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55화.
“지금 저희한테 필요한 건 홍보입니다.”
여의도 15층짜리 건물에 있는 모든 직원들이 성과급을 외치며 그들의 승리를 자축하고 있을 때, 권오준 사장은 임원들을 모집해 열띤 회의를 이어 갔다.
나도 꼭 참석을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에 일단 참석하긴 했다만, 갑자기 무슨 홍보를 말하는 걸까?
“우리 J&H는 조금 과장을 더해서 매우 드라마틱한 인수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로 인해 LK 금융을 떠났던 고객들이 조금은 돌아왔지요. 하지만 전부 다 돌아온 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홍보가 필요하다는 겁니까?”
“예. 이번에 우리는 줄기세포 관련주로 크게 한 건을 터트렸습니다. 다른 증권사들은 전부 손가락만 빨고 있을 때, 우리는 당당히 수익률을 냈죠. 이걸 적극적으로 홍보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권오준 대표의 말이 무슨 뜻인지 대충 이해가 갔다.
이번 줄기세포 관련주로 우린 3배에 가까운 돈을 벌어들였다. 그러나 다른 증권사들과 개미 투자자들은 어떠한가?
그들은 시가 총액 10조 원이 공중분해 되는 걸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우리가 수익률을 냈다고 무작정 PR을 하기보다는, 조금 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괜히 반발만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거든요.”
그 말대로 우리가 돈 벌었다고 자랑하면 돈을 잃은 개미 투자자들은 우리를 매우 불편한 시선으로 보게 될 것이다.
“부드러운 접근이 필요합니다. 돈 잃은 사람들이 우릴 보고 시기의 시선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나도 돈을 벌어야겠다는 탐욕의 눈빛을 띨 수 있게 말입니다.”
“음. 뉴스 채널을 이용하는 건 좀 무리겠죠?”
“뉴스에 떡하니 나와서 우리 돈 많이 벌었다고 PR하는 건 반발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요.”
임원들도 각기 의견을 내며 열띤 토론을 이어 나갔다.
그런 그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다가 나도 의견을 내놓았다.
“우리가 직접 방송에 나와서 말을 하기보다는, 그냥 여러 방송사 채널을 활용해 홍보를 하는 것이 어떨까 싶네요. 예를 들어 ‘J&H가 이번에도 월등한 분석력으로 수익률을 높였다-’라는 식으로요. 우리의 입으로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제3자를 통해 홍보를 하는 겁니다.”
우리 쪽 전문가들이 방송에 나가서 홍보를 열심히 하는 건 좋지 않은 방법 같았다. 차라리 여러 채널을 활용해 그곳에 있는 MC들이 우리 J&H를 은근히 홍보하는 방식을 쓰면 어떠냐는 건데, 임원들은 매우 긍정적으로 내 의견을 받아들였다.
“그거 좋네요. 그리고 투자에 관련된 여러 주식 커뮤니티 사이트도 활용해 보는 건 어떻습니까? 그곳에다가도 우리 J&H에 대해 좋은 말들을 써 놓으면 될 것 같은데.”
“권 사장님은 나이도 있으신 분이 그런 건 또 잘 아시네요.”
“하하. 원래 투자 시장이라는 게 조금이라도 뒤처지면 퇴화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항상 시대의 흐름에 적응하려는 저 자세. 저건 꼭 배워야겠다.
“이건 어때요?”
회의 때는 줄곧 입을 다물고 있던 우리 J&H의 부회장 현식이가 오랜만에 말문을 열었다.
“홍보인 듯 아닌 듯 우리 J&H 이름을 알리는 건 좋다 이겁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우리 회사의 브랜드가 무엇인 것 같습니까?”
“우리 회사의 브랜드요?”
“그거야······.”
임원들이 우물쭈물거리며 답을 내놓지 못하자 현식이가 말을 이었다.
“바로 이진석 회장입니다. 우리가 처음에 LK 금융을 인수하려 했을 때도 J&H란 이름을 이진석이란 브랜드로 밀고 나가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투자자들 중 이진석 회장의 화려한 이력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죠. 은근하게 홍보를 하는 것도 좋지만, 이진석 회장의 브랜드도 적극적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 전 좋다고 봅니다.”
현식이한테 저런 말을 들으니, 왠지 내가 다 부끄러워지는 것 같다.
문제는 권오준 대표가 현식이의 의견을 좋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회장님의 말씀도 옳군요. 이진석 회장님을 브랜드로 삼아 그것을 적극 홍보한다······. 이거 잘만 하면 효과를 크게 얻을 수도 있을 것 같네요. 투자자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처럼 보이지 않겠습니까? 매우 젊은 나이에 신화 금융 사장을 역임하고 지금은 LK 금융을 삼킨 J&H의 회장님이 되셨으니 말입니다.”
“듣고 보니 그러네요. J&H의 이름보다 이진석 회장님의 이름을 먼저 앞세워 브랜드로 삼는 것이 아주 좋아 보입니다. 투자의 귀재라 불리는 워런 버핏처럼 말입니다. 결국 워런 버핏의 버크셔 투자 회사도 워런 버핏이란 이름을 브랜드로 삼지 않았습니까?”
워런 버핏.
세계 최고의 투자자라는 명성을 가지고 있고, 장기 투자 열풍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다.
그가 운영하고 있는 버크셔 투자 회사에는 워런 버핏이란 이름을 보고 투자자들이 몰려 있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워런 버핏처럼 날 브랜드로 삼아 홍보를 하겠다니.
나의 그런 떨떠름한 표정을 권오준 대표가 읽은 것 같았다.
“회장님도 너무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우리 VVIP들은 전부 회장님 이름을 보고 우리에게 투자하지 않았습니까? 이제 그 이름을 VVIP뿐만이 아니라 일반 투자자들에게도 영향을 퍼뜨리려는 겁니다.”
“하지만 그만한 부작용도 있다는 걸 아시겠죠? 제가 한 번이라도 투자에 실패하면 절 물고 뜯으려고 난리가 날 겁니다.”
“워런 버핏도 실수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그는 여전히 그 자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회장님도 투자를 하실 때 실수할 수 있죠. 그러나 꾸준히 성과를 낸다면 분명 대한민국 1위 금융사는 우리 J&H가 될 거라 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저렇게까지 생각해 주다니.
참 고마울 따름이다.
그렇다면 나도 뭔가 보답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좋습니다. 모두의 의견이 그렇다면 저도 가만히 받아먹기만 할 순 없죠. 일단 내일 당장 인터뷰부터 잡아 보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는데, 그중 하나를 골라서 하도록 하죠. 그리고 그곳에서 투자 발표를 하나 하겠습니다.”
“투자 발표요?”
“예. 이번에 우리가 줄기세포로 돈을 벌지 않았습니까? 익절을 잘 해냈기에 이뤄 낸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단순히 돈을 벌려고 치고 빠지기를 한 게 아님을 사람들에게 알려 줄 필요가 있죠. 그래서 전 우리 회사 자체적으로 줄기세포 연구소에 투자를 진행하겠다고 말할 생각입니다.”
갑작스러운 투자 결정에 임원들은 당황한 눈치였다.
“회장님. 그 말씀은 정말 줄기세포 관련주에 투자를 하시겠다는······.”
“아니요. 주식에 투자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연구비에 돈을 대겠다는 겁니다. 우리도 줄기세포에 거는 기대가 컸고, 그것이 꼭 실현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알려 주는 거죠.”
그제야 내 말을 이해한 임원들이 감탄하기 시작했다.
“좋은 수인 것 같습니다.”
“현재 있는 논란을 싹 잠재울 수 있겠네요. 우리가 치고 빠지기로 개미들의 등골을 빼먹는다는 논란이 있던데, 그걸 쏙 들어가게 만들 수 있겠습니다.”
임원들은 내가 묘수를 발견한 거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어느 정도 진심이 담겨 있긴 했다.
줄기세포가 활발한 연구를 통해 인간의 장애를 극복시켜 주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번 하루카의 논문 조작 사건은 내게도 참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래서 단순히 투자하는 척만 하려고 몇십억 던져 줄 생각은 없다.
통쾌하게 몇백억을 던져 신뢰성을 주려 했다.
“그 외에도 저와 이 회사를 홍보할 수단은 많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많이 보는 동영상 채널을 활용하는 거죠.”
“동영상 채널이요?”
“너튜브라고 다들 아시죠? 요즘 TV는 잘 안 보고 다들 너튜브를 통해 소식을 접한다고 하더군요. 저 역시도 너튜브를 밤마다 자주 보고요. 그곳에다 개인 채널을 만들어 투자 관련 영상을 찍어 올려서 홍보를 하는 수단도 존재합니다.”
1인 방송 시대.
너튜브의 급성장으로 우리나라도 1인 BJ가 우후죽순 늘어나는 추세다. 또한 100만 명에 가까운 구독자를 보유해 어마어마한 퍼스널 파워를 휘두르는 방송인도 있다.
나는 너튜브가 곧 이 사회의 미래가 될 거라 생각했다.
“TV로 뉴스를 보고 소식을 얻고, 그리고 TV 개그 프로그램을 통해 유행어를 받아들이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이제 시청자들이 직접 유행어를 만들어 내고 활발하게 소통하는 시대가 되었죠. 우리도 그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당장 개인 채널을 열어 홍보를 할 생각은 없다.
적당한 타이밍을 봤다가 가장 효과가 좋다고 생각할 때 채널을 열어 투자 관련한 정보를 나누고 회사의 장점을 최대한 어필할 생각이었다.
* * *
[주식 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J&H. 그 뒤에 있는 이진석 회장.]
[놀라운 J&H 분석 능력. 대체 그들은 무엇이 다른가?]
[벌써부터 앞서 나가고 있는 J&H?]
은근하게 홍보를 한다고 했으면서 이건 아주 노골적인 홍보였다.
그런데 하나같이 틀린 말은 없었다. 거기다 알아보니, 이 기사들은 우리 쪽에서 내놓은 기사가 아니라 그냥 기자들이 알아서 써 올린 것들이었다.
그만큼 우리 회사가 주목을 받고 있다는 뜻이리라.
집에서 뒹굴거리며 쉬고 있던 현식이가 핸드폰을 보다 내게 소식을 알려 주었다.
“네 인터뷰도 올라왔는데, 조회수가 꽤 높더라. 순위권에 있어. 사람들이 너한테 관심이 많은가 봐.”
회의를 끝내고 곧바로 인터뷰를 받아들여 촬영이 들어가 이틀 후에 인터뷰 내용이 나오게 되었다.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기사를 클릭해 보았다.
그곳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건 바로 이 내용이었다.
‘저는 줄기세포 연구에 매우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번 일이 매우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여기서 연구가 끝난다는 건 우리의 미래를 망치는 것과 똑같기 때문에 저희 J&H는 자체적으로 300억을 줄기세포 연구에 투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투자를 이어갈 예정입니다.’
30억도 아니고 과감하게 300억을 불렀다.
적은 돈이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사람들의 반응도 보는 재미가 있었다.
-이 양반 크게 될 사람이네.
-줄기세포 완전 폭망했는데 거기다 300억을 붓는다? 또 투기 열기 불러일으키는 거냐?
-주가에다 붓는 게 아니라 다이렉트로 연구에 투자를 한다잖아요. 이번에 치고 빠지기를 한 것 같아 좀 안 좋게 보고 있었는데, 이번 투자 결정을 보니 생각이 또 달라지네요. 앞으로 J&H에다 위탁을 맡겨 봐야겠어요.
-J&H 진짜 좋음. 거기 펀드 몇 개 넣고 있는데, 진짜 거의 웬만하면 다 오르더라. 저 이진석이란 사람이 종목 보는 눈이 진짜 뛰어난 듯
-님. 펀드는 직원들이 하는 거지, 회장이나 되는 사람이 직접 관리하진 않습니다.
만약 300억이 아니라 3,000억을 불렀다면 그건 엄청난 화제가 되었을 것이다. 아마 나 때문에 주가가 다시 요동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정도로 돈을 쏟아부을 생각은 없다.
그리고 나는 다른 쪽에다 시선을 두는 중이었다.
투자를 통해 성과를 올리긴 했어도, 1조 5천억이 전부 우리 돈이라 할 순 없다. 대다수는 우리 투자자들의 돈이다. 또한 현재 우리가 짊어지고 있는 부채를 갚고 자본이 안정되게 하려면 열심히 뛰어다녀야 한다.
-유홍 제약 회사 신약 개발
-테슬러 로켓 엔진 연구
-블랙홀 신작 게임 개발
나는 미래 커뮤니티 사이트를 통해 입수한 정보들을 다른 곳에 옮겨 적어 두는데, 그 리스트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이 중에는 주식 투자를 하는 것이 있기도 하고, 직접 투자해야 하는 것도 있었다. 그중 내 눈길을 끄는 건 하나였다.
-블랙홀 신작 게임, 워 언더그라운드