변찮은 평사원이었던 남자가 갑자기 금융 그룹 회장이 된 것부터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불패의 상징, 성공 신화, 모든 2030들의 희망. 아쉬운 일이지만, 저는 이진석 회장이 결코 정직한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사기꾼일지도 모릅니다.”
오현중은 전문가들이 아주 바른말을 한다며 박수를 쳐 댔고, 그와 같이 술자리에 나온 친구들도 한마디씩 얹었다.
“근본도 없는 새끼가 금융 그룹 회장이라고 뻐팅길 때부터 내가 알아봤다.”
“딱 봐도 사기꾼처럼 생겼잖아. 검찰이 아주 잘 조져 놓은 거지.”
“우리 아버지가 그러는데, 이진석이 저번 정권과 결탁한 거라고 하더라. 다 끝난 정권의 줄을 잡고 컸으니, 이번 정권에서 가만있겠어?”
그들은 낄낄대며 이진석을 안주 삼아 술을 들이켰다.
그런 것도 잠시.
[J&H 회장 이진석 무혐의. 사건 종결.]
기분 좋게 오른 취기가 확 깨는 뉴스였다.
그것도 검찰청에 이진석이 소환되어 들어간 지 2시간 만에 벌어진 일이다.
“뭐, 뭐야? 무혐의라고?”
“사건 종결? 뉴스가 잘못 나온 거 아니야?”
일말의 희망을 품고 다른 채널을 돌려 보았지만, 헤드라인을 장식한 건 전부 다 똑같았다.
사건은 종결되었고, 이진석은 무혐의로 풀려났다. 그리고 꼴 보기도 싫은 그 얼굴이 생방송을 타며 나타났다.
기자들의 질문을 주고받으며 대답하는 이진석의 핵심은 간단했다.
J&H는 청렴하다. 그런고로 나도 청렴하다.
우린 그 어떤 비자금도 없으며, 사기를 친 적도 없다.
그 증거가 검찰의 수사 종결이다.
“이럴 리가 없는데······.”
KV 그룹 내에서도 이제 이진석은 정권의 방망이에 사정없이 두들겨 맞다 끝날 것이고 J&H는 그 근간이 흔들려 결국 무너지게 될 거라고 예측했었다.
오현중도 그 평가를 들어 알고 있기에 이진석은 두 번 다시 회생하지 못할 거라 여겼다. 하지만 모든 이들의 예상을 뒤엎고 이진석이 부활했다. 또한 이번 검찰 조사는 이진석을 무너뜨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호랑이에게 날개를 붙여 준 셈이 되었다.
“오빠. 분명 끝났다 하지 않았어?”
“어······ 그, 그러게. 뭔가 착오가 있었나?”
오현중은 당황한 얼굴로 TV를 멍하니 바라만 보았고, 그런 그를 백수진은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그리고 생방송을 통해 인터뷰를 하고 있는 이진석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품격 있고 멋있어 보였다. 이런 생각을 하는 스스로가 비참하게 느껴질 만큼 말이다.
* * *
“꼬리 잡기가 쉽지 않더군요. 확실한 건 정대한 검찰총장이 검사들에게 지시를 내렸다는 겁니다.”
“총장이 다이렉트로요? 누가 먼저 증거를 제시한 것도 아닌데?”
“예. 이 정도면 빼박입니다. 검찰총장을 압박할 수 있는 윗선이 명령을 내린 게 틀림없습니다.”
검찰에도 이제 우리 J&H를 위한 라인이 생겼다. 그리고 받은 결과가 이것이다.
검사들 중 누구도 J&H 비자금 의혹을 제기하지 않았는데, 검찰총장이 먼저 칼을 뽑아 든 것이었다. 그렇다는 건 누군가가 위에서 수사를 하라고 압박을 주었다는 건데······.
“이거 언론에 팍 터트려 볼까요?”
“아니요. 지금은 참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권오준 대표는 고개를 저으며 한발 물러서는 입장을 취했다.
“지금은 모두 현 정권에 고개를 숙일 때입니다. 아직은······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그러나 가슴 속에 품은 도끼를 숨기진 않았다.
“2년. 앞으로 2년 동안은 참으십시오.”
“2년 후에는 달라질까요?”
“달라집니다. 분명히 달라질 겁니다.”
“확신하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재계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알 수가 있죠. 현 정권은 이상하리만치 권력을 잡자마자 재계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돈을 내놓으라는 압박 말입니다. 지금이 무슨 쌍팔년도 군사 독재 시대도 아니고, 이 정도로 재계를 압박하면 반드시 보복이 있기 마련이죠.”
재계 사람들은 보기보다 쪼잔하고 뒤끝이 절절 넘친다. 정권이 끝난 후에 괜히 돈을 뿌려 그간 쌓아 온 일을 보복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2년 동안은 꾹 참아 보죠.”
하지만 2년 후에는 박박 갈고 있던 칼이 어딜 후려치게 될지 모른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이번 일이 악재가 아니라 호재가 되지 않았습니까? 이런 말씀을 드려도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전 사실 이런 지시를 내려 준 그 윗대가리에게 감사 인사라도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무혐의로 사건이 종결되고 J&H와 내게서 아무런 비리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뉴스가 밤과 아침을 넘나들며 퍼져 나갔다.
권오준 대표가 별도로 돈을 써서 언론사를 자극하지 않아도 모든 뉴스 채널에서 우리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고, 그 결과 부정적이었던 여론이 동전 뒤집히듯 바뀌었다.
내가 사기꾼이라는 언론의 말만 철석같이 믿고 주식을 전부 매도했던 개미들은 땅을 치며 후회했고, 꿋꿋하게 날 믿으며 기다렸던 개미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벌써 하루에만 주가가 30% 넘게 올랐고, 그다음 날도 똑같이 30%가 상승했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주가는 쉬지 않고 폭등했으며, J&H에 돈을 맡기기 위해 찾아오는 손님들도 늘었다.
권 대표 말대로 표적 수사를 지시한 그 윗대가리에게 감사 인사라도 해 주고 싶었다.
그렇게 J&H 증권사 주식은 마침내 20만 원대를 돌파했고, 금융사들 중에서 가장 높은 주가를 자랑하는 30만 원의 천하 금융을 따라잡고 있었다.
그리고 기쁜 소식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회장님. 곧 결과 나온다고 합니다.”
모든 직원들이 두근거리며 기다리는 건 바로 증권사 분기 실적이었다.
각 증권사가 날짜를 정해 분기 실적을 발표하는데, 그 실적에 따라서 증권사들의 순위가 결정된다. 물론, 규모로 따지자면 천하 금융과 신화 금융이 최고이지만, 규모가 크다고 해서 실적이 무조건 높은 건 아니다.
나도 궁금한 마음에 회장실에서 분기 발표를 기다렸다. 이윽고 공시가 뜨면서 각 증권사 실적 발표를 비교하는 뉴스가 나왔다.
“대한민국 1위 증권 기업인 천하 금융은 1,700억이라는 실적을 내놓았습니다. 이는 저번 분기 실적보다 20% 상승한 실적인데요. 그간 여러 증권사가 많은 고초를 겪으면서 수익 실현이 쉽지가 않았지만, 새로운 정권이 시작되면서 그 기대치가 높아져 실적이 오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금융사의 실적이 발표되고 우리 J&H가 마지막을 장식했다.
“대한민국 금융계에 떠오르는 신성이죠. J&H 증권도 이번에 첫 분기 실적 발표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무려 2조 4,200억이라는 사상 최대의 실적을 내놓게 되었습니다.”
2조 4,200억.
대한민국 금융 역사를 아무리 뒤져도 저 정도로 많은 금액을 뽑아낸 건 우리 J&H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저 2조 원이 나올 수 있었던 건 테슬라 덕분이었다.
회사 자금을 끌어다 테슬라에 전부 몰빵하여 단기간에 2배라는 수익을 올렸다.
영업 이익으로 따지자면 2조 원의 이익을 본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4,200억은 직원들이 열심히 일해 준 결과다.
“회장님. 뉴스 보셨습니까?”
권오준 대표는 상기된 얼굴로 회장실에 들어왔다.
“지금 직원들이 난리입니다. 사상 최고의 실적을 뽑아냈다고 말입니다.”
직원들의 환호성 소리가 미세하게나마 회장실에까지 들려왔다.
그들은 앞으로 쏟아질 보너스에 감격의 눈물이라도 흘리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지금 언론사들도 난리입니다. 역대 최고 실적이라는 천하 금융의 5,000억을 가뿐히 넘긴 것도 모자라 수조 원의 실적을 냈으니까요. 테슬라가 이런 식으로 우릴 도와주네요. 하하.”
“비트코인 수익까지 들어갔으면 3조 원도 찍을 수 있었을 텐데 아쉽네요.”
테슬라가 보여 준 자율 운행 시연이 성공적으로 끝나면서 단기간에 2배라는 주가 폭등을 이뤄 냈다. 보통 이런 경우는 많지가 않다.
어떤 미친 증권사가 2조 원이란 돈을 한 회사에다 꼴아박겠는가. 전부 분산하여 투자를 해서 수익을 내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거늘.
하지만 난 그들과 다르게 모험을 했고, 그 모험은 성공이었다.
“야! 이런 무식한 새끼야!”
어느새 현식이가 회장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저놈도 뉴스를 보고 가만 앉아 있기가 힘들었나 보다.
“이제 오십니까, 부회장님? 회장보다 출근도 더 안 하시고 아주 살판나셨네요.”
“흠흠. 뭐 그, 그거야······ 아무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실적 발표가 미쳤던데? 뭘 어떻게 하면 2조 4천억이 나와?”
“테슬라 주가가 두 배로 뛰었잖아. 그거 때문이지.”
“아무리 그래도 실적이 2조 4천억이면 이 기록은 영원히 안 깨지겠는데?”
“내가 또 힘내서 깨 봐야지.”
말은 그렇게 해도 솔직히 자신은 없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지 않은가.
“아까 올라오면서 보니까 직원들 눈에 눈물이 흐르고 난리더라. 다들 보너스를 얼마나 받을지 벌써부터 기대하는 눈치가 크던데.”
“분기 실적은 임원들만 미리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보너스도 두둑이 챙겨 줘야지. 2조 원은 내가 만든 작품이지만, 4,200억은 직원들의 도움도 있었으니까. 그리고 직원들 복지에 힘쓰고 대우를 잘해 주면 실력 있는 전문가들이 전부 우리 회사에 몰려들려고 할 거야.”
회사가 잘될수록 직원들의 처우를 개선해 주고 대우를 입이 떡 벌어질 만큼 잘해 준다면 다른 실력 있는 펀드 매니저들이 우리 회사에 들어오고 싶어 안달이 날 거다. 그렇게 인재들을 흡수하다 보면 다른 증권사들은 자연스레 우리 회사에 밀릴 수밖에 없다.
“자. 마침 두 분 다 오셨으니 잘됐네요. 제가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권오준 대표는 갑자기 무거운 분위기를 잡으며 우리 두 사람을 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친히 술까지 따라오며 잔을 하나씩 내려 주는 게 아니던가?
“낮부터 술을 마실 정도로 중한 이야기입니까?”
“예. 중요합니다.”
현식이도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는지 권 대표가 준 잔을 깔끔하게 비웠다.
“부회장님은 아실지 모르겠지만, 회장님과 저는 이번 압수 수색 때부터 논의를 한 게 있습니다.”
“비자금······ 말하는 거죠?”
이미 현식이에게도 대충 말을 해 둔 것이었다.
“예. 다행히 알고 계시는군요. 그럼 거두절미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재 제 역량으로 만들 수 있는 비자금은 1천억. 이번 분기 실적은 원래 2조 5,200억이었습니다. 그중에서 1천억을 몰래 빼 둔 거죠.”
“그거 횡령 아닌가요?”
“횡령이 곧 비자금을 만드는 방법입니다, 부회장님. 제일 금융에서도 이렇게 비자금을 조성하고 있을걸요?”
“크흠.”
현식이는 갑자기 말이 없어졌다.
“원래는 회장님의 사비를 비자금으로 만들려고 했지만, 일단은 회사 자금을 먼저 끌어다 썼습니다. 만약 비자금이 걸려도 회장님이 아니라 회사가 걸리는 쪽으로 만들기 위해서죠.”
난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 자금으로 시작한 일을 왜 회사가 피해를 보게 만들어야 하는가.
“제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닙니다. 책임을 져도 제가 져야지, 왜 애꿎은 회사가······.”
“회장님.”
날 부르는 권오준 대표의 힘 있는 목소리에 난 입을 다물었다.
“만약 그런 문제가 터져도 회장님에게는 아무런 피해가 가서는 안 됩니다. 모든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