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66화
“이렇게 사람 없는 곳에서 따로 얘기를 할 정도면 남들이 들어서는 안 되는 내용입니까?”
“아닙니다. 단지, 주변이 너무 어수선하지 않습니까. 이 회장님한테 인사를 하려는 사람도 많고요.”
“저보다는 의원님한테 인사하러 오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 같은데요?”
“하하. 전 별로 힘 없어요. 아시지 않습니까? 제가 모시는 분이 대통령으로 당선돼도 길어야 3년입니다. 3년 후부터는 레임덕에 빠져서 아무 힘도 못 씁니다.”
서론이 길었다.
강연호 의원은 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대통령님께서는 창조 경제를 줄기차게 주장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국가가 어디에 투자를 지원할지 이미 결정도 해 놓았고요.”
“벌써요? 빠르시네요.”
“국민들에게 신선함을 줘야 하니까요. 아시겠지만 전 대통령님께서 이리저리 싸 놓으신 게 많아 그 수습을 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수습에만 집중을 해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4대 강 사업부터 시작해 저번 정부가 알게 모르게 어지른 것이 많긴 했다.
10조 원이란 세금을 들여 여러 사업에 투자했는데, 정작 남은 돈은 3조 원밖에 없다는 건 당연히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번 정권은 잃어버린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고 경제적인 발전을 이루려는 것처럼 보였다.
“창조 경제가 집중하고 있는 건 바로 4차 산업입니다. 로봇과 인공지능, 미래형 자동차가 바로 그 핵심이죠. 자세한 건 제가 회장님 메일에 보내 놓았습니다. 한번 검토해 보십시오. 그리고 투자를 해 주셨으면 합니다.”
투자 의뢰? 고작 그거 하나로 날 여기까지 불렀다고?
“강 의원님. 속 시원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정확히 저한테 어떤 걸 원하십니까? 투자 검토를 해 보라고 절 여기까지 부른 게 아니실 텐데요.”
“하하. 이런. 젊은 분이 역시 눈치가 빠르시군요. 그럼, 시원하게 말씀드리죠. 저희는 이 회장님이 직접 앞으로 나서서 투자를 해 줬으면 합니다.”
“저 말고도 다른 규모가 큰 회사들도 있을 텐데요?”
“그렇죠. 하지만 국민들은 원초적으로 대기업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항상 정부와 쇼부 쳐서 구린 짓을 한다고 믿죠.”
지금도 딱 그 구린 짓을 하려는 게 아닌가?
“그러나 이진석 회장님에 대한 평가는 다릅니다. 이 회장님의 별명이 한국의 워런 버핏 아닙니까? 투자에 관해서는 이 회장님을 따라갈 사람이 없다고 다들 인식하고 있는 거죠.”
나는 강 의원이 무슨 의도로 이런 말을 꺼낸 건지 알아챘다.
“저를 이용해 국민들의 신뢰를 얻으려는 것이군요.”
“뭔가 어감이 좋지 않은 거 같지만,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그렇습니다. 투자의 귀재라 불리는 이 회장님이 선두 주자에 나서서 과감하게 투자금을 지원한다면 다른 투자자들과 국민들도 국가가 하는 일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겠습니까?”
결국 이들이 원하는 건 이진석이라는 이름이었다.
내 이름을 팔아 성공할지, 아니면 그냥 쪽박을 찰지도 모르는 분야에 국민들의 돈을 쏟아부으려는 것이다.
“저야 당연히 비즈니스맨으로서 회사에 이익이 된다면 거부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제가 검토를 했을 때 가망이 없다고 판단되면 투자금을 내놓지 않을 겁니다.”
비즈니스맨이라는 말을 일부러 강조했다.
그러자 강 의원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렇게 많은 투자금을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저희가 원하는 건······.”
“바람잡이죠.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바람을 잡으면 여기저기 지갑이 열릴 거라 생각하시는 거고요.”
“그렇죠. 그리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닙니다. 저희 뜻대로 해 주신다면 앞으로 J&H는 많은 혜택을 누리게 될 겁니다.”
“예를 들자면······?”
“대기업이다 보니 당연히 털면 먼지가 나올 수밖에 없죠. 추후에 그런 문제가 생기더라도 저희 선에서 마무리를 지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원하신다면 경쟁사를 압박해 드릴 수도 있고요. 아주 기본적이고 확신한 무기가 정부한테 있지 않습니까?”
내 경쟁사, 그것도 금융업계를 한 번에 털어 버릴 수 있는 무기.
그건 세무 조사다.
“세무 조사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예. 정부가 휘두를 수 있는 최고의 회초리 아닙니까?”
“그 뜻은 제가 투자를 거부한다면 지금까지 말씀하신 모든 게 저한테 향할 수도 있다는 것이군요.”
“상상은 자유입니다.”
이 양반 보게.
아주 대놓고 협박질을 한다.
이제 정권이 자기들 손에 들어왔으니 무서울 게 없다 이건가?
“의원님의 말씀은 잘 알아들었습니다.”
“하하.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자세한 건 메일을 확인해 보고 따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예. 저도 좋은 답변이 있기를 기다리죠.”
불편했던 대화는 그것으로 끝났다.
나는 다시 방 밖으로 나왔고 기다렸다는 듯 최진철 사장이 내 옆에 붙었다.
“강 의원 만난 거냐?”
“어떻게 아셨습니까?”
“흐흐. 벌써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걸? 여기에 재벌들만 모인 게 아니야. 그 재벌들이 뿌려둔 스파이들도 잔뜩 있지. 누가 지금 누구랑 얘기를 하고 있나 다 감시하고 있어.”
무서운 세상이다.
항상 누군가를 감시하는 파티라니.
“그래서, 그 양반이 뭐라고 하디?”
“궁금하십니까?”
“아니야.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너도 이제 어엿한 금융 그룹의 회장인데 당연히 숨길 건 숨겨야지.”
“딱히 숨길 것도 없습니다. 그냥 힘자랑을 하더군요.”
“힘자랑?”
나는 많이 궁금해하고 있는 최진철 사장에게 강 의원과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알려 주었다. 이윽고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헛웃음을 지었다.
“이야. 자기가 모시던 주군이 대통령 됐다 이거지? 그만큼 네가 주목을 받고 있다는 뜻이야. 예전에 내가 한창 잘나갔을 땐 나한테 그런 제안들이 종종 왔었지.”
“그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어떻게 하긴? 하라는 대로 했지.”
예상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당근과 채찍이지. 우리 같은 금융업은 정부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어. 다른 분야와는 다르게 정부 정책에 민감한 곳이거든. 특히 세무 조사 한번 세게 들어오면 답이 없어. 우리가 구린 짓을 안 했어도 어딘가에는 꼭 구멍이 나 있기 마련이거든. 정부 쪽 사람들은 그런 구멍 찾는 데에 도가 텄고.”
“그 말씀은 제가 이 투자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건가요?”
“네 마음이긴 하지만, 일 복잡하게 만들기 싫으면 따르는 척이라도 해. 그쪽에서 보낸 계획서를 보고 검토를 해 봐. 혹시 모르잖아? 거기서 좋은 아이템이 나올지.”
경험이 깃들어 있는 답변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최진철 사장의 말을 무시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까지 여러 정권을 거치며 회사를 이어 온 인물이지 않은가.
“그리고 이번 정부는 여러모로 많은 변화를 시도하려는 거 같아. 그 첫 번째 시도가 주 5일 근무제가 될 거라고 하던데?”
“그건 대기업에서 반발이 만만치 않을 텐데요?”
“지금 국정 지지율이 생각보다 안 좋아. 유미화가 대통령이 되었어도 탐탁지 않게 보는 사람들이 많다는 거지. 그런데 여기서 갑자기 주 5일 근무제를 시행한다? 지지율이 팍 솟겠지? 국정 초기에 지지율을 올려놓아야 총선 때 보수 쪽에 좌석을 많이 차지할 거 아니야.”
주 5일 근무라.
금융계 회사들은 주식 시장이 주말에 오픈하지 않으니 당연히 주말에는 일을 하지 않는다. 물론, 주말에까지 회사로 나와 남은 서류를 정리하고 여러 시장의 호재를 모아 다음 주 주가 동향을 예측하는 팀이 있긴 하다.
그러나 보통은 주말엔 쉰다. 하지만 다른 직장들은 어떨까?
대부분의 직장은 현재 주 6일 근무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당연히 기업인들로서는 반발이 클 수밖에 없을 터.
“천하 그룹도 별말 없습니까?”
“거기도 정부랑 한바탕하고 있나 봐. 그런데 정부에서는 대기업의 반대에도 단호한 입장을 취하려는 것 같더라. 그래야 국민들이 좋아할 테니.”
“서로 앙금이 쌓이겠네요.”
“그래. 대기업이랑 앙금 쌓아 놓고 좋은 꼴 본 사람 솔직히 못 봤다. 임기 끝나면 어떻게 될지 두고 봐야지.”
주 5일 근무에 관한 건 나와 관련이 없어 보였다. 그렇게 다시 최진철은 어디론가 다른 사람을 만나러 떠났다.
날 기다리고 있었는지, 이한별은 내가 방에서 나오자 다시 곁으로 돌아와 함께 여러 사람들을 만났다.
“이번 정권은 확실히 민영화 작업 들어가는 건가?”
“벌써 로비를 넣고 있긴 하다는데, 저번 정권에서도 민영화 시도했다가 반대가 너무 심해서 결국 철회했잖아.”
최진철 사장 말고도 나는 다른 총수들이 모여서 나누는 이야기를 귀담아들었다.
이한별 말대로 이곳은 정보의 커뮤니티다. 인터넷에서는 구할 수 없는 정보들이 이곳에서 마구 떠다닌다.
누군가가 무의식적으로 한 말이 내게는 큰 이익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근데 요즘 한라 그룹 괜찮은 거야?”
“아. 나도 얼핏 들었는데, 요즘 여기도 휘청한다지?”
“전 정권에서 4대 강 사업한다고 한창 난리 쳤을 때 한라 그룹이 같이했었잖아. 그때 정부가 뒤통수 제대로 쳐서 돈 좀 많이 말아먹었다던데?”
총수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게 된 이한별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크흠-!”
나는 다 들으라고 짧게 헛기침을 터트렸다. 그러자 우리를 뒤늦게 발견한 총수들은 모른 척 인사를 건네며 다른 자리로 뿔뿔이 흩어졌다.
“틀린 말이 아니긴 해요. 할아버지랑 아빠도 회사 상황이 예전보다 못해서 많이 걱정을 하고 계세요.”
깊게 물을 생각은 없었는데, 이한별이 알아서 얘기를 해 주고 있었다.
“이러다 한라 그룹이 쪼개지는 건 아닌지 걱정도 돼요. 최대한 버텨 주고 계시지만, 부채를 다 감당하지 못하면 한라 그룹을 쪼개서 인수 기업을 찾아야 한다고 했어요.”
한라 그룹이 그 지경으로 사정이 안 좋았던가. 나는 전혀 몰랐던 이야기였다.
내가 한라 그룹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있어서 그런 것도 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다 훌륭한 분들이시니, 분명 해결 방법을 찾으실 겁니다.”
“아니에요. 저도 차라리 저렇게 고생하시는 것보단 인수자를 찾아서 해결을 보는 게 더 좋다고 생각했어요. 어차피 전 회사를 물려받을 생각도 없으니까요. 그저 할아버지랑 부모님 모두 건강하시길 바랄 뿐이죠.”
한라 그룹이라.
그곳이 정말 경영 위기에 빠졌고, 인수자를 찾고 있는 거라면 나도 흥미롭게 살펴봐야겠다. 혹시 아는가? 내가 미래의 한라 그룹 인수자가 될지.
물론, 한라 그룹이라는 거대한 먹잇감을 뺏어 올 수 있을 만큼의 총알이 준비되어 있진 않다. 그러나 미래 커뮤니티 어플이 내 손에 있는 한, 돈은 얼마든지 벌 수가 있다.
“오늘 너무 즐거웠어요, 진석 씨.”
차츰 시간이 길어지면서 파티장을 나서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나도 바깥을 나와 이한별을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집에 들어가던 이한별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더니 내게 말했다.
“다음에는 일 때문에 말고 꼭 사적으로 만났으면 좋겠어요.”
“예?”
“아침에 만나고 늦은 저녁에 헤어지는 그런 만남이요.”
“아침에 만나서 다음 날에 헤어지는 옵션은 없습니까?”
슬쩍 장난을 쳐 본 건데, 이한별은 빨개진 얼굴로 후다닥 집 안으로 들어갔다.
“조,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여러모로 매력이 참 많은 여자인 거 같다.
연애를 해도 저런 사람이랑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나는 이한별을 데려다주고 나서 집에 돌아와 강 의원이 보냈다는 메일부터 확인해 보았다. 현식이 이놈은 또 어디 가서 술을 퍼마시고 있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창조 경제를 위한 사업 계획]
정부의 사업안은 인공지능, 로봇, 사물 인터넷, 5G 등등.
한 단계 더 발전된 산업을 만들어 가려 하는 것 같았다. 특히 이들은 개인이 기업에 대항할 수 있는 경제 체제를 만들려 하는데, 말이야 좋지 이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거기다 사업 구상도 뭔가 많이 엉성하다고 해야 할까.
구체적인 내용은 없고 뜬구름 잡는 소리만 늘어뜨려 놓으며 현존하는 기업에 투자하기보다는, 새로운 벤처 기업을 만들어 투자를 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상한데.”
냄새가 나는 계획안이다.
현존하는 기업들 중 5G를 비롯해 인공지능 산업에 뛰어들어 점차 성장 가능성을 보이고 있는 곳들이 많다. 그런 곳들을 전부 제외하고 자기들끼리 새로 법인을 만들어 사업을 구상한다? 그게 과연 대통령 임기 기간 안에 성과를 볼 수 있는 업적일까?
마침 시간도 시간이라 나는 핸드폰을 들어 미래 커뮤니티 센터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정확히 밤 12시가 되어 핸드폰이 울리면서 환영 문구가 내 앞에 나타났다.
그런데 오늘은 다른 날과 다르게 새로운 창이 하나 더 화면을 채웠다.
[새로운 특별 미션을 받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