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융계 천재가 되었다-56화 (56/200)

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56화.

나는 직원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최대한 조용히 한 층씩 계단을 걸어 다니며 각 부서를 확인한다.

내가 신화 금융 사장이었을 때는 이런 행동을 하지 않았는데, J&H 금융은 내 이름이 걸려 있는 회사가 아니던가?

이곳은 나의 것, 나의 회사라는 주인 의식이 생기면서부터 회사를 더욱 아끼게 되었다. 그리고 회사의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어떤지 확인하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며칠에 한 번씩 이렇게 각 층을 돌아다녔다.

때때마다 나와 눈이 마주치는 직원들이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소란을 떨지 못하게 입을 막았다.

“예, 고객님. 저희 J&H 증권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그 어떤 증권사들보다 수익률이 높고······.”

“어휴. 감사합니다, 고객님. 저희 J&H를 선택하신 걸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줄기세포 관련주 사태 이후 회사 안이 더욱 활기차게 변했다.

우리 금융사를 PR하는 작업은 아주 잘 먹혀 들어 고객들의 숫자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었으며, 큰손들도 계속해서 거금을 우리 쪽에다 투척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이런 행보가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갑작스럽게 돈이 몰린다는 건 그만큼 기대치가 높다는 건데, 여기서 삐끗 실수를 하게 되면 그 돈이 정말 무섭게 빠져나가는 걸 보게 될 것이다.

이로 인해 펀드 매니저들과 금융 부서 직원들이 어떻게든 수익률이 좋은 종목을 찾기 위해 밤에도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내가 각 부서를 모아 어떤 종목에 투자하라고 지시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건 안 될 말이었다. 만약 내가 그렇게 일일이 투자에 관여를 하게 된다면 내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테고, 게다가 펀드 매니저들이 존재할 이유가 사라진다. 왜냐하면 모든 투자를 나 혼자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는 나 혼자 투자를 하는 공간이 아니다.

수많은 실력자들을 한곳에 모아 J&H라는 금융사를 굴러가게 만들어야 한다.

“회장님. 오늘도 비상계단으로 돌아다니셨습니까?”

점검을 끝내고 비상구에서 빠져나오는데, 거기에는 이미 권오준 사장이 기다리는 중이었다.

“하하. LK 금융을 인수한 뒤로 제 유일한 취미가 되어 버렸네요.”

멋쩍게 웃으며 우리는 회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 내가 권오준 사장을 회장실로 불러들인 이유는 최근에 올라온 여러 보고서 때문이었다.

“확실히 최근 들어 게임 쪽 투자 계획이 많아졌네요.”

“우리나라가 게임 강국이라 불리지 않습니까. 거기다 많은 기업들이 게임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니까요.”

자신이 특정 게임의 고수라고 생각된다면 한국인과 붙어 보라는 농담 아닌 농담이 인터넷상에 떠돌아다닌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게임 강국이다.

우리나라 게임 산업은 개인의 노력이라고만 볼 수가 없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데, 우리나라가 이렇게 게임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건 정부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게임 중독과 게임이 가져오는 폭력성 때문에 부모들이 제 자식들에게 게임을 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다.

정부 또한 게임 산업에 제재를 걸려고 하는 모양새가 나오고 있어 사람들이 많은 착각을 하게 된다. 정부가 게임 산업을 무시한다고 말이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1990년대부터 정부는 게임 산업 발달을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았으며, 젊은이들이 게임 개발에 몰두할 수 있게 프로그램 강의 및 시나리오 공모전을 주기적으로 열어 우승자에게 투자금을 안겨 주었다. 그들의 노력으로 우리나라는 마침내 게임 강대국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현재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국산 게임들 대부분이 초기에 정부의 투자를 받아 성장한 것들이라 보면 된다.

‘게임이요? 요즘도 많이 나오긴 하죠. 그런데 예전만큼 딱히 흥미를 끌만 한 게 없어요. 옛날엔 RPG 게임을 정말 많이 플레이했는데, 요즘 게임은 지루하기만 해요.’

‘요즘엔 컴퓨터 게임보다는 핸드폰 게임을 많이 하지 않나요? 특히 직장인들은 컴퓨터 게임 할 시간이 없으니까, 다들 핸드폰 게임만 하죠.’

어느 뉴스에 나온 시민들의 간단한 인터뷰였다.

모바일이 폭발적인 발전을 이루면서 컴퓨터 게임을 만들던 회사들이 하나둘 모바일 게임 개발로 넘어가게 되었다.

이름만 들으면 다 아는 게임 회사들이 죄다 그쪽 산업으로 뛰어드니, 이러다 컴퓨터 게임 신작은 제대로 된 게 나오지 않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중에서 내 눈에 띈 회사가 딱 2개 있었다.

하나는 블랙홀이란 중소기업.

두 번째는 캣마블이라는, 요즘 사람들이라면 모두 들어 알 만한 게임 회사.

처음에는 게임 회사에 전혀 눈도 돌리지 않고 있던 내가 갑자기 시선을 집중하게 된 건 내게 올라온 몇몇 보고서 때문이었다.

그중 하나는 오영식 팀장, 지금은 제1 금융 부서의 부장이 된 그가 쓴 보고서였다.

거기서 그는 블랙홀이란 기업을 내게 추천했는데, 아직 상장을 하진 않았고 최근 새로운 게임 개발을 위해 투자자를 모집 중이라는 걸 알렸다.

하지만 권오준 사장은 이번 투자에 별로 긍정적이지 않았다.

“요즘 모바일 게임이 강세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다른 증권사들도 관련주를 찾아 매입하고 있으니까요. 근데 이건 주식을 사는 게 아니라 직접 투자를 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딱히 투자 계획을 잡진 않았습니다. 그래도 회장님께는 남김없이 보고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 보고서를 올려 드린 것뿐입니다.”

투자 계획 보고서는 하루도 빠짐없이 내게 올라온다.

잠재적 가치는 높지만 가격은 낮은 종목들을 발굴해 내는 팀이 따로 있을 정도며, 이렇게 블랙홀처럼 상장을 하지 않고 투자자를 찾아다니는 기업들도 다수 있다. 그중 몇몇 아이템이 좋아 보인다면 직원들이 찾아내서 내게 보고서를 올린다.

사실, 오영식 부장이 내게 보낸 보고서들 중 블랙홀 말고도 현재 상장 중인 기업들 또한 다수 들어 있었다.

“저는 블랙홀보다 캣마블에 한 표 걸고 싶더군요.”

“캣마블이요?”

“예. 요즘 젊은 사람들은 캣마블에 대한 추억이 많지 않습니까?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예전에 캣마블에서 개발한 크로마라는 FPS 게임을 저도 많이 했었거든요. 핵이 넘쳐나서 게임 자체가 터져 버리긴 했지만.”

크로마.

추억의 FPS 게임이다.

스트라이크라는 서양 FPS 게임이 세계적으로 유행을 탔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크로마가 가장 큰 인기를 끌었다.

“우리나라가 PC방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엄청나게 많지 않습니까. 정부가 게임 산업에 공격적인 투자를 한 것도 있지만, 스타크리드라는 게임이 가장 주요한 역할을 했죠. 근데 전 그 게임이 너무 어려워서 건들지도 못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PC방을 간 게 크로마라는 게임 때문이었다니까요?”

스타크리드는 전설 같은 게임이다.

우리나라 PC방 산업에 불을 붙여 준 게임이기도 하며, 해 보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의 초히트작이다.

그런데 나도 이 게임은 어려워서 그냥 친구들이 하는 걸 구경만 했던 거 같다.

“제가 신화 금융에서 금융 개발팀에 있었을 당시, 캣마블에 전격 투자를 했다는 거 아십니까? 그땐 사장이 아니긴 했지만, 여러 번 투자를 성공한 적이 있어 그 당시 신화 금융 사장님이 제 포트폴리오를 받아들여 주셨죠.”

“캣마블에다 투자를 하셨다고요?”

“예. 캣마블이 새로운 FPS를 개발한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회사 본사에 쳐들어가서 게임 시나리오와 개발 방향을 전부 다 확인했죠.”

나는 흥미진진하게 권오준 사장의 말을 경청했다.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대성공이었습니다. 패스트 어택이라는 FPS 게임 아시죠? 그게 저희 신화 금융에서 자본을 투자해 만들어 낸 게임입니다.”

대한민국을 강타한 히트작, 패트스 어택을 신화 금융이 개발 투자했다는 건 오늘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지금도 우리나라 FPS 시장은 패스트 어택이 꽉 주름 잡고 있죠. 여러 경쟁작들이 있었지만, 결국 최후에 남은 건 패스트 어택입니다.”

패스트 어택은 여전히 대한민국 FPS 게임 시장을 지배하고 있었다.

매번 새로운 FPS 게임들이 등장하지만, 결국 그 어떤 것도 패스트 어택의 아성을 깨뜨리지 못했다.

“캣마블이 그 이후로 경영 악화가 되어 많이 휘청거리고 있긴 합니다만, 최근에 다시 정신을 다잡고 모바일 게임 시장에 뛰어들었다더군요.”

그러나 패스트 어택을 크게 성공시켰다고 해서 캣마블이 멀쩡한 것은 아니었다.

패스트 어택 이후 출시한 게임들이 성적 부진으로 서비스를 종료하면서 캣마블에 자본 위기가 찾아왔다. 결국 패스트 어택을 다른 대기업에 팔아넘기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런데 권 사장님은 왜 캣마블을 추천하신 겁니까?”

캣마블은 이제 구닥다리에 불과하다.

다른 게임 회사들도 많은데 굳이 그 회사를 추천한 것이 난 조금 의아했다.

“제가 나이 대에 맞지 않게 게임을 많이 좋아합니다. 모바일 게임도 여럿 하고 있고, 지금도 집에 돌아가면 제 아들이랑 같이 패스트 어택도 같이 하죠. 여러 RPG도 건드려 봤고요.”

의외의 반전 매력이었다.

아들과 같이 컴퓨터 게임을 해 주는 아버지라니!

그 아들은 아버지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일 거다.

“그래서 게임 산업에 관한 기업 보고서가 올라오면 빠짐없이 읽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캣마블이 경영난에 허덕이면서 이번 모바일 게임에 전력투구를 한다는 얘기를 듣고 흥미가 생겨 알아봤습니다.”

“또 회사로 쳐들어가셨나요?”

“예. 캣마블에 있는 공동 창업자들도 오랜만에 만나고 왔죠. 다들 제 얼굴을 기억해 주더라고요.”

젊었을 때의 패기와 혈기를 여전히 갖고 있다고 해야 하나.

밑의 직원을 시켜도 될 일을 자신이 직접 불도저처럼 뛰어갈 줄이야.

“그래서 전체적인 사업 방향과 현재 개발 중인 게임들을 직접 플레이해 보고 왔습니다.”

“언제 그런 걸 다 하셨습니까? 줄곧 회사에만 계시던 분이.”

“주말에 다녀왔습니다. 캣마블은 주말이란 개념이 없거든요. 거긴 그야말로 혼을 갈아 게임을 만드는 곳입니다. 업무가 너무 살인적이라는 문제가 있어요.”

그 말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혹시 블랙 기업입니까?”

“그 정도까진 아닙니다. 노동법에 걸려서 제재를 받은 적은 아직 없고요. 그런데 제가 잠깐 다녀왔을 때도 노동 환경이 썩 좋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면 조만간 걸릴 확률이 높겠군요.”

내 돈이 들어가 있지도 않은 회사의 노동 환경을 걱정할 필요는 아직 없다. 하지만 정말 내 돈이 들어간다면 그땐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요소이다.

“일단 그 부분은 제외하고, 다른 것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캣마블에서 개발 중인 게임들은 대다수 제 마음에 들었습니다. 안 그래도 경영난이라 투자금이 들어오지 않아 전전긍긍하고 있고, 캣마블 대주주인 CG도 주식을 대량 매각하려 한다는 소식이 있더군요.”

“가능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전 게임들이 잘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솔직히 확신은 못 하겠습니다. 그래서 회장님께 진지하게 투자 보고서를 올리지 않은 겁니다.”

권오준 사장 말대로 게임 산업은 솔직히 나도 긴가민가한 분야이긴 했다.

내가 게임을 열정적으로 하는 사람이 아니기도 하고.

거기다 권오준 사장 역시 게임 산업에 투자를 정말 하겠다는 의지가 있는 건 아니었다. 진짜 그럴 의지가 있었다면 투자 보고서를 내게 정식으로 내놓고 계획 단계를 마련했을 것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확인해 볼까?”

밤까지 증권사에 남아 있다가 집으로 돌아온 나는 고장 난 핸드폰이 울리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12시가 되자 귀신같이 켜지는 핸드폰에다 나는 캣마블에 대한 조사를 이어 갔다.

그렇게 제한 시간인 2시간 가까이 되었을 때, 나는 비로소 캣마블의 성적을 찾아낼 수가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년 반이 지난 후.

[캣마블 모바일 게임 1위 단독 선두.]

권오준 사장의 예측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그러나 그 이후에 나오는 기사들은 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빛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어두운 면이 있는 법.

그러나 이곳의 어둠은 너무나도 짙어 보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