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62화
“반응이 어떻습니까?”
“반응이 천차만별로 다릅니다. 아주 좋은 프로젝트인 것 같다고 반응을 보이는 분들도 있고, 괜한 짓을 한다며 욕을 하는 사람들도 꽤 있습니다.”
대선 자금 프로젝트를 홍보하기 시작하면서 J&H 마케팅팀이 실시간으로 사람들의 반응을 확인했다.
각 SNS와 여러 인터넷 언론에 기사를 뿌려 반응을 확인하는 건데, 정확히 반응이 좋은지, 나쁜지 나눌 수 없을 만큼 찬반 여론이 만만치 않았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충분히 이슈화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저희가 이런 프로젝트를 진강호 후보와 함께한다는 소식을 접한 건지, 유미화 후보 쪽에서도 연락이 왔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를 만나서 직접 듣고 싶어 하더군요.”
우리가 몇 번 연락을 넣었을 때는 꼼짝도 하지 않더니, 이렇게 대대적으로 홍보를 하고 나서자 그제서야 반응을 보인다.
“그런데 그쪽 사람들이 펀드가 과연 필요할까요? 저번에 회장님이 말씀하셨던 대로 전경련이 유미화 후보를 돕기로 결심했다면 그쪽에서 지원해 주는 돈이 장난 아닐 텐데.”
공식적으로 전경련이 돈을 전달해 주진 않는다.
지지 성명을 내놓을 순 있어도 대놓고 돈을 지급해 주는 건 선거법에 위반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뒤로는 얼마든지 돈을 지원해 줄 수 있다.
정부에서 지정한 대선 자금 한도는 509억 원. 이 이상으로는 절대 돈을 써서는 안 된다.
509억 원도 충분히 많은 돈처럼 보이지만, 막상 유세 활동에 들어가면 500억이란 돈이 금방 사라지게 된다. 또한 후보자를 지지하고 옆에서 돕는 이들에게 수고비라는 명목으로 돈도 안겨 줘야 하기 때문에 여러모로 들어가는 돈이 많다.
그런 돈을 기업들이 뒤에서 채워 주는 것이다. 그리고 정말 그 후보가 당선이 되고 나면 청와대가 그때의 도움을 갚아 주는 것이고.
생각해 보면 매우 단순한 계산법이었다.
“지원해 주는 돈이 있어도 선거 자금은 항상 모자라기 마련이죠. 그쪽도 은행 대출보다 훨씬 효율적인 방법으로 돈을 얻고 싶어 할 겁니다.”
펀드를 통해 자금을 모으면 은행 대출 이자를 갚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펀드로 자금을 모금한다는 것 자체가 화제성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국민들이 특정 후보를 향한 관심을 확인할 수도 있는 좋은 기회다.
“일단 제가 한번 만나보겠습니다.”
“회장님이 직접 만나실 필요 없이 저희 실무진이 미팅을 해도 됩니다만······.”
“아니요. 직접 그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네요. 거기다가 제가 진강호 후보 쪽 사람들을 이미 대면했다는 걸 그쪽도 알고 있을 겁니다. 제가 나가지 않고 실무진을 보내면 오히려 불쾌하게 생각할지도 몰라요.”
이런 사소한 부분에서 감정이 상하면 계획하던 게 엎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렇기에 작은 부분이라도 놓치면 안 된다. 참 비위 맞추기 어렵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다들 수고하셨어요.”
그렇게 회의를 마치고 나는 유미화 후보 쪽과 시간을 조율하여 미팅 날짜를 잡았다.
지금 진강호 후보의 이름으로 프로젝트가 계속 홍보되어 주목을 받고 있으니, 유미화 후보 쪽도 급하게 우리를 만나 프로젝트 홍보에 나서려는 듯 보였다.
결국 바로 다음 날 유미화 후보 쪽에서 J&H 본사를 찾아와 회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유미화 후보님의 비서관, 황보근이라고 합니다.”
“오렌지K의 대표, 김영택입니다.”
미팅을 하러 오긴 왔는데, 한 명은 비서관이고 다른 하나는 오렌지K라는 기업의 대표였다. 이들에게 결정권이라는 것이 있긴 있는 건가 싶은 의문이 들었지만, 일단은 나도 인사를 건넸다.
“J&H 금융 그룹 회장, 이진석이라고 합니다.”
“금융권에서 신화의 주인공이라 불리는 분을 이렇게 만나 뵈어 영광입니다, 하하.”
시답잖은 이야기는 뒤로하고 우린 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바쁘신 분들이니 먼저 서류부터 보여 드리겠습니다. 한번 읽어 보시고 말씀해 주십시오.”
나는 이 둘에게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 내용을 문서로 보여 주었다. 두 사람은 읽는 둥 마는 둥 하며 있다가 황보근 비서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진강호 후보는 이번 펀드에서 얼마 정도 확보를 하려는 겁니까?”
“100억입니다. 아직 오픈을 하지 않아서 더 오를 수도 있고요.”
“그럼 저희는 150억으로 하겠습니다.”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금액을 제시한다.
그렇다는 건 황보근이란 사람에게 정말로 결정권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대기업에서도 비서실장의 힘은 임원들보다 훨씬 더 강하다. 그들은 회장의 말을 직접 듣고 행동에 나서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대통령 후보의 비서도 그만한 힘이 있다는 것인가?
“150억에 이율은 얼마로 하시겠습니까?”
“진강호 후보는 얼마로 책정했습니까?”
“3%입니다.”
“저희는 6%로 해 주시죠.”
아주 당당하게 요구를 한다. 6%가 어디 구멍가게 이름도 아니고.
“죄송하지만 3% 이상으로는 힘듭니다. 6%는 저희가 수지타산이 안 맞아서요.”
“이상하군요.”
“예?”
“전경련에서 이미 결정이 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전경련에 가입되어 있는 기업들은 전부 우리 유미화 후보님을 돕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사실, 이번 프로젝트도 진강호 후보를 쓸 게 아니라 저희 유미화 후보님부터 홍보를 하셨어야죠.”
밑도 끝도 없는 황당한 발언에 순간 회장실 안이 정적으로 가득 찼다.
내 옆에 앉아 있던 권오준 대표도 어이가 없었는지 잠시 할 말을 잊은 듯 보였다.
“뭔가 착각하고 계시는군요. 전경련이 결정한 건 어디까지나 지지 성명 발표입니다. 그리고 이건 특정 후보를 홍보하기 위해 만든 펀드가 아닙니다. 그냥 비즈니스죠.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비즈니스.”
“그 말씀은 3% 이상으로는 힘들다는 것이고, 진강호 후보를 이번 프로젝트에서 제외시키는 것도 힘들다는 겁니까?”
이 양반은 아예 진강호 후보를 이 프로젝트에서 빼 버리려는 심산이었다.
난 단호하게 입장을 드러냈다.
“진강호 후보님에게 이번 프로젝트 내용을 전달드리기 전, 유미화 후보님 쪽에 먼저 요청을 드렸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때는 거들떠보지도 않으셨던 걸로 알고 있는데요? 당연히 진강호 후보님을 프로젝트에서 제외할 생각은 없습니다. 이미 홍보도 한 상태고요.”
내가 강경한 목소리로 말하자 황보근 비서관도 한발 물러서는 제스처를 보였다.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3%에서 조금만 더 써 주시죠.”
나는 권오준 대표를 슬쩍 바라보았다. 그는 서류를 확인해 보며 불편한 목소리로 말했다.
“쥐어짠다고 하면 3.1%가 맥시멈입니다.”
“들으셨죠? 3.1%랍니다.”
“그럼 3.1%로 해 주시죠.”
부탁하는 조가 아니라 명령조로 말하는 것 같아 기분이 조금 불쾌했다. 그러나 3.1%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나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왜냐하면 이들은 100억이 아니라 150억을 처음부터 불렀기 때문이다.
“150억은 오픈하기 직전에 변경 가능합니다. 저희가 홍보를 할 테니, 그때 반응을 보고 규모를 늘릴지 아니면 더 내릴지를 결정하시면 됩니다.”
“예. 그렇게 하면 되겠군요. 일단은 150억에 3.1%로 알고 있겠습니다.”
그렇게 불편한 미팅이 끝나는 듯싶었다.
황보근 비서가 먼저 나가고 나서 오렌지K의 대표라는 김영택이 내게 슬쩍 말을 건넸다.
“회장님. 시간이 되신다면 저와 단둘이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대통령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은 후보의 측근이 단둘이서 만남을 요청한다라.
분명 좋은 의도를 갖고 접근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거기다 이름도 들어 본 적 없는 기업의 대표이지 않은가.
그래도 무슨 얘기를 하는지는 들어봐야 할 것 같아 나는 그의 요청을 수락했다.
“그렇게 하시죠.”
내 대답에 권오준 대표는 먼저 밖을 나갔고, 나와 김영택 대표만 자리에 다시 앉았다.
김영택 대표는 넉살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황보근 비서가 좀 많이 까칠한 구석이 있습니다. 불쾌하셨다면 제가 대신 죄송하다는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뇨. 충분히 이해합니다.”
만약 유미화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황보근 비서는 대통령 비서실장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기에 벌써부터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거라 봐도 된다.
“제가 오늘 여기에 온 건 회장님과 사업 구상을 좀 논의해 보려고요.”
“사업 구상이요?”
“예. 지금은 오렌지K라고 불리지만, 이 회사도 조만간 새로 단장을 할 겁니다. 이름도 바꿀 거고요.”
“죄송하지만, 오렌지K가 무슨 사업을 하는 기업이죠? 제가 들어 본 적이 없어서요.”
“하하. 충분히 이해는 합니다. 법인이 세워진 지도 얼마 안 됐고요. 그리고 이 회사는 유미화 후보님과 밀접한 관계로 이루어진 곳입니다. 회장님도 아시죠? 대선이 팽팽하다고 하지만, 이미 다들 알고 있어요. 이번 대선은 유미화 후보님의 승리라고.”
첫 여자 대통령이 탄생할 수도 있는 역사적인 순간이다.
여전히 표가 많이 갈리고 있긴 하지만, 첫 여성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은 생각보다 거대해서 정말 큰 사건이 터지지 않는 이상, 무난하게 유미화 후보가 승리할 거라는 것이 절대적 평가였다.
그리고 오렌지K는 유미화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는 확신을 갖고 세운 법인이었다. 그렇다는 건 앞으로 청와대가 이 회사를 노골적으로 키우겠다는 것을 뜻한다.
“이제 막 세워진 기업을 청와대가 키워 봤자 보는 이득은 별로 없을 텐데요.”
대통령이 되는 순간 보유하고 있는 주식과 부동산 등을 전부 다 처분해야 한다.
어떠한 경제적 이득도 봐서는 안 되는 것이 대통령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저런 회사를 키운다고 해서 대통령이 득 볼 건 없다. 오히려 나중에 문제가 생기기 딱 좋을 뿐.
보통 저런 회사를 세워 키운다는 건 가족과 관계된 것이 대부분이다.
“유미화 후보님의 최측근이 누군지 아십니까?”
“글쎄요. 몇 분 떠오르긴 하는데, 정확히 누구라고는 말을 못 하겠네요.”
“구영실이란 분입니다.”
구영실? 처음 듣는 이름이다.
“유미화 후보님이 젊었을 때부터 구영실 여사님이 옆에서 적극적으로 서포트를 해 주셨죠. 특히 구씨 집안 사람들이 전부 유미화 후보님을 공주처럼 떠받들며 지금의 자리까지 올려놓은 겁니다.”
“그런··· 가요?”
“예. 그리고 이 오렌지K라는 기업도 구영실 여사님이 세우신 곳이라 봐도 무방하죠. 유미화 후보님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오렌지K는 폭발적인 성장을 이뤄 낼 겁니다.”
유착 관계가 명확한 곳이라는 것인데, 그 중심에는 유미화 후보의 최측근이 연루되어 있다.
“이미 천하 그룹에서도 이 기업에 관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유미화 후보님이 당선된 후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겠다는 뜻을 밝혔고요.”
천하 그룹이?
그렇다면 더더욱 이상한 일인데?
“천하 그룹이 나선다면 J&H의 도움은 필요하지 않을 텐데요.”
“하하. 그럴 리가요. J&H 금융에는 회장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그 탁월한 감각으로 현재 투자의 귀재로 불리기까지 하고요. 앞으로 저희 오렌지K에서 발생한 일정 수익을 J&H 금융에 맡기고 싶습니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저희 기업에 투자를 하신다면 일정 지분을 소유하실 수 있고요.”
말이 투자지, 이건 그냥 일방적으로 돈을 가져가 쓰겠다는 뜻 아닌가?
대표라는 양반이 오렌지K가 정확히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고, 어느 사업을 펼칠 것인지도 잘 알지 못하는 듯 보였다. 그렇다는 건 이 회사는 비자금 창구다.
겉만 법인이지, 실상은 누군가의 지갑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당장 뭐라 답을 드리기 곤란합니다. 전 투자를 결정할 때 철저히 정보를 알아보고 분석을 끝내야 하거든요.”
김영택 대표는 내 대답이 마음이 안 들었는지 인상을 찌푸렸다.
“이 좋은 기회는 또 오지 않습니다. 한번 생각을 해 보시고 연락을 주십시오. 구영실 여사님이 J&H에 거는 기대가 크시거든요. 심사숙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심사숙고한다고 한들 내가 그딴 회사에 땡전 한 푼 투자할 일은 없다.
나는 김영택 대표를 보내고 나서 다시 권오준 대표를 불러들였다.
“유미화 후보 쪽 측근들에 대해 자세히 조사를 좀 해 주세요. 아무리 생각해도 좀 이상한 구석이 많습니다.”
“예, 회장님. 당장 사람들 풀어 보겠습니다.”
이렇게 찝찝한 만남은 처음이다.
천하 그룹이 근본도 없는 오렌지K 기업에 투자를 하겠다고 한 것도 그렇고, 여러모로 이상한 점이 많다.
구린 점이 있다면 빠르게 알아내어 내가 똥을 밟지 않게 조심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