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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 천재가 되었다-64화 (64/200)

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64화

“으음-.”

“왜? 잘 안 돼?”

“말 시키지 마. 지금 매우 중요한 순간이니까.”

“그러니까 왜 하필 지금 중요한 순간이냐고.”

나는 현식이의 말을 무시하고 끝까지 집중을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나의 노고가 모두 무색해지는 순간이 오고 말았다.

“이진석! 너 아직도 멸치 똥 제거 다 안 하고 뭐 했어?!”

어머니의 불호령에 나는 그만 핸드폰을 끌 수밖에 없었다.

“미, 미안해요. 엄마.”

나는 현식이에게 몰아 두었던 멸치를 몇 개만 슬쩍 빼 와 대가리를 쪼개고 그 안에 있는 똥을 제거하면서 중얼거렸다.

“아. 좀만 하면 1등이었는데.”

“재밌냐?”

“뭐가.”

“그 게임. 이번에 캣마블이 오픈한 게임이잖아.”

“내 돈 들어갔다고 생각하니까 재미없을 수가 없던데.”

캣마블은 일주일 전 ‘다 함께 레이스’라는 첫 모바일 게임을 시중에 내놓았다.

많은 인력과 돈이 투입된 만큼, 확실한 결과를 보여 주겠노라 큰소리를 치던 두 대표의 얼굴이 문득 떠올랐다.

“반응 보니까 나쁘지 않더라?”

아주 능숙한 솜씨로 멸치 대가리를 제거하며 현식이가 말을 이었다.

“다운로드 수도 계속 늘어나는 것 같고.”

“벌써 톱 10 순위권에도 올랐어. 내가 해 보니까 확실히 재미는 있더라고.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긴 해.”

“뭔데?”

“현질 유도가 너무 심해.”

“그건 좀 안 좋은 거 아니야?”

글쎄. 과연 안 좋다고 할 수 있을까.

모바일 게임은 PC보다 더 현질 유도가 심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당연히 애들은 현질을 거의 할 수가 없고 대다수 어른들이 돈을 쓰게 되는데, 워낙 결제 시스템이 PC보다 편하다 보니 의외로 별생각 없이 돈을 쓰게 된다.

나는 이런 결제 서비스가 매우 유용하면서 좋다고 생각했다.

“PC로 결제하려고 하면 이상한 프로그램 다운받고 기다리다가 또 다운받고, 그러다 세월 다 가잖아. 근데 모바일은 그냥 클릭 한 번이면 끝나. 바로 결제가 되어 버리니까 엄청 편해. 진짜 정신줄 놓으면 나도 모르게 10만 원은 우습게 결제한다니깐?”

‘다 함께 레이스’라는 게임을 하면서 상대보다 더 좋은 자동차를 갖기 위해 나도 몇 번 결제를 하고 말았다. 정말 홀린 듯이 결제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면서 모바일 결제 시스템이 참 무서운 것이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리고 바쁜 직장인들이 언제 열심히 노가다를 해서 재료를 모으고 자동차 레벨을 올리려 하겠어. 그냥 클릭 몇 번으로 결제를 하면 엄청 좋은 차를 얻게 되는데.”

“그것도 그렇네.”

“난 이런 현질 유도로 경쟁 심리를 유발하는 게 나쁘지 않은 방법이라 생각해. 유저들 입장에서는 너무 불공평하다 생각할 수 있는데, 난 이보다 공평한 시스템이 없다고 보거든. 돈만 많으면 게임 내에서 최강이 될 수 있다는 자본주의식 시스템. 너무 아름다워.”

“너 좀 속물 같다.”

“내 돈이 들어가서 그래. 이렇게라도 정당화를 해야지. 안 그래?”

핸드폰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에게 물어보라.

현질 시스템이 많은 게임이 좋은가, 아니면 현질 시스템이 조금만 갖춰져 있는 게임이 좋은가.

당연히 현질 시스템이 적은 게임을 유저들은 더욱 선호할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어떨까?

현질 시스템이 적은 게임은 점차 그 인기가 시들어 갔고, 오히려 현질 시스템이 대놓고 많은 게임의 인기는 날로 높아져만 갔다.

이런 현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건 모바일 게임 시장 이용자들이, 특히 구매 파워가 있는 이용자들 대다수가 직장인이기 때문이다.

직장인들은 회사에서 짬을 내어 모바일 게임을 한다. 누구든 PC로 게임을 즐기고 싶겠지만, 직장인들에게 그럴 시간은 거의 없다. 집에 돌아가면 방전이 되어 전부 쓰러져 잠에 곯아떨어지고 만다.

그런 직장인들을 위해 나온 것이 모바일 게임이다.

PC로 하던 게임을 모바일로도 즐길 수 있게 만든 것이다.

그래서 요즘 나오는 모바일 게임들은 전부 자동 사냥 시스템이 들어가 있다.

그러나 자동 사냥만으로는 자신이 키우는 캐릭터를 강하게 만들 수가 없다. 직접 노가다를 해서 키워야 한다는 건데, 그런 고생을 덜어 주는 것이 바로 현질이다.

직장 생활 중에 하기 힘든 노가다를 피하고 돈 얼마를 투자해 빠르게 성장하는 것이 직장인들에게는 편리성을 제공해 준다. 그에 반해 현질 시스템이 빈약하고 노가다를 통해 성장을 해야 하는 게임은 기피할 수밖에 없다.

재미는 있지만, 그렇게 가만히 앉아서 핸드폰 게임을 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보니까 여기 캣마블 직원들이 현질을 유도하는 방법이 참 기가 막혀. 어떻게든 내가 돈을 쓰게 만든다니까? 근데 넌 왜 안 해 이 게임?”

“레이싱 게임은 좀 별로. 나는 한 달 후에 나오는 게임 기다리고 있어.”

“무슨 게임? 우리 회사가 투자한 게임을 해야지. 어디 근본도 없는 게임을 하려고?”

“캣마블 게임에서 다음 달에 공개하는 ‘모두의 주사위’란 게임 있잖아. 그거 하려고.”

나도 기대 중인 게임이다.

어렸을 적 한 번쯤 주사위를 돌리며 땅따먹기를 하는 보드게임을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때의 추억이 ‘모두의 주사위’라는 게임으로 탄생한다.

그렇지 않아도 캣마블에서 현재 개발 중인 게임이 어느 정도의 진척을 이뤄 냈는지 매주 내게 보고를 올린다. 나는 그때 테스트 버전을 받아 모두의 주사위라는 게임을 몇 판 해 보았다.

“그거 해 보니까 재밌더라. 옛날 생각도 나고.”

“뭐야. 넌 벌써 해 봤어?”

“내가 누구처럼 회사 일에 무관심한 줄 아냐? 난 매주 보고 들어오면 한 번씩은 테스트 버전 받아서 다 해 봐. 근데 그 게임 해 보니까 느낌이 딱 오더라.”

“왜?”

“다 함께 레이스에서도 현질 유도를 하잖아. 근데 이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껴질 만큼 모두의 주사위는 진짜 엄청날 거 같더라.”

“그렇게 현질 유도가 많으면 사람들이 과연 하려고 할까?”

“응. 무조건 한다에 한 표.”

난 모두의 주사위가 대히트작이 된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테스트 버전을 미리 받아 플레이를 해 본 것이었다.

현질 유도로 범벅이 되어 있는 게임이었지만, 누구나 갖고 있는 도박 본능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그 게임이 빠져들고 말았다.

그렇게 현식이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을 때쯤 어머니의 불호령이 다시 한번 떨어졌다.

“아직도 안 땄어?”

“어머니. 전 다 했습니다. 진석이 이놈이 혼자 농땡이를 피워서 많이 남긴 했지만, 저랑 어머니 먹을 만큼은 나올 거 같아요.”

“그래? 그럼 우리 진석이 빼고 둘이서만 먹을까?”

“그러시죠, 어머니.”

현식이의 공작에 어머니가 넘어가려 하자 나는 얼른 멸치 대가리를 제거해 나갔다.

“진짜 다들 못됐어.”

“못된 건 너야. 어머니가 멸치 좀 손질하라고 줬더니 그걸 못 참고 게임을 하고 있냐?”

“······.”

할 말이 없어서 나는 그냥 조용히 입 다물고 멸치 손질에 열중했다.

이윽고 나와 현식이가 손질한 멸치들로 어머니는 육수를 끓여 내 직접 빚은 떡과 만두를 넣었다. 그렇게 1월 1일 새해에 나와 현식이는 어머니가 직접 만들어 준 떡만둣국을 먹음으로써 한 살씩 더 먹게 되었다.

“만수무강하십시오, 어머니.”

“엄마. 우리 몸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자.”

“그래. 내가 너희들을 봐서라도 꼭 오래 살게.”

우리는 맛있게 떡만둣국을 떠먹으며 서로 덕담을 나누었다.

“그런데 현식이는 여기 있어도 괜찮겠니? 너희 부모님이 뭐라 하시는 거 아니야?”

“아니에요, 어머니. 저희 부모님 지금 다 해외에 계세요. 아버지는 출장 가셨고, 저희 어머니는 그냥 여행 가셨어요. 제 형제들도 다 뿔뿔이 어디론가 다 갔고요. 새해 때 저희 가족이 다 모인 날이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누가 보면 콩가루 집안인 줄 알겠다. 그런데 들어보니까 현식이네 집안이 원래 저런다고 한다. 아버지인 최진철 사장은 해외 출장이 잦고, 현식이 어머니는 예술가라서 자주 외국으로 나가 전시회를 본다든가, 공연을 관람한다고 한다.

솔직히 말해 정확히 무슨 예술을 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부모님이 저렇게 집을 자주 비우시니, 형제들도 딱히 집에 얽매이지 않고 원하는 것을 하는 것 같았다.

참으로 자유로운 가족이 아닐 수 없다. 저런 걸 아메리칸 스타일이라고 하는 건가?

“어후. 배부르다.”

“너무 맛있어서 세 그릇이나 먹었네.”

나와 현식이는 배부른 배를 두드리며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그리고 어머니가 잠깐 자리를 비우고 있을 때를 노려 각자 준비한 선물을 방에서 가지고 나왔다.

“어머니. 제 마음입니다.”

“엄마. 얘 마음은 무시하시고 제 마음만 받으세요.”

현식이는 값비싼 겨울용 코트를 준비했고, 나는 평소 어머니가 좋아하는 액세서리들을 준비했다. 물론, 전부 순금으로 되어 있는 것들로만.

거실로 돌아온 어머니는 화들짝 놀라 눈을 껌뻑였다.

“이게 다 뭐야?”

“뭐긴. 우리가 엄마 환심 사려고 산 선물들이지.”

어머니는 딱 봐도 비싸 보이는 코트를 부드럽게 쓸어내리면서 감탄을 터트렸다.

“내 평생 이런 옷을 다 입어 보는구나.”

“제발 좀 많이 입고 다녀요, 엄마. 내가 저번에 사준 명품 옷들도 전부 장롱에 처박아 두었더라.”

“아까워서 그래, 아까워서. 거기다 어떻게 입는지도 모르겠고. 내 평생 그런 옷들을 입어 본 적이 없잖니. 그런데 이건 또 뭐야? 뭘 또 이렇게 휘황찬란한 것들을 준비했어?”

“엄마 원래 액세서리 끼는 거 좋아하잖아. 그래서 컬렉션을 준비해 봤지. 이런 거 끼면 아주 예쁠 거야.”

어머니는 나와 현식이의 손을 꼭 잡으며 미소를 지었다.

“요즘 이 엄마는 매일 밤 잠자리에 들 때마다 스스로 이렇게 자문해.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건지 말이야. 사실 엄마는 너희 둘이 대기업에서 일한다고 했을 때부터 뿌듯했어. 뭘 해도 다 괜찮았지. 그런데 어느 순간 회사를 세우고, 누구나 들으면 다 알 법한 대기업 회장까지 되어서 지금도 꿈만 같아. 그래서 어떨 땐 무서워. 이게 다 꿈일까 봐. 언젠가 이게 다 무로 돌아갈까 봐.”

“어머니······.”

“엄마······.”

“그래도 엄마는 너희 둘 믿어. 그리고 아주 자랑스러워. 앞으로도 쭉 자랑스러운 아들들이 되어 줬으면 좋겠다.”

“아이고. 그럼요 어머니. 이 큰아들만 믿으십시오.”

나는 어머니를 껴안고 있는 현식이를 강제로 떼어 내며 말했다.

“야. 우리 엄마야. 넌 너희 어머니한테 가서 재롱떨어.”

“어허. 아무리 어머니가 나를 제일 좋아한다고 하시지만, 이렇게 질투를 부려서는 안 돼.”

“이런 뻔뻔한 새끼. 당장 썩 꺼져! 거기 내 자리야.”

나와 현식이가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고 있으면 어머니는 옆에서 가만히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맘때쯤 나오는 질문이 있었다.

“그런데 진석아.”

“으응?”

“너 여자친구는 아직도 없니?”

“······.”

“저번에 만나 뵈었던 한라 그룹 회장님 손녀딸. 이 엄마는 너무너무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그 아가씨랑은 연락 안 해?”

“그래. 그건 나도 궁금하더라. 너 왜 연락 안 해?”

“······.”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런 내 빨개진 얼굴을 보고 어머니는 뭔가를 눈치챈 표정으로 내게 슬쩍 물었다.

“연락하는구나? 그렇지?”

“오. 진짜? 진짜 연락하고 있었어?”

“아니. 막 사적으로 연락하는 건 아니고······. 그냥 우리 회사 큰손 고객이시니까. 이런저런 안부만 묻는 사이야.”

“이런저런 안부만 묻는 사이? 그런 사이도 있어?”

어머니는 답답했는지 내 어깨를 때리며 소리쳤다.

“당장 만나자고 해! 그 아가씨도 너한테 호감이 있는 것 같던데. 그쪽 회장님도 널 좋게 보시고. 그런데 왜 안 만나고 버티는 거야?”

“아파라. 우리 어머니 등짝 스매시가 더 강화되셨네.”

“넌 더 맞아야 돼. 어머니가 못 때리면 내가 대신 때린다. 대체 왜 안 만나는 거야?”

“진짜 닦달들 하지 마요. 안 그래도 내일 보기로 했······ 헉!”

나도 모르게 말이 헛나오고 말았다.

그런 내 반응을 보고 어머니와 현식이는 슬쩍 거리를 벌리면서 둘이서만 낄낄 웃고 있었다. 사실 별생각 없이 가볍게 만나고 올 생각이었는데, 저 두 사람 때문에 나 혼자 불편하게 만나고 올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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