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74화
만약 주식 시장 전체가 마비되었다면 그건 감히 예측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대혼란을 야기한다. 눈앞에서 수십, 수백조 원이 공중분해 되는 걸 지켜만 봐야 하니까.
불행 중 다행으로 주식 시장이 마비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여러 금융사 시스템이 마비되면서 거래를 하고 싶어도 거래를 할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왜 서버가 먹통이냐고!”
“주식 시장 시스템이 문제인 건가?”
“아닙니다. 주식 시장은 잘 돌아가고 있는데, 저희 증권사 시스템이 마비된 것 같습니다!”
이날 펀드 매니저들과 금융맨들은 식은땀을 흘려야만 했다.
주식 시장 시스템이 마비된 거라면 책임을 회피할 수 있지만, 증권사 시스템이 오류를 일으켜 마비된 거라면 고객들의 항의가 빗발칠 것이고 소송까지 이어질 게 뻔했다.
“빨리 서버팀에 연락해! 씨발 이러다 돈 다 날아가면 그대로 우리 목도 다 날아가는 거야!”
직원들은 우왕좌왕하며 빗발치는 항의 전화에 진땀을 빼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뉴스를 통해 상황을 전달받았다.
-오늘 낮 11시부터 여러 증권사 시스템이 디도스 공격에 의해 마비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주식 거래를 하지 못하는 고객들의 항의가 이어지고 있으며, 서버 오류로 인해 전산 시스템이 고장 나 모든 거래 내역이 날아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미 20곳의 증권사 시스템이 공격을 받아 주식 프로그램이 열리지 않고 있으며, 개인 투자자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습니다.
-항의 전화가 빗발쳐 증권사 고객센터와 연결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이며, 수조 원에서 최대 수십조 원의 피해가 이어질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했습니다.
-서버를 공격한 세력이 누구인지 아직 밝혀지고 있지 않은 가운데, 금융 시스템을 관리하는 정부는 서둘러 사태 파악에 나섰습니다.
20곳이나 되는 대형 증권사들이 피해를 입었고, 증권사뿐만이 아니라 각 은행들도 피해를 입으면서 점점 사태가 커지고 있었다.
국민들은 대체 서버 관리를 어떻게 하면 해킹으로 서버가 마비될 수 있냐며 정부와 증권사들을 비난했고, 정부는 정부 나름대로 사태 파악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중이었다.
그러나 증권사라고 해서 무조건 비난만 받는 건 아니었다.
누군가의 위기는 곧 누군가의 기회라고 하지 않던가.
예전부터 금융 보안 시스템을 바꿔 놓은 천하 그룹은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
그들도 서버를 공격하는 세력의 움직임을 감지하고는 있었지만, 결국 해킹범들은 천하 그룹 서버를 뚫지 못했다.
천하 그룹과 마찬가지로 최근 보안 시스템을 개편한 J&H는 천하 그룹보다 더욱 튼튼한 보안을 자랑하며 해킹범들을 좌절시켰다.
다들 항의 전화를 받으며 패닉에 빠져 있을 때, J&H 증권사 안은 매우 평화로웠다.
증권사들끼리 같은 여의도에 있지만, 마치 남 일이라는 듯 J&H 증권사는 항상 하던 대로 일을 이어 갔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 안에 말이 나돌지 않는 건 아니었다.
“야. 대체 뭐야? 다른 증권사들은 다 터졌다며.”
“소름 돋지 않냐? 우리 회장님 진짜 무당인가 봐. 아무리 우연이라고 해도 이게 딱 떨어지네?”
“일주일 전에 보안 서버 다 교체되었잖아. 어떻게 교체하자마자 일이 이렇게 터져?”
직원들은 다시 한번 이진석 회장의 혜안에 감탄을 터트렸다.
그가 뜬금없이 보안 서버 전체를 교체한다고 했을 때 직원들은 솔직히 불만이 많았다.
보안 서버를 교체하면 직원들이 쓰는 서버 아이디를 다시 만들어야 하고 출입증부터 사소한 것까지 죄다 바꿔야 하기 때문에 며칠 동안 교체 작업을 하느라 불만들이 좀 있었다.
그런데 마치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것처럼 사고가 터지니, 직원들로서는 이제 감탄을 터트리기보다는 이진석이란 사람이 무서워졌다.
아예 직원들은 이진석 회장에게 점을 보고 싶다면서 농담 아닌 농담을 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언론에서도 이 냄새를 맡았다.
“20개가 넘는 증권사들과 은행들이 디도스 공격에 허덕이며 3시간이 지난 지금도 서버 복구를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혼란스러운 가운데에 아직까지 보안 시스템이 뚫리지 않은 곳이 있는데요. 그건 바로 천하 증권과 J&H입니다.”
“여러 공격 시도 정황이 포착되기는 했지만, 결국 해킹범들은 두 기업의 보안 프로그램을 뚫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 두 기업이 보통 증권사들이 쓰는 국가 공유 보안 시스템을 이용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보안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했기 때문입니다.”
“일주일 전에 보안 서버 전체를 교체한 J&H도 이번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갑자기 보안 서버를 교체한 이유와 배경이 밝혀지진 않았지만, J&H는 매우 안전하다는 걸 스스로 증명해 냈습니다.”
언론사가 실컷 띄워 주고 있으니, J&H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마케팅부터 이어 나갔다.
각종 SNS에 J&H는 안전하다는 문구를 넣어 홍보를 했고, 다른 증권사들은 계속해서 해킹 위협에 시달릴 것이라며 스크래치까지 냈다.
이러한 소식들이 퍼져 나가면서 J&H에 몰려드는 고객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덩달아 J&H 주가도 폭등했다.
이런 배 아픈 소식들이 연이어 들어오자 금융계 사장들은 전부 넥타이를 풀어 헤치며 상황 파악에 나섰다.
“니미. 아직도 복구가 안 된 거야?”
“죄송합니다, 사장님. 인력들이 달려들어 최대한 복구를 하고 있긴 한데, 서버 손상이 꽤 커서 시간이 좀 걸린다고 합니다.”
신화 금융 사장, 홍진우는 상을 내려치며 언성을 높였다.
“대체 일을 어떻게 하는 거야! 도대체 어디서부터 뚫린 거냐고? 저번 LK 금융 때처럼 내부에서 일을 친 건가?”
“정부 쪽에 알아보니 거기는 이번 일을 북한 소행으로 보고 있습니다.”
“뭐? 북한?”
“예. 국정원에서도 북한이 서버 공격을 하는 정황을 포착했다고 하는데, 아마 곧 발표를 할 것 같습니다.”
“젠장. 대체 우리가 뭘 했다고 왜 우리한테 지랄이야 그 새끼들은.”
이런 일이 터지면 보통 북한부터 의심해야 한다. 항상 그들이 이런 짓을 저지르곤 했으니까. 근데 이번 건 너무 사태가 커지고 말았다.
“문제는 서버가 복구되고 나서도 온전히 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느냐입니다. 만약 거래 내역이 전부 사라져 버리면 그땐 이도 저도 안 되지 않습니까?”
“다행히 백업 서버가 있어 그렇게 막장으로 상황이 흘러갈 것 같진 않습니다. 진짜 문제는 고객의 신뢰를 잃었다는 겁니다. 천하 그룹과 J&H 그룹은 이번 해킹 공격을 잘 넘기지 않았습니까? 그로 인해 벌써부터 고객들이 그 두 기업에 몰려가고 있습니다.”
천하 그룹을 뛰어넘는 것이 신화 그룹의 사명이나 다름이 없다.
어차피 전자 쪽은 천하 그룹이 꽉 붙잡고 있어 감히 넘어설 순 없지만, 그래도 돈을 만지는 증권만큼은 뛰어넘고 싶었다. 그것이 신화 그룹의 목표다. 그런데 이번 사태로 천하 그룹의 멱살을 잡을 기회가 저 멀리 떠내려가게 생겼다.
“며칠 전만 하더라도 신나게 물어뜯던 놈이 지금은 구세주라도 만난 것처럼 찬양하는 꼴이라니.”
J&H 금융 그룹 회장, 이진석이 미국으로 건너가 테슬라에 무려 2조 원이란 돈을 투자했다는 얘기를 듣고 각 금융사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기사를 터트려 그를 헐뜯었다.
자국에 투자를 해도 모자랄 판에 2조 원이란 돈을 생뚱맞은 회사에 투자를 했다고 조롱한 건데, 이건 정부가 앞으로 진행하려는 사업에도 전혀 맞지 않는 투자라면서 공격했다.
정부도 J&H에 썩 좋은 감정이 있는 게 아니라서 그들까지 나서서 언론을 움직였다.
언론이 다 그렇게 떠드니, 사람들도 정말 그런 줄 알고 이진석을 비난하는 글들이 참 많았는데, 이번 일로 그런 얘기가 쏙 들어가게 생겼다.
“지금 반응이 심상치가 않습니다. 이진석에 대한 여론이 꽤 많이 반전되고 있어요.”
“벌써부터 테슬라 주가에 돈을 거는 사람들이 꽤 있을 만큼 반응이 뜨겁습니다.”
이대로 여론전의 힘을 몰아 이진석과 J&H를 동시에 묻어 버리려는 계획은 날아갔다.
그 잘난 놈이 왜 대한민국 2위 기업인 신화 그룹을 버리고 자기 스스로 회사를 세웠는지 알겠다. 인정하긴 싫지만, 실력 하나는 참 대단한 녀석이 아닌가.
“일단 최대한 서버 복구에 힘을 쏟아. 우리 쪽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가 나가지 못하게 단속 잘 하고.”
그래도 신화 그룹은 신화 그룹이다.
천하 그룹이 대한민국 1위 재계 그룹이나, 그 뒤를 신화 그룹이 바짝 따라잡고 있다.
대한민국 2위 대기업의 입김은 여전히 살아 있다.
* * *
“전 이럴 줄 알았습니다. 회장님이 갑자기 서버를 바꾸자고 했을 때 딱 필이 왔죠.”
권오준 대표는 아주 웃음꽃이 만연해 있었다.
하루 종일 그의 핸드폰이 울려대고 있었고, 그는 그중 정말 중요한 전화만 가끔씩 받은 뒤 나머지는 그냥 전화가 오는 걸 가만히 지켜만 보았다.
“대다수 인터뷰 요청일 겁니다. 그리고 경쟁사에서도 전화를 걸겠죠. 우리가 무슨 보안 프로그램을 쓰는지 알아보려고요. 거기다 이런 것도 물어볼 겁니다. 혹시 정말 일이 이렇게 될 줄 알고 보안 시스템을 바꿨냐고요.”
그는 이 상황을 아주 즐기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대답하시려고요?”
“뭐, 솔직하게 말해 줘야죠. 나도 모른다고요. 다 회장님의 명령이었고, 전 그냥 물주의 말씀대로 했을 뿐이라고. 아마 그렇게 대답해 주면 다들 미치고 팔짝 뛸 겁니다.”
약 올리는 게 이제는 도가 텄는지 그의 입가에 음흉한 미소가 깃들었다.
“그리고 이번 일 덕분에 회사 주가가 많이 올랐습니다. 오늘만 벌써 25%나 올랐어요. 이렇게 쭉쭉 상승하면 조만간 10만 원도 돌파할 듯 보입니다.”
현재 J&H 증권 주가는 82,000원.
보통 증권사 주가가 높게 책정되는 경우가 없다 보니, 82,000원도 꽤 높은 수준이었다.
당장 천하 증권사만 봐도 주가가 9~10을 왔다 갔다 한다. 그런데 이번 일로 천하 증권과 J&H 증권의 주가가 치솟고 있었다.
“회장님께서 증권사 지분 70%를 들고 계시죠?”
“예. 제가 70%를 다 가지고 있습니다. 현식이 저놈은 한 푼도 안 가지고 있고요.”
증권사 지분을 내가 전부 다 갖는 대신, 현식이는 금융 그룹 지배 지분을 더 많이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금융 그룹 지배 지분은 시장에 내놓아 팔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가격 변동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저희가 이렇게 계속 성장하면 곧 시가 총액 3조 원을 돌파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주가도 계속 오르면 회장님의 재산도 정말 많이 올라가게 될 테고요.”
증권사의 시가 총액만 3조 원.
그중 70%의 지분을 가지고 있으면 2조 1천억 정도가 내 돈이라는 얘기다.
금융 그룹 전체로 따지고 보면 더 불어나긴 하겠지만, 핵심은 증권사였다.
솔직히 나처럼 70%나 증권사 주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런데 얘기 들으셨습니까? 이번에 정부가 정말 제대로 당한 것 같더군요. 북한 놈들이 대대적으로 디도스 공격을 가해 정부 메인 서버가 터져 버렸답니다. 이거, 꽤 후폭풍이 있을 것 같아요.”
북한은 저번 정권 때부터 계속해서 우리를 도발해 왔다.
연평도 포격도 그렇고, 천안함 사건과 대포동 미사일 등등.
거기다 북핵 실험도 꾸준히 이어 가고 있는 가운데에 이번에는 디도스 공격까지 가해 우리에게 피해를 끼쳤다.
다행히 우리는 그 피해를 모면하여 기회를 얻었지만, 기분이 찝찝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보안 프로그램 강화를 한 번 더 해 주세요. 이러다 우리까지 뚫리면 위험하니까.”
“예, 회장님.”
나는 그렇게 지시를 내리고 난 뒤 김영훈 교수가 J&H 증권사로 보낸 보고서를 집어 들었다.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것과 동시에 딥웹에 관한 것도 계속해서 연구를 진행하던 김영훈 교수는 최근 그 안에서 벌어지는 심상치 않은 어느 한 일을 내게 보고했다.
바로 디지털 채굴.
“비트코인?”
뭔가 심상치 않은 이름이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