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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 천재가 되었다-79화 (79/200)

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79화

검찰청 취조실에 들어오고 나서 한 시간 동안은 그냥 나와 변호사 단둘이 앉아만 있었다.

아무래도 저쪽에서 열심히 작전 회의를 하는 거 같은데, 저들도 생각이 많이 복잡할 것이다. 내가 준비한 변호사 라인이 만만치 않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셰릴 로펌.

전 세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초대형 로펌이다.

미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그 영향력을 크게 끼치는데, 그 이유는 이들이 과거 판사장이었던 사람들을 고문으로 데려와 재판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 때문이다.

보통 국내 로펌이 해외 로펌보다 유리하다고 착각들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어떤 로펌이 더 규모가 크고 돈이 많으냐에 따라 승패가 갈리게 된다.

사람을 죽이면 셰릴 로펌에 돈을 왕창 쏟아부으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라는 것이다.

“회장님의 회사는 외국 법인이기 때문에 한국 법인을 파고들어 그 뿌리까지 건드는 건 국제법으로 위반되는 사항입니다. J&H가 해외 법인으로 있는 스위스에서 정식으로 항의서를 때리면 외교적인 문제로 충분히 번질 수도 있죠.”

저번에 안면을 튼 이준홍 변호사는 내 전담 변호사로서 이 자리에 왔다.

그리고 그를 도와줄 팀이 10명이나 된다고 한다.

“여러모로 우리에게 유리한 것이 많습니다. 회장님이 주신 회계 장부를 들여다보니, 비자금으로 의심되는 건 하나도 없더군요. 거기다 비트코인 거래소도 금융법 위반에 걸리지 않는 쪽이고요. 뭐, 저쪽에서 억지를 부릴 순 있겠지만 법적으로 가면 저들만 손해입니다.”

이 변호사는 한국으로 들어오자마자 J&H 증권사 회계 장부를 확인해 보았다.

실력 있는 사람들이 고작 하루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장부를 전부 다 파악했다.

참 대단한 괴물들이 아닐 수 없다.

“검찰도 며칠째 압수수색에 대한 결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건 저들이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죠. 뭔가 건수는 잡아야겠는데, 건덕지가 없으니 저러는 겁니다.”

“다행이네요.”

“예. 그래도 어떻게든 회장님의 이미지에 금이 가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 최대한 시간을 끄는 것으로 봐야죠. 그리고 이렇게 회장님을 오랫동안 취조실에 대기시키는 것도 항의를 할 수 있습니다. 한 시간이 지났으니, 제가 정식으로 항의를 해 보겠습니다.”

이 변호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취조실 밖을 나서려고 하자 누군가가 안으로 급히 들어왔다.

“휴. 늦어서 죄송합니다, 회장님. 이거, 오랜만에 뵙네요.”

내게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건 이태호 검사였다.

신화 금융 게이트 때 인연이 생긴 사람이다.

그리고 이태호 검사는 이 변호사와 사촌지간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 변호사는 굳은 얼굴로 이태호 검사를 쏘아붙였다.

“제 의뢰인을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하는 것도 시간 끄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사촌이든 뭐든 공과 사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이 변호사였다. 이태호 검사도 그러기는 마찬가지다.

“아아. 예. 저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최대한 조사를 빨리 끝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지금 이번 케이스를 맡기 싫어서 쉬쉬하고 있어서요.”

케이스를 맡기 싫어 한다?

우리 회사를 한바탕 휩쓸고 간 놈들이?

“사실, 압수수색이 진행된 것도 회장님 통장에 들어온 4천억 원의 자금 때문이었습니다.”

“그거 하나로 압수수색을 하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을 겁니다.”

“변호사님 말씀이 맞아요.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압수수색부터 때리는 게 말이나 됩니까? 하지만 높으신 분들이 까라면 검사들은 까는 수밖에 없죠. 그것도 청와대에서 내려온 거라면 더더욱. 아참. 변호사님. 이건 그냥 저희들끼리 하는 얘기로 쳐 주시죠. 제 입에서 청와대가 시켰다는 말이 밖으로 나가면 곤란해서요.”

이태호 검사가 한쪽 눈을 찡긋하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말씀해 보세요.”

“예. 그러니까 위쪽에서는 4천억 원이 비자금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는 겁니다. 솔직히 이 돈이 갑자기 회장님 계좌에 꽂히는 게 이상하니까요.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불법적인 투자를 했다든가요. 그래서 바로 압수수색을 때리고 정보를 싸그리 모아 보니 허탕이었던 거죠.”

이태호 검사는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를 터트렸다.

“금융업 회사들은 압수수색 한번 당하고 감사를 실시하면 여기저기서 먼지가 나오기 마련입니다. 어떤 회사든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곳이 없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회장님 회사에서는 먼지 한 톨도 나오지 않더군요. 담당 검사들이 몇 번을 뒤져 봐도 나오는 게 없어서 미쳐 돌아버릴 지경이었다고 합니다.”

어떤 회사든, 특히 금융 쪽 회사들은 회계 감사가 한번 들어오기라도 하면 자기도 모르는 비리와 먼지가 계속해서 나온다. 금융사뿐만이겠는가? 모든 회사들이 그렇다.

그래서 국가 권력자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이다. 그들이 세무 조사라는 방망이를 휘두르기 시작하면 사정없이 두들겨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J&H 금융은 다르다.

“J&H가 LK 금융을 흡수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런 걸 수도 있고, 아니면 정말 회장님이 청렴하셔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죠. 그런데 회장님이 아무리 청렴하시다고 해도 밑의 사람들이 일을 벌이는 건 또 어쩔 수가 없거든요. 하지만 아직까지는 잘못된 정황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 말은 내게 아무런 죄가 없다는 게 밝혀졌다는 것이다.

“존경스럽기까지 하더군요. 그렇게 그룹을 키워 놓으셨는데 먼지 하나 묻지 않으시다니. 하지만 그게 또 회장님의 약점이기도 합니다.”

“청렴한 게 약점이다?”

“예. 압수수색 하기 전에 별다른 언질을 받으신 게 없으시죠?”

“······.”

“손 닿는 곳도 별로 없으시고요.”

죄를 지은 놈이라면 누구든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미친개 이태호 검사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

“회장님과 연결이 되어 있는 라인이 거의 없더군요. 그게 또 저 높으신 분들을 당황하게 만든 것 같았어요. 이참에 그런 것까지 싹 다 묶어서 날려 버리려 했는데 말입니다.”

“그 덕분에 살아남은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죠. 그런데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면 좀 부끄럽지만, 그룹 운영을 위해서라도 손 닿는 곳이 있긴 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전에 이런 불미스러운 일을 차단하거나, 대비할 수가 있을 테니까요.”

“검사님이 그런 말씀을 하실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신화 금융 때도 그렇고 지금도 회장님을 존경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 말을 해 드리고 싶었던 겁니다.

재벌이 국가 기관과 언론에 돈을 뿌리고 다니는 걸 누구보다도 증오할 줄 알았는데, 그럼에도 이태호 검사는 그룹 경영을 위해선 꼭 필요하다는 조언을 해 주었다.

“자. 잡담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윗선에서는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 회장님을 최대한 오랫동안 여기 붙잡아 두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전 그럴 생각이 없거든요. 이 사건 담당하던 놈들도 전부 겁먹고 손을 놔서요.”

“겁을 먹어요?”

“예. 압수수색까지 하고 세무 조사까지 했는데, 먼지 하나 나오는 게 없으니 당연히 겁을 먹을 수밖에요. 이 사실이 외부로 나간다고 생각해 보세요. 국민들의 분노가 크지 않겠습니까? 애먼 사람 잡았다고요. 표적 수사니 뭐니 말이 많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그 애들 옷 다 벗어야 돼요.”

“이 검사님은 안 그러시고요?”

“전 그냥 똥 치우는 거죠. 제가 옷 벗을 일은 없습니다. 다행히 제가 배경은 좋아서요.”

저명한 법조인 집안이라는 자신감과 자부심이 가득하다.

사실 이런 똥 치우는 일도 이태호 검사가 할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왔다는 건 자발적이라는 것이다.

“수사는 여기서 종결시킬 겁니다. 이런 사건을 계속 질질 끈다는 거 자체가 말이 안 돼요. 그리고 회장님은 회장님 방식대로 화풀이를 하시죠.”

“제 방식대로요?”

“예. 저희가 태클 걸 일은 없을 테니, 언론을 통해 하고 싶은 말씀 다 하시라는 겁니다. 물론, 너무 정치권 사람들을 자극하진 않는 선에서요. 아시겠지만, 원래 정권이라는 게 2~3년 동안은 천하무적이지 않습니까. 저 사람들이 정말 작정하고 회장님 공격하면 못 견디실 겁니다.”

이번에도 이태호 검사가 좋은 조언을 해 주었다.

마음 같아서는 나를 의도적으로 공격한 그 문고리 3인방과 청와대를 비난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면 내가 더 많은 걸 잃게 된다.

왜냐하면 이미 여러 기업들이 정부 앞에 고개를 수그렸고, 그들이 정부의 뜻에 따라 언론을 움직여 나를 공격하면 버텨 낼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멀쩡한 사람 하나 병신 만드는 건 일도 아니다.

그리고 지금의 청와대는 레임덕이 오기 전까지 그 어느 때보다 막강한 힘을 자랑한다.

“저도 적정한 선에서 타협을 보도록 하죠.”

길게 이어질 줄 알았던 취조는 결국 무혐의로 끝이 났다.

이제 내가 입었던 손해를 전부 다 복구할 시간이다. 아니. 더 큰 이익으로 만들어 내야 한다.

* * *

2시간도 안 돼서 검찰청을 나오는 나를 보고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벌써 조사가 끝난 겁니까?”

“추후에 또 소환을 할 예정인 건가요?”

사방에서 플래시가 터졌고, 나는 묵묵히 포토존에 서서 입을 열었다.

“검찰에서는 무혐의로 사건을 종결시킨다는 확답을 받고 왔습니다.”

무혐의로 끝난다는 말에 더욱 많은 플래시가 터졌다.

“무혐의요? 정말 아무런 죄도 없으신 겁니까?”

“예. 검찰은 압수수색을 통해 제 죄를 찾으려 했지만, 결국 J&H가 매우 청렴한 기업이라는 답만 얻었습니다. 저희는 그 흔한 비자금 하나 없으며, 결코 고객을 속여 돈을 번 적도 없습니다. 그리고 불법적인 투자를 통해 금융법을 위반한 적 또한 없습니다.”

자신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일이 흘러가자 기자들은 조금 당황한 듯 보였다.

그들은 이번 일로 내가 완전히 추락할 거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회장님께서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대체 검찰은 왜 회장님을 소환한 겁니까?”

“이번 수사가 너무 억지스럽다고 보지 않으십니까?”

“압수수색은 누구에 의한 명령이었습니까?”

기자들은 기관총을 쏘듯 내게 질문을 퍼부었다.

나도 억울한 게 있는지라 욱하고 올라오는 게 있었지만, 이태호 검사의 조언을 떠올리며 꾹 참았다.

“검찰은 검찰의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의심스러운 정황이 있으니 당연히 조사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다짜고짜 압수수색부터 한 것은 분명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전 검찰을 비난할 생각이 없습니다. 오히려 이번 일로 저와 J&H가 청렴한 기업이라는 걸 모두에게 알릴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나는 유연하게 기자들의 질문을 받아치며 소란스러운 인터뷰를 끝냈다. 그리고 회사에서 준비한 차에 올라타면서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차에는 권오준 대표와 현식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회장님.”

“이런 짓, 또 하고 싶진 않네요.”

그러자 옆에 있던 현식이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진짜 고생했다. 이번 일 잘 기억해 놔. 언젠가 때가 되면 갚아 줄 날이 올 거야. 나도 그때 그 개새끼 면상에 주먹 한번 시원하게 날려 주고 싶다.”

“내가 원래 받은 건 2배 이상으로 갚아 주잖아. 나도 이번 일 절대 안 잊을 거야.”

이 일을 정확히 누가 지시했는지는 아직 알지 못한다.

그러나 권오준 대표가 검찰에 떡값을 뿌리며 이 일의 출처를 캐내는 중이다. 조만간 이름이 튀어나올 것이고, 난 그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가 훗날 복수해 줄 것이다.

나는 인자한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악인도 아닌 그저 평범한 사람이다. 그리고 평범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복수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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