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63화
“제가 보내 드린 메일은 확인해 보셨습니까?”
“예. 그거 보고 오늘 출근한 겁니다.”
주말인데도 내가 회사에 나온 이유는 권오준 대표가 보내 준 메일 때문이었다.
그 메일에는 내가 요청한 정보들이 있었는데, 유미화 후보와 그의 측근들에 대한 내용들이 모여 있었다.
“회장님 말씀대로 이상한 구석들이 많습니다. 특히 유미화 후보의 최측근인 구영실이란 여사와 그 집안이 말이죠.”
유미화 후보의 최측근에 있는 구영실과 그 집안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유씨 가문을 서포트하며 세력을 키워 온 곳이다. 그런데 구씨 집안에서 만든 영광교라는 종교가 마음에 걸렸다.
“사이비··· 그런 건가요?”
“그렇지 않을까요? 자기가 신이라고 떠드는 곳이 솔직히 정상일 리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유미화 후보 쪽에서는 그런 의혹이 들 때마다 그냥 무시를 한답니다. 거기다 저번 대선 때 기억하십니까? 당 후보 경선 때도 이런 의혹이 나왔다고 합니다. 이게 두고두고 문제가 될 거라고 말이죠. 물론, 유미화 후보는 그냥 묵살해 버렸고요.”
뭔가 쎄하다 싶었는데, 이런 문제점이 있었다.
“대선에 큰 영향을 줄 것 같습니까?”
“워낙 블랙 선전이 차고 넘치는 때라 이런 뉴스 보도가 나가도 솔직히 믿는 사람은 많이 없습니다. 그리고 상대측 후보는 벌써 수십조 원이 넘는 금괴들을 숨겨 놓고 있다는 괴소문이 돌고 있지 않습니까?”
하도 상대를 비난하고 거짓 모함하는 기사들이 넘쳐나다 보니, 사람들은 이제 그냥 무슨 기사가 떠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수준이 되어 버렸다.
즉, 이것만으로는 유미화 후보가 타격을 입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구영실이란 여사가 유미화 후보의 최측근으로서 모든 걸 다 관리하고 있다는 겁니다. 만약 유 후보가 이대로 대통령이 된다면 얼마나 날뛰게 될지 상상만 해도 끔찍한 수준이에요.”
“그 정도로 심각하다면 추후에 더 문제가 생길 수도 있겠네요.”
“글쎄요. 대통령 되면 솔직히 누가 건드릴 수 있겠습니까. 지금 시대 흐름이 완전 보수 쪽으로 넘어가 있어서 대통령 흠집 내는 건 어려울 겁니다. 첫 여성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이 어마어마하니까요.”
그렇다면 문제는 오렌지K라는 기업이었다.
“이 오렌지K라는 기업, 정말 쥐뿔도 없는 거던데.”
“예. 그냥 법인만 내놓은 유령 회사입니다. 페이퍼 컴퍼니죠. 문제는 구영실 여사가 이걸 비자금 창구로 쓰려 한다는 건데, 우리가 만약 이쪽에 투자를 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유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나서 두고두고 우리를 괴롭히려 들겠군요.”
“씁쓸하지만 사실입니다. 아마 여러 가지로 우리 쪽에 제약을 두려 하겠죠. 아무래도 금융사이다 보니 직접적으로 제약을 거는 건 어렵겠지만, 여러모로 견제를 하려 들 겁니다. 다른 회사에 특혜를 줄 수도 있고요.”
골치 아파졌다.
저런 비자금 창구 따위에 쓰이는 곳에 내 피땀 같은 돈을 투자해야 한다니.
“천하 그룹이 정말 그 기업에 투자를 하려 할까요? 거기가 비자금 창구라는 걸 그쪽에서도 뻔히 알 텐데.”
“뻔하지 않습니까?”
“뻔해요?”
“예. 천하 그룹 장연욱 회장이 제 아들인 부회장 장선욱에게 회사를 완전히 물려주려면 일단 세금을 엄청나게 내야 합니다. 또 지배 구조가 뒤틀려 있어서 그것들을 최대한 꼬이지 않게 넘겨 주기 위해서는 정부의 도움이 당연히 필요할 테고요.”
“일종의 딜이다?”
“예. 그 회사에 적극 투자를 해 주는 대신, 정부에서는 천하 그룹이 경영 승계를 위해 어떤 편법을 써도 눈 감아 줄 겁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그런 방법으로 많은 재벌들이 돈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었으니까요.”
대충 흐름만 봐도 알 수 있는 뻔한 레퍼토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뻔한 레퍼토리는 이 대한민국에서 항상 잘 먹혀 든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회장님?”
“음······. 전 별로 투자하고 싶지 않습니다. 만약 불이익을 당한다고 해도 저희 기업을 쓰러뜨릴 정도의 타격을 주진 못할 겁니다.”
“자신하실 수 있습니까?”
“예. 제가 그동안 돈을 왕창 벌어 놔서 아무리 때려도 쓰러지지 않게 만들어 놓을 거니까요.”
내 자신 있는 대답에 권오준 대표는 박장대소하며 내게 사과했다.
“갑자기 크게 웃어서 죄송합니다. 너무 회장님다워서요. 저는 회장님이 절대 이런 쪽에 연관되지 않을 거라 확신했습니다.”
“이런 더러운 일에 엮이지 않아도 충분히 일류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 줘야죠. 이 여사님이 아주 이를 갈고 우리한테 달려들어도 전 안 쓰러질 자신 있습니다.”
“예. 제가 옆에서 잘 보필해 드리겠습니다. 하하.”
온갖 더러운 권모술수가 판을 치는 곳이 바로 정치판이다. 그러다 잘못 엮이면 나도, 회사도 다 함께 날아갈 수가 있다.
이런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이제 이들과 마주칠 일이 없게 내 행동을 조심하면 된다. 그리고 이렇게 꼬리가 길면 언젠가는 반드시 붙잡히게 되어 있다.
뻔히 붙잡힐 걸 알면서도 똥통에 빠져드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 * *
펀드 자금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나서 24시간 만에 100억이란 금액이 모였다.
그것도 진강호 후보자 펀드에만 100억이란 자금이 모인 것이다.
우리도 이 정도로 빠르게 돈이 모일 줄 몰랐고, 진강호 후보 측도 이와 같은 모금 속도에 당황한 듯 보였다. 결국 그들은 우리에게 새로운 제안을 전달했다.
“100억만 더 펀드 개설을 해 주십시오. 저희 지지자분들께서 펀드 참여를 못 했다고 문의 전화가 많이 오고 있습니다.”
우리야 당연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우린 진강호 후보의 이름을 건 100억짜리 모금형 펀드를 하나 더 개설했고, 그것 역시 30시간 안에 100억을 채우면서 진강호 후보는 200억이란 대선 자금을 챙겨 갈 수가 있었다.
“진강호 후보가 이 정도면 유미화 후보도 만만치 않겠네요.”
“이미 거기서도 200억으로 펀드를 개설해 달라는 요청이 왔습니다, 회장님.”
순서에 따라 진강호 후보 측 펀드 개설을 먼저 한 뒤에 돈이 다 모이면 그때 유미화 후보 측의 펀드를 개설하려 했다. 그런데 우리도 이렇게 빨리 유미화 후보 측 펀드를 개설할 줄 몰라 바삐 움직였다.
그리고 유미화 후보 측의 펀드가 개설된 날, 200억이란 돈이 40시간 안에 모이면서 두 후보의 파급력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이러한 두 후보의 펀드 모금은 언론을 통해 큰 이슈가 되었고, 이런 결과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다른 증권사들만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들은 우리가 처음 대선 자금 펀드를 내놓는다고 했을 때 비웃지 않았던가. 하지만 우린 이번 펀드 프로젝트로 상당한 이익을 보게 됐다.
“진강호 후보의 펀드에 참여한 신규 가입자 수가 20만 명에 달하고, 유미화 후보 측 펀드에 참여한 신규 고객 수 역시 20만 명이 넘습니다. 또한 펀드에는 가입하지 않았지만, 이번 프로젝트가 크게 이슈가 되면서 신규 고객 수가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40만이 넘는 신규 가입자를 유치했고, 프로젝트의 대박으로 자연스레 회사 홍보가 되면서 그에 따른 신규 고객 숫자도 늘어나는 추세였다.
“이번 프로젝트로 당분간 마케팅은 필요 없을 것 같다며 홍보팀이 벌써 환호성을 지르고 있습니다. 회장님 아이디어 아니었으면 이런 호황은 누리지도 못했을 겁니다.”
임원들의 얼굴에 환하게 웃음꽃이 피었다.
분기별 실적이 매우 높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니, 임원들은 생명줄 연장을 하게 되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고삐를 단단히 붙잡아 두어야 한다.
“펀드 자금 프로젝트는 성공리에 마쳤고, 곧 있으면 대선입니다. 벌써 각 후보의 테마주가 상승세를 띠고 있죠. 그러나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테마주라는 게 생각보다 돈이 되지 않아요. 높낮이가 너무 가팔라서 매수를 해도 익절하는 시기를 많이 놓치기 마련입니다.”
대선 때마다 등장하는 테마주.
대통령 후보들은 유세 활동을 할 때 경제적으로 어떤 발전을 이뤄 내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그들이 밝힌 사업 계획에 적합한 회사들이 테마주로 떠올라 주가 상승을 이뤄 내는데, 너무 반동 폭이 크고 막상 이익을 봐서 전량 매도를 하려고 해도 잘 팔리지 않는 사태가 벌어지기 일쑤였다. 그래서 개미 투자자들 말고는 테마주에 혈안이 되어 투자를 하지 않는다.
대신, 테마주에 투자를 하라고 유도하여 수수료를 이곳저곳에서 뜯어 가는 꼼수를 부리긴 하지만.
“국내 투자도 중요하긴 하지만, 저는 당분간 국내 투자가 많이 위축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대선이 끝나고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을 하면 활성화가 되긴 하겠죠. 그전까지는 투자 시장이 많이 가라앉는 모습을 보일 겁니다.”
대선에 접어들수록 대기업은 몸을 사리고 모든 사업 계획을 내년 상반기로 잡아 놓는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 그 정권에 맞춰 사업을 펼쳐야 하기 때문이다.
“거기다 유럽발 경제 위기는 우리나라에도 타격을 주고 있습니다. 서브프라임 때만은 아니지만, 그 여파가 아시아 전역에 퍼지고 있다는 건 부정 못 할 사실이죠.”
그리스 재정 위기와 스페인의 경제 위기는 EU를 흔들어 놓을 만큼의 사건이기에 우리나라 주가에도 알게 모르게 서서히 영향을 주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수입, 수출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유럽이 흔들리면 무역 경제가 흔들려 경제 전체를 출렁이게 만들 수가 있다.
“이런 말이 있죠? 위기는 곧 기회라고. J&H가 성장을 하게 된 것도 그 위기를 잘 이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린 다른 증권사들과는 다르게 다소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 가야 합니다. 특히 국내뿐만이 아니라 해외 증시에 공격적인 포지션을 취해 투자를 해 나갈 생각이고요.”
임원들도 내 말을 대충 알아들은 듯 보였다.
지금 대한민국 경제는 결코 좋은 상황이 아니다.
서브프라임 때의 쇼크와 더불어 유럽발 경제 위기가 피부로 와 닿게 된 것인데, 투자가 위축되어 있는 상황이라 증권사들도 몸을 사리며 자금을 비축 중에 있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이 기회라고 여겼다.
이 기회에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 나가 다양한 종목에 돈을 쏟아부을 생각이었다.
“여기 모인 임원분들도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서 저한테 제출을 해 주십시오. 방어적인 투자만 할 게 아니라 공격적인 투자로 우리 J&H를 성장시켜야 합니다.”
J&H는 절대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
경제가 침체되면 침체될수록 더욱 공격적인 자세로 덩치를 키우는 것이 목표였다.
* * *
“결국 유미화 후보가 당선이 되는구나.”
밤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고 TV를 통해 대선 투표 결과를 확인하고 있던 현식이가 푸념하듯 중얼거렸다.
“넌 다른 쪽 찍었나 보지?”
“원래 내가 누구 찍었는지는 부모님한테도 알려 주는 게 아니래.”
“그래. 잘났다.”
각 TV 채널에서 개표 상황을 보여 주고 있었는데, 모든 개표가 끝나고 최종적으로 유미화 후보의 승리가 확정되었다.
이미 진강호 후보는 대선 패배를 인정하며 지지자들에게 감사함을 나타내는 성명을 발표한 뒤였다. 그리고 유미화 후보는 거리로 나와 지지자들이 있는 데에서 환호성을 받으며 승리를 축하했다.
“이제 대한민국은 창조 경제의 중심이 되어 새로운 발전을 이뤄 나가게 될 것입니다!”
창조 경제라-.
과연 어떤 식으로 경제를 활성화할 것인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었다.
“넌 덤덤하네?”
“유미화가 될 거라고 생각했거든.”
“하긴. 여론 조사에서 좀 앞서 있긴 했으니까.”
여론 조사를 봤기 때문에 승리를 점친 것이 아니다.
나는 대선이 있기 몇 달 전부터 미래 커뮤니티 센터를 통해 앞으로의 일을 조회할 수가 있었다.
대선의 승자는 유미화 후보가 된다. 대한민국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유미화가 된다고 해서 결코 달갑게 생각하진 않았다.
오렌지K의 대표라는 놈이 저번 만남 이후로 몇 번이나 더 내게 연락을 했다. 하지만 나는 이런저런 핑계로 만나주지 않았고, 그도 더 이상 내게 연락을 취하지 않았다. 이미 거기에서부터 유미화 측 사람들과 관계에 금이 갔다고 봐야 했다.
“그런데 너 저번에 그 오렌지K인가 뭔가 하는 거 투자 안 해 줘서 완전히 찍힌 거 아니야?”
“그렇다고 봐야지. 근데 별로 신경 안 써. 그리고 지금 내가 신경 쓰는 건 그게 아니야.”
“그럼?”
“흐흐. 내일 드디어 캣마블 모바일 게임 첫 출시다. 그거 다운받고 하루 종일 해 보려고.”
“오. 그게 벌써 내일이야?”
“회사 일에 관심 좀 가져라.”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한 후보 측이 앞으로 5년 동안 대한민국 경제를 주물럭거린다 생각하니 속이 좀 쓰렸지만, 내일이 벌써 캣마블 첫 모바일 게임 출시일이다.
벌써부터 불어날 내 투자금을 생각하니 입꼬리가 씰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