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68화
“정부의 뜻에 잘 맞춰 가도록 하겠습니다.”
고급 일식집에서 만나게 된 강연호 의원은 흡족하게 미소를 보이며 내 잔에 술을 따라 주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정부에서 곧 사업 진행을 시작하면 그때 투자를······.”
“아니요. 정부에서 선별하는 기업에 투자할 생각은 없습니다.”
“예? 방금 분명 정부의 뜻에 잘 맞춰 가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강연호 의원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하지만 그렇게 무섭게 노려본다고 한들 내 뜻이 달라지진 않는다.
언뜻 봐도 뭔가 냄새가 나는 기업에 돈을 들일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진행하는 투자에 재를 뿌린다는 게 아닙니다. 우리 금융사도 고객이 원한다면 언제든 정부의 사업에 투자할 의향이 있습니다. 그전까지는 저희 J&H가 자체적으로 물색한 회사에 투자를 진행하는 중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정부가 강조하는 창조 경제가 있고요. 인공지능과 로봇 산업, 그리고 5G에 투자를 하는 것이 정부의 목표이지 않던가요?”
“그렇긴 합니다만······.”
“정부의 정책인 만큼 당연히 공정성이 있겠지요? 특정 기업에만 돈을 몰아준다면 분명 여기저기서 말이 나올 겁니다. 정부가 시작하는 첫 사업이지 않습니까? 그 어느 때보다 투명하고 공정해야 합니다.”
강연호 의원도 뭐라 반박할 말이 없는지 헛기침을 한 번 터트리며 술잔을 비웠다.
하지만 이렇게 분위기가 얼어붙은 채로 만남을 끝낼 생각은 없었다.
“그렇다고 제가 투자를 하지 않겠다는 게 아닙니다. 당장 정부에서 예시로 주는 기업들이 없으니까요. 지금은 일단 저희 회사가 자체적으로 미래 산업에 걸맞은 기업을 찾아 투자를 진행해 그 열기를 올리겠다는 겁니다. 사업 계획서나 구체적인 기업 모델도 없이 돈부터 넣는다는 건 보통 사기라고 부르니까요.”
정부가 지원하는 기업에 투자를 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다. 만약 그 기업이 미래가 창창하고 이들이 가진 계획이 잘 짜여 있다면 내가 왜 돈을 투자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지금은 정부가 어느 기업을 밀어주려는 건지 아직 알아낸 게 없다. 그러므로 투자도 진행할 수 없는 것이다.
“하하. 당연한 말씀을 하시네요. 제가 잠깐 오해했습니다.”
강연호 의원도 내 말을 알아듣고는 이내 표정을 풀었다.
“그런데 회장님. 이거 하나만 기억해 주십시오.”
“예, 말씀하시지요.”
“저번 정권은 재벌들에게 부드러운 모습을 보인 반면, 이번 정부는 좀 다를 겁니다. 강압성이 상당히 높을 수 있다는 점, 명심해 주십시오.”
“그 말씀은 정부가 어떤 요청을 해도 저는 절대적인 복종을 하라는 것이군요.”
“말이 그렇게 되나요? 하하. 완전히 부정하진 못하겠군요.”
강연호 의원의 눈동자를 보니, 이 사람은 그냥 권력에 취해 있었다.
그리고 난 다시 한번 확신할 수 있었다.
정부에서 주장하는 창조 경제는 단순히 미래 산업을 개발하기 위한 그들의 비전이 아니다. 뭔가 내가 알지 못하는 세력이 재벌들 주머니를 털어 배를 채우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뭐, 설마 그 정도로 막장이겠냐마는, 이 정도로 압박을 넣는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긴 했다.
“의원님의 말씀, 잘 기억하고 있겠습니다.”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하하.”
이번 정부와는 더더욱 거리를 벌리는 게 상책일 거 같다.
* * *
“제가 정리한 종목 리스트입니다. 아마 2주 동안은 상승세를 보일 거고, 그 후부터는 조금씩 하락세를 보일 거예요. 그러니 2주 동안만 붙잡고 있다가 그 후에 팔아넘기세요.”
나는 미래 커뮤니티 센터를 통해 입수한 정보를 토대로 종목 리스트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권오준 대표에게 넘겨주었다.
“이야. 이렇게 또 회장님의 예언서가 나왔군요.”
“예언서요?”
“모르고 계셨습니까? 회장님이 이렇게 종목 리스트를 만들어 넘겨주실 때면 저희 임원들과 직원들 사이에서는 신성한 예언서라고 부릅니다.”
언제 그런 이름이 생겼는지 모르겠다.
나는 흥미롭게 권오준 대표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신기하게 회장님이 주신 리스트대로 종목을 사면 정말 귀신같이 상승을 하더군요. 거의 몇 개월 동안 주가 변동이 없던 종목도 갑자기 15% 상한가를 치기까지 하고요. 처음에는 직원들이 한 번쯤은 회장님이 틀릴 거라고 돈을 걸기도 했는데, 지금은 누구도 회장님이 틀린다는 것에 돈을 거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 덕분에 회장님의 이 종목 리스트가 신성스럽게 받들여진 겁니다.”
나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하긴. 일반인들 눈에는 이 종목 리스트가 신기할 수밖에 없다.
내가 그동안 10번은 넘게 종목 리스트를 넘겼는데, 그때마다 항상 내 리스트대로 주가가 상승하지 않았던가.
“진짜 시대가 조금만 뒤처져 있었으면 이거 갖고 종교 의식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에이. 그 정도는 아니에요. 그냥 운이 좋아서 맞춘 거죠.”
“이렇게 연속으로 운이 좋을 순 없죠. 도대체 어떤 분석 방법을 쓰시는 건지 전 궁금해 미치겠더군요.”
“음. 그건 영업 비밀입니다.”
“오호. 그 말씀은 우리가 알아서는 안 될 분석 방법이 정말 존재한다는 겁니까?”
“글쎄요.”
남들이 절대 알아서는 안 될 나만의 방법이 있긴 하지.
권오준 대표는 뭔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저희 회사에 이런 대표님의 예언서가 존재한다는 게 금융사에 쫙 퍼져서 저번에는 이런 전화도 왔었습니다. 회장님이 건네주는 종목 리스트 사본을 주면 10억을 주겠다고 말입니다.”
“그런 로비가 왔었다고요? 대표님한테?”
“예. 워낙 화제가 많이 되는 것 같아 제가 철저히 보안을 중시하며 별도로 보관을 하거든요. 이 종목 리스트를 볼 수 있는 건 회장님과 저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소문을 들은 다른 금융사 임원들이 제게 로비를 거는 겁니다.”
그런 로비까지 왔었다니.
이건 내가 너무 신경을 못 쓴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내 눈빛을 의식한 권오준 대표가 날 안심시켰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돈 때문에 이 회사에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거기다 돈은 이미 충분히 벌었습니다. 보통 금융사 사장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었죠. 그래서 그 사람들이 건네는 돈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습니다.”
권오준 대표는 신화 그룹에서부터 이미 이름난 경영인이었다.
거기다 J&H로 넘어오면서 폭발적인 실적으로 보너스를 두둑이 챙겨 갔다.
“수천억을 준다고 해도 회장님을 배신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저한테 예언서를 매번 하사해 주시는 분을 어떻게 배신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말씀하시면 너무 낯부끄러운데.”
“하하. 저도 좀 쑥스럽네요. 그런데 한 달 동안이나 자리를 비우신다고요?”
이렇게까지 오래 회사를 비우는 건 처음이라 나도 걱정이 조금 되긴 했다.
“예. 제가 한국 말고는 투자를 안 했잖아요. 그래서 본격적으로 해외에도 투자를 해 볼까 합니다. 그래도 우리가 번 돈이 꽤 되잖아요? 캣마블 덕분에 이번에 돈을 왕창 번 것도 있고, 펀드로도 종종 벌어들이는 중이고요. 거기다 큰손들도 아낌없이 돈을 퍼 주고 있으니, 지금 아니면 언제 또 해 보겠습니까.”
다른 금융사들은 실적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있는 중이다.
계속되는 경기 침체로 금융 쪽도 상황이 여의치 않다. 그런데 우리 J&H만 현재 날개를 뻗어 날아가고 있으니 아마 내년부터 실적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한참이나 앞서게 될 거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 캣마블 대박과 여러 종목들의 상승으로 현재 우리 J&H는 쌓여만 가는 이 투자금을 어디다 써야 할지 고민해야 했다.
“우리 J&H 증권 시가 총액이 2조 8,200억이죠? 그런데 우리가 자체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투자금이 무려 2조 원이에요. 안 쓰고 썩힐 순 없잖아요.”
캣마블 투자 성공으로 큰손들이 계속해서 우리 증권사에 돈을 옮기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J&H가 자체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금액이 2조 원이나 모여들었다. 하지만 이 많은 돈을 뿌릴 만한 국내 투자처가 없다.
설사 있다고 해도 지금 한국은 투자하기에 썩 좋은 상황이 아니다. 계속되는 불황으로 전체적으로 주가가 떨어지고 있는 상황.
이럴 땐 우리 코스피보다 몇 배는 더 크게 성장해 있는 해외에 눈을 돌려야 한다. 거기다 나는 이번 정부가 주장한 미래 산업 투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고 그 끝에 도달한 결론은 나도 장기적인 시점으로 해외에 진출하자는 것이었다.
어차피 우리나라는 4차 산업에 당장 뛰어든다고 해서 성과를 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에 반해 군사적 목적과 여러 다양한 분야를 위해 한창 미래 산업에 투자를 하는 중인 미국은 돈을 쏟아부을 만한 투자처가 꽤 많았다.
“미래 산업이라······.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먹히지 않는 단어네요.”
“예. 그래서 미국으로 가려는 겁니다. 우리나라도 분명 미래 산업이 크게 발전할 때가 오겠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합니다.”
“잘 알겠습니다. 저는 회장님이 주신 이 예언서를 잘 보관하고 있겠습니다.”
어차피 내가 미래 커뮤니티로 볼 수 있는 미래의 시점은 한정되어 있다.
마음 같아서는 5년, 10년 후의 미래를 보고 싶지만, 회원 등급 때문에 그 정도로 먼 미래를 확인할 순 없다. 그렇기에 지금 내게 주어진 시점과 현재를 접목해 투자를 진행해야 한다.
“그리고 이번에 제가 꼭 미국으로 가야 하는 일이 생겼어요.”
“그렇습니까? 전 휴가를 가시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군요.”
“아직 휴가 갈 때는 아니죠. 비즈니스로 누굴 만나는 건데, 자세한 건 다녀와서 말씀드릴게요. 비행기 시간이 얼마 안 남았네요.”
“아, 예. 회장님.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그리고 부디 다음에 해외 가실 땐 꼭 좀 휴가로 가세요. 여건이 된다면 애인분이랑요.”
“하하. 노력해 보겠습니다.”
나는 권오준 대표와 임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서둘러 공항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이미 현식이가 혼자 순두부찌개 한 그릇을 뚝딱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서두르자. 수속도 밟아야 하고 짐도 부쳐야 하고 할 게 많다.”
그러자 현식이가 심드렁하게 이빨을 이쑤시개로 쑤시며 핀잔을 주었다.
“너 비행기 처음 타 보냐?”
“응? 아니.”
“일등석은 처음 타 보냐?”
“왜?”
“이코노미 탈 때처럼 서두를 필요도 없어. 거기다 너 수행 비서도 있잖아. 경호원들도 다 따라간다며. 그 사람들한테 그냥 짐 넘기고 다 알아서 하라고 해. 일등석은 수속 밟을 때도 줄 설 필요도 없고 그냥 프리 패스니까. 여기 앉아서 국밥이나 한 그릇 해 인마. 괜히 너 또 일등석 들어가서 신기하다고 막 두리번거리면 안 된다.”
“······.”
J&H 그룹의 회장이지만, 나는 단 한 번도 비즈니스나 일등석을 타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외국에 나간 본 것도 딱 한 번뿐이라 사실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에 반해 현식이 이놈은 가족들과 휴가를 갈 때마다 일등석을 탔다고 하니, 나 같은 흙수저와 비할 바가 못 됐다.
“그런데 갑자기 미국은 왜 가겠다는 거야? 너 간다는 말에 나도 따라오긴 했지만 정작 이유는 못 들었네. 휴가 가는 거야?”
“뭔 휴가야. 정권도 바뀌어서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럼 일하러 가는 거라고? 한 달 동안? 에라이. 괜히 따라왔네. 그냥 지금이라도 티켓 취소할까?”
“너도 대주주로서 당연히 닥치고 따라와야지.”
“젠장.”
현식이는 속았다며 투덜거리면서도 내가 무슨 일 때문에 가는지는 궁금했던 모양이다.
나는 현식이에게 왜 내가 미국까지 가는지 알려 주었다.
내가 미국에 가는 이유는 미래 산업의 발전 가능성을 확인하는 것도 있지만, 주요 목적은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누굴 만난다고?”
“테슬라 창업자 엘론 머스크.”
“그 사람이 널 만나 준다고 했어?”
“내가 당연히 저번부터 컨택을 해 봤지. 그런데 곧바로 답이 오더라. 미국에 오면 바로 만나 주겠다고.”
실리콘 밸리에서 탄생한 기업, 테슬라.
전기 자동차와 소프트웨어, 그리고 에너지 저장 장치를 개발 및 제조하는 곳으로 다른 자동차 기업에 비하면 역사가 짧지만, 이들은 전기 자동차라는 것을 주력으로 삼아 친환경적으로 소비자에게 접근하는 기업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회사의 창업자이자 현재 CEO인 엘론 머스크를 만나러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