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융계 천재가 되었다-72화 (72/200)

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72화

영화에서나 볼 법한 전세기를 직접 타게 될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칼리타라고 불리는 이 전세기는 재벌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기종이라고 한다.

빌리는 시간마다 차이가 있지만, 기본 비용이 5억은 우습게 넘어간다고 하는데, 이 정도면 서울에서 집 하나를 구할 수 있는 수준의 비용이었다.

“일단 2박 3일로 빌려 놓았습니다. 비용은 15억 정도로 청구가 될 예정이고요.”

15억을 쓰는 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덤덤하게 보고를 하는 경호실장을 보니, 내 가슴이 다 웅장해지는 것 같았다.

“회장님의 경호를 위한 비용입니다. 150억을 썼어도 전혀 아깝지 않았을 겁니다.”

“······.”

현식이는 경호원들이 있는 쪽으로 걸어가는 경호실장 뒷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둘 중 하나인 거 같다.”

“뭐가?”

“네 돈을 어떻게든 다 탕진하려는 거거나, 아니면 널 정말 사랑하거나.”

다른 때 같았으면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말라며 면박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 생각도 잠시.

일등석만큼 최고의 편안함을 비행기에서 찾을 수 없을 거라는 내 편견을 칼리타 전세기가 와장창 부숴 버렸다.

최고급 음식은 물론이요, 각종 술과 뛰어난 편안함을 자랑하는 침구류까지.

나와 현식이만을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해 주는 곳이었다.

6시간이 정말 순식간에 지나가는 경험을 만끽하고 나서 나는 뉴욕 공항에서 내리게 되었다. 그리고 고작 6시간을 위해 15억이 날아갔다는 걸 재차 깨달으면서 심한 현타를 느껴야만 했다.

“너도 이제 재벌이잖아. 이런 생활에 익숙해져야지. 그쪽 사람들은 자기를 위해 10억, 100억 쓰는 걸 전혀 아까워하지 않아.”

현식이 말이 맞다. 나는 이런 생활에 익숙해져야만 한다.

아직 직장인 때의 마인드가 좀 남아 있는 듯했다.

“배고프다. 너 뮤지컬 보기 전에 뭐라도 먹으면 안 되냐.”

“전세기에서 이것저것 다 처먹은 놈이 뭐가 또 배가 고파.”

“기압 때문에 그래. 원래 이게 정상이란다.”

현식이의 고집에 못 이겨 나는 공항에서 대기 중이던 새로운 미국 경호원들의 추천에 따라 뉴욕의 맛집을 찾아다녔다.

이미 최고급 호텔까지 예약을 해 놓은 터라 우리는 호텔에 있는 레스토랑을 이용하게 되었다.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대충 먹을 순 없다고 생각해 나와 현식이는 가격을 생각하지 않고 맛있어 보이는 걸 모조리 시켜 놓았다.

경호실장과 경호원들을 불러 같이 식사를 하려고 했으나, 그들은 절대 의뢰인과 식사를 할 수 없다며 자신들의 본분을 지켰다.

프로 정신 하나는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음식이 나오고 정신없이 스테이크를 썰던 현식이가 문득 내게 물었다.

“뮤지컬 뭐 보려고?”

“볼 게 참 많아. 시간은 한정적이니까 일단 <위키드>부터 보고 <킹키부츠>도 보면 좋을 거 같은데.”

질겅질겅 스테이크를 씹으며 현식이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그러냐?”

“같이 볼 거 아니잖아.”

“난 뮤지컬 본 적이 없어.”

“문화생활 좀 해라, 너도. 취미 삼아 공연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그 시간에 게임을 한 판 더 하는 게 나아.”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 나와 회사를 세운 이후, 레전드 오브 챔피언이란 게임에 푹 빠져 있는 현식이었다.

“내가 최근에 티어도 쭉쭉 상승해서 다이아까지 갔다니깐?”

하지만 브론즈, 실버, 골드를 칭하는 심해라는 구간에 갇혀 있는 나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 게임을 잘 하지 않기도 하고, 요즘 일만 하느라 게임 할 시간도 없었다. 그래도 워낙 세계적으로 유명한 게임이고 E-스포츠가 상당히 발전한 곳이라 가끔 리그 경기를 하는 걸 동영상을 통해 보긴 한다.

“거기 DK 팀에 페이크라는 선수가 있는데, 폼이 장난 아니야. 세계 최고의 미드라이너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라니깐?”

“페이트 선수라면 나도 알지.”

이미 2번의 레전드 오브 챔피언 월드컵 우승으로 이름을 날린 선수다.

그 게임을 모르는 사람도 페이크 선수의 이름을 들어 본 적은 있다.

“나중에 우리도 리그 팀 하나 만들까? 실력 좋은 프로 선수들 모아서 만들어 보는 거지.”

“우리가 그런 게 필요할까? 정 그런 게 필요하다면 차라리 프로 축구에 투자하는 게 낫지. E 스포츠판이 커지긴 했지만, 공들여서 투자할 만큼의 메리트는 없어.”

“프로 축구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나, 첼시 같은 팀이 우리 J&H 로고를 달고 뛰면 진짜 볼만 하겠다.”

프로 축구에 투자하는 건 기업의 홍보를 위한 건데, 사실 거기서 수익을 얻기란 쉽지가 않다. 잘하는 팀이면 여러 방면으로 수익을 얻어 내기는 하는데, 보통은 투자자들이 개인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프로팀을 인수하는 경우가 많다.

나도 정말 돈이 많아진다면 나중에 좋아하는 프로팀을 인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직은 그저 상상에 불과하다.

우리는 얼른 식사를 마무리하고 브로드웨이로 떠났다.

문화생활에 관심이 없던 현식이도 속는 셈 치고 나를 따라 공연장 안으로 들어갔다.

“프리미엄 좌석을 구해 놓았습니다. 총기를 소지하고 들어갈 수가 없어서 무술 실력이 가장 좋은 경호원이 회장님 옆에 앉게 될 겁니다.”

우리 셋은 가장 비싸고 좋은 자리에 앉게 되어 위키드라는 뮤지컬을 감상하게 되었다.

폭발적인 가창력과 눈을 사로잡는 퍼포먼스는 정신을 쏙 빼놓을 정도였다.

옆을 슬쩍 보니, 자신의 임무를 전부 다 잊은 채 멍하니 배우들을 바라보고 있는 경호원과 뮤지컬은 자기 취향이 아니라던 현식이가 넋을 놓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 이미 3번 이상 본 공연이었지만, 브로드웨이에서 오리지널 뮤지컬을 보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러면서 느낀 건 정말 성공해야겠구나 하는 것이었다.

만약 미래 커뮤니티 센터를 만나지 않고 그대로 직장 생활을 쭉 했으면 지금의 난 뭐 하고 있었을까.

병원비와 생활비에 허덕이며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회사를 다니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어느 것 하나 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멈춰 있지 말고 더 위로 올라가야겠다는 열의가 생겨났다.

꿈만 같은 뉴욕에서의 여행.

어느덧 뮤지컬 공연도 끝이 났다.

* * *

“뉴욕에서의 여행은 마음에 드셨습니까?”

“예. 2박 3일 동안 참 재밌게 보냈습니다. 원래 여행이라는 걸 잘 다니지 않았는데, 이번 기회에 여행의 재미를 알게 됐어요. 자주 다녀 볼 생각입니다.”

4일 후에 다시 만나게 된 엘론 머스크.

그는 항상 그랬듯이 악수를 하는 손에 힘이 넘쳤고 주체 못 할 에너지가 느껴졌다.

“미스터 리가 제안해 주신 건 저희가 꼼꼼하게 검토를 해 봤습니다. 제가 만약 미스터 리의 제안을 거절하면 어떻게 될지 그림이 벌써 그려지기 때문에 전 투자 제안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검토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음. 제가 꼭 나쁜 놈이 된 것 같군요. 하지만 그렇게 보신다고 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전 꼭 투자를 성공시키고 싶거든요.”

“그 말씀은 우리 테슬라의 미래가 매우 밝다는 뜻이겠죠?”

“예. 이대로 쭉 나간다면 테슬라의 시대가 오지 않을까,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 확신이 없었다면 투자 결정을 내리지도 않았을 테고요.”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머스크는 빙긋 미소를 지으며 서류를 건넸다.

“유상 증자는 아무래도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내가 유상 증자를 받으려는 건 현재 나와 있는 시장가보다 할인을 받기 위함이다. 그리고 유상 증자를 하는 건 엘론 머스크에게도 나쁘지 않은 일이다.

애써 만들어 놓은 판을 엎자고 저런 말을 한 것 같진 않았다.

“주주들의 반대가 심합니다. 주가가 지금 많이 불안정한 상태에서 유상 증자를 해 버리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폭락할 거라고 보는 것 같습니다.”

“그 정도까지 불안하다고 생각하진 않았는데요.”

“뭐, 주식 시장이 예측할 수 없다는 건 모두가 동의하는 바이니까요. 주주들의 생각이 워낙 다 다르다 보니, 유상 증자는 통과시킬 수 없다는군요.”

엘론 머스크를 지지하는 세력이 더 우세하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런 결과가 나왔다는 건 그를 우호하는 사람들도 유상 증자를 반대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결론을 내리셨습니까? 제가 시장에 있는 주식들을 전부 매입해야 하는 걸까요?”

“아마 주주들은 그런 걸 바라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갑자기 큰손이 나타나 테슬라 지분을 미친 듯이 사들인다면 주가가 저절로 올라가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제 경영권 방어가 힘들어지겠죠?”

“하하. 글쎄요. 어차피 전 시장에 있는 주식들을 사들일 생각이 없습니다. 다른 대주주들의 지분을 매수하는 건 모를까.”

“예. 제 결론이 바로 그겁니다. 유상 증자를 하기보다는 대주주의 지분을 흡수하는 것. 그래서 전 제가 가진 지분을 미스터 리에게 팔고 싶습니다.”

이런 식으로 받아쳐 주는 건가.

“당연히 가격은 시장가보다 할인이 될 겁니다.”

“정확히 얼마에 팔 생각이시죠?”

“현재 주가가 58달러. 전 55달러에 판매하고 싶군요.”

나는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가격을 말해 주었다.

“50달러.”

“예?”

“50달러. 그 위로는 사지 않겠습니다.”

머스크를 비롯해 그의 옆에 있는 직원들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현식이도 내가 저렇게까지 깎을 줄은 몰랐는지 헛웃음을 터트렸다.

“미스터 리. 50달러는 너무 낮은 가격이 아닌지······.”

“제가 이유 없이 가격을 후려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미스터 머스크를 배려해 주는 겁니다.”

“저를요?”

“예. 제가 예상하기로는 테슬라 주가가 계속 떨어질 것 같거든요. 제 예상이 맞다면 이번 달 안에 테슬라 주가는 47달러까지 떨어지게 될 겁니다. 그냥 그때까지 기다렸다가 사는 게 저한테는 더 이득이겠죠.”

엘론 머스크는 직원들을 바라보며 그들에게 귓속말로 무언가를 전달받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주가가 58달러까지 떨어져서 과연 여기서 더 떨어질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하지만 내가 미래 커뮤니티 센터를 통해 본 테슬라의 미래 주가는 47달러였다.

지금으로부터 한 달 뒤의 주가이다.

엘론 머스크는 직원들과 이야기를 끝낸 뒤에 내게 말했다.

“제 직원들은 절대 그럴 일이 없다고 하는군요.”

“직원분들이 주가 예측을 잘하는 편인가 보죠?”

“그거야······.”

“제 말을 믿으세요. 테슬라의 최저점은 아직 더 남아 있습니다.”

“그 말씀은 47달러가 최저점이라는 겁니까?”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 제 제안을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한 달 뒤에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내느냐가 중요한 거 아니겠습니까?”

깊이 고민하는 엘론 머스크를 두고 직원들은 절대 내 제안을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조언을 해 주고 있었다. 하지만 난 엘론 머스크가 대승적인 결단을 내릴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는 당장에 보이는 이득보다는 먼 미래를 바라보는 사람이니까.

“후. 이렇게까지 궁지에 몰려 본 적은 처음입니다. 정말이지 미스터 리는 무시무시한 분이시군요.”

“그럴 리가요. 그냥 제 방식대로 투자를 하는 것뿐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이건 제가 미스터 머스크를 배려해 드리는 겁니다.”

사실 그를 배려해 주는 건 아니다.

47달러까지 주가가 떨어지는 건 맞으나, 아직 한 달이라는 기간이 남아 있다.

즉, 엘론 머스크에게도 한 달이란 시간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는 건 그가 내 투자를 무마시킬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는 뜻.

적은 확률이었으나, 난 그런 적은 확률의 리스크를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무리한 투자 제안을 넣는 것이다.

아시아 투자의 귀재라 불리는 이진석의 이름을 엘론 머스크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난 그가 내 판단을 믿어 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내 생각이 옳았다.

“좋습니다.”

엘론 머스크가 마침내 결정을 내리자 직원들은 탄식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흡족하게 수정된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그와 악수를 나누며 말했다.

“계약서에 사인을 했으니 드리는 말씀이지만, 전 처음부터 미스터 머스크의 경영권을 공격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모든 게 블러핑이었다는 겁니까?”

“예. 그냥 포기할 생각이었죠. 잘 나가는 회사를 공격할 만큼 쪼잔하지 않습니다.”

“이런. 제가 블러핑에서 완전히 밀렸군요. 하하. 그래도 미스터 리와 같은 투자자를 얻어서 저는 매우 기쁩니다. 앞으로 테슬라가 더 발전하는 모습을 꼭 보여 드리죠.”

엘론 머스크도 빚지는 장사를 하는 건 아니다.

계약서대로 나는 모든 의결권을 머스크에게 넘겼고, 그는 2조 원이라는 자금을 확보해 새로운 투자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저 이 회사가 얼마나 발전을 이루어 나가는지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