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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 천재가 되었다-65화 (65/200)

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65화

자선 모금 파티.

들어 보면 꼭 외국에서만 할 것 같은 파티인데,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매달 자선 사업을 위한 모금 파티가 열린다.

종종 대기업에서 주최를 하여 기업 총수들을 초대하곤 하는데, 전경련에 가입이 되어 있으면 거의 대부분 초대를 받는다고 봐야 했다. 나도 그 파티에 초대장을 받았고, 이번 파티의 주최자가 한라 그룹이기 때문에 이한별에게 별도로 연락이 왔었다.

“저랑 같이 가실래요? 제가 사실 파티에 참석하는 사람들을 잘 몰라서요. 아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편할 것 같아서······.”

“아, 예. 저도 그런 자리는 어색한지라, 한별 씨한테 이것저것 물어봐야겠네요. 자선 모금 파티는 처음이거든요.”

초대장을 직접 전달해 준 것은 이한별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난 이런 파티가 처음이라 가서 뭘 해야 할지도 몰랐기 때문에 차라리 이한별과 같이 파티장에 들어가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총수분들도 많이 오고 총수 자제분들도 많이들 오세요. 파티에 참여해서 다 같이 안면을 트는 것도 진석 씨한테 훨씬 좋을 거예요. 금융업 쪽은 인맥이 중요하잖아요?”

“거기까지 신경 써 주시니 저야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렇게 우리 둘은 처음으로 단둘이 만나는 점심 약속을 잡았다.

사실 밀린 일들이 있었는데, 내가 여자를 만나러 간다는 말을 현식이에게 듣고 권오준 대표는 자기가 알아서 밀린 일을 처리해 놓겠다며 내 등을 떠밀었다.

“우리 회장님이 하도 여자는 만나지 않으시고 일만 하셔서 솔직히 어디에 문제가 있으신 건가 하는 슬픈 생각까지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건 모두 제 착각이었네요. 하하하!”

권오준은 자기 일인 것처럼 껄껄 웃으며 기분 좋게 날 보내 주었다.

보통 때는 쉴 틈을 주지 않고 달려들어서 일을 시키던 양반이 말이다.

“여자 앞이라고 막 떨고 이상한 말 하면 안 된다. 돈 필요하냐? 내가 카드라도 하나 줄까?”

“누가 보면 내가 백수 모솔인 줄 알겠네. 나 여자친구도 몇 명 사귀어 봤거든?”

“아 그러셔요. 그런 분이 잘도 지금까지 참고 계셨네. 흡사 때를 기다리며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 같은 건가?”

“넌 그냥 일이나 해라. 권 대표님. 현식이 일 빡세게 시키세요. 어떤 것이든 다 시키세요.”

“회장님 명령이라면 어쩔 수 없군요.”

나는 현식이를 권오준 대표에게 던져 버리고 회사 밖을 나섰다.

그리고 약속 장소로 나가자 주변 시선을 확 끌어 잡으며 혼자 반짝이는 이한별을 만날 수 있었다. 이렇게 단둘이 만나는 건 처음이라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는 것 같다.

“제가 괜히 회사 일 바쁘신데 일찍 부른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아직 장도 안 닫았잖아요.”

“하하. 괜찮습니다. 저 대신 일할 사람이 차고 넘쳐서요. 바로 식사하러 가실까요?”

“예. 진석 씨가 좋아하는 곳으로 가요.”

“음. 선택권을 주셨으니, 제가 좋은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런 내 말에 이한별이 낮아진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전 여자친구랑 갔던 곳을 가는 건 아니겠죠?”

“아, 아닌데요. 그땐 비싼 곳을 돌아다닐 만큼 생활의 여유가······.”

“에이. 그냥 농담한 건데 왜 그렇게 놀라세요?”

뭔가 서늘함이 느껴지는 농담이었다.

우리는 여의도에서 유명한 프랑스 레스토랑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이한별을 만나기 전부터 이곳을 점찍어 두긴 했다.

“제가 프랑스 요리 좋아하는 거 혹시 아셨어요?”

“예? 아니요. 전혀 몰랐습니다.”

“그럼, 진석 씨가 프랑스 요리를 좋아하시나요?”

“아, 예.”

사실은 프랑스 요리를 먹어 본 적이 없다.

그런 내가 프랑스 레스토랑에 온 이유는 전부 한라 그룹 이강철 회장 때문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나한테 전화를 하고는 자기 손녀딸이 프랑스 요리를 그렇게 좋아한다며 떠들다 뚝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때 이 회장이 정보를 주지 않았다면 나는 어디로 갈지 몰라 갈팡질팡하다 잘 차려입은 이한별을 데리고 국밥 한 그릇 했을지도 모른다.

“자선 모금은 각 기업끼리 돌아가면서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말이 자선 모금이지, 대부분 모은 돈으로 제약 개발에 투자하는 경우가 많죠. 명목상으로는 치매 치료제, 소아암 치료제 등등으로 걸어 놓고선 말이에요.”

에피타이저를 먼저 먹으면서 이한별은 대기업 총수들이 여는 자선 모금의 실체를 알려 주었다.

“오늘 저희 할아버지가 여시는 자선 모금은 전부 한라 그룹 재단에 보내져 고아원에 있는 아이들에게 쓰일 예정이지만, 보통은 남을 돕는다는 핑계로 제약 개발에 쓴다고 하더라고요.”

“다른 사람들이 반발을 하거나 그러진 않나요?”

“어차피 자기들도 똑같이 자선 모금을 하면 그렇게 쓸 테니까요. 거기다 자선 모금 모임에 꾸준히 참석하는 이유가 있어요. 다른 곳에서는 절대 얻지 못하는 정보를 그곳에서는 얻을 수 있잖아요. 그래서 일정 돈을 지불하고 모임에 참여해서 정보를 얻는 거예요.”

미국에서도 자선 모금이 자주 열린다고 들었다. 그때마다 재벌들은 물론 연예인들까지 참여해 파티를 여는데, 그 안에서 주고받는 정보량이 상당하다고 들은 적이 있다.

“인터넷이나 다른 정보망을 통해서는 절대 들을 수 없는 것들이 거기 있으니까 큰돈을 내서라도 오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거라면 전 꼭 참석을 해야겠네요.”

“금융업일수록 정보에 민감하잖아요. 자주 다니시는 게 좋을 거예요.”

이한별에게 귀중한 정보들을 얻고 있는 동안 이제 차례대로 디시가 차려졌다.

그런데 난생처음 보는 음식에 나는 눈만 몇 번 껌뻑였다.

이거 설마 그 유명한 달팽이 요리인가?

인터넷에서만 보던 식용 달팽이가 프랑스 요리사의 기민한 손놀림에 요리되어 내 앞에 놓였다. 이미 이한별은 맛있게 요리를 음미하고 있었고, 나도 그녀를 따라 조금씩 입에 집어넣어 보았다.

미끈거리면서 뭔가 묘하게 쫀득한 맛이 난다.

달팽이라는 거부감 때문에 안 먹힐 줄 알았는데, 특유의 양념이 잘 깃들어져 있어 거부감은 금방 사라졌다.

“아마 이번 모임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거예요. 아시다시피 곧 정권이 바뀌잖아요. 특히 저번 정권과 마찬가지로 친재벌 성향을 가진 후보가 당선이 되었으니까요.”

이번에 물러나는 이용환 대통령은 친재벌 중의 친재벌이었다.

그 스스로가 대기업 회장직을 역임한 적이 있어서 그런지 재벌들을 위한 정책을 많이 펼쳤다. 세금 감면과 노동자 탄압, 거기다 역사상 전례 없는 단독 사면 감행 등등.

최근에는 노조 파괴에 정부가 일조했다는 의혹까지 나오고 있다.

“이번 모임에 정치권 관련 사람들도 모인다고 하니, 거기서 얻을 정보가 많을 거예요.”

“한별 씨는 잘 알고 계시네요.”

“저야 재벌집 딸이다 보니 주워듣는 게 많아요. 할아버지나 아빠를 따라서 이런 모임에 자주 나가기도 하고요. 특히 기업 자제들끼리 모이는 모임도 있어요.”

기업인들끼리 모이는 것뿐만이 아니라 자제들끼리 따로 모이는 모임이 있다니.

생각만 해도 피곤해진다.

“혹시··· 시간 되면 다음에 저랑 같이 나가 보실래요? 질 안 좋은 친구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다 좋은 친구들이에요.”

“아, 예. 한번 기회 되면 같이 가 보죠.”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나갈 생각은 없었다.

우리는 식사를 마무리하고 레스토랑 밖을 나섰다. 아직 시간이 좀 남아서 호텔에 있는 카페도 들르고 VIP만 이용한다는 명품 코너로 가서 쇼핑을 하기도 했다.

몇몇 백화점에는 이렇게 VIP 카드가 있는 고객들만 이용할 수 있는 명품점이 있는데, 나는 VIP 카드가 없어서 이한별이 가진 회원권으로 같이 들어가 보았다.

말로만 들었지, 이런 곳이 진짜 있을 줄이야.

고객마다 직원이 붙어 각 제품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불편함이 없게 최대한 케어를 해 주는 것이 다른 백화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서비스들의 연속이었다.

“이건 제 선물이에요. 이 백은 진석 씨 어머님이 쓰시면 참 잘 어울릴 것 같아요.”

내 손보다 조금 큰 저 백이 무려 3천만 원을 호가한다.

너무 해맑은 표정으로 선물을 건네주고 있어서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처음에는 이런 큰 선물이 부담스러웠으나, 차츰 이해가 갔다.

힘들게 직장 생활 하는 남녀가 만나 데이트를 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나는 이제 어엿한 그룹 회장 소리를 듣고 있고, 이한별은 재벌 회장 손녀딸이다. 그 씀씀이가 일반인들의 상식을 벗어난다는 것이다. 앞으로 그녀와 계속 만남을 유지하려면 나도 예전 회사원 때의 생각을 버릴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우리 어머니를 위해 선물을 해 주었다는 게 참 고마울 따름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이쪽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한라 그룹이 운영하는 5성급 호텔을 통째로 빌려서 여는 자선 모금 파티.

나와 이한별은 딱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이미 파티장에 미리 와서 서로 얘기를 나누고 있는 기업 총수들이 눈에 들어왔다.

전경련에서 본 얼굴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얼굴들도 있었다.

“아이고. 이 회장 왔는가?”

우릴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은 바로 이강철 회장이었다.

그는 나와 이한별이 같이 있는 것을 보고 아주 흡족한 얼굴빛을 보였다. 그런데 그의 뒤에 있는 사람은 실물로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처음 뵙네요. 한별이 아버지 되는 사람입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그는 이한별의 아버지이자 한라 그룹의 부회장 자리에 앉아 있는 이현상이었다.

다음 달이면 이강철이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고 제 아들에게 물려준다는 찌라시가 돌던 게 문득 떠올랐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진석이라고 합니다.”

“예. 대한민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이 회장님을 여기서 뵈니 반갑습니다.”

듣던 대로 이현상은 매우 점잖고 예의 바른 사람이었다.

저번 전경련 모임에서는 보이지 않더니, 오늘 자선 모임에는 참석을 했다.

그렇게 우리가 서로 신변잡기를 하며 얘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 연회장에 사람들이 점점 가득 차기 시작했다.

정치계 인사들부터 경영계 거물들까지.

나는 어쩌다 보니 이한별을 옆에 끼고 다니며 그들과 한 명씩 인사를 나누었다.

어떤 이는 우리 둘을 부부로 오해하기까지 했는데, 나도 그렇고 이한별도 딱히 기분이 상하진 않았다.

“음?”

“어?”

그러다 눈을 마주친 게 하필이면 KV 그룹 오현중과 백수진이었다.

이런 모임에 오현중이 백수진을 끌고 나올 줄은 몰랐다.

오현중은 우리 둘의 불편한 사이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넉살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나도 대충 인사를 받아주면서 백수진과도 가볍게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빨리 그들을 지나쳐 가는데, 그런 날 이한별이 툭 치면서 물었다.

“제 촉이 맞죠?”

“예?”

“아까 저 여자분. 진석 씨가 예전에 사귀던 여자친구예요?”

역시 여자들의 직감은 무서운 것 같다.

“어떻게 아셨어요?”

“같은 여자들끼리는 딱 보면 알죠. 그런데 왜 헤어진 거예요? 진석 씨처럼 좋은 사람 찾기도 힘들 텐데. 아! 괜한 걸 물어본 거라면 미안해요.”

“아니에요.”

나는 백수진과 어떻게 사귀게 되었고 또 어떻게 헤어졌는지도 말해 주었다.

이한별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면서도 왠지 모를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금 저 여자분 엄청 후회하시겠다.”

“응? 왜요?”

“진석 씨는 지금 평범한 회사원이 아니라 J&H 금융 그룹 회장이 되었잖아요. 저 KV 그룹 회장 아들이란 사람은 회사를 물려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잘 모르고.”

글쎄. 정말 수진이가 후회를 하고 있을까.

별로 생각하고 싶지도, 알고 싶지도 않았다.

“이진석 회장님?”

그때 누군가가 아는 척을 하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국회 배지를 달고 있는 것을 보니, 국회의원인 듯한데 이름은 나도 알지 못했다.

“강연호 의원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얼굴을 뵙는 건 처음이네요.”

강연호 의원이라면 유미화 당선인의 최측근이다.

“저랑 잠시 조용한 곳에서 얘기 좀 나누실 수 있을까요?”

그러자 이한별이 옅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전 잠시 다른 곳에 가 있을게요. 두 분 편하게 말씀 나누세요.”

조용한 곳에서 얘기를 하는 거라면 보통 대외적으로 알려져서는 안 되는 일을 뜻한다.

그러나 금융업에서 일하는 사람을 따로 불러 할 얘기가 무엇이 있겠는가. 분명 다음 정권에서 진행하고자 하는 투자 사업에 관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뭔가 건질 수 있는 게 있을 거라는 일련의 기대감을 품고 그를 따라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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