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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 천재가 되었다-61화 (61/200)

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61화

“펀드로 대선 자금을 모아?”

“응. 어떻게 생각해?”

“어······ 신박하네. 그런 적이 있던가?”

“그걸 지금부터 네가 알아봐야지.”

“······.”

전경련에 참석한다고 갔다가 갑자기 집에 돌아와서는 다짜고짜 대선 자금 얘기를 꺼내고 있으니, 현식이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 그동안 일도 안 했잖아.”

“음. 눈을 부릅뜨고 있는 게 대주주의 할 일이지.”

“아, 예. 당신은 대주주이면서 동시에 우리 J&H 금융 그룹 부회장님이세요.”

“보통 그런 건 명예직 아닌가?”

“응. 아니야. 그러니까 너도 일이라는 걸 좀 해.”

현식이는 결국 내게 등을 떠밀려 컴퓨터 앞에 앉아 조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난 곧바로 권오준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선 자금을 펀드로요?”

“예. 그런 사례가 있던가요?”

그러자 권오준 사장으로부터 확실한 대답이 돌아왔다.

“있었죠. 10년 전에 처음 나왔을 겁니다. 그런데 반응이 미적지근해서 잘 쓰이질 않았고요. 거기다 저번 대선은 아시다시피 한쪽에 표가 몰려서 그런 게 필요도 없었습니다.”

“이번 대선은 좀 다르겠죠?”

“예. 치열하잖아요. 보수 쪽에 표가 조금 더 몰려 있긴 한데, 이건 투표함 까 봐야 아는 거 아니겠습니까?”

맞다.

여론 조사가 보통 맞기는 한데, 가끔 여론 조사대로 투표 결과가 다르게 나올 때도 있다.

특히 이번 대선은 간소한 차이로 보수 승리가 예상되지 않던가.

그 간소한 차이를 순식간에 뒤집어 놓을 수도 있을 터.

“아무튼, 예전에 여러 금융사에서 대선 자금 펀드 캠페인을 경쟁하듯 열어 본 적이 있는데, 별 이슈도 못 끌고 사람들이 관심이 없으니까 그냥 묻혀 버린 겁니다.”

예전에는 그랬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핸드폰을 통해 외부 소식을 빠르게 접할 수가 있다. 특히 이번 대선은 다른 대선들보다 훨씬 더 주목을 받고 있기 때문에 나는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대선 자금은 왜······.”

“아, 사실 말입니다.”

나는 전경련에서 있었던 일을 세세하게 말해 주었다. 그러자 권오준 대표가 휘파람을 짧게 불었다.

“역시 그쪽 사람들 대단하네요. 진보냐, 보수냐를 그들끼리 먼저 투표로 결정하다니. 말로만 들었지, 무시무시한 곳이군요.”

“전경련의 힘을 무시할 순 없죠. 들어보니까, 그쪽 사람들이 투표로 찍으면 거의 당선이라고 보면 된답니다. 뒤로 안 보이는 대선 자금이 꽤나 많이 흘러 들어가는 모양이에요.”

기업인들에게 대선은 중요하다.

특히 기업이 클수록 더더욱 중요하다. 그래서 이들은 대선에 큰 개입을 하며 당선이 될 만한 곳에 투자를 한다. 만약 둘의 경쟁이 치열하다면 한쪽에다 힘을 몰아줘 버리기도 한다.

대선을 통해 정권이 바뀌면 기업에 대한 정책도 다양하게 바뀌지 않겠는가.

그래서 기업인들은 최대한 자신에게 유리한 정권을 세우고 싶어 하고, 여러 로비를 통해 많은 이득을 취해 간다. 이것은 단순히 우리나라의 일만이 아니다.

미국도 재벌들끼리 모임을 가져 회의를 통해 특정 정당을 지지하고, 그 정당에 정치 자금을 제공해 자신들의 이익을 챙겨 나간다.

불공평하고 더럽게 보일 수 있으나, 이건 엄연한 현실이다.

유착 관계는 영원히 끊어 낼 수 없는 고리니까.

“저도 회장님의 아이디어가 굉장히 좋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예전보다 접근성이 빨라진 시대니까요. 하지만 문제는 과연 당선 가능성이 높은 두 후보들이 이걸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죠. 그리고 두 후보뿐만이 아니라 이번에 대선에 나가는 다른 후보들도 있고요. 거기다 수익률을 어디까지 잡을지도 중요합니다.”

만약 100억 펀드를 했다고 치자.

그리고 이번에 당선 가능성이 높은 두 대선 후보들은 분명히 득표율 15%를 넘길 것이기 때문에 대선 자금으로 활용한 100억을 정부에게서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정부가 펀드의 이자율까지 계산해서 지원해 주지는 않는다.

즉, 그 이자율은 우리 금융사가 자부담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게 우리의 손해일까?

바꿔 생각하면 그렇지 않다.

적어도 수백만 명의 관심을 끌 광고 효과와 더불어 펀드 참여를 위한 신규 고객 증가가 이번 대선 자금 펀드의 핵심이다.

즉, 우리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대통령 후보들을 광고 모델로 삼게 된다는 것이다.

“이거 성공만 하면 광고 효과가 엄청날 것 같습니다.”

“그렇죠? 저도 전경련 회의 때 문득 그 아이디어가 떠오르더라고요.”

“회장님답습니다. 그런 모임에서도 끝까지 일만 생각하시다니.”

매년 증권사들은 광고 비용에 적으면 수십억, 많으면 수백억까지 지출한다.

하지만 이 대선 자금 펀드는 그보다 적은 금액으로 더 많은 광고 이익을 창출할 수 있게 된다.

“권 사장님은 직원들 회선 다 돌려서 대선 후보들한테 저희가 이런 펀드를 계획하고 있다는 걸 알려 주세요. 그쪽에서 어떻게 반응을 하는지 한번 봐야겠습니다.”

“예, 회장님. 바로 전화랑 메일 다 돌려 보겠습니다.”

권 대표에게 몇 가지 일을 맡기고 나서야 현식이가 낮아진 목소리로 날 불렀다.

“알아봤어?”

“어. 저번에 서울 시장 선거 때도 이용했었다고 하네? 근데 큰 효과는 없어서 증권사들이 이제 관심이 없나 봐.”

“그래. 나도 방금 권 대표한테 들었어.”

“아니. 전화로 들을 거면서 난 왜 시킨 거야?”

“너도 가끔은 그 머리 좀 써야지.”

나는 현식이 머리를 수박처럼 두드린 다음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일은 맡겨 놓았긴 했지만, 그래도 확실히 하는 게 좋기 때문에 이곳저곳을 찾아보며 조사했다.

대통령 후보들을 이용한 대선 펀드 개설이라······.

벌써부터 얼마나 많은 돈이 모일지 기대가 되었다.

* * *

직원들을 시켜 이번에 대선 후보에 참여하는, 그중에서 가장 당선이 유력한 두 후보자에게 대선 자금 마련에 대한 펀드 프로젝트를 보내 놓았다. 하지만 유세 활동 때문에 바쁜 건지, 아니면 그냥 씹는 건지 며칠 동안은 아무런 회신이 오지 않았었다.

그러던 중 한 후보에게서 회신이 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 캠프 쪽 사람이 우리 회사를 직접 찾아왔다.

“안녕하십니까. 현재 민중당 선거팀에서 회계를 맡고 있는 김인호라고 합니다.”

“민중당 유규현 의원이라 합니다.”

하나는 대선 자금 회계를 맡고 있는 회계사. 다른 하나는 민중당 대통령 후보 진강호의 오른팔이라 불리는 유규현 의원이었다.

당에서 직접 나와 준 만큼, 나도 실무진만 보내지 않고 직접 나와 같이 인사를 건넸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J&H 회장, 이진석이라고 합니다.”

나와 손을 맞잡은 유규현 의원이 먼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이렇게 젊으신 분이 대한민국 금융 그룹의 회장이란 사실이 참 놀랍습니다. 투자의 귀재라고 불리시던데, 제가 국회의원만 아니었다면 당장 여기 그룹에 돈을 다 맡겼을 겁니다.”

“하하. 아직 정치 인생도 길게 남으셨는데, 좀만 참으시지요.”

국회의원 배지를 다는 순간, 소유하고 있는 모든 주식을 처분하고 은행에 맡기는 것이 국가의 법이다. 그리고 저 양반들은 돈도 돈이지만, 그보다 더 원하는 것이 바로 권력이다.

권력을 잡으면 돈, 그 이상의 것을 가질 수 있으니까.

주식 투자는 전혀 관심도 없을 것이다.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저희가 대선 유세 때문에 많이 바빠서요.”

“이해합니다. 말씀하시죠.”

“최근에 보내신 문서는 잘 봤습니다. 참 기발한 생각이더군요. 대선 자금을 펀드로 마련한다라······. 안 그래도 저희가 이번에 은행 대출을 새로 받아야 할 것 같아서 알아보고 있던 중이었거든요.”

“예. 의원님 말씀대로 은행 대출은 필수적이죠. 물론 15% 득표율만 가진다면야 국가가 다 지원한다고 하지만, 아시다시피 대출 이자는 국가에서 지원이 안 되잖습니까.”

연 3.6%라는 금리로 대출을 받아 그 이자를 매달 갚아 나가야 한다. 당으로서는 부담이 되는 금액이다. 그리고 대출한 금액만 정부에서 지원해 주기 때문에 이자는 당에서 해결을 해야 한다.

그러나 펀드로 자금을 모은다면 이자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진다.

“저희에게 맡겨 주신다면 이자는 깔끔하게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어차피 진강호 후보님이야 당연히 득표율 15%를 넘으실 테니까요. 국가에서 선거 자금을 지원해 줄 겁니다. 저희는 그걸 돌려받아 명시한 이자율대로 국민들께 돌려드리는 거죠. 어떻습니까?”

“서로가 윈윈하는 방법이겠군요. 저희는 돈 문제가 깔끔하게 해결돼서 좋고, 회장님은 홍보 효과를 톡톡히 누리게 되어서 좋고.”

“예. 그 이자는 저희가 내는 광고 비용이라 생각하시면 되겠군요.”

“하하. 대통령 후보를 모델로 써서 그 정도 비용밖에 안 낸다면 날강도라고 해야겠네요. 그래도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기에 이렇게 온 겁니다.”

수백억 대출을 받으면 그에 따라오는 이자율을 감당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물론 여러 기업에서 알게 모르게 지원받는 것이 참 많을 테지만, 그것을 공개적으로 드러낼 순 없지 않은가.

“이자율은 얼마로 생각하십니까?”

“저희 직원들이 여러 조사를 해 봤습니다. 지금 은행 이자율이 연 3.6%거든요. 저희는 그래서 한 3%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5%는 무리겠죠?”

“음. 5%는 너무 셉니다.”

우리가 계산한 적정 금액은 3%였다.

5%는 너무 오버한 경향이 있다.

다행히 유 의원도 이상한 고집을 부리진 않았다.

“저도 한번 불러 본 겁니다. 그럼, 3%로 하겠습니다.”

“바로 결정을 내리시는 걸 보니, 전권을 받으신 거로 이해해도 괜찮겠습니까?”

“예. 지금 제가 여기서 내리는 결정이, 저희 진 후보님의 결정과 똑같습니다.”

“시원시원하시네요. 그럼, 금액은 얼마나 필요하십니까?”

금액 부분에서 유 의원의 표정이 미묘하게 달라졌다.

너무 많이 부르게 되면 국민들의 참여가 저조해 괜한 웃음거리가 될 것 같아 걱정하는 것이다.

펀드에 넣기만 하면 무조건 3% 이자율을 준다는 건데, 이게 언뜻 보면 공짜로 돈을 버는 거지만 정말 돈을 원해서 들어오는 거라면 보통은 이 펀드를 선택하지 않게 된다.

펀드와 주식이라는 건 하루에 30%도 폭등할 수 있다는 걸 투자자들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고작 3%를 위해 돈을 넣느니, 차라리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다른 종목에 넣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나는 이번 대선이 다른 때보다 관심이 높다는 걸 알고 있기에 분명 많은 사람들이 몰리게 될 거라 확신했다.

기존 투자자들부터 시작해 아예 펀드를 해 보지 않은 사람들까지 몰려 금방 목표 금액을 채울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음···.”

길게 고민을 하던 유 의원이 드디어 액수를 제시했다.

“100억으로 하겠습니다.”

“100억. 좋습니다. 날짜는 언제로 할까요? 저희가 먼저 마케팅을 최대한 해서 관심을 끌어모은 다음에 오픈을 하려고 하는데.”

“적절한 시기에 해 주십시오.”

“금액은 100억이 확실한가요? 좀 상황을 보시고 더 올려도 되겠다 싶으시면 다시 말씀해 주십시오.”

“세밀하시군요. 잘 알겠습니다.”

회장실 밖을 나서면서 유 의원은 같이 대동한 회계사에게 이것저것을 물어보는 모습을 보였다. 전문가와 함께 와서 우리의 프로젝트 구상을 들었으니, 아마 별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나 같으면 200억 부를 거 같은데.”

나와는 다르게 권 대표는 유 의원의 금액 선택이 적절하다고 본 듯하다.

“글쎄요. 저도 많은 관심을 끌 거 같긴 한데, 딱 100억이 적절할 것도 같네요. 마음 한편으로는 이게 과연 금방 100억이 모일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누구나 그런 불안감을 가질 순 있다.

이번 펀드 프로젝트가 잘 안 된다면 후보는 후보대로 망신이고 우리 금융사도 이미지를 날려 먹는 꼴이다.

하지만 난 이렇게 생각했다. 자신이 원하는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면 적은 돈이라도 참여하려 하지 않을까? 아이돌 콘서트를 따라 밤새 기다리며 열정을 불태우는 게 꼭 젊은이들만의 일일까?

분명 어른들도 그런 아이들과 같이 밤을 새울 수 있는 열정이 있다고 본다. 우리는 그저 그들의 열정에 불을 지펴 주기만 하면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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