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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 천재가 되었다-78화 (78/200)

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78화

“대통령 최측근에 총 3명이 있다고 합니다. 총무비서관 황보근, 제1 부속 비서관 양호성, 국정홍보비서관 안성구라고 합니다. 이들이 현재 대한민국 최고 권력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문고리 3인방이라고 불린답니다.”

“비서들이 말입니까?”

“삼국지의 십상시라고 아시죠? 그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여왕을 모시는 내시들이 권력을 잡은 거죠. 그리고 이 세 명은 유미화 대통령이 의원이었을 때부터 가장 신뢰했던 측근들이라 합니다.”

맙소사. 삼국지 십상시를 대한민국 정부를 통해 보게 될 줄이야.

“그러니까 대통령은 이 세 명의 말만 듣는다는 거네요.”

“아마 이 세 놈이 중간에 잘라 내지 않을까요? 자기들에게 유리한 보고만 올리고 그렇지 않은 건 사전에 차단해서 대통령의 눈과 귀를 막는 건 아닐지······.”

“후-. 그러니까 우리가 이 세 명한테 찍혔다는 거죠?”

“그게 이 세 명과 또 밀접하게 관련이 되어 있는 인물이 또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사람한테 우리가 찍힌 거죠.”

권 대표가 조심스레 내 앞에 서류 하나를 내려놓았다.

열어 보니 구영실이라는 사람의 프로필이었다.

“그 오렌지K 회사의 대표 김영택이라는 사람이 그런 얘기를 했었습니다. 이번 정권의 최고 실세는 구영실 여사라고요. 이게 그 사람이네요?”

“저 문고리 3인방이라 불리는 사람들과 같이 구영실 여사라는 사람도 유미화 대통령의 최측근입니다. 특히 구영실 여사 쪽은 유미화 대통령의 정신적 지주라는 말까지 나오더군요. 파면 팔수록 참 가관이긴 했습니다.”

임기 초기부터 대통령을 뒤로한 채 앞에서 권력을 휘두르는 간신들이 벌써부터 날뛰기 시작하다니. 대한민국 앞날이 참 뻔했다.

“솔직히 저도 당황스러웠습니다. 이제까지 최측근들이 권력을 휘두른 적은 있어도, 이렇게나 자기들 마음대로 방망이를 휘두른 적은 없었거든요.”

대통령은 거의 허수아비나 다름이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릴 위해 칼 좀 휘둘러 줄 검사들은 찾으셨습니까?”

“예. 몇몇 알아 놓기는 했습니다. J&H라고 하니까 다들 눈이 돌아가서 몰려들더군요.”

J&H의 자금력을 검사들이 모르지 않을 것이다.

특히 연이어 투자를 성공시키는 투자의 귀재가 있다는 금융 그룹이지 않은가.

특히 검찰청 검사들만큼 돈 냄새를 잘 맡는 이들이 없다.

몇 년 썩어 봤자 승진할 기회가 없다고 깨달은 검사들은 차라리 한탕 크게 벌리고 변호사 사무실을 차리는 게 목표일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회장님.”

“어떤 문제요?”

“우리가 비자금을 따로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겁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 국가 기관을 움직이려면 돈이 필요합니다. 그것도 출처를 알 수 없고, 삼켜도 탈이 나지 않는 돈 말입니다.”

비자금.

회사의 미래와 나의 미래를 위해 쓰는 돈.

바로 뒷주머니를 뜻한다.

그리고 난 아주 안일하고 순진하게 비자금 같은 건 만들어 볼 생각도 하지 않았기에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있었다.

“그동안 회장님의 뜻이 완강하시기에 말씀은 드리지 않았지만, 비자금은 꼭 필요한 장치입니다. 반드시 어디다 뇌물을 줘야 한다는 건 아닙니다. 그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뒷주머니를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린 그 중요한 장치가 아직 없습니다.”

이런 거로 고민을 하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하지만 그동안 내가 순진하게 살아왔다는 것을 증명한다.

대한민국이란 땅에서 대기업을 세우고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이 손에 흙을 묻혀야 한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상상 속에서는 그런 검은 진흙 하나 묻지 않고 세계적인 기업인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현실은 참으로 냉담하다.

“지금 우리가 비자금을 만든다고 하면 얼마나 걸릴까요?”

“우리에게 한 가지 이점이 있는 게 뭔지 아십니까? 우리의 뿌리입니다. J&H의 뿌리는 대한민국이 아니지 않습니까. 처음 이 회사를 차렸을 때 회장님이 해외에 법인을 두셨으니까요.”

그때 나는 무릎을 탁 쳤다.

“그러네요. 내가 왜 그걸 잊고 있었지?”

J&H는 엄연히 따지자면 한국 본토 기업이 아니다. 이곳의 뿌리는 해외에 있다.

“한국에 묶여 있는 기업이라면 비자금 조성을 하는 게 무척 까다로웠겠지만, 우리 J&H는 다릅니다. 해외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그쪽으로 돈을 옮긴 다음 세탁을 하면 됩니다. 그리고 세탁 방식도 생각보다 간단할 거 같더군요. 비트코인 거래소를 활용해서 매수와 매도를 번갈아 하면서 계좌에 돈을 옮기는 게 확실할 것 같습니다.”

신화 금융 사장의 짬은 무시하지 못한다.

그곳에 있을 때 얼마나 많은 비자금을 빼돌리면서 국가 기관과 언론사에 뿌려 댔겠는가.

“권 대표님은 꼭 이런 쪽에 프로처럼 보이시네요.”

“하하. 부끄럽지만, 신화 금융 때부터 하도 이런 걸 많이 하다 보니 지금은 눈 감고도 할 수 있는 경지에 올랐습니다.”

신화 금융부터 다른 금융사들도 비자금 창구를 꼭 만들어 둔다. 하지만 우린 그런 게 하나도 없었다.

“좀 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어쩌면 잘된 일입니다. 압수 수색을 다 해 갔어도 우린 비자금 창구가 없다는 걸 저쪽도 곧 눈치채겠죠. 아마 다들 혀를 내두를 겁니다. 그 어떤 금융사들보다 더 많은 비자금을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했을 텐데.”

“아마 청와대에 있는 그 높으신 분들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겠죠?”

“예. 그 약점을 노려 찌르고 들어왔을 겁니다. 그런데 막상 뒤져 보니 전부 허탕인 거죠. 우리는 비자금 하나 없는 클린한 기업이라는 걸 저쪽에서 광고해 주는 꼴이 될 겁니다. 아니. 우리가 그렇게 만들어야 합니다.”

J&H 비자금 조사를 위해 금융사를 압수 수색하고 곧 나도 검찰에서 소환한다는 내용이 언론을 타고 나갔다. 그로 인해 그동안 지켜 온 우리 J&H의 이미지에 큰 금이 가지 않았던가. 하지만 권오준 대표 말대로 우리가 반격을 한다면 이 상황을 충분히 역전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단 저는 우리가 쓸 수 있는 비자금이 어느 정도 되는지 산출해 보겠습니다.”

“저는 곧 소환을 당할 테니, 그때 언론의 집중을 받으며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생각해 봐야겠네요.”

우리 두 사람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미소를 지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우리가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는 그림이겠지만, 우린 사실 칼을 갈고 있었던 것이다.

* * *

“현재 아시아 최고의 투자자라고 이름을 날리고 있는 J&H 금융 그룹 이진석 회장이 비자금 조사로 오늘 검찰에 출두할 예정입니다.”

“역사상 최연소 나이로 금융 그룹 회장까지 올라가고 대한민국 금융 시장을 움켜쥐고 있는 이진석 회장이 오늘 검찰청에 출두합니다. 금융법 위반과 더불어 수천억의 비자금 의혹 때문인데, 성공 신화의 상징인 이진석 회장의 몰락이 시작되는 것인지 그 귀추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모든 채널에서 뉴스 속보가 나와 이진석에 대한 내용으로 뜨겁다.

하루 종일 떠들어 댈 정도로 관심이 높았는데, 이진석이 여러 의혹으로 검찰에 소환당했다는 내용이 해외 뉴스에도 나갈 정도였다.

그만큼 이진석이란 인물에 대한 관심이 국내에서는 높았고 해외에서도 어느 정도 있었다.

“이진석이 진짜 유죄면 어떻게 되는 거야?”

“뭐긴 뭐야. 주가 폭락하고 J&H는 망하는 거지.”

점심을 먹고 카페에서 커피를 들이켜고 있던 젊은이들과 회사원들은 예능 프로그램이나, 동영상을 시청하기보다는 TV에 나오는 이진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주식 투자가 유행인 만큼, 젊은이들도 한 번씩은 주식에 손을 댄 경험이 있다. 그리고 회사원들은 거의 필수적으로 투자를 하는 중이다.

어차피 은행에 맡겨 봤자 득이 될 것이 없으니, 차라리 주식에 돈을 넣어 한 방을 노려 보는 것이다.

“아. 나 J&H에 돈 넣어 놨었는데.”

“흐흐. 난 어제 바로 손절 쳤지.”

“J&H가 지금 건재한 게 이진석 때문인데, 저거 다 걸려서 감옥 가면 J&H도 끝 아니야?”

“야. 아무리 그래도 금융 그룹인데 사람 한 명 없다고 망하겠어?”

“솔직히 우리가 J&H에 투자한 게 이진석 때문이지, 다른 놈 때문이었냐?”

이진석 이름만 믿고 J&H 증권사 주식에 투자했던 사람은 울상을, 아예 그쪽으로는 쳐다도 보지 않았던 사람은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대개 사람이 유명해지면 그렇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사람은 없다고 했던가?

열렬히 그 사람을 좋아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이유 없이 그 사람을 싫어하는 이들도 반드시 있는 법이다.

“최연소 금융 그룹 회장이라고 날뛸 때부터 알아봤다. 저거 분명 배후에 누가 있는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저 나이에 저런 성공을 거둘 수 있겠어?”

“맞네. 딱 봐도 사기꾼같이 생겼더라고.”

“비자금만 4천억이라며? 저 돈이 어디서 났겠냐? 다 우리 돈 빼돌린 거지. 나쁜 새끼.”

모두 이진석을 헐뜯기 바빴으나, 아직은 모르는 일이라며 중립을 지키는 이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기 시작한 건 TV에 이진석의 얼굴이 정면으로 나왔을 때였다.

“이진석 회장님! 검찰에서 주장한 비자금 의혹과 금융법 위반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가지고 계십니까?”

“모든 의혹을 인정하시는 건가요?”

뉴스에서는 검찰에 출두해 당당히 포토존에 서는 이진석을 생방송으로 내보냈다.

그는 말끔한 얼굴로 자신은 무죄라는 것을 강조하듯 말했다.

“말도 안 되는 억측입니다. 그리고 왜 이런 의혹이 나왔는지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일단 4천억이란 돈은 제가 투자를 통해 만든 금액입니다.”

“금융계에서 일을 하게 되면 개인적인 투자가 금지되어 있을 텐데요?”

“맞습니다. 하지만 주식 시장을 통해서 번 돈이 아닙니다. 또한 부동산 거래를 통해서도 번 돈이 아니고요. 저는 현재 전 세계가 주목하는 비트코인이라는 가상 화폐에 투자를 했을 뿐입니다. 금융법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 일로 알고 있습니다.”

비트코인?

기자들도 비트코인에 대해 아는 사람들이 없었다.

생방송을 보고 있는 회사원들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비트코인?”

“그게 뭐야?”

“150억을 투자해서 4천억으로 만들었다고? 도대체 그게 뭔데?”

그들은 각자 핸드폰으로 비트코인을 열심히 검색했다.

그러는 동안 이진석의 말이 이어졌다.

“아마 비자금이란 의혹이 거기서 나온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비트코인 거래소를 이용한 투자는 금융법을 위반한 것이 아닙니다. 어떠한 내부 정보도 받을 수가 없는 새로운 개념의 투자소이기 때문이죠. 자세한 사항은 전부 검찰에서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J&H는 단 한 푼도 비자금을 만들어 내지 않았습니다. 클린하고 투명한 금융 기업을 목표하기에 이거 하나만큼은 자부합니다.”

그렇게 기자들의 질문이 끝나고 이진석은 조사를 받기 위해 안으로 들어갔다.

생방송이 끝난 뒤 뉴스 채널은 더욱 바빠졌다.

이진석이 말한 비트코인이 과연 무엇인지 알아봐야 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몇몇 언론사에서는 검찰이 압수 수색을 했음에도 J&H에 어떠한 비자금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기사를 내며 그의 발언에 힘을 실어 주었다.

“야. 이거 손절 치면 안 될 거 같은데?”

“그렇지? 완전 당당하던데. 자기는 아무런 죄가 없다고.”

“아무리 그래도 투자를 한 건 맞잖아.”

“금융법에는 안 걸리는 투자라고 하잖아.”

뉴스를 본 시민들의 생각은 조금씩 달라졌다.

이진석이 포토존에 서서 당당히 얼굴을 드러내며 J&H에는 어떠한 비자금도 없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이 진실이라고 볼 수는 없으나 그렇다고 무작정 거짓이라고 몰아갈 수도 없었다. 그동안 이진석이 보여 준 신뢰도가 있고 저런 자신감을 드러낼 정도면 뭔가 믿는 구석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

그래서일까?

심하게 요동치던 J&H 증권사 주가가 갑자기 안정되면서 거래가 이뤄지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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