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75화
“비트코인?”
김영훈 교수가 올린 보고서에는 인공지능에 관한 내용이 아닌, 뜬금없이 비트코인이라는 글이 쓰여 있었다.
가상 암호 화폐라 불리는 비트코인은 사토시라는 일본 교수가 만들어 낸 가상 화폐였다.
보고서에 의하면 이 가상 화폐는 컴퓨터를 통해 채굴해야 하고, 향후 100년간 2,100만 개의 비트코인을 발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현재 1,300만 개가 채굴되었고, 이미 사람들 사이에서 거래가 되고 있는 모양.
갑자기 김영훈 교수가 비트코인에 대한 보고서를 올린 건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내 뜻에 따라 그는 인공지능을 개발함과 동시에 딥웹을 더욱 자세히 조사하며 더욱 깊은 곳 아래에 있는 데이터에 접근하기를 바랐는데, 그때 그는 특정 세력이 만든 한 사이트를 찾아내게 된다.
일명 독립 가상 무인도.
이곳은 그 어떤 나라의 규제에도 속하지 않고 자체적인 법으로 세워진 컴퓨터상의 나라였다. 이들은 모든 법과 규제에서 벗어난다는 취지로 가상의 나라를 만들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공간을 이용하고 있었고, 이들이 공용 화폐로 쓰는 것이 바로 비트코인이었다.
이 공간에서는 아무런 법과 제약이 없기 때문에 불법적인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었는데, 마약 거래, 무기 거래, 살인 청부 등등 정말로 다양한 범죄가 섞여 있었다. 그리고 비트코인이라는 가상 화폐로 거래를 하여 경찰의 추적에서 벗어나는 것이 이들의 목적이었다.
보고서만 보면 뭔가 애매해서 나는 김영훈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정확한 얘기를 전해 들었다.
“사토시 나카무라라는 사람이 만든 가상 화폐입니다. 기존에 쓰이는 화폐처럼 국가가 원하는 때에 무한대로 찍어 낼 수 있는 화폐가 아니죠. 성능 좋은 컴퓨터들을 모아 하루 종일 돌려야 채굴이 되는 놈입니다.”
“이런 걸 쓰는 사람이 있긴 한 겁니까?”
“2009년에 처음 나왔고, 그때는 반응이 미적지근했는데 제가 쓴 보고서에 나와 있는 독립 가상 국가가 탄생하면서 비트코인이 주목을 받게 됐습니다.”
그 말은 범죄자들 때문에 비트코인이 주목을 받게 됐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여러 국가에서 비트코인에 대한 흥미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자국의 경제가 무너진다고 생각할 때, 주로 금을 사 놓지 않습니까? 이게 잘만 크면 금을 대체할 쓸모 있는 화폐가 될 거라 보는 거죠.”
아무리 그래도 실존하지도 않는 화폐가 금덩이와 같은 취급을 받을 수 있겠는가.
“아아. 물론, 이것에 투자하시라고 보고드린 건 아닙니다. 딥웹에 있는 정보들을 캐내다 보니 나온 것이라서요. 그냥 한번 맛만 보시라고 보고서를 올려 보낸 겁니다.”
“음······ 지금 비트코인 가격이 얼마나 합니까?”
“비트코인 거래소에 확인해 보면 현재 30달러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아마 그 안팎으로 왔다 갔다 하고 있고요.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국가에서도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있습니다.”
나는 김영훈 교수가 알려준 대로 비트코인 거래소에 들어가 확인해 보았다.
이곳은 주식 시장과 달리 24시간 거래가 가능하며, 서로 부여받은 아이디를 통해 거래를 하기 때문에 작정하고 추적하지 않는 한 상대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요즘 세상에 참 별의별 것이 다 나온다고 생각했다.
“만약 교수님이라면 여기에 얼마 정도 투자하시겠습니까?”
“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애들 장난처럼 만들어진 가짜 화폐라도 30달러라는 돈을 내고 사는 것을 보면 잠재적 가치가 조금은 있지 않을까요? 거기다 금을 대신하는 수단으로 쓴다는 것도 참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전 투자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곳에 돈을 쓰고 싶진 않을 것 같군요.”
김영훈 교수의 평가는 참 애매했다.
뭔가 뜻은 좋게 만들어진 거 같은데, 가상의 돈에 화폐 가치를 붙인다는 건 상식적으로 어려운 일이긴 했다.
가상의 국가를 만들어 그곳에 소속된 국민들은 비트코인을 이용하여 원하는 것을 얻는다. 만약 이것이 공론화가 되면 비트코인은 각 국가의 제재를 받게 될 것이며 설사 좋게 넘어간다고 해도 리스크가 매우 큰 투자 상품이 될 것이다.
“너무 진지하게 보진 마십시오. 전 투자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 예. 저도 진지하게 보고 있진 않습니다. 그래도 조사해 볼 가치는 있는 것 같네요.”
처음에는 그냥 모른 척 지나치려 했다.
그런데 회사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와서도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비트코인이라.
나는 인터넷에 비트코인을 검색해 보았다. 그러자 한두 개의 게시글 빼고는 비트코인에 대한 내용이 없었다. 그 게시글들에서는 주로 비트코인을 통해 해외에서 상품을 구매할 수가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역시, 그냥 사기인가.”
가상 화폐를 만들어 그것을 돈을 받고 판다는 것 자체가 사기라고 볼 수 있지 않은가.
그래서 그냥 신경을 끄려고 했다.
호기심에 미래 커뮤니티 센터를 이용하여 비트코인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사, 사백 달러!?”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앞으로 일주일 뒤, 놀랍게도 비트코인은 30달러에서 400달러라는 말도 안 되는 상승률을 보이게 된다.
어떻게 한 달 만에 100배가 오를 수 있단 말인가.
거기다 비트코인은 주식 시장과 다르게 브레이크가 없어서 한번 오르면 정말 끝없이 오르게 된다. 나는 그 몇 달 후의 상황도 살펴보았다.
비트코인은 내 예상대로 등락 폭이 말도 안 되게 넓었다.
400달러까지 폭등하다 갑자기 100달러로 떨어지는 것 같더니 다시 또 800달러까지 상승하다 이번에는 1,200달러까지 치솟았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상승률이지 않은가.
하루아침에 몇 배나 오르고 다시 몇 배 아래로 떨어지니 말이다.
그래서 난 고민했다.
이 기회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회사 안 가고 은행을 간다고?”
현식이는 아침 일찍 일어나 분주하게 준비하고 있는 나를 심드렁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응. 은행에 묶여 있는 돈들을 싹 다 풀게.”
“너 은행에 돈이 얼마나 있는데.”
“어제 확인해 보니까 150억 조금 넘게 있더라.”
내 모든 재산은 J&H에 묶여 있어 그곳의 지분을 팔지 않는 이상 현찰로 바꿔 쓸 수가 없다. 그래도 비상용으로 놔둔 돈이 남아 있었다.
“150억으로 개인 투자라도 하려고? 그거 불법인데.”
“주식 시장이랑 연관만 안 되어 있으면 다른 투자는 괜찮아. 부동산을 사는 것도 괜찮잖아.”
“그래서 부동산 부자가 되려고?”
“아니. 디지털 부자가 되어 보려고.”
“······?”
나는 멍하니 눈만 껌뻑이는 현식이를 집에 놔두고 밖으로 나갔다.
아무런 방해도 받고 싶지 않아 경호원들도 부르지 않았는데, 덕분에 나는 오랜만에 자차를 끌고 은행으로 갈 수 있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운전석 승차감.
벤츠 S 클래스의 부드러운 핸들링과 서스펜션은 운전자로 하여금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은행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어 드라이브가 짧다는 사실이 조금 아쉬웠다.
나는 은행에 들어가 번호표를 뽑고 자리에 가만히 앉아 대기했다.
아침인데도 은행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아 순번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주변에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사람 맞지?”
“맞는 거 같은데.”
“실물이 훨씬 더 잘생겼네.”
그런 소란도 잠시.
직원 하나가 내게 달려와 조심스레 물었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혹시 신분증 좀 잠시 보여 주실 수 있을까요?”
“아, 예.”
나는 대수롭지 않게 신분증을 보여 주었고 직원은 침착하게 다시 신분증을 돌려주며 내게 말했다.
“VVIP 고객님께서는 별도의 대기 없이 상담 가능하십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갑자기 부자가 되고 나서 은행에 온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런 혜택이 있는 줄도 몰랐다.
그리고 VVIP 상담실에서 날 기다리고 있던 건 이 은행의 지점장이었다.
“아이고. 회장님께서 저희 은행을 다 찾아 주시니 영광입니다. 곽원호 지점장이라고 합니다.”
“제가 괜히 번거롭게 해 드렸네요. 이진석이라고 합니다.”
“하하. 아닙니다. 이 회장님을 조금 더 빨리 알아보고 안내해 드리지 못한 저희 잘못이죠. 그런데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보통 은행 업무는 아래 사람들을 시키시지 않나요?”
어느 기업 회장도 직접 은행으로 와서 업무를 처리하는 경우는 없다.
나 또한 은행에 갈 일이 있으면 아래 사람을 시켜 대신 업무를 처리하게 한다.
“오늘은 제가 꼭 와야만 하는 일이라서요. 지금 제 통장에 있는 돈들을 다른 곳에 전부 송금하고 싶습니다.”
“통장에 있는 돈이라면 150억이 넘는데, 이걸 전부 다 송금하신다고요?”
“예. 이쪽에다 송금해 주시겠습니까?”
나는 계좌 정보를 지점장에게 넘겼다.
그는 조금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해외 계좌네요? 그리고 전액을 인출하신다는 건 더 이상 저희 은행과 거래하지 않겠다는 의미일까요?”
“아니요. 그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잠깐 송금했다가 다시 이쪽 계좌에 옮겨 놓을 거라서요. 그것도 몇 배나 더 큰 돈으로 말이죠.”
그제야 얼굴이 밝아지는 지점장이었다.
“어이쿠. 제가 잠시 오지랖을 부렸습니다. 얼른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돈이 억 단위를 넘어가면 그때부터는 국세청에 자동으로 신고가 들어간다.
150억이라면 큰 금액이기 때문에 당연히 국가 기관에 보고가 들어가고 이것이 혹시 범죄에 관련된 건 아닌지 조사가 들어오기도 한다.
아마 그들은 내가 돈을 송금한 해외 계좌가 무엇인지 매우 궁금할 것이다.
“회장님. 처리는 다 해 드렸습니다. 빠른 시일 내로 다시 저희 은행과 거래를 해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이러다 큰손을 잃는 건 아닌지 걱정하는 지점장에게 나는 미소를 보였다.
그리고 나는 이곳에서 지체할 시간이 없어 얼른 은행 밖을 나와 빠르게 집으로 돌아왔다.
아직도 침대에 누워 뒹굴뒹굴하던 현식이는 한 시간도 안 돼서 돌아온 나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은행 간다면서?”
“벌써 다녀왔지.”
“그럼 올 때 센스 있게 커피라도 사 왔어야지. 근데 왜 다시 돌아온 거야? 회사 간 거 아니었어?”
“내가 아까 말했잖아. 디지털 부자가 될 거라고.”
“아까부터 그게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야?”
나는 현식이의 말을 무시하고 내 방으로 들어가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비트코인 거래소에 접속해 내 개인 계좌에 있는 돈을 확인해 보니 1,263만 달러가 찍혀 있었다.
24시간 운영을 하는 곳이라 돈을 보내 주면 해외에서 보낸 돈이라고 해도 1시간 이내 환전을 해 준다고 한다.
나는 그 돈을 가지고 전부 매수에 올인했다.
“어디 한번 쭉 가 보자.”
브레이크 없이 폭주하는 기관차에 나는 몸을 실었다.
* * *
“우리 키프로스 정부는 구제 금융을 받았지만, 여전히 국고 난으로 허덕이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자국민, 외국인을 가리지 않고 카프로스에 있는 모든 은행 계좌에서 최대 40%까지 강제 징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특별 구제 금융을 받은 카프로스 정부는 신분을 막론하고 계좌에 있는 돈을 최대 40% 강제 징수하겠다는 무시무시한 발표를 하게 된다.
그로 인해 카프로스 국민들은 눈 뜬 채 코가 베이는 신세가 되어 버렸고, 눈치 빠른 부자들은 얼른 은행에서 돈을 빼 금을 사 두려고 했다. 그러나 정부가 금 거래까지 전부 막아 놓은 통에 발만 동동 구르고 있던 그들이 찾은 해법은 바로 비트코인이었다.
비트코인 거래소 계좌에 접근하려면 암호키가 있는 하드가 필요하다. 그것은 처음 거래소에 가입을 했을 때 부여된다. 즉, 정부가 그 암호키를 뺏지 않는 한 그 돈을 몰수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안정성이 부각되어 카프로스에 돈을 숨겨 둔 여러 부자들이 전부 비트코인으로 몰리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로 인해 비트코인 가격이 400달러까지 폭등하게 되었다.
이것이 브레이크가 고장 난 폭주 기관차 비트코인의 첫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